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라오기로 한 팝콘 먹는 좀비는

개인 사정으로 휴재합니다.

주중 혹은 다음주에 업데이트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룽에세이]로 죄송함을 전합니다.

눈이 오고, 얼음이 어는 겨울이지만

잠시나마 가을을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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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의 단추]

 

 

왜 그런 날이 있지? 일기예보가 어긋나서 손엔 거추장스럽게 쓰지도 않은 우산을 쥔 채 집으로 돌아가는 날. 웬일인지 지하철이 코앞에서 떠나려 해도 뛰고 싶지 않은 날. 한참을 앉아서 몇 대를 보내고 나서야 그제야 힘들게 올라타게 되는 날. 너도 그런 날이 있지? 집으로 걷는 길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며 페이스북을 다 뒤져가며 새로울 것 없는 소식들을 한참이나 보고야 마는 날. 최백호 아저씨의 목소릴 듣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날. 젖은 낙엽을 발끝으로 가지고 한참을 놀게 되는 날. 문득 시려지는 날. 갑자기 그리워지는 날. 그런 날 말이야.

 

아마 그날도 그런 날이었을 거야. 지하철 맞은편 의자에 밤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앉아있었어. 조금은 때 이른 겨울코트를 꺼내 입었더라고. 꽤 쌀쌀해진 가을밤이었거든. 아마 아주 오랜만에 꺼내 입었을 겨울코트였겠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난 멍하니 여자를 보고 있었어. 골똘히 핸드폰을 바라보던 여자가 갑자기 고갤 들어 여기저기를 노려보더라고. 그러더니 내려야할 역이었던지 급하게 일어서서 뛰어나가는 거야. 어쩌면 그 여자도 나처럼 그런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휙 일어서던 그때 '툭'하고 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라고. 여자는 벌써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내린 뒤였어. 뭔가 하고 봤더니 '단추'더라고. 코트단추가 떨어진 거였어. 툭. 그렇게 여자가 떠난 빈자리 앞에 갈색 단추가 혼자 남겨져 있더라. 그런가보다 하고 집으로 가는데 자꾸만 단추가 떨어지던 모습이 떠오르는 거야. 이상하게. 묘할 정도로 생생하게 말이야. 여자가 휙 일어서고 그때 바닥으로 툭.

 

 

다시 휙, 툭. 또, 휘-익, 투-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되더라고. 여자는 단추가 떨어졌는지 몰랐을까? 아니 알았지만 역에서 내리는 게 더 급했을까? 그렇게 집으로 가면서 빈 단추자리를 손으로 슥슥 문질러보고 있을까? 그 사이로 꽤 찬 가을밤바람이 스미게 될까? 그러면 그 여자는 코트를 더 꼭 여미게 될까? 여자는 언제쯤 코트단추를 다시 달게 될까? 어쩌면 내내 신경 쓰이면서도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겨울을 다 보내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러다 봄이 되어 다시 장롱 속에 코트를 넣을 때야 '아, 단추를 결국 안 달고 겨울이 갔구나. 나도 참 어지간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참 이상한 생각들이야. 그치? 그러다보니 툭, 하고 집 앞이더라고.

 

 

한참을 집에 들어가기가 싫더라. 그래, 그런 날이기도 했고. 지하철에서 본 그 모습 때문에, 그것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면서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한참 쳐다봤어. 왜 툭하고 단추가 떨어졌을 뿐인데 거대한 무언가가 툭, 추락한 느낌이 들었을까. 세상이 무너지는 그런, 툭, 아주 외롭고 슬픈 그런, 툭, 자꾸만 나를 따라와 사라지지 않는, 툭. 너도 그걸 봤으면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보니까 나뭇잎들이 하늘과 땅을 여미는 단추들이 아닌가 싶더라. 나무들이 툭툭 단추를 떨구는 가을이야. 그것들이 떨어질수록 하늘이 저만치로 멀어지더군. 코트자락이 벌어지듯이 말이야. 그리고 그 사이로 바람이, 차고 명징한 바람이 스미더라. 이 짧은 가을이 지나면 곧 겨울이 오겠지? 내일은 아무도 단추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싶다. 너도 이 短秋에 단추 떨어지지 않길. 그런 날이 너에겐 없길. 아주 외롭고 아주 슬퍼질 테니까 말이야. 그럼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