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먹는 좀비]

09. 결국 몸, <월드워 Z>

 

 

밤은 어딘지 사람의 무언가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 그 밤에 사람들은 저마다 일기장을 끄적이고, SNS에 흔적을 남기고, 용기 내 연락해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간밤의 알 수 없는 풍성함들은 어쩐지 허세스럽고 창피하고 감추고 싶은 민망함으로 바뀌어 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나의 새해 첫날 새벽도 그랬다. 어떤 알 수 없는 풍부함이 그날 밤은 더욱 가득했다. 새해 첫날이었고, 거리는 고요했고, 눈은 거리에 엎드려 새근새근 자고 있었고, 투명할 만큼 깨끗하고 찬 바람이 불었던 밤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떠밀었고, 나는 소설을 썼던 이유를 찾았다. 아니,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그건 그 밤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자고 일어나니 아득해진 꿈결 속 로또번호처럼 '소설을 썼던 이유'라는 것은 뿌옇게 희미해졌다. 그런데도 마치 꿈속에서 본 숫자를 정확히 떠올리기만 한다면, 로또에 반드시 당첨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나는 간밤에 내가 떠올려 냈던 그 '소설을 썼던 이유'라는 것을 이리저리 짜 맞춰 보고 있었다. 그 문장만, 그 이유만 정확하게 떠올린다면 반드시 다시 힘차게 소설을 써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나를 휘감았다.

 

고민과 고민 끝에 고고학자가 유골을 발견하듯 조심스럽게 '소설을 썼던 이유'를 발굴해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 속의 잊혀진 제국의 성터를 확인하는 일이었고, 이미 그 제국은 되살아날 수 없었다. 그건 그러니까 발굴된 것이었고, 떠올려진 것이었고, 이미 오래 전에 죽어버린 것이었다. 그걸 찾아낸들 지금의 나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깨어난다고 해도 그건 마치 죽은 시체가 살아 돌아다니는 좀비 같은 거였으리라. 소설을 '썼던' 이유였지 내가 지금 소설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아니었으니까.

지금 내가 소설을 써야하는 이유를 찾는 것, 그걸 위해선 고고학자가 아니라 탐험가여야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새로운 무엇을 찾는 것, 눈앞에 있는 생생한 질량과 부피와 색과 향을 찾는 작업.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그것이었다.

 

 

"결국, 몸 아닌가요?"

 

혜선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니지. 정신이지. 좀비는 정신이 죽어있고, 몸만 살아있는 거야."

승훈이 혜선의 말에 반박했다.

함께 저녁을 먹은 우리의 대화주제는 새해다짐을 지나 작년에 본 영화들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작년 여름 즈음 개봉한 좀비영화 <월드워Z>에 이르러 있었다. 소설이 억만 배는 좋았다는 승훈의 평, 나름 그 정도면 드라이하게 잘 뽑아낸 좀비영화라는 나의 평, 브래드 피트가 이제 할아버지로 보인다는 혜선의 평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혜화동 통제구역에 대한 소문을 넘어 자기가 봤던 할아버지가 좀비였을지도 모른다는 승훈의 음모론을 넘어 이제 대체 좀비란 무엇인가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야, 룽 너는 어떻게 생각해? 좀비는 몸이 죽은 거냐 정신이 죽은 거냐."

승훈과 혜선이 자기 의견에 동의해달라는 듯한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음, 나의 의견으로 판결이 나는 건가?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한 번 각자 날 설득해봐."

"아이 참, 이건 간단한 문제야. 몸은 움직이고 있는데 통제를 못 하잖아 그리고 아무 것도 못 알아보고 생각도 못 하고 그러니까 정신이 죽어있는 상태인 거지. 좀비는 마치 식물인간이나 치매환자 같은 거야."

"아니야 오빠. 좀비는 몸을 통제하고 있다니까. 저 사람을 물어뜯어야겠다고 생각도 하고 사람인지 좀비인지 다 알아보잖아. 그러니까 그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알아보고 몸을 통제하는 거야. 식물인간이나 치매환자도 그런 거고. 그리고 좀비 몸은 심장이 멈추고 호흡도 안하고 섞어가니까 죽은 게 맞지. 어때요? 룽 씨. 제가 더 맞는 거 같죠?"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엔요…"

"나지 뭐."

"조용히 해봐. 오빠."

둘이 싸우는 모습이 재밌어서 더 놀아주고 싶었는데 마침 나에게도 그렇다 싶은 대답이 떠올랐다. 애초에 답이 있는 얘기도 아니었겠지만.

 

"내 생각엔 둘 다 틀린 거 같은데. 그러니까 좀비는 몸은 죽지 못했고, 정신은 살지 못한… 그런 거 아닐까?"

"에이, 뭐에요 그게."

"그러니까, 왜 갑자기 다른 대답을 해. 임마."

나는 금세 실망하는 표정이 된 둘을 바라보며 웃었다. 둘이 어딘지 비슷하다는 걸 승훈과 혜선 서로는 알고 있을까. 취향이나 성격을 떠나서 둘이 가진 어떤 생생한 질량과 부피와 색과 향이 어딘지 비슷하다는 걸.

다시 밤이 찾아오고 있었고, 다시 무언가 풍부해지는 시간이 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브래드 피트는 너무 일하는 것 같더라. 자기 직장에서 상사가 시킨 일을 그냥 하는 그런 느낌이었어. 자기 가족은 안전한 데에 있고 그저 혼자 돌아다니잖아. 그래서 드라이하긴 하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좀비 영화론 별로였어."

"오오케이- 네 말이 맞다. 작가양반. 좀비 영화의 핵심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거지. 어떻게 그게 안 나올 수가 있지."

승훈이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럼, 어떻게 할 것 같아요? 가장 소중한 사람이 좀비가 되면요?"

 

혜선이 그 특유의 티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런 목소리로 물어오는 질문은 대답하지 않으면 아주 나쁜 짓이 될 것만 같은 무언가가 있다. 떠보려거나 의중을 알아내려는 어른의 질문이 아닌 꼬마아이들의 그것 같은 그저 순수한 물음. 그러니 답할 수밖에.

"어쩌겠어. 슬프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생을 마감시켜 주는 게 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승훈은 말을 마치고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지금 바로 옆에 좀비가 된 연인을 두고 마지막 결정을 내린 사람처럼 어쩐지 비장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흠. 역시 그런가? 룽 씨는요?"

"…글쎄요. 저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 라고 생각은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내 몸도 그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그건 전혀 다른 문제일 것 같은데요? 어쩌면 저는 죽이지는 못 할 것도 같네요."

 

"하긴… 생각이 몸이 되는 건 전혀 다른 거죠. 제 머릿속엔 엄청난 생각들이 있을 텐데 그건 생각일 뿐이잖아요. 그러고 보면, 생각들 중에 아주 몇몇만 살아서 몸이 되는 것 같아요. 나는 글을 쓰고 싶지만 그 생각은 몸이 되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금방 몸이 되어서 아르바이트를 다니거든요. 올해는 꼭 하루를 일찍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미 20여 년간 일찍 시작해서 뭐하냐는 생각이 몸이 되어버려서 어쩌지 못하고 있고요."

"그래, 금연은 정말이지 몸이 되지 않더라. 아아-"

승훈이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고는 머리카락을 뜯는다.

 

 

생각이 몸이 된다.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일지 문장의 몸을 해부하고 싶어졌다. 불현듯 김수영 시인의 말도 떠오른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온몸으로 하는 것이라던 그 말. 어쩌면 그 몸이 이런 뜻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애써 찾아낸 '소설을 썼던 이유'라는 것이 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결국 몸인 거였나….

생각은 다시 번져 이현에게로 향했다. 새해 첫날밤 나는 이현과 통화를 했다. 문자와 달리 통화는 몸으로 하는 거였다. 입을 열고 성대를 떨어 소리를 내고, 그것이 다시 고막을 떨리게 하는 것. 이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는 집으로 걸었다. 피가 기분 좋게 머리끝에서 발끝을 돌아 다시 머리로 돌아오는 상쾌한 순환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네, 어쩌다 보니 제가 현이 씨 묵주팔찌를 가지고 왔네요.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연락을 못 드렸네요. 그럼 제가 그거 찾으러 가도 될까요?"

"부산에서 너무 멀지 않나요? 제가 그냥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아, 괜찮아요. 저 마침 서울 올라갈 일이 있어서요. 다음 주에 뵐 수 있죠…?"

거리에 쌓인 눈을 꾸득꾸득 밟으며 나는 바다를 떠올렸다. 파도소리와 바람, 고운 모래. 현의 묵주팔찌와 하이힐이 온몸을 돌아 머리로 순환하는 피와 함께 또렷하게 그려졌다.

"네, 뭐 저는 일이 없으니까요. 언제든지요."

 

수화기 너머로 현이 슬며시 웃는 소리가 들여왔다. 그 숨소리는 안개가 걷히듯 천천히 나를 현과 키스하는 시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 생생한 질량과 부피와 색과 향 그리고 온기를 내 몸은 느끼고 있었다. 추워서였을까 통화 때문이었을까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날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몸인 거였나.'하고 말이다.

 

 

"오빠, 주머니 봐봐. 담배 있지? 끊기로 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래. 내놔."

"뒤져봐. 없다니까. 그냥 생각이 난다는 거지. 안 피웠어."

승훈과 혜선이 담배를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담배를 피우려는 승훈과 뺏으려는 혜선이 엎치락뒤치락 한다.

 

내일이면 현을 만날 수 있다. 현도 기억할까. 아니 혹시 느꼈을까. 몸의 떨림을.

뭐가 됐든, 가보면 알겠지.

 

"있네. 여기 담배! 몸이 아파야 말을 듣지. 응?"

혜선이 승훈의 등짝을 퍽하고 때린다.

"아야아아-!"

 

내일 아침이면 또 민망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무언가 풍성한 느낌이 드는 기분 좋은 밤이다.

 

 


 

BY  룽  

영화와 음악, 책을 사랑하고픈 기자지망생. 

행복과 항복 사이에서 글을 쓰는 중. 


 

 

※ 읽기 전 주의사항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독자로 하기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의 인용 쪽수는 윤대녕의『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문학동네, 2010, 개정판)을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만을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와 함께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문단의 인용은 들여쓰기 후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상대는 늘 타인이기 마련이다

윤대녕의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그리도 야속할 때가 있다.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한 치도 이해하지 못할 때. 이렇게 가까운 사람 역시 타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서러움마저 느낄 때가 있다. 자신을 나아준 부모라 할지라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애인이라 할지라도 한 번은 이렇게 느끼기 마련이다. 결국은, 결국은 타인일 뿐이라고. 


 모두는 그렇게 타인일 뿐이고,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가슴 속에는 고독이라는 두 글자가 아로새겨진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근원적 고독이 생기지만, 근원적 고독 앞에 서본 사람만이 다시금 이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가, 나는 누군가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작가들은 이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든다. 그 중 하나가 오늘 이야기할 윤대녕의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이하 많은 별」)이다.

 

 

 

   이해를 중심으로 놓는 이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해란 가능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될 것이다. 가 속초에서 관계를 가진 함바의 여자는 속초에 남은 수녀 중 한 사람인가, 나운과 그녀의 동생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또는 의 아버지는 왜 자식을 외양간에 버리고 나가버렸는가, 또는 해연은 나운을 불러내 무엇을 한 것인가. 그러나 수많은 물음들 앞에서 소설은 그저 함구하고 있을 뿐이다.

 

   왜 작가는 예상되는 질문들에 답을 달지 않은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찌보면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하고, 책 속에 나와있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오늘 그가 삼 년 전에 헤어진 여자와 마주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상대는 늘 타인이기 마련이어서 그런 일은 부러 얘기를 해주지 않는 한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이다.'(238) 우리는 타인에게 쉽게 질문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쉽게 얻을 수 없다. 만약 소설이 타인에 대한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정말 '소설'일 뿐이다.

 

   많은 별」은 끊임없이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는다. 얼핏보면 소설은 양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보여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둘은 양립불가능한 성질이 아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실패하지만, 그 노력까지 실패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그'는 5살배기인 자신을 외양간에 버리고 간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다. 80년대 초에 누군가 그의 아버지를 논산-강경 간 국도변 술집에서 보았다는 제보를 듣고, 10년이 지나도록 매년 유성우가 내리는 날에는 그 거리를 찾는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날 때에 하모니카와  세설신어를 들고 있었기에, ‘는 하모니카를 배웠으며, 세설신어를 끝없이 반복해서 읽는다.

 

   나는 이제 책을 덮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의 시도는 무의미한 것일까. 그런 를 이해하려는 나운의 노력은 쓸모없는 것일까. 결국은 실패할 목표를 향한 노력들은 결국 무위로 돌아가는 것인가.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 사이에서 갑자기 나는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속초로 향하는 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되었나요? 그럴지도, 라고 그는 내게 간단하게 대답할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는 늘 타인이기 마련이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내가 책에서 얻은 대답은 여기까지이다. 삶에 가까이 닮아있기 때문인가? 소설은 언제나 명쾌한 대답보다는 더 깊은 질문을 던져줄 뿐이다. 







 

by 오까마  

높디높은 열정과 낮디낮은 능력 사이에서 방황 중  

문학에 관심이 많지만 책 읽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4. 몸의 대화


'Teach u a lesson' - Robin Thicke


Words by James Gass, Robin Thicke.

You feel so good, you smell so good
You feel so warm just like I knew you would
Cant let you go, cant let you go
I cant let you go

You were late to school
Im gonna have to see you after class
Youve been a bad girl
Someones gonna have to teach u a lesson

Youve been a bad girl
Someones gonna have to straighten you right out
Youve been a bad girl
Someones gonna have to teach u, teach u
Someones gonna have to teach u

You can call me professor
But baby, you broke the rules
You wont get the grade you want
Unless you stay after school

You can work it off
Baby, I can give you extra credit
But theres something else
Girl, can I frisk you?
Search your body for you, look so guilty to me

If I make you nervous
Its 'cause youre hiding WMD's
And Im gonna sentence you
Baby, you can do your time on me
I cant let you go, I cant let you go

You were late to school
Im gonna have to see you after class
Youve been a bad girl
Someones gonna have to teach u a lesson

Youve been a bad girl
Someones gonna have to straighten you right out
Youve been a bad girl, bad girl
Someones gonna have to teach u, teach u

Just for the moment for tonight
Can I make you mine?
Is it me? Is it us?
Can I love you all my life?


Robin Thi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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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말이 너무 많아.

내가 말이 많은 이유도 너무 많아.


나는 '오랫동안'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민망한 시간을 통해

생각해 봤어. 그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멋쩍은 이유를 말해주자면,

이렇다.



나는 말이 많아.

왜냐하면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지.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나의 발목과,

노화의 한 가운데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가여운 피부결 때문이야.

너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 없는 수줍은 눈매와

너무도 쉽게 항진되는 찌질한 상반신을 가졌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 모든 걸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멍청한 머리통

때문이야.

하지만 너는, 모든 걸 가졌어.

내 눈에 너는,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너는 모를 거야. 내일에도 몰라 젠장할, 내가 너의 손을 만질 수 없는 이유를.

계속- 모르겠지. 알려고 하지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도 가끔은 너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싶단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너를 쳐다보다가는, 좀 더 그럴듯한 '좌표'로 향하고 싶어.

오늘의 서투른 손짓이 아니라,

TV에 나오는 보다 부티나는 옷맵시로.

좀 더 성공확률이 높은 멘트를 뱉을 듯한 입술로.

허우대만 멀쩡한 듯하더니만,

이내는 너의 이불 속 상상을 점령해낼 나폴레옹이 되고 싶은거야.


그래, 뭐, 당연히

나는 병신이야.

나는 건강한 육체를 자랑할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

처럼 보이는 -


병신이야.

신은 나에게 팔과 다리와 눈동자와 성기와 모든 것을 다 주셨거늘,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힘만은

빼앗아 가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오늘도 쓸데없는 농짓거리로 목소리를 높이고는,

자기비하의 공간에서 눈꺼풀을 끔뻑.


끔뻑.


습관적인 욕지꺼리나 조금.


또 조금.

했어.




---



나는 어제 성스러운 곳에 갔어.

그곳에서 신에게 기도했어.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저주받은 육체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사실 이것보다는 좀 더 어리숙하고, 과격한 말도 섞여 있었어.


The Front Cover Of JUSTICE's Second Album - <AUDIO VIDEO DISCO>


''아 젭라,

제가 무슨 수도승도 아니고, 왜 나만 괴롭힙니까. 거참 이게 당신이 원하는 겁니까?

나를 지옥불에 담구었다, 얼음보다 더한 영하의 돌무덤에 던지는 것이

이 두 공간만을 '패트롤'하도록 설정해놓는 것이 당신의 즐거움이냔 말입니다.


이게 진정 나의 운명입니까. 장난치지마. 나는

씨팔

죽어가고 있어.


신이시여.

내가 당신에게 졌다고 인정하게 하는 것만이

당신의 목표라면 당신께 더 이상 '신이시여.' 라고 묵상하고 싶지 않아.

그런 유치한 성품에 나는 신성을 논하고 싶지 않아. 그럼에도 당신이 진정 신이라면

나는 이미 무릎을 꿇었어. 무릎의 상채기가 아물기도 전에 더 꿇고 또 땅바닥에 내리꽂아서

나의 무르팍에는 커다란 흉터가 졌다구,

요.

나는 졌어요.

나는 구겨졌고, 모릅니다. 방법을 모릅니다.

나의 사지가 성한 데, 그것들을 사용할 수 없고, 그것들을 다시 작동시키는 버튼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께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도 다가가기가 힘듭니다.

오 신이시여-

정말이지,

나를.''



기준을 세우고 싶었거든, 그래서는 기준대로 살아보고 싶었는데,

기준대로 산다는 게-

기준없이 '막' 사는 것만큼이나 힘든 길 같더라구.

그래서 오늘에 난

다시 이어폰을 꽂고, 신에게 기도했어.

다소 불미스러운 기도를 했어.

당신께서 들으시면 노하실법한 단어들로 구성된 기도를

눈을 뜬 채로 올려드렸지.


"나는 몸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보세요.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여, 말만 많습니다.

들으시기에 불편하시겠지만, 제가 이래요.

아 - 빌어먹을 더는 입술이 말라서 립밤을 바르지 않고는

말도 못하겠네요.

저에게서 중2병을 없애시고,

중이병보다 더한 중이염도 없애시고.

고귀한 <내 몸 사용 설명서>를 내려주소서.

오!

그리하여, 당신의 권세를 온 세상에 전파할수 있도록 허락하세요오-"



--




-P.S.

변태들아.

감성변태인척하느라 힘든 변태들아.

안녕하니.

안녕하지않다면,

다가가렴.

다가가서

Teach me a lesson 해주렴.




Teach u a lesson 해줄게-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빙구가 연출부로 참여하여 가을부터 준비해온 연극 <테레즈 라캥>이 저번주에 1차 공연을 마치고 오늘부터 사흘간의 추가공연만을 앞두고 있다. 몇시간 뒤면 배우들은 자신을 잠시 벗고 테레즈와 로랑의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을 더 예쁘고 더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긴긴 시간을 들였다. 

 오늘 무대 뒤에서 리허설을 지켜보았다. 샤막 뒤에 쪼그려 앉아 조명빛이 새는 틈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 캄캄한 무대 뒤의 풍경을 당신에게 한번쯤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무대를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들이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오늘은 객석이 아닌 무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겠다.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는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테레즈 라캥>이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테레즈 라캥
구로 예술나무씨어터 1. 9 - 12
홍대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 1. 17 - 19



 '짓'이 우리 스스로에게 내린 정의는 이렇다. '예술의 수단이자 목표로서 '장애'를 탐색, 사고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모여 즐겁고, 매력적이고, 의미있는 공연을 만들고자 설립된 예술단체'. 
 그러나 처음 연습을 시작했을 때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다. 장애를 가진 신체가 그야말로 '장애'로만 인식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공연을 만들어가는 연출부나 기획팀에게도 그랬지만 그 누구보다도 배우들 자신이 가장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부자연스러운 신체.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몸. 처음 연습을 시작할 즈음, 배우들은 자주 자신의 장애 뒤에 숨곤 했고 그럴 때면 장애는 그야말로 '장애물'처럼 보였다. 




 무엇이 깎아내야 할 장애이며 무엇이 드러낼 수 있는 장애인가? 이 사이의 줄타기가 항상 위태로웠다.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이 말을 할 때 생기는 고유의 느린 호흡과 템포가 무대에서 낯설게 느껴질 수 있고,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소리나 발음에 대해서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들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에게 자꾸 텀이 생긴다느니, 여기서 에너지가 사그라들면 안된다느니 하는 코멘트를 해야 하거나,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에게 '쉿!'이라는 대사를 연습시키려고 온 공연팀이 달려드는 순간들이 빈번하게 생겼다. 그런 날이면 많은 질문들을 안고 집에 돌아가곤 했다. 나는 이들을 배우로 보고 있는 걸까? 다른 비장애인 배우였더라면 이보다 훨씬 노력해야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요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부분이 노력을 요청해도 되는 부분일까? 이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을 힘을 들여 훈련시키는 건 아닐까? 더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고, '쉿'을 잘 하게 되는 걸 기뻐하는 게 맞는 걸까? '장애의 극복'이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건 아닐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에게 비장애인의 모습을 모방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레즈 라캥>은 이런 고민들 사이에서 짓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짓의 <테레즈 라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모든 배우가 한번씩 중심인물인 테레즈와 로랑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모자, 안경 등의 소품 전환을 통해 막마다 배역을 바꾸면서 다른 신체 및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테레즈와 로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이 갖는 각자의 신체적 특성이 각 인물에 투영되었을 때 각 테레즈와 로랑은 무대 위에서 새롭고 독특한 몸, 움직임, 이미지를 선사한다. 이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걷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고유의 목소리와 발음으로 이야기한다. 휠체어를 탄 로랑과 그렇지 않은 테레즈가 서로 다른 높이에서 눈을 맞추고 교감하며 아름다운 왈츠를 춘다. 특정 장면들에서는 제각기 다른 몸의 테레즈와 로랑이 한 무대에 등장하여 마치 여러 자아가 이야기하듯 테레즈와 복합적인 감정 및 심리 상태를 입체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극 도중 수화를 사용하는 테레즈의 독백 장면은 장애를 짓만의 미적 도구로 훌륭하게 활용한 장면이다. 2막이 끝나고 3막에 들어가기 전 불안한 모습으로 무대에 홀로 남은 테레즈는 표정과 호흡, 수화만으로 관객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그 장면에서만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영상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막해설 서비스를 포함하여 모든 관객들에게 어떤 설명도 주어지지 않는다.
 사실 극의 구성상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해도 극의 흐름을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관객 앞에 아무런 설명 없이 이 장면을 던져놓은 데에는 관객에게 어떤 의미에서의 전복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연출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수화 독백이 펼쳐지는 찰나의 시간동안, 객석과 무대는 침묵에 휩싸이고 테레즈는 관객을 일시인 몰이해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의 언어를 새로운 무대언어로 조명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잠시나마 장애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재미있는 순간이다.






 짓은 장애가 예술에 있어서 '장애'가 되지 않는 무대를 꿈꾼다. 누구나 오를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무대. 장애를 가진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가 제각기의 매력을 발산하며, 휠체어를 탄 사람도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도 객석에 기꺼이 앉아 극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 이를 위해 휠체어가 이용할 수 있는 연습장과 공연장을 찾고,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를 위해 연습 내내 대필이 진행했다. 또, 장애인 관객을 위해서 스크린 자막을 설치하고 장면 해설을 진행하며 차량운행을 통한 휠체어 접근성을 지원하는 등 보이지 않는 무대 뒤 짓의 시도들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갖은 어려움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테레즈 라캥>은 무대에서부터 객석까지 짓이 꿈꿔왔던 것들을 구현한 첫 작품이다. 

 그러니 당신, 보러 왔으면 좋겠다. 연극을 한다는 장애인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나쁘고 섹시하고 매력적인 네명의 테레즈와 네명의 로랑을 보러. 그동안 무대와 객석에서 오래 소외되어왔던 어떤 관객들과 기꺼이 함께 하고, 무대의 조명이 꺼지면 그 묵묵한 어둠을 그들과 같은 무게로 나눠 가지러.  





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영혼이 깃든 역사의 땅, 제주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2013)

Jiseul 
9.1
감독
오멸
출연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양정원, 박순동
정보
드라마 | 한국 | 108 분 | 201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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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드디어 돌아온 샤오롱바오입니다. 저는 2014년의 시작을 제주도에서 맞았는데요, 그 기념으로 오늘은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이하 <지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초록과 검정, 섬의 우수, 우리는 섬의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의 축제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1948925(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4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의 10분의 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씨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그의 시 한편 한편이 그 9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200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프랑스) J.M G. Le Clezio, 유럽최대잡지 <GEO> 20093월호 제주기행문중에서.

 

제주도는 두말할 것 없이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4.3항쟁이라는 역사를 품고 있는 땅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에는 감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함께 4.3항쟁의 기억이 유산으로 남아 제주 곳곳에 깃들어있지요. 샤오롱바오도 <지슬>을 본 이후로 4.3항쟁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난 터라, 제주에 있는 동안 4.3항쟁의 흔적들을 눈 여겨 보았답니다. 이 글귀가 새겨진 비석이 있는 곳은 성산일출봉 앞에 있는 터진목 4.3유적지에요. 이곳이 4.3유적지가 된 이유는 성산읍 관내 주민들이 총살된 장소이기 때문이고 2010년에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이곳 경치는 제가 가보았던 장소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멋진데, 이렇게 멋진 광경과 쓸쓸한 위령탑의 매치는 어쩐지 황량하고 씁쓸합니다.

 

, 오늘의 영화 <지슬>은 제주 4.3항쟁에 대한 영화입니다. 제주 4·3사건은 19473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4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됩니다(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지슬>은 그 중에서 큰 넓궤 동굴에서 두 달여간 숨어 지내다 19481224일 정방폭포 앞에서 총살당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슬?

 


영화의 제목인 지슬은 제주말로 감자를 뜻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왜 제목이 지슬일까 궁금했는데, 영화에는 지슬 그러니까 감자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겨울의 섬에서 배를 채울 가장 흔하고 편한 음식인 것이죠. 지슬은 군인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는 아들 가족에게 어머니가, ‘폭도를 한 명도 사살하지 못해 굶고 있는 박 상병에게 동료가, 군인들에게 잡혀와 유린당하는 순덕을 위해 박 상병이 챙겨주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동굴 안에서 다 같이 오순도순 나눠먹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렇게 착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이 담긴 지슬이라는 매개는 비극의 역사 속에서 마냥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 되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그리고 모두의 죽음을 담고 있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도입부. 흑백의 화면에 나무문이 보이고 그 문을 열면 연기가 자욱합니다. 따라 들어가면 군홧발 아래 흩어져있는 제사 식기들. 시체 앞에서 칼을 갈고 있는 남자와 그 칼로 배를 깎아 먹는 남자, 이어지는 배 씹어 먹는 소리. 너무도 조용하게 그러나 너무도 소름끼치는 비인간적 장면이 지나가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에 대한 간략한 자막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큐멘터리나 역사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지도, 과장된 픽션으로 감정을 자극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영화는 참혹한 과거의 사건을 제사에 빗대어 보여주는 독특한 방식을 선택합니다.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소제목 - ‘신묘’, ‘음복’, ‘소지가 그것입니다.

 

 

신묘: 영혼이 머무는 곳

 


신묘란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을 말합니다. 영화 <지슬>은 신묘에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는 정의를 붙여주었네요. ‘신묘라는 소제목이 등장하는 순간, 눈 덮인 들판에 한 여인-순덕-이 서 있고 그녀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한 명의 군인-박 상병-이 있습니다. 겨울바람이 휘날리는 가운데 두 사람은 누구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곧 다른 군인들이 몰려와 그녀를 끌고 가고 순덕은 부대의 공공재가 되어 성적 유린을 당합니다. 영화 내내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순덕, 그녀의 고통스런 신음 소리와 흐느낌만이 그녀가 느꼈을 공포와 응축된 분노를 전달합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수 없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박 상병은 순덕을 죽이지 않은 것에 미안함을 느낄 지경이고요. 순덕이 박 상병을 직접적으로 원망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그 대가를 받게 되나요? 결국 박 상병은 순덕의 손에 죽고, 순덕 역시 죽고, 박 상병이 순덕에게 건네주려던 감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순덕을 마음에 품고 있던 마을 청년 만철은 사라진 순덕을 찾으러 마을에 내려갔다가 순덕이 군인들에 의해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말 못할 충격과 말 못한 슬픔에 빠진 만철은 언덕배기를 따라 날이 저물도록 달리고 또 달립니다. 만철이 달리는 언덕의 능선은 이내 놀랍도록 순덕의 몸-유린당하던 순덕의 몸과 유사한 모습으로 겹쳐집니다. 이제 이 땅은 순덕의 혼이 머무는 대지가 됩니다. 신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는 타이틀이 슬프도록 와닿는 순간이지요.

 

 


음복: 영혼이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많이들 알고 계실 음복은 제사를 마치고 제사에 참석한 후손들이 제수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합니다. <지슬>에서는 단연코 감자가 그 음식이 되겠죠. 거동이 불편해 짐이 될까 아들 가족만을 피난 보내던 무동의 어머니는 떠나는 아들에게 지슬을 챙겨가라고 말합니다. 어떻게든 어머니와 함께 가고 싶었던 아들은 답답함에 화를 내며 감자들을 내던져버리죠. 결국 집에 혼자 남아 군인들의 손에 죽게 된 무동 어머니는 불타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 가족을 생각하며 지슬을 품에 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잘 익은 지슬. 하얀 연기와 기둥만 남은 집터, 불에 타 죽어간 어머니의 품속에서 감자를 발견한 무동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사람들은 따뜻하고 달게 잘 익은 감자를 맛있게 먹을 뿐. 진정한 음복의 순간입니다.

 

 


소지: 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

 


소지는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흰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올리는 행위 또는 그 종이를 말합니다. 영화에서는 마른 고추가 소지가 됩니다. 피신해 있던 동굴을 추적해 군인들이 쳐들어오려고 하자 주민들을 마른 고추에 불을 붙여 매운 연기를 피어 올립니다. 군인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요.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올려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소지의 과정과 닮아있지요. 사람들은 마른 고추를 태우며 살고 싶다는 염원을 절박하게 올려 드립니다. 비록 그 연기로 인해 자신들도 숨이 막히고 죽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검은 화면에 울려 퍼지는 총성, 그 염원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영혼을 영화에 담을 수 있을까


어찌보면 영화 <지슬>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4.3사건이라는 역사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우리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어쩐지 사건의 전말 같은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기에 이것이 바로 현실이자 역사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완전히 알 수 없는, 언제고 알 수 없을 제주의 언어와 제주의 역사. 그 당시 그 곳에 있던 사람들도 자신이 왜 죽는 지 이해할 수 없었을 절망감들. 하지만 그 때 그 사람들의 저항과 염원과 영혼이 제주 땅에 스며들어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냈겠죠.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짚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어요. 너무 명확하지도 너무 모호하지도 않아서 왠지 더 와닿고 같이 슬퍼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혹시 제주에 가게 된다면, 제주 곳곳 역사의 흔적에 좀 더 귀 기울여 보세요. 분명히 더 풍부한 여행이 될 거에요! 





. 영화 <지슬>, 정말 추천합니다. 오늘은 영화의 전반적인 내러티브 얘기를 워낙 많이 하게 됐지만, 영화 형식적인 요소만 놓고 보더라도 상당히 감각적이고 멋진 작품이거든요. 인물들이라든가 화면 구성, 사운드 등, 제가 글에서 포괄하지 못한 부분도 많아서 사실 좀 아쉽기도 한데 여러분이 영화 보시고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 런지요! 다시 보니 더욱 감회가 새롭고 가치가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였어요. 당신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