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이번에 살펴볼 책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입니다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인데요책을 소개하기 전에 저자에 대해서 먼저 살펴볼까요?


할레드 호세이니는 1965년 3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났습니다외교관 아버지와 선생님 어머니를 두었고요. 1976대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이동하였다가 1980년에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떠납니다미국에서 호세이니는 의학을 전공하여 의사로 활동하였는데요일을 하는 틈틈이 소설을 써, 2003년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로 화려하게 등장하고, 2007년 두 번째 소설이자오늘 소개하는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발표하게 됩니다.

(위키피디아 참조)


아프가니스탄계 답게 그의 소설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 삶을 닮고 있습니다저도 이 책을 통해서 생소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문화 그리고 그들의 비극적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는데요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는 1959년부터 2001년까지의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한국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편입니다게다가 전통주의자탈레반소련미국 등 다양한 세력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쫓으면서 단번에 파악하기 힘드셨을 겁니다저도 역시나 그랬구요그래서 책을 다 읽고 소설에 나온 아프가니스탄 역사에 대한 정리를 찾아보니다행히도 계시더라고요. '저기요'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의 글이고요굉장히 쉽게 쓰셨습니다아래 링크 달았으니 소설에서 나온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저기요(jhartiers)'님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함께하는 아프가니스탄 역사'

-> (http://blog.naver.com/jhartiers/90084139959)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중심 주제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인권입니다그에 맞게 책에 나오는 두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입니다마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인물을 중심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라일라가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의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오면서 두 여자는 만나게 됩니다두 여자는 나이차가 무려 19살 차이인데요어머니와 딸 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시간이 흐르며 두 여자는 동료가 되지만그들이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에 대응하는 방법은 정반대입니다.


어머니 뻘인 마리암은 억압에 점차 적응하고 순응하는 인물입니다라시드와의 결혼도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들에 의해 원치않지만 하게 되었고결혼한 후에 며칠이 지나자 그녀는 그의 좋은 아내가 되기로 마음 먹습니다아이의 유산 후 자신에게 가해지는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폭언과 폭력에도 그녀는 아무런 반항 없이 견딥니다그녀가 적극적으로 폭력에 반항하는 것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라시드를 삽으로 내리치는 것인데요이 또한 자신을 위하기 보다는 라시드에게 목이 졸리는 라일라를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딸 뻘인 라일라는 억압에 완강하게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라시드와의 결혼도 자신의 계획의 일부로서 받아들인 것이며억울한 일에 대해서는 라시드에게 요목조목 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라시드에게서 돈을 조금씩 훔치면서 도망갈 계획을 세우는 것이나라시드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라일라의 적극적인 모습은 라시드와의 사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데요. '마리'라는 도시에서 티라크와 행복한 삶을 살던 라일라는 그곳에서의 편안함을 버리고 카불로 돌아와 재건사업을 시작합니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마리암과 라일라를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중년층 여성과 젊은층 여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린 것 같습니다마리암으로 대변되는 중년층 여성들은 라시드로 나타나는 전통과 억압 속에서 한 평생을 살며그것에 적응하고 인내합니다그와 반대로 라일라로 대변되는 젊은층 여성들은 전통에 반항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바라볼 부분은 젊은층 여성의 자유가 중년층 여성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인데요극심한 전통주의자였던 라시드를 죽이는 것은 결국 마리암이었습니다그 죄값으로 그녀는 목숨을 잃게 됩니다그녀의 희생에 의해 라일라는 라시드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게 되고더 나아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에 앞장설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부분 역시 존재합니다라일라가 안정을 찾게 되는 또다른 중요한 요인은 티라크의 도움입니다전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곳에 터전을 마련해있고 어느정도 돈을 가지고 있는 티라크가 있었기 때문에라일라가 그녀의 자유를 손쉽게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갑작스레 나타난 티라크와 티라크를 마냥 돕는 부호가 라일라가 조금 더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줄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라일라와 티라크의 사랑이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고 라일라가 혼자 헤쳐가기엔 주변 환경이 너무 버거웠기에 티라크의 재등장은 반가운 일이었지만그가 구세주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두 주인공이 어떠한 모습이고어떤 사람들을 대변하며또 여성인권 측면에서 아쉬웠던 점을 살펴보았습니다이 쯤에서 이 책에 대한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네요.


작가의 말을 살펴보면할레드 호세이니가 유엔난민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에서 활동하고 있으며이곳으로 기부해달라고 독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이 책은 굉장히 사회참여적이고 실천지향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작가가 아프가니스탄 독자들에게는 라일라와 같이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힘써달라고 부탁하고나머지 독자들에게는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기 때문입니다그것도 굉장히 직접적으로 말이죠아무래도 책장을 덮고 난 다음부터가 더 중요한 책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재합니다,


라고 쓰고 휴재할 생각이었지만 예전에 썼던 책 감상문 하나를 올립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오까마의 책장을 덮고 나서]가 한 작가의 작품 여러편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빙구의당신의 이야기


 2012년 4월, 극단 연우무대의 [인디아블로그]는 서울에 막 올라온 새내기였던 빙구가 처음 본 연극이었다. 그때 마음에 일던 따뜻한 물결들을 기억한다. 그들의 잔잔한 위로가 마냥 좋아서, 너무 좋아서 나는 그 이야기를 오래도록 간직했다. 갠지스 강 위를 떠가는 촛불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듯이.
 그리고 올해 10월, 그들을 [터키블루스]로 다시 만났다.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듯한 그들의 무대가 반가운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도 컸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이야기로 건네는 위로도 그 나름대로 역시 따뜻했다. [터키블루스]다.
 


터키블루스
2013.09.26 ~ 10.27
대학로 연우소극장



 극은 시완의 이야기가 콘서트 형식으로 주요한 흐름을 유지하면서 사이사이에 주혁의 터키 여행담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이게 콘서튼지 연극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거기에다 스토리상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극중에서 만나지 않고 따로 전개되기 때문에, 끝으로 갈수록 각자의 모놀로그로만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니 이제는 연극이 아니라 교차 편집된 두 명의 토크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장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꾸 나레이션처럼 전달되는 대사들은 아무리 작가의 의도를 잘 숨기려고 해도 결국 배우에 의해 '설명'될 수밖에 없어 상당히 노골적으로 말하려는 바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시완과 주혁의 관계그래프는 몇개의 변곡점 사이에서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일찍부터 관객에게 결말을 예측하게끔 한다. 극의 초반부터 사실 조금 불안했다. 각자 한참을 말하다가 말끝마다 '...했던 건 시완이 형이었어요', '...하다보니 주혁이가 떠오르더라구요'로 귀결될 때면, 그 묘한 오글거림과 거북함,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불길한 예감! 이야기의 중후반부에야 비로소 시완의 동성애적 감정이 살짝 드러나면서 극은 급격한 경사선을 타는데, 관객의 몰입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완이나 주혁의 상황에 있는 그대로 몰입하기보다는 대체로 '이야기가 어째 묘하게 흐르더니' 쪽에 더 가까운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주혁 한 명에 의해서만 전개되는 터키 이야기도 몰입도가 다소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시완과 주혁이 그토록 꿈꾸던 문명의 도시 트로이가 별볼일없는 황폐한 유적지로 드러나면서, 황홀한 터키의 풍경을 기대했던 일부 관객들을 김빠지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극의 스토리와 구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인디아블로그]는 두 남자가 함께 인도를 여행하면서 각자의 사연을 푸는 로드무비였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와 인도의 풍경이 긴밀하게 섞여들었다. 반면 주혁 한 명에 의해서만 전개되는 [터키블루스]의 터키 이야기는 설정된 스토리상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과거의 매개 이상으로 자리할 수 없었고, 터키는 여행자의 여정이 펼쳐지는 생동감있는 공간보다는 두사람의 정서적 공감대가 자리한 꿈의 공간에 더 가까워질 수밖에.

 그래서 [터키블루스]는 무대조명부터 프로그램북까지 '터키쉬 블루'라는 독특한 색깔을 짙게 깔아 터키를 표현한다. 여러가지 색이 공존하는 이 오묘한 색깔은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동서양의 여러 요소들을 지닌 터키를 상징하기도 하고, 동시에 서로 달랐기에 더 가치있었던 시완과 주혁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그 사실마저 배우에 의해 직접적으로 '설명'되었다는 점은 다시 한번 아쉬웠다. 어쨌든 연극이라는 형식을 더 고려해서 해설보다는 좀더 일상적인 말들로, 설명보다는 장면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인디아블로그]의 찬영과 혁진이 이제는 지난 시간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말한다면, [터키블루스]의 준혁과 시완은 한없이 지난 이야기의 추억으로 침잠한다. 앞으로 걸으면 걸을수록 뒤를 돌아보며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열여섯과 열일곱으로, 삼십대가 되어서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시간으로. 극에서는 보여주지 않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시완은 그가 외면해 온 가슴아픈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관객은 조금 서글픈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디아블로그]보다 좀 더 우울하고, 어쩌면 동성애라는 코드 때문에 더 낯선 이야기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터키블루스]의 인생들 역시 [인디아블로그]만큼이나 당신과 나의 얼굴을 닮아 있삶이라는 여행길 위에 선 우리, 어쩌면 낯익은 서로의 얼굴을 보려고 우리는 거기에 슬픔이 있다는 걸 알면서 자꾸 뒤돌아보는 걸지도. 그렇기에 [터키블루스]는 [인디아블로그]와는 또다른 위로가 된다. 아파도 괜찮으니 돌아보라고, 거기에 낯익은 슬픔이 있다고, 기꺼이 아프라고.

 긴 여행의 끝에서 결국 에우리디케를 뒤돌아본 오르페우스처럼, 우리는 때로 비극의 장을 예감하면서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언제쯤 당신에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또 한번 아픈 것, 또 한번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와도 결국 자꾸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은 감히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팝콘 먹는 좀비]

02. 뮤즈에 대하여, <우리 선희>

 

 

"야, 룽. 일어나봐. 밥 먹어."

"아으으. 몇 시야?"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눈을 슬며시 뜬다. 창으로 뛰어드는 가을햇살이 아찔하다. 머리가 띵하다. 거실에 수천 장의 DVD가 알록달록한 아지랑이처럼 보인다.

"해가 중천입니다, 작가양반. 해장해! 형님이 콩나물국 끓여놨지-."

승훈이 놈 콩나물국도 끓일 줄 안단 말인가. 15년을 봐왔지만 아직도 나는 이 놈의 진짜가 뭔지를 알 수가 없다. 뭐 그래서 이렇게 오래 보고 있는 거겠지만. 10분만 보고 있어도 어떤 사람인지 훤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체질적으로 그런 부류들과는 맞지 않았다. 어쩜 그렇게도 패턴화된 말과 행동들을 하는지. 국그릇을 들고 숭늉처럼 벌컥벌컥 삼킨다. 칼칼하게 잘 끓인 콩나물국이 쓰린 위장에 퍼진다.

"크아-. 어제 어떻게 된 거냐. 기억이 안 나네."

"흐흐. 어제 우리 대문호님 신나셨지 뭐."

능글거리는 승훈의 표정에 속이 또 메슥거린다. 역시 저 표정은 싫다. 콩나물국에 얼굴을 파묻는다.

 

 

어제 승훈과 혜선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보고 모자란 술을 더 사와 마셨다. 천장도 높고, 조명도 좋고, 야경도 좋은 승훈의 집은 여느 고급 바(Bar) 못지않았다. 게다가 풋풋한 20대 여자가 있었으니까. 마시다 보니 난 필름까지 끊겨버렸다. 어제의 시간들이 피카소의 그림처럼 조각나서 멋대로 이어 붙여져 있다. 피카소는 어쩌면 숙취의 아침에 지난밤의 연인들을 그렸을까. 나의 지난밤을 더듬어본다.

"자자, 짠-.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며!"

짱그랑하고 잔 부딪는 소리가 오랜만에 즐겁다.

"야, 룽. 혜선이가 왜 우리 과에 들어오게 된 줄 아냐?"

"아이-. 오빠 그런 말하지 말라니까-."

둘은 한참을 옥신각신한다. 나는 멀뚱히 둘을 바라본다. 승훈의 표정이 참 즐겁고 편안해 보인다. 부러운 얼굴이다. 이내 혜선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술을 꿀꺽꿀꺽 들이켜고 결심한 듯 눈을 빛내며 말한다.

 

 

"저 룽 씨 소설 전-부- 읽었어요. 학창시절에 꾹꾹 눌러 읽으면서 생각했거든요. 아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사람들이랑 함께 친구로 지내고 싶다. 그래서 지원했어요. 운 좋게 후배가 됐네요. 히히.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어요!"

혜선은 말을 이을수록 더 흥분하기 시작한다. 필사를 했다느니, 몇 번을 읽어 책이 헤졌다느니, 주변 친구들 생일마다 내 책을 선물해서 친구들이 싫어했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얘길 들을수록 나는 몸이 굳는다. 항상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가면 난처하고 어색하다. 내 글을 좋아해주는 건 참 고맙지만 그들에게 무슨 얘길 해줄 수 있을까 싶고. 내가 써내는 글이지만 글은 글일 뿐, 글이 곧 나는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진다. 나도 팬질 깨나 하며 작가들을 따라다녀 봤지만, 실제와 작품이 전혀 달라서 실망한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나는 어색하게 허허 웃으며 팬서비스를 해준다.

"허허, 고마워요. 혜선 씨."

"허허가 뭐냐. 촌스러운 새끼."

자기가 말하라고 해놓고는 혜선이 소녀팬의 모습이 되어 고백을 늘어놓자 승훈은 못마땅한 눈치다. 취기 때문인지 팬심 때문인지 혜선의 볼이 빨갛다….

그리곤 어떻게 됐더라. 아주 잠깐 예술에 대해 진지한 얘길 했던 것 같고, 대부분의 시간은 농담 따먹기에 보냈던 것 같고, 아무튼 아주 오랜만에 유쾌한 술자리였다. 혜선의 등장으로 새롭게 생긴 화학작용 때문이었으리라.

 

 

콩나물국을 바닥까지 긁어 마시곤 승훈에게 물었다.

"너가 그렇게 찾던 뮤즈냐? 혜선 씨가?"

"뮤즈! 그래 짜식아. 어제 너도 봤잖아. 혜선이 걔 발랄하고, 나이답지 않게 열려있고, 머리 좋고, 착하고, 안목 있고, 똑똑하고, 솔직하고. 바로 내가 찾던 뮤즈지."

"그래, 그렇더라. 발랄하고, 오픈 마인드에, 착하고, 안목 있고, 똑똑하…. 야, 근데 이거 홍상수 영화 대사랑 비슷한데?"

"오, <우리 선희> 너도 봤냐? 내가 또 상수형 영화는 꼭 보니까."

"상수형 좋아하네. 술자리 옆 테이블에 잠깐 같이 앉았다고 형이냐."

나도 홍상수 영화는 참 좋아한다. 전형인 것 같으면서도 전형이 아닌 것. 혹은 확실한 전형을 보여주어서 느껴지는 비전형성 같은 것이 좋다. 10분 만에 답이 나오는 영화들과는 다르다. 뭐 누군가는 홍상수 영화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하겠지만. 콩나물국을 끓여내는 승훈을 보듯 뜬금없는 홍상수의 매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번 영화도 참 뜬금없이 묘한 뽕짝이 영화에 통째로 나왔었다.

 

 

"아무튼 <우리 선희>를 보는데 선희가 꼭 혜선이 같더라니까. 자기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고 확인 받고 싶어 하는 욕망 같은 거. 알 듯 모를 듯한 행동들. 뭐 그런 거. 20대라 그런 건가? 아무튼 세 남자한테 영감을 주잖아 선희가. 혜선이가 나한테 그래. 뭔가 특별하고, 내 이야기의 샘이 될 것 같달까-."

"너 영화 제대로 안 봤구나. 선희는 세 사람한테 다 '우리 선희'야. 각자 선희는 나한테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실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잖아. '우리 선희'가 '나만의 선희'가 아니라 '모두의 선희'가 되는 셈이지. 혜선 씨라고 다를까?"

"그렇겠지. 내가 20대 애도 아니고 그런 건 상관없어. 당장 나한테 이야기를 주니까. 일단은 파고, 파고, 가고, 가보는 거지. 그리고 솔직히 예쁘잖아? 흐흐"

승훈이 영화 속 이선균 흉내를 낸다. 그런데 인상 깊었던 대사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끝까지 파고들어가는 건 좋은데 그건 네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게 아니고 뭘 못하는지 아는 거야.' 이 대사로 승훈에게 대꾸해주고 싶지만 무슨 마음인지 그냥 참았다. 어쩐지 승훈이 영화 속 남자들처럼 텅 빈 창경궁을 터덜거리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 선희>의 그 장면이 그랬던 것처럼 상상 속 승훈의 모습은 참 아름다워 보였다.

 

 

그나저나 뮤즈라…. 2년간 한 글자도 못 쓰고 있는 소설가에게도 고뇌가 아니라 뮤즈가 필요한 걸까. 30대 중반이 되어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한편으론 너무나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또 너무나 힘든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나에겐 쉽지도 힘들지도 않은 사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까 어제 무슨 문자가 왔던 것 같은데…."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승훈을 뒤로하고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바라본다.

 

"소방방재청…긴급재난알림…."

소리내어 문자를 읽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띵-동-.

 

[우리 혜선이]

룽 씨! 일어나셨어요?ㅋㅋ 혹시 다음 주에 영화 보실래요? <우리 선희>. 승훈 오빠는 벌써 봤다네요.

 

아. 우리가 번호를 교환했었나?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 혜선이'라니.

 

"왜 그렇게 머리를 싸매? 이제 일어나 쫌."

승훈이 베란다 창을 연다. 가을 강바람이 시원하게 안긴다.

<샤오롱바오의 영화 후루룩>은 샤오롱바오의 개인 사정으로 한 회 휴재합니다. 

몇 개월을 준비한 공연을 코 앞에 두고 있어요! 스스로에게도, 모두에게도 보람찬 공연이 되기를 바라며-

이 주 후에 알찬 글로 뵙겠습니다. 후루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