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기억들이 좀 있다.

추억이라는 서랍에 넣어놓기에는 좀 버거운,

뭐랄까-

추억이라기엔 너무 끝내주는 것들이 있단 말이다.

 

 

 

어제 나는 머리를 잘랐다. 5년도 넘게 방문 중인 미용실에서 5년도 넘게 항상 비슷한 자리에 앉는다.

5년도 넘게 나의 머리를 잘라주는 디자이너가 묻는다.

 

"요즘은 잘 되가요? "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20인 안에 포함될 그가 묻는 '잘 되가요'의 목적어는 분명해 보였다.

'음악'에 대한 것이다. 뭐 '밴드'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하면 덜 거창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뭐라고 운을 뗄 엄두가 나지 않아서는,

 

"영 바빠서요. 제대로 안 되네요."

 

라는 식으로 얼버무릴 뿐이다. 그 와중에도 거울 앞에서 나의 머리칼은 툭툭 잘려나갔다. 무성히 나의 귀를 덮었던

검은 추억들이 툭툭 떨어진다. 땅바닥으로 쓸려나가기 싫은 것들은 하얀 가운에 대롱대롱 매달려도 본다. 물론 샴푸

하러 가는 차에 땅바닥으로 툭툭 떨어질 운명의 것들이었다.

머리는 10분이면 잘랐다. 그렇게 덥수룩했건만.

무자비한 미니어쳐 전기톱과 '사토리 한조[각주:1]'의 그것만큼이나 날렵한 은가위 앞에

나의 머리칼은 10분이면 충분했다.


쳇.

 

10분.

 

 

음악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5년간 지켜오던 '음악'은 사라졌다.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아마 한 끼 식사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그 '5년의 역사'를 수호하던 선발 선수 중 하나 정도는 10분 안에 말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내 머리칼이 다 떨어질 10분

지금 이 음악이 재생될 10분

동안에 말이다.




 

 

Jimmy Page의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John Bonham의 'Mody Dick'의 연주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니

그냥 '락덕'이라면 Zeppelin을 쉬이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은 이곳, 지구별에는 절대로,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테다 (존재해서도 아니 된다).

내 인생에서는 'Baby I'm gonna leave you'가 그들의 첫 곡이었다.

첫 인상이 좋았다. 중간에 어쿠스틱으로 들어가는 기타 솔로 라인이 좋았다.

'뻔한' 진행 안에서 이루어지는 베리에이션들이 좋았다.

예상가능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그것이 좋았다.

전형성이라기보다는 '개연성'이라고 불러야 할 그 Flow가 매우 좋았다.

김춘수 식으로 하면,


 Rock이라는 것이 나의 이름을 불러준 순간이었다.


고나 할까.

 

장르론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 역시 장르로서의 Rock을 거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Rock이 진정한 음악이라고 말하는 급진적 시각을 포함한, 장르 사이에 줄 세우기를 시도하는 모든 시도에 나는

반대한다. 아주 결사적으로,)

 

그럼에도 Rock은 Rock이다.

그건 롤링스톤즈의 로큰롤이고, 시드비셔스의 광끼이며, 커트코베인의 체크 남방과 더러운 머릿결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는 '스피릿'이며, 형이하학적으로는 블루스에 기반한 코드진행과 오버 드라이븐

전자기타의 음향이다.

그리고 그건 '굳이' 장르로 나누자면 내가 가장 좋아할 확률이 높은 음악 분야이다.

집처럼 익숙하고,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처럼 언제나 반가운 공간이다.

그리고 나의 Rock을 가장 잘 대변하는 대변인은 뭐.



Zeppelin이다.

 

나는 프레디 머큐리가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보다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식물아저씨(Plant)의 목소리가 훨씬 좋다.

나는 Jimmy Page가 조지 벤슨보다 기타를 잘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미만큼 나를 감동시킨 기타리스트는 단 한순간도 없었다(젠장할, 그는 기타로 말을 한다).

누군가 Radiohead보다 훌륭한 대중음악가가 누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빌어먹을 이 세상에 그딴 건 없어."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ock은,

Rock만을 대변하라면은,


 Zeppelin이다. 

 




그들의 곡을 내가 선호하는 이유는, '블루스'적인 개연성을 좋아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에

근거한 바가 크다(내가 은근 꽉막힌 인간이어서는, 은근히 '형식'에 맞추는 걸 좋아하나 보다).

또한 리듬감에 대한 의존보다는 '선율'에 대한 탐구가 느껴지는 멜로디 라인이 좋다.

(물론 'Black Dog'에서의 폴리리듬[각주:2]에서와 같이 박자에 대한 이해도 역시 충분히 뛰어나지만서도)

그런 측면에서 Jimmy Page의 작곡 능력은 언제나 위대하다.

제플린이라는 최고의 세션들을 진두 지휘하려면 그만큼이나 뛰어난 작곡가가 필요했을 테다.

리더격인 페이지는 존본햄, 로버트플랜트, 존폴존스라는 최고의 연주자들을 이끌만큼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던

동시에 그들의 총합이1+1+1+1 (= 4가 아닌) =300,000,000 이란 음악으로 도출되도록 만들만큼 훌륭한

'작곡가'였다.

전설이라 불릴만한 양질의 곡들을 통해, 그토록 훌륭한 멤버구성이 오래간 존속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Jimmy Page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랬겠지만) 나에게있어 음악적으로 가장 큰 우상으로 여겨졌다. 거기에-

Robert Plant의 섹시한 음성과

John Paul Jones의 다재다능한 음악적 역량과 안정적인 연주,

John Bonham의 압도적인 드러밍이 얹어지면서,

Zeppelin은 나에게 언제나 최고의 '교본'으로 추앙되었다.

그들의 음악은 우러를 수밖에 없는 '엘리트'성을 지니고 있었고,

음악적 '엘리트'로 가는 핵심적 단서는 그들에게 있다고 믿어졌다.





Zeppelin하면 'Stairway to Heaven'하는 공식화가 나 역시 너무도 싫다.

그들의 음악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역시 그것이 아니다.[각주:3]

그들의 지극히 광범위한 음악[각주:4]'Stairway to Heaven'이라는 조그만 틀에 가두는 것이 나는 억울하다.

내가 다 답답해서, 미치겠다.

(그들의 히트 넘버를 하나하나 언급하자면 밤 새 머리만 잘라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Stairway to Heaven'를 재차 언급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이곡의 완성도를 방증하는 것은 아닐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익숙한 '발단'과

난해한 가사를 바탕으로 한 긴긴 '전개'를 지나, 

또 다시 긴긴 '위기'의 파트를 기다려야만

페이지의 기타솔로로 시작되는 '절정'을 만날 수있다.

기나긴 러닝타임이 어느 한 부분도 허투루 짜여지 않은 듯한 서사가 'Stairway to Heaven'에는 존재한다.

한계단씩 밟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천국처럼,

이곡의 절정에는 음악적인 극락이 기다린다.

(그래서 'Stairway to Heaven'이다.)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요즘에,

Zeppelin이니, 'Stairway to Heaven'이니 하며 추억을 꺼내어 드는 것은 나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담배를 끊는 중에, 옆에서 누군가 면세점에서만 판매하는 Luck Strike (Blue)를 맛있게 피워대는 것 같다고 표현하면

최소한 나에게는 가장 적절한 비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음악을 되돌아보라면은--- 억지로라도 꺼내어 살펴야 한다면은,

나는,

도통

어쩔 수가 없다.


나의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그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는 마치 '신성모독'처럼 느껴진다.





나의 음악을 반추하면서, 

그다지 길지도 않고, 위대하지도 않았을 음악 생활을 추억하면서-


아니, 사실 추억이라는 단어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

추억이라는 서랍에 우겨넣기에는 부피도 질량도 너무한 것들이 몇 개 있다.

내 머릿카락이 잘려나갈 10분과,

이 노래가 끝나갈 10분으로는

담아내기에 너무나 아찔한 추억이다.

그것이 Rock자체여서 Rock이라는 장르론으로 담아내기에 너무나

위대한 추억이다.


'추억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끝내주는 것들이 있다는 말

이다.


뭐 가령,


Led Zeppelin


이라든지

말이다.



 

  1. 영화 <킬빌>에 등장하는 일본도 장인 [본문으로]
  2. 어느 박자에서 다른 박자의 리듬을 타면서 동시에 진행되는 상태 [본문으로]
  3.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Achilles Last Stand'가 가장 좋다. [본문으로]
  4. 'No Quarter'에서 찾을 수 있는 구성상의 시도나, 'Kashmir'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시도가 대표적이다. 그들의 음악적 '색'의 스펙트럼은 이미 Rock이라는 범주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