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소개 : 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

안녕하세요, 샤오롱바오입니다. 지금까지 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으로 열 편의 영화를 소개했습니다. 이번엔 새 코너 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을 시작할 텐데요, “냠냠이 제가 마음속에 간직해두고 있는 영화들을 조목조목 꼭꼭 씹어서 분석비평하는 글이었다면, “후루룩은 주로 상영 중인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고 그에 대한 감상평을 적는 식이 될 것입니다. 새 코너는 예전의 영화들을 다시 볼 기회보다는 상영 중인 영화를 볼 기회가 훨씬 많아진 샤오롱바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것입니다. (DVD방이 멀어지고 영화관이 가까워진 변화라던가?) “냠냠에서 시도했던 깊은 관찰과 다양한 정보 조사를 다소 포기해야겠지만, “후루룩만의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매력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1 <일대종사> : , 흐름, 감각


일대종사 (2013)

The Grandmaster 
8
감독
왕가위
출연
양조위, 장쯔이, 송혜교, 장첸, 조본산
정보
무협, 액션 | 중국, 홍콩 | 122 분 | 201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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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 그 첫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2012)입니다. <일대종사><아비정전>(1990), <중경삼림>(1994), <해피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 등으로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왕가위 감독의 최근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송혜교(장영성 역)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죠.

사실 샤오롱바오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직접 보는 것이 처음입니다. 임팩트 강한 이름과 엄청난 명성을 가지고 있는 감독의 영화를 만나려니 약간은 긴장한 채로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일대종사>가 그의 명성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보입니다.

 

 

 

일대종사”?

일대종사(一代宗師)란 각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각 문파를 부흥시키고 실력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고수에게 붙여지는 명예로운 칭호로, 각 문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소속 문파를 벗어난 무림계 전체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인물에게 붙여진다. 일대종사의 칭호를 받은 인물은 무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공헌을 하여 만인들에게 널리 존경을 받게 되는데 중국 무림 역사상 일대종사의 칭호를 받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인 일대종사는 홍가권(洪家拳)의 황비홍(黃飛鴻)이나 영춘권(詠春拳)의 엽문, 미종권의 곽원갑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영화의 제목인 일대종사는 이런 뜻의 단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마지막 줄에 언급된 엽문(양조위 분), 엽선생입니다. (이소룡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엽문에 대해서는 영화로 제작도 되었죠.)

 

 

얼마 전 [룽의 Ex]에서 화양연화에 대한 글(http://seesunblog.tistory.com/80)을 읽고 샤오롱바오는 <일대종사> 역시 멜로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 왕가위 감독과 <일대종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송혜교의 출연 확정 이후 그녀가 엽문의 아내 역으로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이 주로 거론되거나 영화 소개에도 송혜교가 분한 장영성을 중점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주로 봐온 탓이겠지요. (실제로 영화에서 송혜교가 분한 장영성의 비중은 생각보다 많이 작습니다.) <일대종사>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10%도 안 될 것 같네요. 어쩐지 12세 관람가라더니.

이 영화의 중심이자 가장 큰 관심은 쿵푸, 무술 권법에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일대종사>는 순도 높은 무협 영화로서 영춘권의 마스터인 엽문의 전기를 다룹니다. 다만 거칠고 강렬한 주먹질을 평범한 무협 영화가 아닌 왕가위 감독만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감각과 세계관에 있습니다. <일대종사>에서 왕가위 감독은 쿵푸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장되고 또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말이죠. 그리고 엽문과 주요 인물들의 생애를 지배하는 무림의 세계는 그들의 삶과 완전히 일치되어, 힘이나 실력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생의 법칙과 교훈을 주는 듯합니다. 이것들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힘의 흐름정도가 가능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채 10%도 되지 않는 짧은 사랑의 순간이 주는 여운 또한 진하게 남을 수 있습니다.

 

 

 

힘의 흐름을 감각하라

 

 

<일대종사>의 첫 장면은 비오는 거리, 엽문이 오직 맨손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상대하여 전멸시킵니다. 엽문의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강렬한 오프닝이지만, 1대 다의 상황에서 주인공이 영웅처럼 승리하고야마는 이런 장면은 진부하고 다소 촌스럽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왕가위 감독은 이 진부한 상황을 가장 감각적인 화면으로 변모시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연마하고 구사하는 권법들은 그저 힘으로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의 힘의 흐름을 읽고 이용하는, 깊은 내공을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힘의 흐름을 읽기 위해 과감히 눈을 감고 대결에 임하는 엽문은 내공의 진수를 보여주고요. 이를 화면 안에 감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왕가위 감독은 빗물, 눈이나 먼지 등의 움직임과 진동, 바람과 공기의 흐름을 담은 소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오프닝 씬에서도 빗물은 엽문의 힘의 파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가 됩니다. 엽문의 손이 절도 있게 내뿜는 장력이라던가, 그의 손과 다리가 타격한 상대의 몸에서 반동되어 출렁이는 물방울들이 그의 힘을 가시적으로 짐작케 합니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격투씬에서 왕가위 감독은 이러한 힘의 감각적 표현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거참 비도 자주 오거니와, 건조한 실내에서는 건물에 붙어있던 먼지가, 눈밭에서는 작은 눈발들이 힘의 흐름을 담아냅니다.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힘 있고 절도 있게 내딛는 발걸음들을 담아낼 때는 바닥의 질감까지 생생히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힘을 조절하는 비가시적인 무술의 원리를 우리의 온 감각으로 느끼게 해주니, 가히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일대종사>의 과장되고 섬세한 연출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감각입니다.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열쇠는 배우들의 눈빛과 감독의 긴장감 조절에 있습니다. 영화는 종종, 격투씬이 아닐 때조차 초고속 카메라를 보는 듯 느린 화면으로 진행되는데, 이 때 화면 안 인물들의 모습이 참 극적입니다.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거든요. 영화가 아닌 따로 떼어내진 사진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이렇듯 숨 막힐 듯 빠른 속도의 촉각으로 또 느린 화면의 생경함으로 조절되는 긴장감은 영화 내내 관철되는 과장되고 극적인 표현들과 만나 이 무협영화를 왕가위의 작품으로 만듭니다.

이처럼 일종의 숭고함까지 느끼게 하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연출과 영상미는 역시 왕가위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궁가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심리적 갈등을 가장 많이 겪는 궁이(장쯔이 분)가 등장할 때의 조명과 유리창 등을 이용한 명암 효과는 특히 인상적입니다. 엽문은 격동의 시대적 상황에서도 안정과 절제를 보여준다면 궁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격동하는 인물입니다. 올곧은 엽문의 삶만으로는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엽문과 궁이의 대조적 태도가 전체 극의 균형을 맞춰주는 느낌입니다.

 

 

   

 

순간의 사랑

 

“........이 순간은 양보할 수 없지.”

 

강호의 지도자였던 공융(왕경상 분)이 엽문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자신의 자리를 물려준 후,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공가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엽문을 초대해 결투를 벌이는 공이의 한 마디. ‘졌더라도 되찾을 수 있다, 천하를 다스리는 영웅이 되지는 못하지만 이 순간의 설욕을 포기할 수 없다.’ 공이는 가문의 자부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인물로, 조금은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입니다. 그런 그녀와 엽문의 필연적인 충돌.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바로 여기, 두 사람의 결투씬입니다.

 

 

어떤 여타의 소음도 없이 두 사람의 호흡과 움직임이 만드는 소리와 파장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아 역시 힘의 흐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과 묘한 기류, 강한 충돌과 밀고 당기는 힘의 교차, 서로의 생각을 읽어내는 교감의 시간. 이것들이 어우러진 가운데, 다시금 <일대종사> 특유의 긴장감 조절이 빛을 발합니다. 격렬히 겨루면서도 서로의 몸에 의지해 결투를 진행해나가고, 결국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거리를 두고 얼굴이 맞닿을 때 긴장은 극에 달하고 두근거림까지 전달됩니다.

 

 

순간을 놓치지 않는 궁이와 그녀의 선택에 응한 엽문에게 순간의 마주침은 매우 강렬합니다.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아 더 절실하죠. 주고받은 서신의 글자 몇 개, 아쉬움을 담아 간직해 온 단추 한 개의 함축이 주는 진동은 깊은 파장을 지니고 관객의 가슴 속으로 퍼집니다. 룽이 말했듯,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닐지라도 가장 소중한 순간일 수 있겠네요. 잊을 수 없어 오래 지속되는 아쉬움과 후회의 순간. 사랑의 힘은 어긋나 버렸지만 내려놓는 법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의 현명함은 어딘가 아련합니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 속 몇 분 안 되는 사랑의 시간, 그러나 이 사랑의 순간이 지배하는 여진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타인의 삶이 가지는 의미

 

영화에 주인공 엽문이 대표하는 영춘권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북방과 남방의 다양한 권법들을 가진 인물들이 신중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자신의 권법을 설명해주며 엽문과 대결하죠. 무협 영화라는 자신의 본분에 정말 충실히 임하고 있죠? 굳이 있어야하나 생각이 들만큼 영화에서 겉도는 일선천(장첸 분)의 스토리와 권법 또한 시간을 할애하여 소개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타인의 생애를 관찰하는 일이란 꽤나 건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의 절제가 뛰어난 엽문 같은 인물의 경우 더욱 그러하죠. 하지만 격동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다양한 권법의 가르침을 좇고 직접 실현하는 엽문의 생애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왕가위의 영화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도 참 아름다운 영상의 흐름으로.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그를 충실히 구현함으로써 어떤 세계관을 제시하는 왕가위 감독의 뚝심이 존경스러운 순간입니다.

음, 한국에서 많은 관객을 동원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생소한 세계인 무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멜로도 별로 없고, 함축과 상징이 풍부한 대사들을 소화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라면 시간 순으로 영화를 따라가는 게 처음엔 조금 버겁기도 합니다. 실제로 샤오롱바오가 관람할 때에도 큰 영화관에 일곱 남짓의 관객만이 있었어요. 근데 이게 또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하지 않나요? 막 내리기 전에 보시길 추천합니다. 후루룩!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