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언어의 불완전한 유비

음악은 언어가 아니다. 하지만 음악에서도 언어와 같이 음악을 쓰고(write), 읽고(read), 이해한다(understand)고 말한다. 음악의 과정을 글을 쓰는 용어와 같이 사용하는 것이 우연인 것만은 아니다. 음악과 언어가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음악과 언어의 의심스러운 관계는 그 둘의 유사성을 찾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차이를 찾아보는 ‘불완전한 유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조금은 유치할지라도 말이다!


음악과 언어의 유사성

먼저 음악과 언어가 공유하는 유사성 중에서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즉 너무도 당연한 것부터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둘 다 소리를 매개로 하는 표현 형태라는 점이다. 이 때, 단순히 어떤 소리로 그치지 않고 내용이나 의미를 가지는 소리가 시간적으로 연속되어 있다. 나아가 그 의미있는 소리가 흐름에 따라 정렬되어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에 대한 논리를 따질 수 있다는 것도 유사하다. 음악이 논리를 통해 어떤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이 미심쩍을 수 있지만 음악 역시 축적된 규칙이나 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내부적인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다. 지휘자의 경우 이러한 음악적 체계를 이해하고, 연주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호흡을 맞추고 음악을 만든다. 논리가 있는 만큼 음악과 언어는 모두 해석되는 과정에서 상황이나 맥락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같은 음악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종종 겪는 일이다.

음악과 언어의 유사성은 직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시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음악의 전통적인 이론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모두 언어의 용어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언어에서의 ‘문장’ 단위(sentence)는 음악에서의 ‘음절’ 단위를 뜻한다. 문법상 ‘구’(phrase)에 해당하는 단위 역시 음악에서 하나의 ‘악구’를 의미한다. 즉 음이 모여서 구를 이루고, 절을 이루는 음악의 조직 방식이 단어가 모여서 구가 되고 문장이 되는 언어의 구성 방식과 비슷한 것이다. ‘성부’를 나타내는 'voice'나 ‘완전 악장’을 뜻하는 ‘period' 등의 음악적 용어 등 언어적 용어와 공유되는 모든 표현이 음악의 언어적 성격을 말해준다. 여러 장(章, chapter)이 모여서 하나의 글을 구성하는 방식도 있듯이 한 곡이 여러 악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음악과 언어의 차이

다양한 공통점이나 유사성을 가지고도 음악은 언어와는 확연히 다르다. 가장 기본적으로 음악은 언어의 기본 구성단위에 해당하는 ‘어휘(word)’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휘가 없는 이유는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휘는 어떤 것을 지시하기 위해 이름붙이는 역할을 하지만, 음악은 지시 대상을 명확히 갖고 있지 않다. 지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악에는 개념도 없으며 의미를 규정하지도 않는다. 즉 비대상성, 무개념성, 비규정성의 세 가지 음악의 특징은 언어와의 차이를 규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악의 특징은 음악이 근대에 들어서 점차 예술의 순수성이라는 가치와 연결되면서 명확한 현실 세계와 거리를 두고자 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따라서 음악을 의사전달이나 소통의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보편적인 언어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음악작품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면 난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건 음악이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말이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_ 멘델스존


음악과 언어의 사회적 구성

음악과 언어는 사회적으로 다른 위치를 부여받는다. 언어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나 지적 능력에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사회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음악은 근본적인 것으로 인식되기보다 여가 및 오락의 도구 정도로, 조금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면 정신적․문화적 고양을 위한 수단 정도의 주변적인 위치로 인식된다.

하지만 인간이 구성하는 모든 사회에는 언어와 더불어 음악이 있다. 심지어 언어가 있기 이전에 음악부터 존재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음악과 언어가 둘 다 의사소통 형태로서, 사회 내부에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음악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음악의 위치를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그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 조금은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한다. 기호학의 개념을 잠시 빌려볼 것인데, 기호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 ‘기표’와 ‘기의’만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기표는 물리적으로 들리는 용어 사이의 차이이고, 기의는 그 물리적인 소리가 지칭하는 실질적 의미를 뜻한다. 그러니까 ‘초콜릿, chocolate, chocolat'은 각기 다른 기표이고, 글로 나타낼 수 없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그 ’초콜릿’이 기의가 된다.

다시 돌아와서 음악이 어떤 지시대상이나 개념이 없다는 것에 주목해보자. 지시대상이나 개념이 없다는 것은 기호를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 중에서 실제 뜻이나 개념인 ‘기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음악은 기의가 없는, 텅 빈 기표로 생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호가 사회적으로 구성될 때, 기표는 합의된 기의와 약속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음악은 음악는 텅 빈 기표가 아니라 기의를 가지게 되고, 이는 주변적인 위치의 인식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구성주의

언어학에서 실재와 언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반대되는 두 개념이 있다. ‘언어는 실재를 반영한다’는 주장이 하나이고 이를 ‘표상주의’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실재가 먼저 있고 언어는 그 이후에 실재를 표현하는 수단 정도가 된다. 반대로 ‘언어가 실재를 구성한다’는 ‘구성주의’가 있다. 이에 따르면 오히려 언어에 따라서 실재가 만들어지게 된다.

  구성주의를 음악에 적용하게 되면 음악에 대한 말이나 이야기가 음악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된다. 우리는 음악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 음악이 가진 의미를 말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음악이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모두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구성주의에 따르면 이것이 음악에 대한 언어가 음악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음악적 가치가 음악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이 그 가치를 표현하는 말로 전달되면서 음악에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음악의 가치가 외부로부터 부여된다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의심하기

음악과 언어의 관계가 공생관계일지, 구성주의일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음악과 언어가 서로 어느정도 깊이 관련이 되어 있으며 공유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계속해서 의심하며 예의주시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