그때 그 사람들 (2005)

9
감독
임상수
출연
한석규, 백윤식, 송재호, 김응수, 정원중
정보
코미디, 미스터리 | 한국 | 102 분 | 2005-02-03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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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기에 자리 없다고 대통령과의 행사에 함께 가지 못하고 병원을 찾은 중앙정보부 김부장은 주치의로부터 건강이 안 좋으니 잠시 쉬라는 권유를 받는다. 집무실에서 부황을 뜨던 중 대통령의 만찬 소식을 전해 들은 김부장, 잠시 생각에 잠기지만 이내 수행 비서 민대령과 함께 궁정동으로 향한다. 만찬은 시작되고, 오늘따라 더 심한 경호실장의 안하무인스런 태도에 비위가 상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그는 슬며시 방을 나와 오른팔 주과장과 민대령을 호출하여 대통령 살해계획을 알린다.

  김부장의 오른팔 주과장. 오늘도 여러가지 골치 아픈 일들을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는 그는 이런 일들이 이제 지긋지긋하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들려온 만찬 소식에 투덜거리지만 뭐 별 수 있으랴. 함께 할 손님들을 섭외하여 만찬장에 도착한다. 잠시 후, 자신과 민대령을 호출하여 "오늘 내가 해치운다"며 지원하란 김부장의 명령에 잠시 머뭇거리던 주과장, 별 뾰족한 수도 없는 듯 명령에 따르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긴다.

  경비실로 들어온 주과장은 부하 네 명에게 작전을 명령하고 무장시킨다.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충직한 부하 영조와 순박한 준형,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끌려나온 경비원 원태, 그리고 해병대 출신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지목된 운전수 상욱까지. 영문도 모른채 주과장의 명령에 따라 각자 위치에서 대기중인 부하들. 침을 꼴깍이며 잔뜩 긴장한 채로 김부장의 총소리를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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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하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에 등장하는 원조각하 말입니다. 굳이 현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각하는 강력한 정치적 형상으로 한국 현대 정치사를 여전히 좌우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일부 사람들이 그 흔적을 지우거나 절하하려 노력하더라도 끊임없이 유령처럼 돌아오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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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오랜만에 <그 때 그 사람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197910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암살된 하루 동안의 일을 그린 풍자적 블랙코미디이지요. 제목은 10.26 사태 당시 연회장에서 가수 심수봉이 불렀던 히트곡 그때 그 사람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의 귀환을 끊임없이 목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제목이지요. 이 영화는 그 날의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창작한 작품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대통령 살해사건에 가담하거나 휘말리면서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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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당시 상황을 풍자적으로 재구성하는데, 특히 잘 알려진 당시의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에 주력합니다. 대통령 역에는 송재호, 대통령을 저격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떠올리게 하는 김 부장 역은 백윤식, 김 부장의 오른팔인 중앙정보부 주 과장 역은 한석규, 심수봉을 떠올리게 하는 가수 송금자 역은 자우림의 김윤아, 그 외 정종준(참모총장), 정원중(경호실장), 김영인(최총리), 심우창(국방부장관)과 감독 임상수가 김 부장 주치의인 육본 헌병을 맡았습니다, 그 외에도 봉태규, 홍록기 등이 육본 초병으로 카메오 출연합니다, 윤여정이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습니다. 모두 당시 인물의 스타일이나 표정, 말투 뿐만 아니라 흔히 알려진 성격 등도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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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시작과 함께 자막을 통해 세부사항과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변호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편향 시비를 피해가려는 의도가 담겨있지요. 그러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논픽션 다큐멘터리를 세 장면이나 넣은 것이 문제가 되었지요. 실제 사건을 다루면서도 극적 효과를 위해 사실을 비틀어 사건을 변화시킨 의사(擬似) 역사(pseudo-history)” 영화는 할리우드에도 흔하게 등장하곤 합니다. 그러나 일부 다큐멘터리 장면을 삽입하면서 블랙코미디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요.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이 영화의 몇 장면으로 인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을 인정하여 실제 다큐멘터리 장면(350)은 무지 화면으로 처리된 채 개봉되었습니다. 또 실명의 배역명이 모두 수정되기도 했습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의해 영화 장면이 삭제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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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수 감독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지형도를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에 유능한 감독입니다. <바람난 가족>에서 중산층의 아이는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해부하듯 선뜩하게 그려냈고, 이어 개봉한 <하녀>에서는 중산층이 실종된 나라에서 발언권을 박탈당한 노동자의 유일한 저항 수단을 상징적으로 묘사했지요. <그 때 그 사람들>에서는 대한민국의 한심한 근현대사가 어떻게 아직도 발을 딛고 서있는가를 에둘러 보여줍니다.


  특히 이 영화가 갖는 강점은 공간에 대한 인식에 있습니다. 카메라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공간을 샅샅이 훑습니다. 카메라의 세심한 움직임을 통해 영화는 공간을 정의하고 나아가 시대와 그 시대의 유령이 잔존하는 오늘의 시대까지도 정의하게 됩니다.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 방과 방을 타넘으면서, 남산 중앙정보부는 사랑을 말하기 부적합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궁정동 안가는 하얀 부엌이 붉은 피로 뒤덮이는 살육의 현장이 되는 식입니다. 밥을 먹거나 섹스를 하는, 생활로 직결되는 모든 공간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한편 카메라는 김 부장 일당이 작당을 하는 모습을 마치 담벼락 너머에서, 나무 위에 숨어서, 여러 곳에서 훔쳐보듯 응시하곤 하는데, 이는 그 날의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 사실은 그들의 전략이 영화 내내 카메라에 의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임을 밝히는 듯 합니다. 육군본부 장악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광화문 앞길을 주 과장의 자동차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광화문 너머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과 청와대가 함께 서 있지요. 이미 1995년에 철거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굳이 복원해가면서 카메라를 광화문 바깥까지 널찍이 찍은 사실이 중요합니다. 영화는 이순신 장군과 옛 조선총독부와 박정희,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이 셋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장면을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폭력과 비상식의 시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낱낱이 서술하는 것과 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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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늘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외형적으로만 동일한 현재에 존재할 뿐이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사회적 요소들이 같은 시대에 공존하는 현상을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이라는 형용모순으로 설명했습니다. 사회적 갈등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함께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의 재림을 목격하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상당수의 그 때 없던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말입니다.

음악과 언어의 불완전한 유비

음악은 언어가 아니다. 하지만 음악에서도 언어와 같이 음악을 쓰고(write), 읽고(read), 이해한다(understand)고 말한다. 음악의 과정을 글을 쓰는 용어와 같이 사용하는 것이 우연인 것만은 아니다. 음악과 언어가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음악과 언어의 의심스러운 관계는 그 둘의 유사성을 찾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차이를 찾아보는 ‘불완전한 유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조금은 유치할지라도 말이다!


음악과 언어의 유사성

먼저 음악과 언어가 공유하는 유사성 중에서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즉 너무도 당연한 것부터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둘 다 소리를 매개로 하는 표현 형태라는 점이다. 이 때, 단순히 어떤 소리로 그치지 않고 내용이나 의미를 가지는 소리가 시간적으로 연속되어 있다. 나아가 그 의미있는 소리가 흐름에 따라 정렬되어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에 대한 논리를 따질 수 있다는 것도 유사하다. 음악이 논리를 통해 어떤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이 미심쩍을 수 있지만 음악 역시 축적된 규칙이나 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내부적인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다. 지휘자의 경우 이러한 음악적 체계를 이해하고, 연주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호흡을 맞추고 음악을 만든다. 논리가 있는 만큼 음악과 언어는 모두 해석되는 과정에서 상황이나 맥락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같은 음악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종종 겪는 일이다.

음악과 언어의 유사성은 직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시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음악의 전통적인 이론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모두 언어의 용어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언어에서의 ‘문장’ 단위(sentence)는 음악에서의 ‘음절’ 단위를 뜻한다. 문법상 ‘구’(phrase)에 해당하는 단위 역시 음악에서 하나의 ‘악구’를 의미한다. 즉 음이 모여서 구를 이루고, 절을 이루는 음악의 조직 방식이 단어가 모여서 구가 되고 문장이 되는 언어의 구성 방식과 비슷한 것이다. ‘성부’를 나타내는 'voice'나 ‘완전 악장’을 뜻하는 ‘period' 등의 음악적 용어 등 언어적 용어와 공유되는 모든 표현이 음악의 언어적 성격을 말해준다. 여러 장(章, chapter)이 모여서 하나의 글을 구성하는 방식도 있듯이 한 곡이 여러 악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음악과 언어의 차이

다양한 공통점이나 유사성을 가지고도 음악은 언어와는 확연히 다르다. 가장 기본적으로 음악은 언어의 기본 구성단위에 해당하는 ‘어휘(word)’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휘가 없는 이유는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휘는 어떤 것을 지시하기 위해 이름붙이는 역할을 하지만, 음악은 지시 대상을 명확히 갖고 있지 않다. 지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악에는 개념도 없으며 의미를 규정하지도 않는다. 즉 비대상성, 무개념성, 비규정성의 세 가지 음악의 특징은 언어와의 차이를 규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악의 특징은 음악이 근대에 들어서 점차 예술의 순수성이라는 가치와 연결되면서 명확한 현실 세계와 거리를 두고자 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따라서 음악을 의사전달이나 소통의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보편적인 언어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음악작품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면 난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건 음악이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말이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_ 멘델스존


음악과 언어의 사회적 구성

음악과 언어는 사회적으로 다른 위치를 부여받는다. 언어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나 지적 능력에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사회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음악은 근본적인 것으로 인식되기보다 여가 및 오락의 도구 정도로, 조금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면 정신적․문화적 고양을 위한 수단 정도의 주변적인 위치로 인식된다.

하지만 인간이 구성하는 모든 사회에는 언어와 더불어 음악이 있다. 심지어 언어가 있기 이전에 음악부터 존재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음악과 언어가 둘 다 의사소통 형태로서, 사회 내부에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음악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음악의 위치를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그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 조금은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한다. 기호학의 개념을 잠시 빌려볼 것인데, 기호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 ‘기표’와 ‘기의’만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기표는 물리적으로 들리는 용어 사이의 차이이고, 기의는 그 물리적인 소리가 지칭하는 실질적 의미를 뜻한다. 그러니까 ‘초콜릿, chocolate, chocolat'은 각기 다른 기표이고, 글로 나타낼 수 없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그 ’초콜릿’이 기의가 된다.

다시 돌아와서 음악이 어떤 지시대상이나 개념이 없다는 것에 주목해보자. 지시대상이나 개념이 없다는 것은 기호를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 중에서 실제 뜻이나 개념인 ‘기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음악은 기의가 없는, 텅 빈 기표로 생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호가 사회적으로 구성될 때, 기표는 합의된 기의와 약속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음악은 음악는 텅 빈 기표가 아니라 기의를 가지게 되고, 이는 주변적인 위치의 인식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구성주의

언어학에서 실재와 언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반대되는 두 개념이 있다. ‘언어는 실재를 반영한다’는 주장이 하나이고 이를 ‘표상주의’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실재가 먼저 있고 언어는 그 이후에 실재를 표현하는 수단 정도가 된다. 반대로 ‘언어가 실재를 구성한다’는 ‘구성주의’가 있다. 이에 따르면 오히려 언어에 따라서 실재가 만들어지게 된다.

  구성주의를 음악에 적용하게 되면 음악에 대한 말이나 이야기가 음악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된다. 우리는 음악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 음악이 가진 의미를 말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음악이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모두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구성주의에 따르면 이것이 음악에 대한 언어가 음악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음악적 가치가 음악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이 그 가치를 표현하는 말로 전달되면서 음악에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음악의 가치가 외부로부터 부여된다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의심하기

음악과 언어의 관계가 공생관계일지, 구성주의일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음악과 언어가 서로 어느정도 깊이 관련이 되어 있으며 공유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계속해서 의심하며 예의주시하는 수밖에!



[팝콘 먹는 좀비]

08. 삶의 모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자자- 짠! 오늘은 내가 쏜다. 이 대감독님께서 말이지."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는 승훈의 얼굴이 벌써 벌겋다. 옆자리의 혜선이 목소리 좀 낮추라며 승훈의 어깨를 꾹 누른다. 나도 괜히 돌아보며 고기집 손님들의 눈치를 살핀다. 2013년 마지막 날이라서인지 꽉 들어찬 손님들은 승훈의 외침 따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태연히 술잔을 부딪고 고기를 뒤집었다.

승훈이 놈이 이렇게 신난 건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전에 들었던 승훈의 시나리오가 한 영화사의 눈에 들었고, 일이 꽤 빠르게 진행되면서 계약까지 성공한 것이다. 영화 쪽 일이라는 게 잘 진행되다가도 언제든 엎어져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것이지만, 승훈이 놈 어쩐지 이번엔 자신만만해 보였다.

"이번엔 확실하다니까. 대표님이 딱 보시더니 내 손을 잡고 '우리 아카데미 한 번 가보자'라고 말씀하시는데. 야, 이건 내가 썼지만 정말 딱 봐도. 그냥, 크아-"

"오빠, 설레발은 하여튼."

 

혜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큭큭 웃는다. 못 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혜선은 종종 저런 포근한 웃음을 짓고는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이상하게 엄마가 떠올랐다. 포근하고 따듯한 기분. 나는 그 웃음을 오래도록 쳐다보고 싶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여자들에겐 엄마와 같은 무언가가 있는 걸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승훈이 병원에서 풀려난 뒤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승훈의 방공호는 그러니까 혜선이었다. 둘 사이의 문제에 혹시 내가 끼어있는 걸까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역시 물어볼 순 없었다. 하지만 내가 끼어있다면 과연 어떤 식으로인 것인지,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 어쩐지 씁쓸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 적당히 좀 해라. 적당히. 누가 보면 무슨 천 만 관객 달성하고 칸, 베니스, 아카데미까지 휩쓸었는지 알겠다."

"곧 그럴 건데, 연습 좀 해놓는 셈 치지 뭐. 흐흐- "

"오빠, 우리 곧 가야한다고 그러지 않았어?"

"아, 맞다! 야, 룽. 혜선이랑 나랑 그 영화사에서 하는 송년파티 가야하는데 너도 같이 갈래? 이참에 영화인들이랑 안면도 좀 트고 그래."

"그래…? 아냐, 뭐 나도 곧 가야돼. 나도 약속이 있어서."

"오호? 약속? 오오케이- 그래 그럼. 잘 놀고 내년에 보면 되겠네. 가자 그럼."

어쩐지 둘이 꽤 멀끔하게 차려입고 왔다 했더니 따로 약속이 있었다니. 대체 저런 옷차림을 하고 뒤에 약속이 있는데도 왜 고깃집을 오는 걸까 저 둘은…. 하여간 둘 다 사람 헷갈리게 하는 데엔 뭔가 있다.

나 역시 실은 작가모임이 있긴 했지만 글을 전혀 못 쓰고 있는 상태라 나가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승훈과 혜선, 둘과 함께 2013년 마지막 밤을 보내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결국 혼자 남게 되다니. 그렇게 조금 우울해져서 나는 고깃집을 나섰다.

 

 

"룽. 우리 먼저 간다 그럼! 이따 집에서 봐."

"그럼, 룽 씨. 새해엔 편식하지 마시고요. 저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고 멋진 소설 써주세요. 자- 이거요."

혜선이 조그만 손에 쥐고 있던 걸 나에게 주었다. 손을 내려다보니 거기엔 하얀 박하사탕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외로운 사탕을 얼른 입으로 집어넣고 멀어지는 승훈과 혜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싸한 박하향이 입 안에 퍼졌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영화관으로 갔다. 때마침 시간이 맞는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딱 새해가 될 그런 타이밍이었다. 이렇게 맞는 새해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알 수 없는 제목의 영화였다. 표를 끊고 기다리는 동안 검색해본 영화의 카피가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해본 것 없음, 가본 곳 없음, 특별한 일 없음! 아직도 상상만 하고 계신가요?

당신이 망설이고 있는 그 순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는 일 년을 마감하고 시작하기엔 꽤 좋은 작품이었다. 보고 나서야 아주 예전에 읽었던 제임스 서버의 소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를 영화화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을 읽을 때도 영화화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는데, 이정도면 나름대로 잘 영화화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었다.

 

 

월터는 ‘라이프’지에서 포토에디터로 수년째 일하고 있는 남자다. 영화의 카피처럼 그는 해본 것도, 가본 곳도, 특별한 일도 없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상상하기인데, 상상에 빠지면 누가 말을 걸어도 모를 정도다. 상상 속에서만큼은 월터는 영웅이 되고, 모험가가 되고,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된다.

어느 날, 그의 평생 직장이던 ‘라이프’지는 폐간하게 되고, 그는 잡지의 마지막 호를 준비한다. 그런데 전설의 사진작가 션 오코넬이 보내 온 자신의 생애 최고 걸작이라는 사진. 바로 25번째 사진. 표지 사진으로 써달라는 그 사진이 사라진다. 그 25번째 사진을 찾기 위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연락도 되지 않는 션 오코넬을 만나러 월터는 길을 떠난다. 당연하게도 그는 그 여행을 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해본 것 많고, 가본 곳 많고, 특별한 일 많은 인생이 된 것이다.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은 저마다 함께 온 사람에게 말을 뱉어내며 걸어 나갔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새해가 되기 정확히 10분 전이었다. 나는 다가올 새해는 어떤 1년이 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조금 다른 한 해가 될 수 있을까? 월터의 삶을 바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진을 찾지 못하면 직장에서 쫓겨날 거라는 압박감? 좋아하는 여자에게 멋져 보이고 싶었던 마음? 직접 얼굴을 보고 싶었던 전설의 사진작가에 대한 동경? 그런 것들 때문이었을까.

새해 5분 전의 거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집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주머니 속에 동전을 만지듯 나는 걸어가며 영화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의 새해 모토도 라이프지의 모토를 따라볼까….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라는 거창한 모토. 그 모토를 되뇌고 나니 어렴풋이 내가 소설을 왜 쓰게 되었는지가 떠올랐다. 혜선이 물었을 때 답하지 못했던 바로 그것.

 

 

그래, 그거였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러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그래서 나는 썼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썼던 게, 그것 때문이었다. 왜 이제야 생각났을까.

 

시계는 이제 11시 59분이었다. 새해가 1분 전이었다. 어쩐지 1분 뒤부턴 소설을 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보고 옛 기억이 떠오르듯 처음 소설을 끄적이던 날들부터 좋아하던 작가들의 책을 필사하던 밤, 첫 소설책이 나오던 날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얼른 달려가 밤이 새도록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곤 션 오코넬의 대사를 떠올렸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초침이 막 12를 지나 1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띵-동-

 

혹시, 제 묵주팔찌 가지고 계시지 않나요?

 

나에게 정말 새로운 1초가 시작되고 있었다.

 

 


 

BY  룽  

영화와 음악, 책을 사랑하고픈 기자지망생. 

행복과 항복 사이에서 글을 쓰는 중. 


 

※ 읽기 전 주의사항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독자로 하기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의 인용 쪽수는 김연수의『사월의 미, 칠월의 솔(문학동네, 2013)을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만을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와 함께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문단의 인용은 들여쓰기 후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검은색으로 쓴 질문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0. 들어가며

 

   시간이 없어서, 라는 이유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김연수는 단정적으로 작품의 해석을 다는 것이 조금은 꺼려지는 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쓰려고 하는 작품의 주제가 이와 관련되어 있다면 더욱 더 그렇다. 그리하여 이번 편은 짧게 몇 가지 물음들을 늘어뜨려 보려 한다. 작품 속 표현을 빌리자면 검은색 펜으로 쓴 물음들이다.

 

 

 

#1. 이야기와 이야기의 관계

 

   김연수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면, 조금은 당연한 이야기인 듯도 하다. 그에게 소설은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참다운 이해라는 것은 결코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소설 역시 쉽게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모두 거짓이란 말은 달리 말하면, 쉬운 이해는 잘못된 이해라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쨋거나 김연수는 그의 소설을 통해 이 목표를 매번 이루는 듯하다. 내가 김연수의 소설을 읽는 방법 중 하나는 소설 속 여러 이야기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이야기들은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 공통점이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에서도 몇 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암투병 중인 주인공과 괴테. 정대원 씨가 들려준 발이 내는 소리를 묻는 이야기. 소설 속 소설로 나오는 ‘24번 어금니로 남은 사랑’. 그 소설의 바탕이 된 실제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 이야기들은 무엇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일까.

 

 

 

#2.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소설가 김연수는 언제나 제목을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푸른색은 무엇을 의미하고, 푸른색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제목을 읽자마자 궁금해진다. 이는 분명 제목 속 푸른색이 시시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로부터 기인하는 호기심을 것이다. 늘 그렇듯,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나니 푸른색은 무엇이었고 푸른색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보통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나면 제목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호기심은 내용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제목이 가리키는 바가 소설 속에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나서 그 가리키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새롭게 알아내고 싶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소설을 읽고 나서도 궁금한 점이 남아있었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왜 제목 속에 우리가가 들어가야 했을까. ‘우리가를 생략하거나 내가라고 쓸 수 있는 것 아닐까. 단지 주인공과 정대원이라는 두 인물이기에 우리라는 지시대명사를 쓴 것일까. ‘우리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작품 속의 사람뿐만이 아니라 작품 밖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말은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3. 나오며

 

   작품을 한 번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과 궁금한 점을 글로 옮겨보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건 검은색으로 쓴 질문일 테다. 작품 속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젊은 작가라면 절대로 컴퓨터로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컴퓨터는 작가에게서 초고를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이란 교정하지 않은 초고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정말 여기까지가 다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시작하는데 말이다. (후략)” (172)

 

나도 이 질문을 던지고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아야겠다. 질문에 어떤 해답이 보인다면 다음 글의 제목은 빨간색으로 쓴 글쯤이 될련지도 모르겠다.







 

by 오까마  

높디높은 열정과 낮디낮은 능력 사이에서 방황 중  

문학에 관심이 많지만 책 읽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We're human.


응답하라?

<응답하라 1994>가 <응답하라 1997>보다 더 핫한 히트를 기록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쓸쓸한 일입니다.

과거를 뒤돌아본다는 현상은.

단순히 '회상'일수도 있지만, 종종 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고는 하기 때문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거 회귀욕구 맞아요.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반추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에서 위로를 받고자 합니다.

답답한 현실에서의 탈출구는 '미래'라는 이름의 채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3년전에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당차게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도약을 꿈꾸었습니다.

우리는 작년에도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이 밝았지만, 우리는 이제 두렵습니다.

반복되는 좌절과, 탈락과, 경제적 궁핍과, 인간관계의 상처와, 자기비하의 늪에서

이제는 다시 도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좌절은(때론 구조화된 좌절은), 우리로 하여금 창을 닫게 합니다.

미래로 난 창문을 이중으로 닫고, 거기에 두터운 커튼을 치게 합니다.


미래의 배신, 긍정의 배신은 우리를 방안에 가둡니다.

우리는 방에서 위로받을 것을 찾습니다.

매일같이 듣던 음악, 매일 찾아가는 검색포털, 읽던 책, 지난 영화, 지난 옷, 헤어진 연인, 잊혀진 편지.

우리는 창을 열기 싫습니다. 거기에는 추운 겨울만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제 더 파먹을 게 없습니다. 방안에는 식량이 더 이상 없어요.

위로의 식량이 없어요.

좋은 음악도 한 두 번입니다. 우리는 기어이,

기억을 파먹습니다. 조작된 기억으로 눈을 돌립니다.

.

지금이 안 좋으면, 우리는 언제나 말합니다.


그땐 좋았지. 그때로 돌아가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온 국민이 말합니다.


응답하라.

응답하라.

메이데이메이데이-


작동하지 않는 무전기에 대고 소리칩니다.


응답하라! 응답하라고!, 1997인지 1994인지.

그땐 좋았으니까. 좋았나? 몰라, 하여튼 지금보다는 백배는 나았을 거니까.


행복했던 과거는 대부분 환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은 행복할 때는, 추억팔이 따위에 관심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세요. 당신은 행복 속에서는 과거에서의 또 다른 행복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땐 좋았을까요.

에이-

십중팔구,

그때도 우리는 힘들어 했습니다.

별 거 아닌 일에(지나고 나면 다 그렇죠.) 찌질대고 또 찌질대고

그랬습니다.


발전가능성이 부재한 오늘에-

사람들은,

과거를 향해서 창을 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싫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국민이 '레닌'의 흉포했던 독재를 그리워하듯.

일본의 국민이 극우정권의 군국주의를 지지하듯.

우리는 과거를 미화하고, 거짓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잘 그래요 사실.

Because.

We're Human


3. Beyond 2013 -

'Beyond'


2013

년 단 하나의 앨범, 단 하나의 노래를 꼽으라면

당신은 무엇으로 할까요.

(그러고 보니 좀 궁금하네요..)


전 이겁니다.

Daft Punk 의 <Random Access Meomories>에 수록된 9번 트랙

'Beyond'.


이 노래의 가사는 이래요.

-

Dream, beyond dreams
Beyond life you will find your song
Before sounds, to be found, close your eyes
Then rise, higher still, endless thrill
To the land of love beyond love
Come alive and youll find
Forever watching you alive

You are the night, you are the ocean
You are the light behind the cloud
You are the end and the beginning
A world where time is not allowed
Theres no such thing as competition
To find our way we lose control
Remember loves our only mission
This is the journey of the soul
The perfect song is framed with silence
It speaks of places never seen
Your homes a promise long forgotten
It is the birthplace of your 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