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먹는 좀비]

07. 나의 방공호는 어디인가, <테이크 쉘터>

 

 

승훈을 다시 만난 건 한 달 뒤 대학로 파출소에서였다. 지난 한 달간 정체불명의 전염병과 관련된 소식으로 온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질병관리본부는 상당한 치사율의 신종전염병으로 판단되지만 공기 중으로나 가벼운 접촉으로는 전염될 일이 절대 없다는 발표를 신속하게 내놓았다. 이후 정부는 경찰을 동원하여 전염병 최초 진원지라는 혜화동 서울대병원 근방을 통행금지 시켰다. 모든 조치가 일사천리였다. 마치 원래 전염병이 퍼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정부의 신속한 대응에도 백신은커녕 정체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신종전염병에 대한 불안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수많은 소문들이 나돌았다. 지난번 전염병에 대한 경고메시지가 잘못 발송되었던 일과 경찰 병력까지 투입시켜 진원지를 아예 폐쇄조치한 것 등을 이유로 정부가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는 추측이 잇달았다. 찌라시 소식으로는 불법체류자로부터 신종전염병이 시작되었고 이는 인간을 이용한 생화학테러일 가능성이 높으며 폐쇄된 구역 안에서 이미 백여 명 가까이가 죽었다고 했다. 인터넷에선 이때다 싶었던 종말론자들이 썰을 풀어댔다.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마스크며, 방독면, 세정제, 각종 약품 및 비상식량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불안 속에서 한 달이 지났다. 어느새 올해도 끝나가고 있었다.

 

"오- 마이 쉘터. 얼마만인가 나의 소파."

승훈이 집에 오자마자 소파 위로 쓰러졌다. 승훈은 지난 한 달간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몇 가지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두 달 만에 보는 승훈은 대체 뭘 하고 지냈는지 전보다 훨씬 살이 쪄있었다. 살이 오른 얼굴에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이 더해지니 마치 만화영화 캐릭터 같은 모습이었다.

"소파 오염시키지마. 이 보균자 돼지 놈아. 넌 어떻게 된 놈이 거기서 살이 쪄왔냐."

"피검사, 소변검사, CT, MRI, 엑스레이… 한 달 동안 빡시게 돌았지. 그게 은근 노동이야. 배가 엄청 고프더라고. 병원 밥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먹고 눕고 먹고 눕고. 특실이라 방도 엄청 좋고…. 또 간호사도…"

"아, 알았다. 알았어. 아무튼 다행인줄 알아. 새끼야. 세상 망하게 생겼다고 사람들 난리도 아니야. 너 하마터면 폐쇄구역 안에 갇힐 뻔했다고. 알기나해?"

"모-올-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그냥 극단 친구들이랑 마로니에 공원에서 술 마시다가 이상한 할아버지를 봤다구요-. 근데 그 할아버지가 어떤 여자 팔을 물었다니까. 그래서 달려가서 뜯어 말려놓고는 경찰 불러서 처리했는데. 갑자기 서로 가서 진술을 해달라고 하질 않나. 신종전염병 감염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병원엘 가두질 않나…. 작가양반이야말로 내 당황스러움을 알기나해?"

 

 

띵-동-

"배달이요-"

"오오- 그래도 병원에선 이건 못 먹었어. 치맥이라니! 내일 지구가 멸망한데도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이건 뭐 휴가 나온 군바리도 아니고…. 아무튼 그래서 집 나가서 뭐하고 돌아다닌 거야?"

"아하, 내 그 얘길 안 했군. 시나리오 좀 쓰느라. 극단에 있는 친구 방에 좀 있었어. 창작에 몰두했달까. 그래서 연락은 못 했다. 친구."

승훈이 경쾌하게 캔맥주를 땄다. 두 달 전 축축한 모습으로 집을 나갔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원래의 능글맞고 기름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거기에 알 수 없는 자신감까지 더해져있었다. 뭐 대단한 시나리오라도 썼나?

"그래서 시나리오는 좀 썼고?"

"그럼, 그럼. 작가양반 미리 축하파티나 하자고. 자- 건배건배-. 대작이 나왔지. 흐흐"

"오, 어디 들어보자. 뭔데?"

두 번째 닭다리까지 먹으려는 승훈에게서 닭다리를 재빨리 빼앗아 온 뒤 내가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설명하기가 조금 복잡한데…. 너 <테이크 쉘터> 봤어?"

"<테이크 쉘터>? 아니 못 봤는데."

"오오케이-. 그럼 그 얘기부터 시작해야겠군."

승훈이 반쯤 뜯은 닭날개를 내려놓고 번들거리는 입술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의 주인공 커티스는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아주 평범한 남자야. 그에게는 그의 전부인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이 있지. 아주 평화롭고 이상적인 삶이야. 문제가 조금 있다면 딸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커티스가 악몽을 꾸기 시작해.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고, 빨간 비가 내리고, 얌전한 애완견이 느닷없이 팔을 물어뜯고,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집을 습격하는 그런 악몽을 매일 꾸기 시작하는 거야. 근데 그 느낌이 너무너무 생생해서 커티스는 마냥 꿈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게 되는 지경까지 된 거지. 뭔가 계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그래서?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심플했으면 좋았겠지. 또 문제가 있어. 커티스의 어머니가 30대부터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생활을 했단 말이야. 그래서 커티스도 비슷한 나이가 된 자기도 정신분열인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해. 정신과 책도 사서 읽고 어머니를 찾아가보기도 하지. 여기서 커티스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돼. '과연 내가 정신분열로 미쳐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신의 계시로 세상의 종말을 미리 고지 받고 있는 중일까.'하고 말이지. 커티스는 그 어느 쪽도 확신할 수가 없어."

"으흠, 재밌는데? 네 시나리오도 이것만큼 재밌는 거 맞지?"

승훈이 나에게 냅다 닭뼈다구를 던진다. 명치에 닭날개뼈가 쿡하고 박힌다. 어쩐지 이제야 좀 사람이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실실 웃음이 나왔다.

 

"아, 들어봐 좀. 그래서 커티스는 극심한 불안에 떨며 최악의 사태를 준비하기 시작해. 집은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방공호'를 만드는 거지. 커티스는 점점 방공호와 종말에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이상한 사람이 되고 고립되지. 근데! 어느 날 정말 심판의 날이 온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거야. 커티스의 가족은 방공호로 재빨리 대피하지. 방공호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이 됐어. 커티스는 여전히 종말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밖으로 나가길 거부해."

"무섭겠지. 나라도 못 나갈 거 같은데."

"하지만 아내는 커티스가 지금 직접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야만 망상인지 계시인지 확인할 수 있을 테고,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 커티스는 결국 힘겹게 방공호의 문을 열어젖히지."

승훈은 내 얼굴을 살핀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이야기에 몰입해 있었다.

방공호의 문을 여는 순간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은 여전히 그 앞에 있을까? 아니면 종말 이후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마저도 커티스의 꿈이었을까?

 

 

"그래서 결론은?"

"결론이라…. 이 양반이 손 안대고 코를 풀려고 하네. 결론은 직접 확인해봐. 자식아. 우리의 주인공이 방공호 문을 직접 열어봤으니 작가양반도 직접 열어서 확인해야지 않겠어?"

"알았다. 그래. 네 시나리오나 말해보지 그래 이제? 거장의 시나리오 달달 전달해주지 말고."

"여하튼 영화를 보고난 나의 결론은 이거였어. '근데 나의 방공호는 어디지?', '방공호 없는 인생이 괜찮은 인생일까?' 이런 것들."

"왜 너도 하나 만들게? 나는 빼줘라. 갑자기 군대에서 방공호 파던 기억이 떠오르네. 그래, 고민해보니 네 방공호가 어딘데?"

"내 방공호는 당연히! 비밀이지. 나만의 방공혼데."

승훈이 가슴을 툭툭 치면서 강조한다. 방공호라. 그래 그럼 나의 방공호는 어디일까.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어디로 숨어들어갈까. 예전 우리 집? 고향 집? 그도 아니면 안국동 그 카페? 여러 장소가 떠올랐지만 이곳도 저곳도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여기 승훈의 집이려나…. 생각해보니 이 놈과 이렇게 시시껄렁하게 맞이하는 종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책 없이 서로 비꼬고 놀리다가 번쩍하고 사라지는 거.

 

"야, 룽. 뭔 생각을 그리해. 임마. 봐봐, 그보다 내 시나리오는 이런 거야. <테이크 쉘터>의 반대인 상황인거지. 세상사람 모두가 마치 내일이면 종말이 다가올 것처럼 준비하면서 살고 있는 거야. 주인공은 그런데 아무리 봐도 세상이 종말할 것 같지 않거든? 그래서 사람들에게 증거가 있냐고 따져 물어. 그래서 들어본 증거들이 굉장히 그럴싸해. 최근 들어 자연재해가 급증하고 있고, 인류는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고, 빈부의 격차는 메울 수 없을 만큼 벌어졌고, 법은 지키는 자들이 바보가 되었다는 등등. 하지만 주인공은 그렇다고 세상이 종말할 거란 건 인정할 수 없는 거지. 오히려 종말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세상이 정말로 망해버릴 거라고 생각해. 실제로 오지 않아도 그 불안들만으로도 세상이 무너져버리는 거지. 그런데 정말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날이 다가와. 모두들 엄청난 빚을 지고 준비한 방공호로 들어가지.

"아하, 우리의 주인공은 방공호로 들어가지 않고 맞서는 건가?"

"빙고! 그리곤 어떻게 될까? 사실 여기부터가 진짜 재밌는 시나리오야. 흐흐. 오늘은 여기까지."

"고맙다. 더 들었으면 졸릴 뻔 했어. 되게 지루한데?"

"뭐 임마!"

 

 

짓궂게 말했지만 승훈의 시나리오는 꽤 그럴듯했다. 지금의 상황과도 딱 맞는 느낌도 들었다. 뉴스는 이 이야기 와중에도 내일이라도 신종전염병에 의해 세상이 종말할 것처럼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의 신종유행성질환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1968-69년의 홍콩 독감, 1957-58년의 아시아 독감 등은 모두 아시아에서 발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19년의 스페인 독감도 사실은 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 아시아가 새로운 전염성 질환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은 굉장히 높았죠. 그게 우리나라에서 터진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이 신종전염병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 믿지 않는 자들의…

"…인간을 이용한 생화학테러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혹시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은 없나요…"

"초특가 할인! 전염병 이 비상세트 하나면 문제없습니다. 지금 바로 전화주세요!"

"전염병이요? 대학 못 가면 어차피 인생 끝나는데. 학원을 안 다니는 건 바보죠."

"네, 또 그게… 최근 수 십 년간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에서는 소득향상과 함께 항생제 사용도 늘고 있으며… 의사와 병원들이 이익을 챙기기 위해 항생제 남용을 더욱 부추겨서…"

"현재 대기업 회장들 위치임. 한국에 거의 한 명도 없음ㅋㅋㅋㅋ어쩔 진짜 망하나봄"

 

 

"야, 룽. 뉴스 좀 꺼라. 안 그래도 언제나 망할 것 같은 세상이었는데 신종전염병 하나 추가됐다고 되게 난리네. 아, 참! 그리고 내일 모레 크리스마스네? 파티 하자. 형님 퇴원 파티 겸 종말 파티. 나는 내 방공호 좀 보고 온다."

승훈은 나에게 윙크를 날리고 집을 나섰다. 아, 저 놈 방공호가 무슨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었나? 생각해보니 커티슨지 하는 주인공의 방공호도 실은 가족이었던 건가….

창밖으로 첨탑 위의 붉은 십자가들이 여럿 보였다. 차가운 겨울밤이라 더 빨갛게 달아오른 십자가들이 마치 나에게 묻는 듯 했다.

 

"너의 방공호는 누구니?"

 

 


 

BY  룽  

영화와 음악, 책을 사랑하고픈 기자지망생. 

행복과 항복 사이에서 글을 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