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81건
- 2014.02.14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닫힌 문
- 2014.02.06 [팝콘먹는좀비] 휴재공지
- 2014.02.04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 '코끼리'에 대하여
- 2014.02.01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5. 음악은 사치 - 'ICU' 4
- 2014.01.25 [Op.16] 앙리 마티스에게서 들리는 음악 1
글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오늘 이야기할 연극은 예술의 전당에서 올린 '2014 유망 예술가 초청공연'으로 뽑힌, Theatre201의 <닫힌 문>이다. 닫힌 문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닫힌 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닫힌 문의 너머를 들여다본다.
<닫힌 문>에서 ‘문’은 다다를 수 없는 또다른 삶에의 통로이자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절벽으로 내몰아가는 벽이 된다. 영산과 은호가 돈을 훔치기 위해 커다란 대문을 따는 첫 장면을 시작으로, 멀리뛰기를 연습하는 은호의 모습 위로 조명처리를 함으로써 문에서 또 다른 문을 향해 뛰어들고 있는 것처럼 연출됐던 장면, 꿈속에서 닫힌 문들이 끝없이 재배열되어 결국 은호를 다시 어두운 방 안으로 가두어버리는 장면 등등, 극은 ‘닫힌 문’이라는 은유를 효과적으로, 세련되게 시각화해냈다.
무대와 조명 사용이 인상 깊었다. 텅 빈 무대는 잘 쓰지 않으면 공허하고 광활할 뿐이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이명일 연출은 거의 비어있는 무대에 조명과 몇 개의 문만으로 여러 공간을 성공적으로 창조해냈다(조명밖에 안 보였다는 평이 있었을 정도!). 거기에 골목길, 비좁은 방 안, 공터 등등 계속 달라지는 공간을 배우들이 인식하고 연기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텅 빈 무대에 풍성하고 입체적인 공간감을 불어넣었다.
암전 사이사이를 우화적인 영상으로 채운 것도 흥미로운 시도였다. 갈수록 어두워지고 쳐지는 극의 무거운 분위기를 한결 덜었다. 하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토끼의 의미가 아직도 불분명하게 여겨질뿐더러, 영상 자체의 내러티브가 다소 불연속적인 부분들이 있어 종종 본 극의 몰입을 방해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극은 사채업자들로부터 벗어난 선희를, 고시에 합격한 은호를, 고시텔을 벗어나는 양씨를 보여주는 대신 오랜 세월 전 고3이 된 은호와 영산의 꿈에 부풀어있던 과거를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 문, 그 문이 만드는 절망감. 열어도 열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이 문들을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할까? 어줍잖은 희망을 가졌다가 더 아프게 무너질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마냥 절망에 빠져있을 것인가? 극은 이 질문에 대한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고 있는 듯하다. 그 아래 깔린 작가의 시선이 궁금했다. 비록 과거장면이라도 은호와 영산의 젊고 싱싱한 희망을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정말 이명일 씨는 절망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야기는 너무 쉽게 진부해졌다. 소외와 절망 속에서 인물들은 나름대로 각자 방황하거나 반항하거나 희망을 가지지만 그러한 캐릭터 설정과 이들이 빚는 관계의 구도마저 너무나 전형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생동감있던 인물들은 너무 힘없이 절망 앞에 무릎꿇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사회의 그늘로 밀려나게 되었는지, 왜 이들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는지까지는 잘 보여주었을지 몰라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않는다. 누구도 쉽게 답을 내줄 수 없는 주제인 것을 잘 알지만, 극은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우회하는 길을 택했고, 그러자 닫힌 문 너머에 있었을 희망과 사람다운 삶, 그들이 꿈꾸었을 것들은 닫힌 문의 그림자에 쉬이 잠식당했다. 이야기가 진부했던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 점이 못내 아쉬웠다. 주제가 아무리 절망이라고 한들 결국은 연극이라는 것이 다 사람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인데.
'닫힌 문'이 아니라 그냥 '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닫힌 문'이라는 말 자체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더라면. 열리지 않는 닫힌 문의 이야기와, 그 문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을텐데. 그 작은 차이가 많은 것들을 달리 했을지도 모르는데. 하나의 문이 닫혔을 때 또다른 문이 열렸을지도 모르는데.
'[연극] 빙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달나라 연속극 (0) | 2014.03.24 |
---|---|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젊은 후시딘 - 어 러부 스토리 (0) | 2014.03.07 |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테레즈 라캥 (0) | 2014.01.17 |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혜경궁 홍씨 (0) | 2014.01.04 |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목란언니 (0) | 2013.12.20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개인 사정으로 이번주 휴재합니다.
이제 '팝콘 먹는 좀비'도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마지막까지 재밌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팝콘먹는좀비] 휴재공지 (0) | 2014.03.08 |
---|---|
[팝콘먹는좀비] 10. 액션보다 리액션, <시작은 키스> (1) | 2014.02.20 |
[팝콘먹는좀비] 09. 결국 몸, <월드워 Z> (5) | 2014.01.23 |
[팝콘먹는좀비] 08. 삶의 모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 | 2014.01.10 |
[팝콘먹는좀비] 07. 나의 방공호는 어디일까, <테이크 쉘터> (4) | 2013.12.26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 읽기 전 주의사항 ※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독자로 하기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의 인용 쪽수는 김연수의『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 2009)를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만을, 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와 함께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문단의 인용은 들여쓰기 후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코끼리'에 대하여
김연수의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
위에 링크한 노래는 아일랜드 출신 가수, 일명 쌀아저씨라고 불리는 Damien Rice의 <Elephant>입니다. 노래의 내용을 간추린다면 이러합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지만, 너를 도무지 잊을 수가 없네. 이제 제목에 집중해봅시다. 노래의 제목은 ‘코끼리’입니다. 제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영어 관용어 표현 하나를 알아야합니다.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것인데, 이는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노래 속에서는 ‘you’가 바로 ‘elephant’입니다. 나(I)와 내가 지금 사귀고 있는 그녀(she)가 모두 인식하고 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고 있는, 나의 떠나간 애인(you)의 존재 말입니다.
노래는 떠나간 ‘너’를 잊지 못하는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는 그런 그를 사랑하고 있는 ‘그녀’가 눈에 밟힙니다. 이전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떠할까요? 그렇다는 사실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그가 얼마나 야속하고,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자신은 얼마나 비참할까요? 아무래도 이 노래 속 '나'는 가련한 사람이기 보다는 너무도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갑작스런 노래 이야기에 당황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이 노래를 소개한 것은 김연수의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가 이 노래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게는 코끼리의 존재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작가의 말에서 인용한 부분입니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는 데미언 라이스(Damien Rice)의 <Elephant>를 듣고 긁적인 문장들에서 시작된 소설인데, 다 쓰고 몇 달이 지난 뒤에야 그즈음 한창 번역하던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17, 작가의 말)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과 저처럼 읽고나서 금새 까먹는 분들을 위해 간략한 줄거리 소개부터 해야겠습니다. ‘나’의 집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습니다. 그 피아노는 어느 노인에게 받은 것인데,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었기에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조율을 위해 ‘사트비르 싱’이라는 이름의 인도인이 옵니다. 그는 아내가 강사로 나가는 한국어 강좌를 수강하는, 아내의 친구입니다. 이 소설은 아내가 송년회에 간 사이에 싱과 ‘나’의 만남을 다룹니다.
소설은 꽤나 불친절합니다. 헤어지기위하여 이별여행을 떠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부부가 되었는지, 소리가 제대로 나지도 않는 피아노를 주인공은 왜 받아온 건지, 그런 피아노를 아내는 왜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건지, 소설은 독자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남겨 놓습니다. 그것이 바로 코끼리입니다.
‘나’와 아내 사이의 코끼리는 바로 아기입니다. 이별여행에서 두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을 나눕니다. (이른 아침에도, 햇살이 힘없이 늘어지는 오후에도, 눈 그친 깊은 밤에도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124)) 두 사람은 이때 아이를 가졌을 테고, 아이로 인해 두 사람은 이별 대신 결혼을 선택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두 사람의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겁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했을 것이고 다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연이은 실패 속에 두 사람의 슬픔은 각자의 깊은 고독과 외로움이 되었겠죠. 결국 과거에 두 사람이 상실한 아이와 앞으로 가질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는 모두 두 사람의 코끼리가 됩니다. 아내와 ‘나’, 두 사람 모두가 알고 있지만 꺼낼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죠. 서로는 각자의 상처 속에 깊이 빠져들고, 서로는 서로에게 소홀해졌을 겁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피아노는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나’에게 피아노는 일본여행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상징이자 관계 회복의 제스처이지만, 아내에게는 문제의 본질에 전혀 관련이 없는 쓸모없는 것일 뿐입니다.
결국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피아노는 의사소통이 단절된 두 사람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싱이 이야기했던 “노래 안하면 안 삽니다”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계가 죽어버린다는 이야기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싱은 피아노를 조율하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아내와 ‘나’의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 것입니다. 싱은 ‘나’와 대화를 나누며 ‘나’의 아내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제야 오랫동안 숨겨왔기에 잊고있었던 ‘아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아내가 가지고 있었을 상처에 대하여도 생각할 것입니다.
노래 제목으로 시작했던 글이 드디어 소설의 제목으로 향하게 됩니다. 송년회를 마치고 온 아내는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이제 '나'는 아내의 상처를 보다듬을 것입니다. 소리를 잃은 피아노가 몇 번의 조율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소리를 찾듯이, 두 사람도 다시금 "말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얘기했고, 더이상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서로 사랑했"던 관계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by 오까마
높디높은 열정과 낮디낮은 능력 사이에서 방황 중
문학에 관심이 많지만 책 읽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문학] 오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재공지 (2) | 2014.03.04 |
---|---|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가 독자를 끌어당기는 법 (2) | 2014.02.18 |
[많은별들이한곳으로흘러갔다] 상대는 늘 타인이기 마련이다 (1) | 2014.01.21 |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검은색으로 쓴 질문 (0) | 2014.01.07 |
[살인자의기억법]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1) | 2013.12.24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모 광고에서 에디슨이 말하더군요.
"잠은 인생의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4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숙면일 경우에요."
저는 잠이 많습니다. 에디슨에 의하면 저는 거의 된장범벅의 메주남자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말인 데, 에디슨을 흉내내보려고 합니다.
"음악은 인생에 있어서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루 한 곡이면 충분합니다. 좋은 곡일 경우에요."
아램디의 <<지속가능한 음악>> 그 다섯번 째 말장난.
5. 음악은 사치 - 'ICU' From 김사랑
ICU Music Video.
1. 부자 나라 가난한 우리. 그리고,
사치.
나는 지하철을 탑니다. 환승을 합니다.
잠실의 8호선과 2호선을 이어주는 환승통로는 아주 깁니다.길고도 넓죠.
출근 시간, 그러니까 8시에서 10시대의 이곳은 무척이나 붐빕니다.
사실 붐비는 정도가 아닙니다. 클럽을 방불케합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부비부비가 성립됩니다(지하철 안은 클럽보다는 강제수용소에 가깝습니다, 생존과의 혈투죠).
'지하'철이라고 읽고 '지옥'철이라고 쓴다.
나는 그들의 옷차림을 봅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패딩이 많이도 보입니다.
누군가는 몽클레르를 입고, 누군가의 좀 앞에서 있는 누군가도 몽클레르를 입고
누군가는 지도가 그려진 패딩을 입고, 그녀의 8시 방향에 있는
이십대 초반의 남자 역시 '캐다나의 거위'라고 해석되는 문구가 새겨진 패딩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행입니다. 죄다 입으니까 유행입니다. 나는 유행에 민감해야 합니다.
나는 연두색의 네모박스로 유명한 포털사이트에 접속하여
'캐다다의 거위' 라고 타이핑합니다. 그리고 엔터 키를 누르죠.
지하철의 클럽을 연상케하는 환승통로에서 모두가 입고 있던 것의
사진이 모니터에 가득합니다. 그것들은 내가 보았던 그 지도모양이 또렷히 박혀있고,
'캐다다의 거위' 라고 자랑스레 박혀있는 제품들입니다. 그것들은 내가 본 것입니다.
모두가 입던 패딩입니다.
마음에 드는 놈으로 고릅니다. 나는 구매를 원합니다. 나는 가격을 봅니다.
[886,000원]
이것은 외계의 숫자가 아닙니다. 8만 8천 6백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팔십팔만육천원을 의미하는 숫자와 한자의 조합입니다.
나는 유행에 민감한 신세대입니다. 입고 싶습니다.
나는 할부를 하기로 합니다. 석 달만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합니다.그리고는
구매를 포기합니다.
월세와 보험료와 핸드폰 요금과 저 삼개월 할부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도 안 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모니터를 바라봅니다.
바라봅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본 그들이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다들 가난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돈 걱정에 돈 걱정을 돈걱정을 또 하며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서는,
8시쯤에야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고 퇴근합니다. 그들은 몇 년째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 그들에게 부유한 미래가 있을 것이란-
'희박한 가능성'에 대해서
나는 그다지,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그들은 가난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캐나다구스와 몽클레르를 입습니다.
수입에 걸맞는 소비로써, 캐나다구스와 몽클레르를 입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사치 를 부렸습니다. 그들에게 캐구와 몽클레르는 사치 입니다.
한달에 200만원씩버는 그들이 100만원에 육박하는 옷을 사 입는 것은 사치 입니다.
상식적인 기준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부자입니다. 돈이 많다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자랑합니다. OECD순위가 어쩌구 난리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루 12시간씩 일해가며 열심히 벌어도 우리는 월세를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아침부터 순대지하철을 타고 연가도 반납해도, 잘 안됩니다.
우리가 게으른가요? 우리가 못하나요?
자본주의는 열심히 일한 만큼 부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가요.
왜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데, 고작
패딩 하나를 위하여 사치 해야 하는 건가요.
2. 4시간의 전제
에디슨이 말합니다. 에디슨은 하루 4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그리고 덧붙입니다.
'숙면일 경우에요.'
숙면이 이루어지면 4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숙면일 경우에 4시간 이상의 잠은 사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치 하나요?
왜냐면,
우리는
숙면하지 않거든요.
3. 숙면을 위하여.
자 - 사치하지 않기 위해서, 저는
숙면을 하고자 합니다.
숙면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침대와 침구류를 잘 정리하고, 나의 내면세계를 편안하게 하려합니다.
깨끗이 씻고는 따뜻한 물에 반신욕을 합니다.
따뜻한 우유를 한잔 데워서 마셔보죠.
자 수면양말과 안대를 착용하고, 눕습니다.
기도합니다.
조용히 기도합니다.
저에게 숙면을 허락하소서.
그래서 숙면했냐구요?
하루만에 잘 될리가 없죠.
오늘도 어김없이 8시간이나 자버렸죠. 하하
"음악은 인생에 있어서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루 한 곡이면 충분합니다. 물론 좋은 곡일 경우에요."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든데.
음악은 사치 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하루 한 곡이면 충분합니다.
좋은 곡일 경우에요.
좋은 노래가 아니라면,
구매하고 또 구매하고 또 다운로드 하고
우리는 사치할 겁니다.
또 다시 한달에 200만원 벌면서 100만원짜리 패딩을 살겁니다.
나는 사치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하루 한 곡으로 만족하고,
하루 4시간의 수면으로 살아내고,
8만원짜리 패딩으로도 따뜻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숙면할 경우입니다.
이것은 좋은 노래일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래요.
하루 아침에 숙면이 잘 안되듯!
좋은 노래를 갑자기 찾는 게 쉽지 않다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해드린다는 겁니다. 예예.
하하하하하하하. 으흠 그럼
아램디가 소개하죠.
김사랑의 'ICU' <Human Complex>, 2013
가사 와 함께 다시 한 번 들어보자니까요.
왜냐하면 이건,
좋은 노래니까-
<Lyrics>
지친 우리 젊은 날
윤리는 검은 칼
틀림없는 위안
깨어나 아니면 더 후회해
나는 나 달린다 단숨에
위험한 그들만 백배 만만한 Show
Big Pig 매우 많은 돈 불리는 놈
너와 난 피말린 다음 털리는 MOB
끝나지 않은 대물림
이 매일 같은 조임이
다 게임은 아닌지 몰라
허울만 바른말 차포 다 떼인 언론
워낙 우린 말만 많은 Souls
툴툴대지만 말고 웃어보오
틀림이 아닌 다름에
무의미한 다툼의 이유
모두 왜인지 여튼 난 몰라
But I know we are the one
김사랑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그의 3집 <U-TURN>부터 들어보시길
단언컨대 그는, 좋은 음악가입니다.
'[음악] 아램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7. 향에 관하여 -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5) | 2014.03.14 |
---|---|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6. 가능하다면 - 'Wings' (7) | 2014.02.15 |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4. 몸의 대화 - 'Teach u a lesson' (4) | 2014.01.20 |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3. Beyond 2013 - 'Beyond' (8) | 2014.01.05 |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기적이라고 말하지마. (번외) (4) | 2013.12.24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알 수 없는 배경을 가진 어느 그림 속. 한 소년이 무표정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고, 그 너머로 소년을 지켜보는 윤곽선의 존재가 있다. 소년과 윤곽선으로 그려진 사람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지, 한 공간에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흐릿하게 그려진 존재가 조금 더 멀리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이렇게 이 그림에서는 다른 여느 그림과 같이 3차원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느끼기 어렵다. 바탕이 회색의 ‘면’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2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림은 앙리 마티스의 작품 <피아노 레슨>이다. 이번에는 <피아노 레슨> 그림에서 음악을 집중해서 들어보려 한다. 그림은 우리에게 아무 음악도 들려주지 않지만(정확히는 들려줄 수 없지만) 듣기 위해 그림을 읽다보면 조금은 딱딱하고 어두운 그림 분위기에 꼭 맞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오늘은 그림에 집중하고 2주 뒤에 음악에 귀기울여본다.
음악을 듣기 전에 마티스와 그의 작품에 대해 살짝 알아보자. 마티스는 당시 아카데미즘 화파였던 인상주의나 신인상주의에 반기를 들고 강렬한 원색과 굵은 선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이런 도전으로 인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모여 하나의 사조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를 ‘야수파’라고 한다. 야수파를 만들고 이끈 마티스는 2차원의 그림에 3차원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아카데미적인 목표에 어긋나게 그림을 철저히 2차원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어쩌면 2차원에서 3차원을 기대하는 감상자에 대해 그것인 환상일 뿐이라 조롱하는 동시에 그 환상을 깨트리고자 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마티스의 세계관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 중 하나가 그의 대표작 <춤>이다. <춤>에서 마티스는 초록색, 하늘색, 살구색이라는 강렬한 세 가지 색깔만으로 땅과 하늘이라는 공간과 사람이라는 대상을 납작하게 표현했다.
마티스의 그림은 당시 미술계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그의 그림을 본 평론가들이 20세기 미술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으로 그 흐름이 옮겨 간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미술, 그러니까 예술이 추함을 좇게 되다니. 미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미술사적으로, 미학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마티스를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화가와 작품들이 있다. 삐아오가 그 중에서 특히 마티스의 그림에 귀기울이고자 하는 이유는 마티스가 회화와 음악의 결합을 가장 활발하게 추구했던 화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피아노 레슨>과 <춤>모두 ‘음악’이 연상되는 그림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마티스는 그 두 작품 외에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두 점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하나는 춤과 거의 같은 구도에서 사람들이 춤 대신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단순한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두 명의 여성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화려한 장식과 곡선, 직선의 대비로 표현된 그림이다. 특히 두 번째 <음악> 작품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곡선-직선의 대립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강렬한 색채가 선명한 음색을 표현하고 곡선과 직선의 대립이 음들의 불협을 표현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마치 불협화음이라는 음악적 분위기의 회화적 연출이랄까.
다시 <피아노 레슨>으로 돌아가보자. 기존의 해석은 그림의 색채와 기하학적인 구도에 집중한다. <춤>의 배경이 파랑색과 초록색 두 가지의 넓은 면으로 표현된 것과 마찬가지로 <피아노 레슨>의 배경도 회색의 단색 면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서 뜬금없이 삼각형의 초록색 배경이 등장한다. 어떤 사물의 단순화된 형태일지, 또 다른 배경의 색면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색채가 다른 작품처럼 강하거나 원색 위주의 색은 아니더라도 ,색면이 넓은 만큼 한 가지 색이 감상자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 이제 눈으로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도 끝났고, 작가와 그의 작품 성향을 파악하는 일도 끝났다. 그럼 이러한 그림 읽기를 바탕으로,기존의 해석에서 조금은 벗어나, 음악을 들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티스의 <피아노 레슨>에서는 어린 소년이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을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그 음악이 들려오는 이유는 2주 뒤에 공개된다!^^
* 그림1. 앙리 마티스, <피아노 레슨>, 1916, 캔버스에 유채, 245.1x212.7cm,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그림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그림 2. 앙리 마티스, <춤>, 1909-1910, 캔버스에 유채, 260x391cm, 상트 페테르브르크 미술관 소장.(그림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그림 3. 앙리 마티스, <음악>, 1939, 캔버스에 유채, 115.2x115.2cm, New York Albright-knox Art Gallery 소장. (그림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 4. 앙리 마티스, <음악>, 1910, 캔버스에 유채, 260x289cm, Hermitage Museum 소장. (그림 출처 : 구글 이미지)
'[음악] 삐아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BWV. 17] 앙리 마티스에게서 들리는 음악 (0) | 2014.03.29 |
---|---|
[Op.15]음악과 언어의 의심스러운 관계. (0) | 2014.01.11 |
[Op.14] 예술도 노동이다?! (0) | 2013.12.29 |
[Op.13] 유도동기, 복선이 되는 음악 (0) | 2013.12.14 |
[Op.12] <호두까기 인형>, 음악으로 읽어보는 발레 (0) | 2013.12.04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