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1. 재미난 이야기 하나
김승옥의 등단작 「생명연습」에는 꽤나 재미난 이야기가 얽혀있다. 김승옥과 이청준은 서울대학교 불문과 60학번 동기였다. 이 둘은 가난했기에 2학년까지 마치고는 더 이상 등록금을 낼 수가 없었다.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한국 남자들의 공식 도피처인 군대였고, 두 사람은 그 전에 발버둥을 쳐보기로 하였다. 1962년 신춘문예 상금을 노리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생명연습」은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이청준은 군대를 갔다.
#2. 결국은 이런 이야기
「생명연습」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자인 ‘나’와 한 교수가 서로 비슷한 부류의 사람임을 확인하는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독백 속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러나 결국 감상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감상자는 ‘나’와 한 교수가 같은 부류임을, 그리고 감상자 자신 역시 이들과 같은 부류임을 생각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자기세계’를 홀로 지키며 끝끝내 어떤 타협도 거부한 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나’의 형을 보며, 우리는 동경과 비슷한 곳에 위치하는 충격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어머니의 외도와 형의 반항 그리고 누나의 중재 속에서 모두를 이해하는 척 모두를 묵인한 ‘나’나, 유학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잠자리를 갖고선 미련 없이 유학을 떠나버린 ‘한 교수’나, 혹은 먼 이국의 땅에서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기 위하여 왔으나 정념을 뿌리칠 수 없어 밤마다 숲에서 자위를 하는 ‘애란인 선교사’와 같이, 결국 자신 앞에 놓인 인생에 겨우겨우 맞추어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3. 생각나는 시 세 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던 것을.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1944
I know of course: it’s simply luck
That I’ve survived so many friends. But last night in a dream
I heard those friends say of me: ‘Survival of the fittest’
And I hated myself.
<I, the Survivor>, Bertolt Brecht, 1944
Ich, weiß natürlich: einzig durch Glück.
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
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Die Stärkeren überleben."
Und ich haßte mich.
<Ich, der Überlebende>, Bertolt Brecht, 1944
#4. 생명을 연습하다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세상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듯싶다. 인생이라는 것은 내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있는 힘껏 달려와 나에게 부딪히는 것 같다. 제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이렇게 버거운 걸 보니 아무래도 이쪽이 더 합당한 생각일 것이다.
세상살이를 흔히 풍파(風波)라고 표현한다. 세상살이란 결국 들판 한 가운데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이고, 바다 한 가운데서 밀려오는 파도와 마주하는 것이란 이야기다. 조상님들은 역시 알고 있었나보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란 것을. 세상은 그렇게 나에게 불어 닥친다.
나이만 생각해도 그렇다. 10대였던 나에게 20대가 다가오고, 20대인 나에게 곧 30대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삶이었던 나에게 죽음도 들이닥칠 것이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해놓은 것이 없는데 말이다. 일일이 다 나열하기 버거울 정도로 삶은 그렇게 나에게 무지막지하게 달려온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생명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앞으로 다가온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칠다고 해서 계속하여 떠밀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풍파에 맞서 더 강인한 걸음을 내딛으려도 해보고, 아니면 거센 풍파를 막아줄 튼튼한 방어막을 만들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연습일 것이다.
생명연습이라는 아직도 생소한 이 말은 어찌보면, 삶을 살아내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풀어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삶을 살아내고 간 사람들과 지금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자기세계를 지키기 위해 결국 삶을 살아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용서다.
'[문학] 오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르트르][벽] 삶과 죽음의 보색대비 (3) | 2014.04.15 |
---|---|
[편혜영][토끼의묘] 결국은 한 인간의 소멸에 관한 이야기 (3) | 2014.04.01 |
휴재공지 (2) | 2014.03.04 |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가 독자를 끌어당기는 법 (2) | 2014.02.18 |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 '코끼리'에 대하여 (0) | 2014.02.04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