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라고 말하지마.



Apollo 18 - 'Warm' <The Red Album>




기적은 없다.


너무나도 명증적인 결론이다.


기적은 없다.

다시 한 번 말해도 그 명성에 빗금 하나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적은

없기 때문이다.


온 누리의 만 백성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솔직히, 그래.

모두가 알고 있다. 알면서도 너는 기적을 바란다.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우린 알면서도, 그 빌어먹을 신기루를 쫓아서-

울리지 않을 휴대폰을 쥐고,

'안타깝다'고 적혀있을 합격여부 통보 사이트에 접속하고,

죽어가는 혈육에 체온을 얹어 기도한다.

그깟 거짓부렁따위에 휩쓸려서는-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춘다.

심지어 읽지 않을 너에게 편지를 부치기도 한다.



기적을 말하는 장사치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은 더없이 좋은 시즌이다.


아파하는 이에게 헛된 기대를,

외로운 이에게는 킬링타임용 상품을,

정말로 죽어가는 이에게는 철저한 무관심을.

선사한다.


거짓 예언자와, 관심병자와, 컨베이어벨트에서 찍혀나온 부나방,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과시함으로써 다른 이의 행복을 짓이기는 낯뜨거운 목소리들로.

성탄전야는 숨이 막힌다.

명동의 희번덕이는 네온보다, 더 많은 사람의 떼로

나의 거리는 숨이 막힌다.

멀쩡한 나무마저 전구의 사슬로 옥죄여, 질식시키는 밤이다.

이 밤에는

예수를 대신해-

계획에 없던 아이가 수도없이 잉태될 것이다.

그 중, 수많은 아이가 낙태될 것이다.

수많은 아이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날을 기적의 날로 기억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기적의 날에,

노래를 크게 틀고

눈을 가리고는

거짓증언을 선서한다.


지금부터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내가 들은 바, 본 바 대로만 증언하겠습니다.

지금부터 기적만을 말하겠습니다.







자-


기적의 크리스마스여.

어디 한 번 그 매혹의 춤사위나 구경해볼까.

그래, 나는 너의 몸을 원한다. 하지만,

너를 믿지는 않는다.

이 빌어먹을 것아.


어디 한 번 춰 보란 말이다.

너의 그럴듯한 눈웃음과 함께 말이야.

내 손아귀에 네 놈이 없어도 나는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사실 나는 추울 수가 없다. 추위를 느낄 수가 없다.

2년 전처럼, 아니 3년 전처럼.

뜻하지 않은 열기로

나의 상체는 펄펄 끓어 넘치고 있다.

찬 공기와 만나 식어갈 귓바퀴에서는

이제 겨우, 따뜻한 냄새가 나고 있다.


쉬이이이- 소리내며

겨우겨우 식어갈 따뜻한 귓바퀴로는

'기적'이라는 파동을 그리는 비슷한 무엇도 흘러들지 않는다.

아무도 믿지 않았던 차가운 손을

응원할, 그를 위해 기도할

온기만

이렇게.


이렇게,

들려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