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희망 버리기



'Hoppípolla' from Sigur Rós

 

 강박장애를 '인정'하는 데에는 약 삼 년이 소모되었다. 강박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는 데에만 삼 년이란 시간이 걸렸으므로 그리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좀 더 똑똑이처럼 굴어본다면, 남은 수명이 약 60년 정도 되겠고, 그 60년의 영광이 20대부터 30대까지의 10년 성패에 달려있다고 판단되며, 그 중 30% 해당하는 '3년'을, '강박장애의 인정'이라는 일곱 글자의 주제로 흘려보냈으니, 나는 매우 불리한 시즌 초반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빌어먹을 강박장애를 '극복' 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릴 지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이번 시즌의 우승은 이미 물 건너 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인생에는 다음 시즌 같은 건 없다.)


 '나만큼 우승트로피를 원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라고 여기에 적으면서 불현듯 생각난 것인 데, 실은 이놈의 서울바닥엔-


'나만큼 우승트로피를 원하는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

라는 문장이 훨씬 더 어울린다.

 여기에는 (1) 밤이면 밤마다 만루홈런을 때리는 거포와, (2)그래미 5개부문 수상 로봇과, (3)별에서 온 그대들이 득실득실하다. 예쁜 여자는 그  (1), (2), (3)을 합한 수치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2014년 4월의 수치이다). 그들 속에서 함께 숨쉬는 것만으로도 제법 힘든 일인데, 그들을 이기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예의바르고, 패션감각이 뛰어나고, 성실하며, 아름답게 생기기까지한 이 시대의 건아요, 자유주의의 희망이다. 그들은 절망을 즈려밟고 희망이라는 현판을 가슴팍에 새겼다. 굵고 선명한 폰트여서 아주 멀리에서도 나는 그들의 티셔츠에 새겨진 'Hope' 라는 로고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자유를 외치는 횃불처럼 그들은 아름답게 빛났다. 그들은 희망이었다. 매우 명백히 '희망'이었다. 희망적인 단어로 표현해봐도 역시나

 '희망'이다.



 전진하는 그들의 대열에서 나는 휩쓸려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그들을 따라 걸었다. 나는 뒤쳐졌다. 왜인지 설명하는 데에는 나의 강박장애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느려터진 걸음을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나는 8756개비가 넘는 담배를 태웠고, 700잔이 넘는 아메리카노(아이스를 합한 수치이다)를 들이부었다. 부족한가 싶어서 보리맛이 나는 알콜도 제법 마셨는데, 그래도 여전히 그들을 쫓아가기가 힘에 부쳤다. 뒤쳐진다고 느낄수록 나는 더 많은 강박증세를 보였고, 그런 강박증세는 도리어 나의 다리를 둔화시켰다. 이런 악순환은(그럴듯한 과학용어로는 '음의 되먹임'이라고도 한다.) 제법 오랜시간 지속되어 나를 반쯤은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절름거리는 나의 모습을 꼴도보기 싫어서 후드티를 뒤집어썼지만, 끊임없이 굴러대는 나의 눈동자로 '그들'의 모습이 계속 보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자꾸만 보였다. 'Hope' 라고 프린팅된 그들의 티셔츠가 보였다. 반짝이는 귀금속과 그들의 아름다운 입맞춤이 보였다. 견딜 수 없을만큼 희망적인 장면들이 보였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면, 나는 아마 패배의 제왕일 텐데도 나는 계속 부러웠다. 가질 수 없는 것일수록 더 반짝거리고 더 아름다웠다. 가질 수 없어서 더 희망적이었다.

 <The Catcher in the Rye>의 홀든 콜필드처럼 허영심과 위선만이 나를 끌어안았다. '피해의식'인지 '자격지심'인지 하는 사자성어들은 나를 곧잘 지배했다. 인간관계와 도덕 같은 것들로부터 이리저리 잘 도피했지만, 비겁한 도피의식으로부터는 도무지 도피할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되어간다고 느꼈다.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성공하는 거라고해서 희망을 가졌다. 희망을 가지면 누구든 성취할 수 있다고해서 희망을 가졌다. 희망, 희망 환청이 들렸다.

 나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민주시민으로 생존하기 위해 희망하였고, 희망에 의존했다. 희망을 가지라고, 열렬한 희망만이 나를 이끌어줄 거라고해서 '희망'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훔쳤다. 합당한 돈을 지불하지 않은 채 희망의 굴레를 입었다. 나를 희망에 가둔 채 귀를 막았다. 하얀 이어폰을 꽂고, 'Hope'라는 노래를 계속 재생했다.

'희망강박장애'라는 진단결과에 나는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이쯤되면 벌써 글자가 너무 많아져서, 나도 줄이려던 참이다(너무 재촉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물론 이쯤되면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이들을 위해서, 이 글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참이기도 하다.


나의 근황은 다음과 같다.

나는 가끔 조깅을 한다. 별로 희망에 찬 뜀박질은 아니다.

나는 요즘 제법 규칙적이라서, 도피할 틈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내 학점이 4점대이길 희망하는 건 아니고,

나의 강박적인 증세는 두 달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기분이지만, 이 장애를 완전히 극복할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아직도 이번 시즌의 건승을 기도하지만, 그렇다고 섹시한 우승트로피를 열렬히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근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희망을 버렸다.

이 글을 쓰면서 세 달여만에 담배를 다시 피워 봤는데, 도저히 역겨워서 못피겠다는 기분이 들어서 18개비가 남은 담배곽을 버렸다(라이터도 함께).


나는 희망을 버렸다

(담배도 함께, 라이터도 함께).


 희망을 버리고 얻은 게 뭐냐면 nothing.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다행이다. 희망 말고 OO을 얻었다면 또 다시 'OO강박장애'를 얻었을 게 분명하다.


아! 나의 근황에서 빠트린 게 있다.

이게 제일 중요한 데 빠트렸네. 나는 요즘 자기 전에 기도를 한다.

희망을 버리게 해달라고 희망하는 기도-

만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희망하는 기도를 한다.





Amen.

 

 

 

노래가 남았으니 마저 감상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