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3 <관상>: 운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영화 내용이 들어있는 글이라 영화 아직 안 보신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 글입니다.

 


관상 (2013)

The Face Reader 
7.6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정보
시대극 | 한국 | 139 분 | 2013-09-11

 




수양대군 그나저나 저 자는 제 아들이 단명할 걸 알았으려나? 난 몰랐다만.”

 

개봉 전부터 송강호(내경 역), 이정재(수양대군 역), 백윤식(김종서 역), 김혜수(연홍 역), 조정석(팽헌 역), 이종석(진형 역)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영화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관상>이 무서운 속도로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연령, 성별 등에 크게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적 영화로 보고 친구들과 가볍게 관람하고 나왔는데요, 바로 저 질문 - 내경은 아들의 단명을 알고 있었는가 가 계속 궁금하더군요. 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3 <관상>은 이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관상-운명-미래

 


주인공 김내경은 관상쟁이입니다. 먹고 살려고 배웠다는 것이 기가 막힌 재능으로 피어나 살인사건의 범인까지 잡아내기에 이르고, 그는 대단한 관상가로 한양 전체에 이름을 떨치게 되죠. 처남 팽헌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며 승승장구하는 내경, 그러나 그의 재능이 왕위 계승과 역모라는 정치적 문제에 엮이기 시작하면서 마냥 유쾌하던 영화는 서서히 비극으로 접어듭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계유정난(1543)은 수양대군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김종서를 비롯한 실세 인물들을 모두 살해한 사건으로 이미 여러 번 드라마와 영화로 그려진 바 있는 비교적 유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양대군, 김종서, 한명회 등의 이름이 친숙할 정도인데요. 사람들에게 친숙한 사건이라는 말은 곧, 관객이 영화의 결말-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실제 인물인 수양대군이 역모에 성공한다는 역사적 사실에 무리하게 손을 대는 판타지 영화가 아닌 이상에야 결국 수양대군이 승리하고 김종서가 질 것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 왜 주인공 내경은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예정된 비극에 스스로 뛰어드는 걸까요? 심지어 김종서의 관상은 수양대군의 관상을 만났을 때 백전백패할 운명임을 알고 있는 뛰어난 관상가가 말입니다. 이 질문들의 해답이 되어줄 중요한 열쇠는 바로 그의 아들 진형의 한 마디에 있습니다.

 

 

 

운명에 뛰어들기

 

진형은 아버지 내경이 관상 보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입니다표면적으로는 선비의 위신과 자존심을 내세우지만운명을 해석한다는 관상의 특징을 생각할 때 진형은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죠운명이 있다 해도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할 곧은 성격의 소유자이고요. 과거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냐는 면접관의 물음에 대한 진형의 답은 진형의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앞선 질문들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고리입니다



진형 운명에 체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내경은 한명회에게 수양대군이 왕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영화에 묘사된 신기에 가까운 내경의 능력과 그의 언행들로 미루어 볼 때 이 말이 허언은 아닌듯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내경의 말이 틀린 것은 하나도 없죠. 그렇다면 아들 진형이 일찍 죽을 운명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경은 진형을 두고 관직에 오르면 단명할 상이니 꿈도 꾸지 말라고 여러 번 말하지만, 글쎄요 제 추측이긴 하지만, 진형이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해도 단명할 운명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위험과는 거리가 먼 시골의 빈 한 삶을 고집했던 것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이 관직에 오르면 무조건(!) 단명할 것이 자명한데도 진형의 과거 공부를 인정하는 장면은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어차피 길지도 않은 삶,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인 것이죠.

 


운명에 대해 체념과 불인이라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던 부자는 인정과 저항의 형태로 가까워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진형이 자신의 행위로 운명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면 내경은 운명에 순응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진형은 아버지로부터 들은 운명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항상 그 운명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분란 속에서 시력을 잃고 마침내 목숨을 잃는 순간, 아니 그보다 한참 전부터 애써 밀쳐냈지만 항상 생각해왔던 운명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진형은 운명이 어떻든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이런 식이랄까요. 한편 아버지 내경의 경우는 좀 더 극적입니다. 순응과 체념에서 저항으로 급진적인 변화를 보이죠. 운명을 내다볼 수 있는 자의 패기일 수도 있고, 자식을 잃고 싶지 않은 자의 절박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부자는 운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한 가운데로 뛰어드네요.

 

 

 

후회 없는 삶의 조건

 

알면서도 저항하는 것. 이것이 영화 <관상>의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예정된 대로 처참하게 패배할지라도 꿈틀대보는 것. 운명과 미래를 점치는 관상쟁이지만 충실하게 현재에 임함으로써 미래를 변화시킬 궁리를 하는 것.

 



물론 이는 다소 허무하고 힘이 빠지는 얘기이긴 합니다.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결국은 지고, 운명은 야속하게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니까요. 그럼 이 영화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으니 그냥 조용히 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이 슬프고 안타까운 개인의 저항을 치하한다면 모를까요결국에는 단명하고야 마는 진형을 보면서 그러니까 왜 아버지 말 안 듣고 과거 시험을 보고 그래 이렇게 죽을 거ㅠㅠ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성급합니다. 진형의 입장에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켰으므로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내경이 짧은 생의 진형에게 남겨주고 싶었던 삶의 기억도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요? 정해진 운명이 어떻다한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하고 운명에 맞설 때, 후회가 남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어차피 언젠가 모두 죽는 인생인데!


 


역사와 픽션을 섞고, 곳곳에 현실에의 유비를 심어놓은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은 결국 이렇습니다.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적 현실 속에서 개인의 선택은? 여기서의 운명은 꼭 관상 같은 것만은 아니겠죠. 재밌는 영화 <관상>, 곱씹어보니 예견된 미래에 좌우되지 않는 현재적 삶에 대한 생각도 안겨주는 영화였네요. 후루룩!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