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Loro's - '방 안에서' <Pax, 2008>


Lyrics

의미없는 하늘엔 별 2개 내 심장 2개

변해버린 밤공기를 향한 알싸한 담배연기

짙어지는 어둠속 그림자는 잠이들고

깨어나는 아픈기억들을 안고 나도 잠이든다

춤추는 촛불은 아름답구나

말이 없는 먼지는 웃고있구나

비행하는 영혼은 쓸쓸하구나

잊혀진 사랑은 눈물겹구나

Moon will always rise

Sun will always rise

When you wanna know





8. 스윙이 없다면, 



 볕이 기가막힌 봄날이 온다. 누군가 시샘해서는 '추위'를 보낼 만큼이나. 그 만큼이나 아름다운 대기가 우리를 감싼다. 운동을 하고 싶은 이에게는 운동하기에 좋은,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독서하기에 좋은, 봄처럼 싱긋한 '연애'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사랑'의 때이다. 튀어오르는 푸른 것들의 수만큼이나, 영예로운 '소망'들이 여기저기 피어오른다.

 무언가를 원했던 때를 기억한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도 없던 때'를 회상한다.


 갖고 싶은 게 많았다. 물론 가질 수 있는 것도 제법 많았다. 남들보다 좀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물론,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도, 나는 훨씬 '더' 갖고 싶었다. '소유'의 악령은 자비를 베푸는 법이 없었다. 더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무언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리라 나는 추측했다. 더 가지면 언젠가는 채워질 것이므로, 나는 이것저것에 손을 댔다.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고, 넓게 파기 위해 삽자루를 더 깊이 쑤셔박았다. 무리한 채굴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손에 상처를 입었는데, 나는 다친 손보다 구부러진 삽에 신경이 쓰였다. 더 크고 튼튼한 '새'삽으로 바꾸어 쥐었다. 손은 여전히 아팠다. 


-

 1.

누군가 '왜 소유하길 원했느냐?'고 묻는다면,

소유하길 원했기에, 소유하길 원했다. 라고 답할 것이다.

 2.

그 누군가가 다시 한 번 '왜 소유하길 원했는가?'고 진지하게 묻는다면,

이미 소유했기에, 더 소유하길 원했다. 라고 진지하게 답할 것이다.

3.

그 누군가가 또 다시 한 번 '그럼에도 왜 소유하길 원했는가요?'고 끈기있게 물어온다면,

진실로 솔직하게 답하리라.

거짓말쟁이들이 소유하라고 가르쳤다.라고 진실로 답하리라.

-


 나는 '가치 매기는 데 열중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저울질하고는 이내 가격표를 붙이는 이들'에게서 나는 고개를 돌려낸다. 뭐가 더 좋은 상품인지에만 하루 종일 신경쓰는 사람은 '소유'하려고 한다. 그들이 값을 매기는 이유는 값을 매겨서는 더 좋은 걸 '소유'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만족'하기 보다는 '순응'한다. '순응'하고는 '만족'했다고 거짓말한다. 그들은 거짓말쟁이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더 '소유'하기 위해서 거짓말한다. 그들은 '승리'를 원하지만, '왜 승리해야 하는가'는 자문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이 더 나은가'라는 물음에는 청산유수로 대답하지만, '무엇이 더 나은가를 왜 따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귀찮아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

 의미가 없다면 스윙도 필요없다.

-



 스윙-

나는 휘두른다. 스윙- 나는 잠실운동장이 아니지만 스윙한다. 나는 다저스의 99번을 달고 있지도 않다. 스윙-스윙-

공이 날아오지 않지만, 내 앞에는 연습용 폐 타이어 하나도 없지만 스윙-

나는 '닭이 먼전지 달걀이 먼전지'에 쉽게 답하지 못하지만, 끝까지 생각해보려 노력하는 스윙-스윙-

내가 거짓말쟁이보다 낫다는 확신은 없지만 나는 스윙-한다. '너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냐?'고 돌팔매질해올 사람들 앞

에서도 스윙-하며, 사르트르보다 멍청해도 실존-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을 살아-간다.

나는 운동하고 싶고, 독서하고 싶고, 연애하고 싶지만 스윙-한다. 운동, 독서, 연애 중 두 개밖에 못해도 스윙하며, 하나

밖에 할 수 없어도 실존-하며, 셋 중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어도 살아-간다. 의미가 없어도 스윙-한다.

스윙-




스윙이 없었다면,

너를 잃고 방 안에서 흐느낄 수 없었다.

스윙이 없으면,

지금 나의 오른쪽 아래 사랑니가 주는 통증을 느낄 수 없다.

스윙이 없다면,

내일 너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스윙이 없다면,




의미는 없다.


Loro's Pax




1)<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제목'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2)<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의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글임을 밝힙니다.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1.

[달나라 연속극]의 팜플렛에는 이런 문구가 씌여있었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 때 견딜만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당신에게 나의 슬픔을 이야기했다.

 

2.

[달나라 연속극]의 인물들은 각자의 연장으로 슬픔의 모양을 조각했다. 은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원주율에 끝나지 않는 연속극을 짜면서, 은창은 한겨울에 추우면 춤을 추자고 외치면서. 그들의 슬픔에 점차 음영과 윤곽이 생겼다. 음푹 파인 곳에 눈이 생기고, 광대와 코뼈가 솟고, 그 아래 인중이 파이고 붉은 입술이 피어났다. 그러자 놀랍게도 슬픔은 견딜만해졌고, 견딜만해졌을 뿐만 아니라 너무 예쁜 얼굴이 되어서, 나는 그 얼굴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을 여전히 불편하게 하고 천착하게 하는 사실이 있었는데 그 얼굴의 이름이 여전히 슬픔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슬펐다. 당신은 덤덤했다.

 

3.

당신의 슬픔은 알록달록한 돌들이 깔려 있는 어느 냇가에 있었다. 당신은 맑게 갠 하늘의 모습이나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같은 사소한 풍경들에서 자주 돌을 주워 왔다. 시냇물이 맑아서 나는 알록달록하고 반짝반짝한 돌들을 자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위를 흐르고 있는 것은 맑고 훤한 슬픔이었다. 색색의 돌들을 아무리 깔아도 시내를 메울 수는 없었다. 여전히 슬픔은 어딘가에서 흘러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흘러갔으며, 당신은 그러거나 말거나 물 속의 파란 돌처럼 가만히 있었다.

우리는 함께 돌을 주우러 다녔다. 돌은 보물찾기하듯 별것 아닌 것들에 숨어있었다. 함께 오르는 파란 버스 안에, 휠체어 위에서 같이 부르는 노래에, 언덕 위 돋아난 별에, 한뭉텅이가 된 그림자에. 같은 색깔의 돌을 나눠 가져 불룩해진 주머니를 품고 돌아가는 날들이 하룻밤 뒤에도 또 하룻밤 뒤에도 이어졌다. 냇물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걸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주머니속에 넣은 돌들을 달그락거리며 언제까지고 함께 돌을 주우러 다니는 꿈을 꿨다.

 

4.

내게는 방 한 칸이 있었다. 그 방에 카드들을 한묶음 숨겨뒀다. 한 면은 빨갛고 다른 면은 파란 카드였다. 내 슬픔은 마음속에서 출렁거리다가 이따금 몰려와 카드들을 모두 빨간 쪽으로 뒤집어놓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바닥에 쪼그려앉아 일일이 그것들을 다시 뒤집어야 했다. 마지막 장까지 파란색으로 뒤집어놓고 뒤돌아서면 다시 온통 빨간 바닥이었다. 돌을 줍기 시작한 날부터 돌들로 카드들을 눌러놓았다. 그러자 카드들은 빨간 배를 바닥에 댄 채로 꽤 얌전히 있었다. 많은 날들이 잔잔하고 평온해졌다.

그래도 슬픔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불시에 밀려왔다. 내가 방심할 때, 괜찮을 것 같았던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이 나보다 가볍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아니라 그 무게도 못 업을 만큼 내게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휠체어 바퀴가 내 발을 밟았을 때가 아니라 덤덤했던 당신의 얼굴이 놀람으로 화들짝 일그러질 때, 조금 떨어져 걷자고 할 때. 맑고 훤한 슬픔이, 걸으면 걸을수록 깊어지는 물이 어느 밤 문득 견디기 어려웠다. 당신을 만나서 많이 긁혔을 것 같다는 당신의 말을 들었을 때였다. 나는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수취인 이름에 내 이름은 없고 당신 이름만 있어. 점점 크고 무거운 소포들이 오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해. 그게 슬퍼.

그말을 듣고 있을, 틀림없이 덤덤할 그 표정까지도 슬퍼서 나는 돌들을 첨벙첨벙 냇가에 내던졌다.

 

5.

그리고 오늘 우리는 여느 날처럼 똑같이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 가방에는 [달나라 연속극]의 팜플렛이 들어있었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 때 견딜만해진다.'

그래서 오늘 당신은 내게 당신의 슬픔을 이야기했다.

너는 아무것도 못하는 게 아니야. 내 소포들은 슬프지 않아. 나는 그것들에 흔들리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고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테이블 앞에 붙어앉아 미뤄둔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이다. 남은 오후 나는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며 천천히 카드들을 뒤집었다. 허리숙여 카드를 뒤집는 것은 내 몫이었고 내가 뒤집은 카드를 바퀴로 한번 더 누르며 지나가는 것은 당신의 몫이었다.

슬픔에 점차 음영과 윤곽이 생겼다. 음푹 파인 곳에 눈이 생기고, 광대와 코뼈가 솟고, 그 아래 인중이 파이고 붉은 입술이 피어났다. 그러자 슬픔은 견딜만해졌고, 견딜만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얼굴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너무 빼닮아서, 당신 지금 아주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갈까?

가자.

우리는 냇가에서 일어났다.

 

 

 


 

 

 

 

#1. 재미난 이야기 하나

 

김승옥의 등단작 생명연습에는 꽤나 재미난 이야기가 얽혀있다. 김승옥과 이청준은 서울대학교 불문과 60학번 동기였다. 이 둘은 가난했기에 2학년까지 마치고는 더 이상 등록금을 낼 수가 없었다.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한국 남자들의 공식 도피처인 군대였고, 두 사람은 그 전에 발버둥을 쳐보기로 하였다. 1962년 신춘문예 상금을 노리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생명연습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이청준은 군대를 갔다.

 

 

 

 

#2. 결국은 이런 이야기

 

생명연습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자인 와 한 교수가 서로 비슷한 부류의 사람임을 확인하는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와 의 독백 속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러나 결국 감상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감상자는 와 한 교수가 같은 부류임을, 그리고 감상자 자신 역시 이들과 같은 부류임을 생각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자기세계를 홀로 지키며 끝끝내 어떤 타협도 거부한 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의 형을 보며, 우리는 동경과 비슷한 곳에 위치하는 충격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어머니의 외도와 형의 반항 그리고 누나의 중재 속에서 모두를 이해하는 척 모두를 묵인한 , 유학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잠자리를 갖고선 미련 없이 유학을 떠나버린 한 교수, 혹은 먼 이국의 땅에서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기 위하여 왔으나 정념을 뿌리칠 수 없어 밤마다 숲에서 자위를 하는 애란인 선교사와 같이, 결국 자신 앞에 놓인 인생에 겨우겨우 맞추어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3. 생각나는 시 세 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던 것을.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1944

 

I know of course: it’s simply luck

That I’ve survived so many friends. But last night in a dream

I heard those friends say of me: ‘Survival of the fittest’

And I hated myself.

<I, the Survivor>, Bertolt Brecht, 1944

 

Ich, weiß natürlich: einzig durch Glück.

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

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Die Stärkeren überleben."

Und ich haßte mich.

<Ich, der Überlebende>, Bertolt Brecht, 1944

 

 

 

 

#4. 생명을 연습하다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세상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듯싶다. 인생이라는 것은 내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있는 힘껏 달려와 나에게 부딪히는 것 같다. 제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이렇게 버거운 걸 보니 아무래도 이쪽이 더 합당한 생각일 것이다.

 

세상살이를 흔히 풍파(風波)라고 표현한다. 세상살이란 결국 들판 한 가운데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이고, 바다 한 가운데서 밀려오는 파도와 마주하는 것이란 이야기다. 조상님들은 역시 알고 있었나보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란 것을. 세상은 그렇게 나에게 불어 닥친다.

 

나이만 생각해도 그렇다. 10대였던 나에게 20대가 다가오고, 20대인 나에게 곧 30대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삶이었던 나에게 죽음도 들이닥칠 것이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해놓은 것이 없는데 말이다. 일일이 다 나열하기 버거울 정도로 삶은 그렇게 나에게 무지막지하게 달려온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생명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앞으로 다가온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칠다고 해서 계속하여 떠밀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풍파에 맞서 더 강인한 걸음을 내딛으려도 해보고, 아니면 거센 풍파를 막아줄 튼튼한 방어막을 만들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연습일 것이다.

 

생명연습이라는 아직도 생소한 이 말은 어찌보면, 삶을 살아내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풀어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삶을 살아내고 간 사람들과 지금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자기세계를 지키기 위해 결국 삶을 살아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용서다.

7.    향香에 관하여.

아니 향饗에 관하여.


 3월1일에 우리는 태극기 대신 기타를 걸었다. 멤버들과 ‘대한독립만세’ 대신 우리의 음악을 외쳤다. 관객은 쉽게 모였들었다가는 쉽게 쓸려나갔다. 그들은 무대 위의 나를 봤다. 나는 관객석의 그들이 보이질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만든 노래를 불렀고, 오로지 ‘나’자신을 위한 이기주의의 찬가도 불렀다. 다른 멤버가 써준 가사를 나의 노래에 얹어보기도 했다.

 냄새가 났다. 거기서는 음악 냄새 비슷한 향이 났다.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그 일곱번째 음악.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 Sade




 Lyrics
-
You came along when I needed a saviour
Someone to pull me through somehow
내가 구세주를 필요로 할 때, 너는 나와 함께 해주었고,
그런 너는 나를 어떻게든 살아가게 해주었어.
I've been torn apart so many times
나는 이미 여러번 산산조각났어.
I've been hurt so many times before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다쳤어
So I'm counting on you now
그래서 너에게 기대고 있는 거야.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이미 누군가 나의 마음을 부쉈으니.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이미 누군가 나의 마음을 부숴버렸으니까.

Here I am
내가 여기있어.
So don't leave me stranded
On the end of a line
Hanging on the edge of a lie
그러니까 나를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그 거짓말의 끝을 겨우 붙들고 있는 채로
남겨두지마. 
I've been torn apart so many times
나는 이미 여러번 산산조각났어.
I've been hurt so many times before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다쳤어.
So be careful and be kind
그러니까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대해줘.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이미 누군가 나의 마음을 부쉈으니.
If someone has to lose, I don't want to play
누군가는 져야만 하는 게임은, 나는 하고 싶지가 않아.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이미 누군가 나의 마음을 부숴버렸으니까.
No, no I can't go there again
아니, 아니 나는 그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

-



 우리의 냄새는 2009년의 어떤 여름날로부터 발원한다. 우리 셋은 젊었고, 사실 젊다기에는 어렸고, 어린티를 내지못해 안달이 났다. 우리는 음악을 좋아했다. 우리는 담배와 여자를 좋아하고 담배와 여자가 가득한 클럽을 좋아할 뿐만아니라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깟 치기어린 명목으로, 2009의 여름날에 우리는 향을 피웠다. ‘음악’을 하겠다며 제사상에 맥주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올려놓고는 향을 피웠다. 

 관객들이 쉽게 모였다가, 쉽게 집중하고는 쉽게 뒤돌아서듯이- 수많은 멤버들이 우리를 거쳐갔다. 하나 같이 음악을 좋아했지만, 하나같이 뒤돌아 섰다. 그들은 대학원과, 일터로, 그리고 외국으로 갔다. 그들은 모두가 음악을 좋아했지만, 하나같이 음악 냄새를 맡지 못했다. 때로는 냄새를 맡고도 뒤돌아섰다. 나는 그들을 욕하지 않았다. 우리를 혹은 나를 떠나간 멤버들을 욕하지 않았다. 원망하지도 않았다. 우리 셋이 있다면 괜찮았다. 그때마다 우리 셋은 도원결의라도하듯 뜻을 모으곤 했다. 맥주를 쏟아가며 음악을 계속하리라고 유세를 떨었다.



 군대를 기점으로 셋 중 하나가 우리를 뒤돌아섰다. 병역의 의무도 힘겨웠지만, 병역의 의무보다 힘겨운 것은 그것이 나에게서 음악을 앗아갈 것만 같은 두려움이었다. 2년의 기간이 우리 향을 꺼버릴 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그리고 세 개 중 하나의 향은 더 이상 타지 않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향을 눌러 끄고는 나에게 몇 마디를 남겼다. 그는 회계사가 되겠다고 했다. 나는 그를 욕하지 않았다. 그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제대를 하고, 이십대 중반이라는 숫자가 눈앞에 명확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를 누군가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들을 욕하고 원망할 겨를이 없었다. 내 눈 앞의 향이 꺼지지 않게 지키는 것에도 나는 급급했다.

 우리 둘은 새로운 멤버들을 모집하며 계속 향을 피웠다. 바람이 세게도 불었다. 향이 꺼지기 전에 부러져서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이 바람이 세서, 나는 옷깃으로 향을 감쌌다. 위태로운 시간들이었다. 거기서는 위태로운 향이 났다. 우리는 위태로운 녹음을 하고, 합주를 하고, 공연을 했다. 예전보다 확연히 줄어든 빈도지만, 가끔은 술도 마셨다. 주위에선 끊임없이 나의 장래계획을 물었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나는 음악을 할 거라 말했다. 그들은 우리집이 부자인 줄 알았다. 나를 돈 많은 집에서 걱정없이 기타나 퉁기는 베짱이로 여길 것이었다. 

 대한독립을 외치는 3월1일이 아닌, 우리의 향을 피울 3월1일을 위해 멤버들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새로운 곡을 쓰고,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다. 나는 그로부터 한 달전 쯤 담배를 끊었다. 멤버들은 언제 필 것이냐며 나를 조롱했지만, 한 달동안 단 한개피도 나는 피우지를 않았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오로지 향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랑스런 담배를 끊고 그의 절친한 친구들도 함께 끊었다.

 나는 이제 어리기보다는 젊었다. 덕분에, 나는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걱정했다. 돈과, 미래라는 이름의 돈과, 차를 사기 위한 적금과, 월세와, 결혼을 위한 돈과, 담배를 피지 않을 때 생기는 돈과, 새로운 기타를 사기 위한 돈과, 데이트를 위한 돈과 돈과 돈과, 4년간 바꾸지 않은 꼴통 핸드폰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4만원 이내로 찍혀나오는 통신요금에 대해서 끊임없이 걱정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걱정들에 나는 여러번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채로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릴지언정 향을 끈적은 없었다. 많은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뜸해지고, 몇 명의 여자가 나를 떠나갈 동안에도 향을 끈적은 없었다. 눈물을 기화시켜 그로부터 분해해낸 산소는 향을 태우기 위해 사용했다. 나의 음악적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을 비롯한 나의 모든 탤런트에 대해 수없이 회의하고, 그 한계에 대해 수없이 인정하며 신에게 처절히 굴복했지만서도, 나는 결코 향을 끄지는 않았다.

 2014년 3월1일에 우리는 향을 피웠다.

 무대에 오르자 핀 조명과 프로젝터로 나는 눈이 멀었다. 관객들은 우리를 보았지만 나는 눈이 멀어서는 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향을 맡았다. 냄새가 났다. 눈이 멀어서인지, 그날따라 농밀한 향이 나를 어지럽혔다.
 향이 다 타서 없어질지라도, 그 순간이 전부인 채로 우리는 향을 피웠다. 3월2일에는 또 다른 빙하기가 오든 헬리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든 알바가 아니었다. 우리는 연주가 아닌 음악을 했다. 내가 말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우리의 음악은 제법이나 쓸만했다. 객관을 가장한 주관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객관적인 주관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음악에서는 냄새가 났다. 향이 났다.


 공연으로 번 돈에서 공연장의 계약금을 제하고 나니, 우리 손에 몇 푼이 만져졌다. 그 날 술값으로 깨끗이 사라져갈 돈이었다. 술을 마신 후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앱솔루트나 스미노프를 열기에는 부족한 액수였다. 그래도 우리는 사치를 부렸다. 맥주도 마시고 칵테일도 마셨다. 포장마차도 아닌 번듯한 실내술집에서 마셨다. 술을 마시는 중에도 음악이 퍼뜨린 향이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술이 어느 정도 될 즈음, 밴드를 결성했던 나머지 한 명이 숨을 깊이 들이 쉰다. 가벼운 웃음도 멈추고는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오늘부로 밴드를 그만두겠다는 날숨과 함게, 그는 자신의 향을 껐다. 자신은 더 이상 향을 태우지 않을 것이며, 이제 세 개의 향 중에서 내 것만 남을 것임을 의미하는 단어의 조합이 내 코끝을 맴돌았다. 그의 향이 끝을 향해 타들어가면서, 그 냄새는 숨을 쉴수 없을만큼 공격적으로 나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나에게 담배를 건냈다. 신께 용서를 구하며,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로 향을 감추지 않으면 내가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는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밴드를 나가며 말했다.
우리 음악에서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향이 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다시 한 개피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향이 났다. 거기서는 음악 냄새가 났다.


<Lovers Rock, 2000> Album cover




 어지러웠다. 좀 어지럽고 나니 개강이었다. 개강이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결국 셋 중에 나만 남았구나 생각하니 지독하게 아찔했다. 나는 아찔한 채로 2호선을 탔다. 조금 더 아찔하고 나서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서 교정을 걷자니 나는 두려웠다. 신입생을 비롯한 나보다 좀 더 어린 생명체들이 내뿜어대는 설렘이 나는 두려웠다. 코 끝에서 향이 났다. 나는 눈물이 나려했지만 담배를 사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예전보다 평균신장이 커진 어린 학생들의 시선을 피하고는 다시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신에게 기도하다가도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43-1동 303호로 가는 길에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다음 시간까지 자기소개서를 쓰라는 강의자의 말 중에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기소개서를 써보기 위해, 노트북의 전원버튼을 누르는 중에도 나는 그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솔직히 지금도, 나는 향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다.




보다 정확한 번역에 도움을 주신 이지훈, Seungjae Samuel Park에게 감사드립니다.

건강 상의 이유로 휴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잦은 휴재공지 죄송합니다.

더 좋은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