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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25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고도를 기다리며
- 2013.10.24 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4 <화이>: 새로운 사랑의 방식,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 화이.
- 2013.10.21 시네마 폴리티카④: <치코와 리타>, 아메리칸 드림의 짜릿함
- 2013.10.19 [Op.10] 오페라 여행 No.1, 피렌체에서 로마까지.
- 2013.10.16 [팝콘먹는좀비] 03. 마음의 미시세계, <부산국제영화제> 3
글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자라면서, 빙구는 세상의 대부분과는 '맞지 않아 보이는' 혹은 '틀려 보이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주류는 나를 그들로부터 멀찍이 떨어뜨려놓고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는 말을 가르쳤다. 내가 신뢰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주 지당한 공리라는 듯 그들을 이르러 그 말을 썼고 나는 멀찍이서 꼬물거리는 그들이 얼마간 불쌍하고 가여웠다. 또 그 명제가 당연히 옳다는 걸 이해할 만큼은 철이 들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별 고민 없이, 심지어는 약간 비장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어른들은 어려운 것을 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의 말을 따라하는 것은 정말 쉬웠는데 말이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간질간질하고 달달해서, 그 감질맛에 이끌려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책상 앞에 붙어 앉아 공부를 하고 그들이 좋다고 말하는 대학에 가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는 동안, 틀린 게 아니라 다른 존재라는 당신은 여전히 이쪽으로부터 멀리 있었다.
그런 당신들이 올린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무대 위 당신들은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고 단언컨대 결코 불쌍하지도 가엽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정말 말그대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뿐이었다. 그러나 줄곧 그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해 왔던 나는 정작 보는 내내 불편했다. 그 말이 합리화하는 힘의 논리와 가식, 심지어는 지금 써내려가고 있는 말들에조차 스며 있을지 모르는 위선과, 좁은 우물 속에서 멀대처럼 키만 키운 나의 오만이 부끄러워서. 극단 애인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애인
에이블 아트
장애인만의 고유한 움직임과 표현으로 무대를 구현하는 극단 애인은 지난 10일부터 열흘간 또 한 차례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렸다. 애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2010년 초연된 이후부터 여러번 수정을 거치며 4년간 지속되어 왔다. 애인의 지향점은 '에이블 아트(able art)'로, 그들은 장애인이 흔히 무능력(disable)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에 반대하여 새로운 가능성의 예술(able art)을 제시한다. 나아가 장애인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예술을 통해 나아가 사회에 새로운 예술관과 가치관을 창조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둔다.
중증의 지체장애인들에게 말처럼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그들이 가진 장애를 되도록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 병행하여 이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언어로 만들기 위해 깎아내고 다듬는 과정이 수반되었으리라. 어쩌면 전자보다는, 비장애의 틀 속으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밀어넣어야 하는 후자의 작업이 주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대사 전달과 몸 사용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점은 무대에 오르는 이에게 있어 치명적인 오점이었을 터였다. 또렷하게 대사를 말하지 못하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관객에게 원활하게 정보를 전할 것이며, 캐릭터의 행동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할 것인가. 이와 같은 난점들로 극단 애인의 처음은 많이 어려웠을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이러한 상황에서 애인이 선택한 것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한없이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기만 하는 이야기.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모든 말들은 결국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으로 귀결되지만,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그를 왜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은 반복되고, 공간은 고정되어 있고, 인물들은 성격도 캐릭터도 없이, 끝없는 기다림만 지속된다. 이 무지하게 지루하고 권태로운 부조리극은 폐관 직전이었던 바빌론 소극장에서만 400회가 넘는 공연기록을 세우며 20세기의 대표적 희곡으로 이름을 남겼다.
시공간의 변화도, 정보도, 갈등도, 사건도, 기승전결도, 캐릭터도 없다. 명확한 대사전달과 움직임이 어려워 관객에게 복잡한 서사를 수신하기 힘든 애인에게는 핸디캡을 최소화하기에 더없이 좋은 극이었다. 애인은 거기에 러닝타임을 대폭 줄이고, 어려운 말들은 지체장애인들이 보다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어휘들로 대체했다. 그리고 두 명의 인물에 의해 대사를 반복하여 관객이 최대한 대사를 전달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최대한 크고 일차적인 제스처들을 통해 단순하고 분명하게 인물들의 행동을 드러내려고 했다. 이는 아무리 단순한 몸짓도 그들만의 신체를 거치면서 독특하고 신선한 움직임으로 재탄생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는 장애가 가진 고유성을 극대화시키는 극단 애인만의 개성이었다. 각자가 가져가는 고유한 리듬 또한 장애의 활용이 두드러지는 부분이었는데, 그들이 가진 느린 움직임과 호흡과 시선은 무대에서만 적용되는 시간의 흐름으로 관객을 끌어와 고도를 향한 그들의 긴긴 기다림에 함께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다른 여타의 [고도를 기다리며]들과 가장 다르고 가장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에 대해 대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수없이 재차 던져졌던, 그러나 아무도 답을 모르는 이 질문에 말이다.
도대체 고도는 누구일까?
텅 빈 무대에 던져진 대본 없는 배우
하이데거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면, 그는 고도를 두고 '죽음'이라고 일컬었을 것이다. 하이데거에게 우리는 텅 빈 무대 위에 던져진 대본 없는 배우들과 같은 존재다. 어느 순간 삶이라는 무대 위로 던져져 영문도 모른채 인생의 희비극을 버텨내야 하는 존재. 우리는 갑작스럽게 삶이 주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갑작스러운 순간에 죽음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막연히 기다리며 우리는 긴 기다림을 채워볼 따름이다. 그러나 불안은 여전히 우리의 깊은 무의식 속에 사라지지 않고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깊은 권태이자, 비본래적 삶의 형태로는 극복할 수 없는 우리의 존재론적 불안의 실체다.
고도가 죽음이라면,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아무런 준비 없이 삶으로 내던져진 현존재인 우리를 의미한다. 영문도 모른채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우리들. 그리고 극단 애인은 삶이라는 비극에 이유없이 던져진 우리네의 위태롭고 불안한 모습을 가장 쉽고도 강렬하게 가시화했다. 그들 자신의 신체 아무런 이유 없이 장애로 내던져진 신체 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권태로운 그들의 기다림을 통해 관객으로부터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거기서 발견하게 한다. 극단 애인만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단연 독자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순간 장애를 가진 주체는 뒤바뀐다. 장애인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가장 본래적이고 주체적으로 실존하는 반면, 관객은 자신의 삶 내면에 존재하는 장애의 실체를 보는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깊은 권태를, 삶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행해온 비본래적인 '시간죽이기'들과, 그것들의 허무와 무의미함을. 덧붙여 이 흥미로운 순간은, '다름'을 어떻게 연극이라는 공동작업의 도구로 활용할지에 대한 애인의 깊고 깊은 고민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에서 끝나지 않는 말, 이토록 다른 당신과 내가 어떻게 함께할지에 대하여, 이어지는 이 끈질긴 질문에 말이다.
'다른데, 달라서 뭐?'
다름에 대한 고민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서둘러 말을 끝냈고 여전히 당신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앵무새처럼 그들의 말을 그대로 베껴 쓰던 나 역시 그러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말은 한없이 오만하고 가벼운 말이었다. 그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오히려 그 거리를 더 합리화하는 강자들의 말이었다. 그 말은, 이렇게 다른 우리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함께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다른 것일 뿐'이라 하는 것은 결국 틀리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것을 더디게 배워가고 있다.
다음달, 빙구는 다시 공연을 준비한다. 함께 뭔가를 만들어가는 것들은 어렵기 마련이다. 서로 부대끼고 난관에 부딪치고 실패하기 일쑤니까. 그러나 그렇게 함께한다는 것은 얼마나 인간적인지. 더 많이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더 많은 고민을 해야겠다고 거듭 생각한다. 우리의 다름이 함께하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빛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다르다는 말로 밀어낸 당신과, 그 당신을 다시 무대로 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었을지를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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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4 <화이>: 새로운 사랑의 방식,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 화이
*영화 내용이 들어있어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 글입니다.
요즘 샤오롱바오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수업 공강 시간에 장준환 감독의 영화 <화이>를 보고 왔습니다. 배우계의 유망주로 떠오른 여진구(화이 역)와 베테랑 배우 김윤석(석태 역)의 만남으로 한껏 기대를 모은 작품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장준환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를 매우 인상 깊게 봤거든요. 조금 작위적이고 거칠지만 동시에 미묘한 심리묘사를 선사하고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고민할 거리를 선물해주는 영화였어요. 영화 <화이>는 <지구를 지켜라>와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문득문득 닮은 구석도 보이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지구를 지켜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어쨌든 결론부터 얘기하면, 저는 <화이>가 꽤 맘에 듭니다. 뻔하지 않아서 좋아요. 촌스럽고 진부해질 수도 있을 스토리를 복잡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재미와 대중성도 얻었으니 감독의 능력을 입증한 셈이네요.
Quest: 아빠(들)를 뛰어넘어라!
<화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물론 화이입니다. 전체를 놓고 보면 영화는 일종의 성장 소설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 범죄그룹 낮도깨비인 5명의 아빠들에게 집중적인 교육을 받으며 화이가 진실에 눈뜨는 순간 화이에게 던져진 퀘스트: 아빠들을 뛰어넘어라!
마음 가득 차오르는 분노와 증오를 해소하기 위해 복수를 결심한 화이에게 아빠들은 한 명 한 명,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퀘스트처럼 주어집니다. 사격과 무술을 배운 아빠에게는 사격과 무술로 대응하고, 화려한 운전기술을 전수해준 아빠와는 레이싱으로 실력을 겨룹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할 판을 짜는 것도 모두 아빠들을 보고 배운 것이겠죠. 물론 우리의 주인공 화이는 이 통과의례들을 처음이라 조금 서툴지라도 매우 훌륭하게 소화해냅니다.
사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빠들의 태도입니다. 아빠1의 죽음 소식을 듣고 화이가 자신들을 죽이러 올 것임을 알고 있고 또 화이의 공격에 결코 느슨하지 않게 대비하지만 어째서인지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화이를 절대 죽이지 말 것을 서로에게 당부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한 걸음 물러섬으로써 화이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죠. 죽음의 위기에서 오는 스릴 앞에서도, 아이에게 밀린다는 자존심 상하는 상황 속에서도, ‘아들’ 화이가 이렇게 잘 해낸다는 것을 보면서 대견해하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아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임을 염두에 두고, 하지만-심지어는 아들의 폭주에 배신감까지 느끼는 아빠들! 이들의 모습은 혈연 없이도 명확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명백한 부조화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식상하지 않은 것이고요.
아빠와 아들, 눈물겨운 부성애
이토록 눈물겨운 부성애는 석태에게서 정점에 다다릅니다. 의외인가요? 영화 내내 화이에게 엄격하고 냉철한 모습만 보이며 화이를 강하게 억압하는 석태는 화이가 가장 두려워하지만 가장 동경하는 아빠로서 화이와 가장 극적인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니까요. 그러나 석태 자신 역시 화이에 대해 가장 강렬한 집착과 엄격함을 보입니다.
“그런데 애가 병이 좀 있어. 괴물이 보인다나… 그런 건 날 닮았나봐. 내가 그랬거든.”
영화 후반부, 엮인 실타래가 모두 풀리는 석태의 독백. 석태 역시 화이처럼 괴물이 보였다는 얘기는 갑작스럽고 또 놀랍습니다.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야한다는 석태의 믿음. 지난 시간 화이를 향한 석태의 압박과 다그침이 모두 화이의 괴물을 없애주기 위한 것이었다니! 이 말들이 화이 그리고 자신에 대한 합리화일지언정 저는 석태의 진심을 믿어주고 싶던걸요? 어쨌든 그는 아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비롯한 아빠들의 목숨까지 기꺼이 걸었으니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화이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 아빠들을 모두 뛰어넘습니다. 제목이 괜히 ‘괴물을 삼킨 아이’가 아니겠죠. 화이의 비범함을 보고 있자면 아빠들의 능력을 모두 합쳐 완전체 괴물이 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석태의 물음대로, 괴물 아빠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역시 괴물이 된 자신을 보며 화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앞서 눈물겨운 부성애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사실 화이 역시 아빠들에게 순수한 복수심과 증오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친부모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연민 이상의 감정을 가질 틈도 없이 자신을 키워준 아빠들에 대한 애증愛憎으로 힘겹게 갈등하죠.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는 중에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은 피하려 하거나, “죽지 마 아빠!”-눈물을 쏟으며 기태 아빠(조진웅 분)를 살리려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진짜 부자보다 더 진짜 같은 부자관계. 괴물이 보는 눈까지 닮은 걸 보면 아빠와 아들이 맞긴 한가 봅니다. 삶을 거치며 길러지고, 만들어진 부자 관계. 아마 석태의 어린 시절에도 견딜 수 없는 어떤 시련이 있었을까요,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엄청난 시련이...
만약 화이가 진실을 알게 되고 그 때부터는 오직 친부모에 대한 사랑과 연민에 휩싸여 길러준 아빠들을 온전히 징벌하려고만 했다면, 영화가 무척이나 재미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시간의 영화 속에 이들이 함께 보낸 10여년의시간과 경험이 잘 녹아들어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네요. 괴물 아빠들의 사랑을 인정한다는 듯, 화이목은 정성스레 가꿔져 마침내 붉은 꽃을 피어냈습니다. 영화 <화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요. 후루룩!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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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worked
They were always on time
They were never late
They never spoke back
when they were insulted
They worked
They never took days off
that were not on the calendar
They never went on strike
without permission
They worked
ten days a week
and were only paid for five
They worked
They worked
They worked
and they died
They died broke
They died owing
They died never knowing
what the front entrance
of the first national city bank looks like
[후략]
- Pedro Pietri, Puerto Rican Obituary
푸에르토리코 계 미국인 이민자였던 시인 Pedro Pietri의 Puerto Rican Obituary의 1절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에 건너와 불법 이주민 신세로 전락해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사라져간 이름 모를 이민자들에게 바친 시이지요. 저는 이주민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볼 때면 항상 이 시를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when they were insulted와 without permission인데, 앞 행과 다음 행 사이에서 중의적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 절묘하지요.
페드로 피에뜨리는 다른 많은 이민자 출신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에 ‘재발견’된 시인입니다.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이민자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주류 문화 속으로 포섭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비로소 미국적 가치를 획득한 경우입니다. 이민자 게토를 형성했던 뉴욕의 많은 지역들이 ‘할렘 르네상스’니 ‘스패니쉬 할렘’이니 하는 표현들과 함께 주요 관광지로 부상한 것처럼 말이에요. 페드로 피에뜨리도 푸에르토리코, 쿠바, 멕시코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스패니쉬 할렘’의 문화적 상징으로 부상하면서 각종 벽화와 기념물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그의 시는 몹시도 비장하고 혁명적인 에너지로 넘치지만, 벽화로 남겨진 페드로 피에뜨리의 얼굴은 온화한 아이콘이 되어 있어요. 또 다른 중남미의 혁명가였던 체게바라가 그렇듯이 말이에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뉴욕으로 건너온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헐리웃 단골 소재가 되어버렸지요. 오늘 소개하게 된 애니메이션도 어쩌면 진부한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의 재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48년 쿠바의 하바나, 야망에 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는 어느 날 밤 클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 리타를 만납니다. 젊음과 재능으로 빛나는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지지만 열정과 욕망, 질투와 오해가 뒤엉키며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하죠. 다시 기회의 땅 뉴욕에 발 딛게 된 치코는 스타로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리타와 재회하는데... 하바나에서 뉴욕, 그리고 파리, 할리우드, 라스베가스까지. 사랑과 꿈을 좇는 그들의 뜨거운 여정을 다룬 에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입니다.
줄거리는 쿠바 판 <드림걸즈>의 변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명 가수의 성공과 고뇌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전개는 예상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심지어 결말도 정석적인 편입니다. 꿈같은 이야기지요. 하지만 관객은 꿈같은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빠져들게 됩니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의 영상미도 한 몫을 하지만, 무엇보다 5-60년대 재즈가 풍기는 분위기를 무척이나 잘 구현하고 있어요. 음악만이 아니라 등장 인물의 태도나 복장, 말투, 성격마저 5-60년대 특유의 화려하고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화려하고 꿈같은 분위기 속에서 언뜻 이민자의 삶이 진솔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뉴욕에 건너간 치코는 하바나의 전설적인 드러머로 뉴욕에서 성공한 줄로만 알았던 차노를 만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어느 허름한 지하 공연장에서 연주할 뿐이었습니다. 마약과 술에 찌든 차노는 뉴욕에서의 차별이 하바나보다 심하다고, 백인 전용 상점들뿐이며 버스에서조차 2등칸에 타야 한다고 푸념합니다. 뉴욕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에요. 차코와 리타의 사랑을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사건도 이민자들이 항상 겪게 되는 바로 그 문제고 말이에요. 게다가 차코와 리타의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은 전적으로 미국인에 의해 좌우됩니다. 마치 운명처럼 둘의 삶을 기로에 서게 하는 것은 부유한 백인들이죠. 실제 이민자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극적인 사랑 이야기와 영상미, 아름다운 음악에 담긴 이민자들의 고난했던 삶.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아마 페드로 피에뜨리의 시도 좀 더 잘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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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근히 살아서 김근근인 역사/정치학도.
작품을 감상할 때면 주제보다도 시대와 맥락에 과도한 흥미를 느끼는 변태.
치킨과 두부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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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 대한 시작, 오페라의 시작.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처음으로 본 오페라는 <리골레토(Rigoletto)>다. <리골레토>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 <일락의 왕>을 기초로 베르디가 작곡한 곡이다. 빅토르 위고에 베르디라니! 한 마디로 오늘날 거장으로 칭송받는 위인들의 합작이다. 하지만 당시 어렸던 나에게는 작곡가나 거장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대신 나를 사로잡은 것은 무대의 화려함, 오케스트라 음악의 웅장함, 무대를 보는 동시에 오른쪽 구석에 있는 한글 자막을 보는 생소함이었다. 낯선 광경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딱 걸렸네~’를 외치던 광고음악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노래를 원곡으로 직접 듣고는 반가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모든 열정을 토해내는 듯한 가수들의 노래가 끝나면 영화 속에서나 보던 ‘브라보’와 함께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들의 모습까지. 이것이 오페라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오늘날 오페라는 성악가의 노래와 연기, 오케스트라의 연주, 연출가의 무대 연출에 걸쳐 종합예술의 전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오페라가 스스로 기억하는 오페라의 첫 기억은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이번에는 오페라의 초기 모습을 따라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초기 오페라가 발생한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거쳐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국경을 살짝 넘어 프랑스까지가 우리의 여정이 될 것이다. 긴 여행이 될 것이니만큼 오늘은 피렌체와 로마를 먼저 들려보자. 조금의 휴식을 가진 뒤 2주 뒤에 베네치아와 나폴리, 프랑스까지 여행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화려한 종합예술’, 오페라의 배경
오페라의 시작 @피렌체
제일 먼저 카메라타의 활동 무대였던 피렌체로 떠나본다. 최초의 오페라는 1600년 공연된 <에우리디케(Euridice)>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엄밀히 기록을 따지자면 1597년에 ‘Dafine'이 먼저 공연되었다는 문헌이 있지만, 악보나 가사집 등의 물질적인 증거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에우리디케를 최초의 오페라로 보는 것이다. 에우리디케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삐아오의 들리지 않는 음악」, [Op.2]‘오르페우스 신화, 음악의 신화’를 참고할 것!(글보러가기) 본론으로 돌아와서 에우리디케는 카메라타의 일원이었던 페리(Peri)와 카치니(Caccini)가 작곡하고, 리누치니(Rinuccini)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각색한 대본을 써서 완성한 오페라다. 오늘날 오페라라고 웅장하고 화려한 스케일의 무대를 생각하지만 처음 <에우리디케>가 공연된 것은 결혼식에서다. 당시 피렌체에서 유력했던 메디치 가문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귀족을 위한 여흥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신랑․신부의 사랑을 축복하는 결혼식에서 비극적 결말의 에우리디케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마지막에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가 저승에서 나와서 행복하게 사는 결론으로 내용을 각색했다.
오페라의 변화 @로마
지금의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 정도의 의미를 갖지만 당시 로마는 교황이 살던 곳이다. 교황을 보기 위해 수많은 신자들이 로마로 몰려들었고 성당은 이러한 신자들에게 보여줄 공연이 필요했다. 때마침 피렌체에서 건너온 오페라 양식의 채택하였다. 대신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종교적인 내용으로 각색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당시 성당에서 여성은 성가를 부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페라 극 진행을 위해서는 여자 역할이 필요하지만 여성은 노래를 할 수 없으니 해결책은 남성이 여자 역할을 맡아서 하는 것이었다. 여자 역할을 맡은 남자 가수는 여성과 같이 높은 음역대를 유지해야 했다. 이 때문에 남성이 변성기를 거치며 음역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거세를 한 가수 ‘카스트라토(castrato)’가 성행했다.
피렌체의 오페라가 모노디 양식을 지키며 노래보다는 가사에 중점을 두었다면, 로마에서의 오페라는 노래를 중심을 옮겨가는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벨칸토 창법’의 개발로 이어졌다. ‘벨칸토(Bel Canto)’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답다는 의미의 ‘벨’과 노래라는 의미의 ‘칸토’의 합성어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데 치중하는 발성법이다. 벨칸토 창법은 노래를 부르면서 한 번에 들여마신 숨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내보낼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다. 이 발성법을 사용하면 노래할 때 자신의 호흡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창법은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게 되면서 오페라 노래는 전문성악가만 부를 수 있다. 점점 가사의 내용보다는 음악에 중요도가 옮겨지면서 노래의 아름다움이나 성악가의 기량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사보다 듣기 쉬운 멜로디로 중심이 변화하면서 오페라는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해지고 점점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다음 여정을 위한 휴식
아쉽지만 오늘의 여행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자. 여행은 조금 쉬었다 가야 다음 여정이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2주 뒤에 시작될 베네치아와 나폴리, 그리고 프랑스 여행을 기다리며!
* 그림1. 피렌체 성당의 모습.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2. 작곡가 페리의 전신 초상화.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3. 에우리디케 악보 표지. (사진 출쳐 : 구글 이미지)
* 그림 4. 콜로세움의 모습.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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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먹는 좀비]
03. 마음의 미시세계, <부산국제영화제> (1)
'아, 혜선 씨. 저 그 영화 봤어요.'
시속 300Km로 기차는 서울에서 멀어진다. 귀가 먹먹하다. 초점 없이 풍경을 바라보는데 괜히 가슴이 답답하다. 혜선의 문자가 자꾸만 떠오른다. 작가의 직업병일까. 단어와 단어 사이를, 문장과 문장사이를 열심히 더듬어본다.
'그래요?ㅠ 어쩔 수 없죠. 뭐. 다음에 또 봬요 그럼!'
그래, 괜한 죄책감도 이상한 생각도 말자. 그럴 리도 없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승훈은 옆자리서 벌써부터 자고 있다. 열정적으로 여행의 필요성을 역설하더니만 의자에 앉자마자 퍼지다니. 부산으로 떠나는 건 굉장히 충동적이었다. 승훈이 놈이 부산은 자기가 꽉 잡고 있다며 자기만 따라다니면 제대로 즐기고 올 거라며 꼬셔댔다. 실은 혜선이 아르바이트 때문에 부산에 갈 수 없게 돼서 급한 대로 나라도 데려갈 생각이었겠지.
"야, 이런 말이 있다. 친구. 아무리해도 아무것도 안 될 때는? 놀아라-!"
"어디 나온 말이냐 그건."
"이 형님이 하신 말씀이지. 놀고 나면 의외로 저절로 해결되어 있을 때가 많다고. 해결이 안 되어 있어도 적어도 놀았다는 건 남잖아. 합리적으로 괜찮은 선택이라 이 말이지."
"아아, 그렇구나. 그래서 네가 이렇게 잘 되고 있는 거구나-."
"네네 그럼요. 보시다시피 잘 되고 비결입니다-. 작가양반. 아무튼 글을 잊고 좀 쉬다 오자구."
그래, 실컷 놀자 싶었다. 글 생각은 다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시고 밤바다나 보고 오자 싶었다. 때마침 하는 영화제도 보고 싶었고 제대로 부산에 가본 적도 없었고. 그래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정말이지 짧은 여행 동안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있었으면.
"야, 서울에 신종 전염병 돌았다는 거 있잖아…."
실컷 자고 일어난 승훈이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입을 연다.
"그게 소방방재청 착오로 문자가 잘못 간 거였대."
"아 그래?"
"어, 근데 SNS에 퍼지는 찌라시로는 말들이 많네. 정부가 뭔가 은폐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도 있고 목격담도 있고…치사율이 엄청 높은 전염병이라는 말도 있고…."
"뭐 언제나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어딘가에선 아주 비밀스럽고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오오케이-. 그렇지. 그리고 우리의 직업은 사람들의 그런 욕망을 이용하는 일이지. 안 그냐."
승훈이 눈을 굴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야, 룽. 근데 실제로도 말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는 거시세계와는 전혀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 아냐? 에너지와 질량이 끊임없이 뒤바뀌고, 공간과 시간이 마구 꼬이고 요동치고, 입자는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해."
"갑자기 뭔 소리야."
"그러니까, 쉽게 말해 미시세계가 확장된다면 벽에다 야구공을 던지면 열에 다섯 정도는 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이지. 게다가 초끈이론에 의하면 미시공간은 3차원이 아니라 11차원의 갈라비-야우 모형으로…."
"야야 그만해. 아무튼 미시세계는 뭔가 알 수 없는 일들이 거시세계의 물리작용과는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는 거잖아."
잊고 있었다. 승훈이 놈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어릴 때부터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다니던 물리덕후였다는 걸. 가끔 SF영화를 함께 보고나오면 승훈은 방금처럼 이런저런 알아들을 수 없는 물리학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들어보면 흥미로운 얘기들인데 어쩐지 아무리 들어도 내 머릿속엔 물리학 지식이 입력되지 않았다. 아마 미시세계 얘기도 수없이 들었을 거다. 아무튼 승훈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놈이다.
나는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미시세계라는 게 우주의 무의식 같은 걸까. 거시세계는 의식할 수 없고 조절할 수도 없는.
승훈은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근처 밀면집으로 나를 끌고 갔다. 유명한 집인 모양인지 줄이 꽤 길었다.
"여기 밀면국물이랑 왕만두가 최고…. 어? 야. 잠깐만 쟤 내가 아는 애 같은데?"
승훈이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전화를 건다. 앉아서 밀면을 먹던 노란 스웨터 입은 여자가 전화를 받는다.
"야, 현아! 너 지금 밀면 먹고 있지? 흐하하하 진짜 신기하다. 나 여기 밖에 줄 서있어."
여자가 밖을 바라본다. 놀라고 반가운 표정으로 깔깔 웃더니 손인사를 한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어, 나 첫 단편 찍을 때 주인공 했던 애야. 부산서 연극한다더니 여기서 다 보네. 쟤가 옛날에 나 좋아한다고 그랬었어. 얼마 전까지도 연락 왔었는데. 이거 운명인가?"
"스티븐 호킹처럼 미시세계가 어쩌고 할 땐 언제고 갑자기 이젠 운명론자가 되셨네."
"오빠, 부산엔 어떻게 왔어요? 설마 나 보려고?"
밀면을 먹고 나오며 노란 스웨터 그녀가 승훈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서울말이 섞인 듯한 묘한 느낌의 사투리를 썼다. 노란 스웨터도 말투도 눈웃음도 해사했다. 전체적으로 작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영화제 왔지. 너 더 예뻐졌다? 잘 지내나보네-. 아, 여긴 내 친구 소설가 룽이라고 해. 야, 룽. 얘는 아까 말했지? 배우고 이현이라고 해."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작가님 알아요. 승훈 오빠랑 친구셨구나. 오빠 근데 이번에 초청 받았나 봐요? 오-."
간단히 인사를 건네자마자 그녀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시 승훈에게 얼굴을 돌리고 질문을 던진다.
"아, 어 뭐 그런 셈이지. 아무튼 너 이따가 시간되면 해운대 포차에서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 오랜만에."
"오, 좋아요. 이따 전화할게요. 그럼! 작가님도 재밌게 놀다가세요-."
그녀는 총총 발걸음을 옮겨 멀어졌다. 재밌게 놀다가세요? 이따가는 둘만 보고 싶다는 뜻인가? 아무튼 승훈이 놈 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거짓말이며, 그녀의 들뜬 목소리며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그들의 미시세계에서 무언가 꼬이고 요동치고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여행 그리고 우연한 만남은 사람의 미시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까. 생각해보면 <비포 선라이즈>는 말도 안 되는 판타지가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심리양상에 대한 굉장히 과학적인 보고서 인지도 모르겠다.
해운대에 숙소를 잡고 바로 바다로 나갔다. 영화제 때문에 해변에 여러 홍보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도 배우들의 행사가 있는지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다.
"개막식 보러 안 갈 거야?"
"야, 거긴 들어가서 보려면 입장권 있어야 돼. 그리고 난 초청받은 사람도 아니고 가서 뭐해. 그리고 이 영화제라는 게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누고 즐기는 문화제가 돼야 하는데, 여기 봐봐 죄다 홍보부스잖아. 배우들 나와서 하는 행사도 다 쇼고, 진짜 영화는 없고 다 산업이고 지역돈벌이 행사야. 우린 바다나 보고 술이나 마시자-."
그래, 뭐 나도 사람 붐비는 건 싫으니까. 승훈의 쿨한 척하는 푸념을 들으며 바다 가까이로 걸어갔다. 어느새 어둑해진 바다 가까이로 가보니 갑자기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있었다.
"야, 여기 사람이 왜 이렇게 많냐."
"야야 저기 저거 뭐야? 사람들이 왜 저렇게 뛰어오지?"
"꺄아아아아악-" "꺄아아-아-"
섬뜩한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어둑한 밤바다와 인파에 둘러싸여 승훈과 나는 영문을 몰라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저거… 아무래도…."
"좀비 아니야? 좀비다! 저건 완전 좀비라고! 야, 룽 쟤네 봐봐. 우리한테 뛰어오잖아."
순간 나의 미시세계에서 어떤 퍼즐이 맞춰졌는지 소름이 돋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근육이 한껏 긴장으로 부풀었다.
"야, 우리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 이건 완전…."
우릴 항해 달려오던 검은 무리에서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와, 봤나-. 시우민 존나 얼굴 작다. 미친 거 아이가."
"내 동영상 아이컨택 했다. 아 시발 심장 떨려 죽겠다."
해운대 밤바다에 번쩍이며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인기 아이돌 엑소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 바로 뒤에 아이돌이 있었다. 그들이 걸을 때마다 중고등학생 여자아이들이 좀비떼처럼 이동했다. 비명을 지르고 펜스를 넘고 서로를 밀치고 발을 밟으면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봤으면 새로운 영감을 받았을 법한 스펙터클한 장면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여학생들 틈에 출근길 지하철처럼 속수무책으로 끼어있는 서로를 보았다.
"이건 어떤 물리학으로 설명 가능한 거냐. 설명 좀 해줘라. 전자기력? 중력? 핵융합?"
"다 틀렸어. 이런 건 그냥 재앙이라고 하는 거야."
승훈은 또 운명론자 같은 답을 한다. 이상하게 허탈한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비명소리 사이로 파도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BY 룽
영화와 음악, 책을 사랑하고픈 기자지망생.
행복과 항복 사이에서 글을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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