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배경을 가진 어느 그림 속. 한 소년이 무표정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고, 그 너머로 소년을 지켜보는 윤곽선의 존재가 있다. 소년과 윤곽선으로 그려진 사람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지, 한 공간에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흐릿하게 그려진 존재가 조금 더 멀리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이렇게 이 그림에서는 다른 여느 그림과 같이 3차원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느끼기 어렵다. 바탕이 회색의 ‘면’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2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림은 앙리 마티스의 작품 <피아노 레슨>이다. 이번에는 <피아노 레슨> 그림에서 음악을 집중해서 들어보려 한다. 그림은 우리에게 아무 음악도 들려주지 않지만(정확히는 들려줄 수 없지만) 듣기 위해 그림을 읽다보면 조금은 딱딱하고 어두운 그림 분위기에 꼭 맞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오늘은 그림에 집중하고 2주 뒤에 음악에 귀기울여본다.

음악을 듣기 전에 마티스와 그의 작품에 대해 살짝 알아보자. 마티스는 당시 아카데미즘 화파였던 인상주의나 신인상주의에 반기를 들고 강렬한 원색과 굵은 선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이런 도전으로 인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모여 하나의 사조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를 ‘야수파’라고 한다. 야수파를 만들고 이끈 마티스는 2차원의 그림에 3차원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아카데미적인 목표에 어긋나게 그림을 철저히 2차원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어쩌면 2차원에서 3차원을 기대하는 감상자에 대해 그것인 환상일 뿐이라 조롱하는 동시에 그 환상을 깨트리고자 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마티스의 세계관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 중 하나가 그의 대표작 <춤>이다. <춤>에서 마티스는 초록색, 하늘색, 살구색이라는 강렬한 세 가지 색깔만으로 땅과 하늘이라는 공간과 사람이라는 대상을 납작하게 표현했다.



마티스의 그림은 당시 미술계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그의 그림을 본 평론가들이 20세기 미술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으로 그 흐름이 옮겨 간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미술, 그러니까 예술이 추함을 좇게 되다니. 미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미술사적으로, 미학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마티스를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화가와 작품들이 있다. 삐아오가 그 중에서 특히 마티스의 그림에 귀기울이고자 하는 이유는 마티스가 회화와 음악의 결합을 가장 활발하게 추구했던 화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피아노 레슨>과 <춤>모두 ‘음악’이 연상되는 그림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마티스는 그 두 작품 외에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두 점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하나는 춤과 거의 같은 구도에서 사람들이 춤 대신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단순한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두 명의 여성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화려한 장식과 곡선, 직선의 대비로 표현된 그림이다. 특히 두 번째 <음악> 작품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곡선-직선의 대립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강렬한 색채가 선명한 음색을 표현하고 곡선과 직선의 대립이 음들의 불협을 표현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마치 불협화음이라는 음악적 분위기의 회화적 연출이랄까.



다시 <피아노 레슨>으로 돌아가보자. 기존의 해석은 그림의 색채와 기하학적인 구도에 집중한다. <춤>의 배경이 파랑색과 초록색 두 가지의 넓은 면으로 표현된 것과 마찬가지로 <피아노 레슨>의 배경도 회색의 단색 면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서 뜬금없이 삼각형의 초록색 배경이 등장한다. 어떤 사물의 단순화된 형태일지, 또 다른 배경의 색면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색채가 다른 작품처럼 강하거나 원색 위주의 색은 아니더라도 ,색면이 넓은 만큼 한 가지 색이 감상자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 이제 눈으로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도 끝났고, 작가와 그의 작품 성향을 파악하는 일도 끝났다. 그럼 이러한 그림 읽기를 바탕으로,기존의 해석에서 조금은 벗어나, 음악을 들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티스의 <피아노 레슨>에서는 어린 소년이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을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그 음악이 들려오는 이유는 2주 뒤에 공개된다!^^ 


* 그림1. 앙리 마티스, <피아노 레슨>, 1916, 캔버스에 유채, 245.1x212.7cm,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그림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그림 2. 앙리 마티스, <춤>, 1909-1910, 캔버스에 유채, 260x391cm, 상트 페테르브르크 미술관 소장.(그림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그림 3. 앙리 마티스, <음악>, 1939, 캔버스에 유채, 115.2x115.2cm, New York Albright-knox Art Gallery 소장. (그림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 4. 앙리 마티스, <음악>, 1910, 캔버스에 유채, 260x289cm, Hermitage Museum 소장. (그림 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