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전시 관람을 다녀왔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MOA에서 열리고 있는 <전광영 작가 개인전>과 기획 전시<Love Impossible>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사실 현재 MOA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기획전시인 <Love Impossible>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광영 작가의 개인전을 보러 간 것이기도 했거니와 결과적으로도 기획전시보다 전광영 개인전이 더 마음에 들었답니다. 그래도 <Love Impossible> 타이틀 로고가 참 괜찮죠?



  그래도 먼저, 더 마음에 들었던 <전광영 개인전>을 소개해볼게요. 일단 전광영이라는 이름이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 전광영 작가에 대한 기본 소개부터! (제가 직접 작성...아니 집대성한 전광영 작가 바이오그래피에요~.~)


1944년 출생. 홍익대학교와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에서 교육 과정을 밟았다. 초기 작품 활동에서는 빛에 대한 탐구를 관심사로 두고 알타프리마altaplima라는 자신만의 특수한 작업과정을 선보였다. 알라프리마는 아연화를 바르지 않은 순수한 천에다 마스킹 테이프나 작고 길죽한 띠모양의 페이퍼들을 흩뿌리고 그 위에 날염안료나 혼합한 유성물감을 드리핑한 후 페이퍼들을 떼어내는 방법을 일회이상 반복하고 중첩하는 것으로 빛의 영롱함을 자유자재로 변주할 수 있는 기법이다. 이처럼 이 시기의 작품들은 평면유화였으나 일반적 회화작업이 아닌 수공적/기술적 공정과 치밀한 계산이 내재된 것으로서, 이 과정에서 발현되는 오묘한 색의 조화를 추구했다.


94년도부터 한지 오브제작품인 <집합시리즈를 제작하면서 화가 전광영의 새로운 시기가 열린다. <집합시리즈는 삼각형으로 자른 스티로폼 덩어리들은 한지로 싸서 화판에 매다는 방식을 택한다초기 <집합시리즈에서는 옛 서적신문지부적염색 한지 등 종이의 질과 색감의 변화를 시험하는 단계와 염색에 의한 색상 변화 실험을 수행했으나 점차 정련되고 미니멀한 천연의 종이색으로 정착하게 되고 현재의 전광영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한국전통 한지로 군집된 종이묶음들로 이루어진 구성적 패턴과 솟아오른 입체들의 돌기된 표면이 보여주는 일정한 구조의 반복들이 패턴페인팅과 미니멀리즘의 컨셉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평가받으며,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서울국제 아트페어, 시카고 아트페어, 뉴욕아트페어 외 다수 해외전시를 하였으며 현재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관 MOA에서 개인전을 진행 중이다(12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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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전광영 작가를 유명한 작가,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든 건 아무래도 <집합Aggregation> 연작인데요. 삼각형의 스티로폼 조각을 한지로 싼 것을 엮어 제작하는 방식이 특징적입니다. 위에 보이는 조각들이 다 삼각형 조각이고, 다 한지로 포장이 되어 있어요! 전광영 작가의 작품은 '한지'라는, 서양에서는 볼 수 없는 동양적 소재와 서양적 미니멀리즘 형식의 결합으로 인해 해외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전광영 작가는 <집합> 연작의 제작 배경과 동기를 설명하면서 어린 시절 큰 아버지의 한약방에서의 모습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한약방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약재를 싸주는 정성스러운 모습에 깊게 감명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한지라는 정감있는 소재와 삼각형 모티프를 "싸기"라는 동양 특유의 보자기 문화로 결합시켜 <집합> 연작의 제작방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작품에 사용된 한지들은 고서의 조각들로 모두 글씨가 적혀있는데요, 여기서 한지는 단순히 동양의 종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사람들의 삶이 집합된 매개로 작용합니다. 

  동양적 소재와 서양적 방식, 게다가 작가의 개인 경험까지 섞어 인간 보편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 작가의 독창성이 잘 드러나는 전시였습니다. 한 켠에서는 빛의 형상화에 주력했던 작가의 초기 작품들 그리고 색채 실험이 두드러지는 <집합> 연작의 초기작들도 볼 수 있어서 재미가 배가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샤오롱바오는 <집합> 시리즈의 삼각형 조각과 음영들이 한지에 서린 정감보다는 일차적으로 모나고 응어리진 어떤 자아의 표출로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실련지 궁금하네요. 



한편 <Love Impossible> 기획 전시는 기대 이하였어요. 개별 작품들은 흥미롭고 참신한 것이 수두룩해서 볼 것이 많은 전시였지만, 이 작품들을 'Love Impossible'이라는 키워드로 엮어내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크게 와닿지 않는 기획이었습니다. 개별 작품들이 전시 기획의 메인 아이디어보다 훨씬 좋은 그런 느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유기성이 아쉬운 지점이었어요. 어쩌면, 사랑의 불가능성이라는 너무도 팍팍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애써 밀어내고 싶은 철부지의 푸념이었을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추천할만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움과 즐거움을 주는 작품들이 많거든요. 



왠지 센치해지는 가을날, 서울대학교 미술관 MOA로 나들이 한 번 가는 건 어떠신가요? 

샤오롱바오는 다음 연재에서 더 좋은 영화 소개로 찾아오겠습니다.



p.s <Love Impossible>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유리로 된 얼굴을 만들었는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얼굴'은 이럴 때 쓰는 말일까요?ㅋㅋ 





링컨 (2013)

Lincoln 
7.7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조셉 고든-레빗, 샐리 필드, 데이빗 스트라탄, 제임스 스페이더
정보
드라마 | 미국, 인도 | 150 분 | 2013-03-14
글쓴이 평점  



 미국 남북전쟁 막바지인 1865년. 모든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믿는 링컨 대통령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 노예제 폐지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전쟁 종결 이전에 헌법 13조 수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그러나 수정안 통과를 위해서는 야당의원으로부터 20여 표를 회유해야 하고, 동시에 성급한 표결 시도에 반발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다잡아야 한다.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표결을 준비하는 도중 남부로부터는 평화 제의가 들어오고 종전 이전에 수정안을 통과시킨다는 링컨의 구상은 위기에 부딪히게 되는데…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 게티즈버그 연설 중


“저한테 얼굴이 하나 더 있다면, 제가 이 얼굴을 하고 다니겠습니까?” 

- 두 얼굴을 가졌다고 링컨을 비판한 더글러스의 말을 받아치며


“다른 사람들이 한 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면서도 이념을 위해 싸운다고 말할 때, 링컨은 이념을 위해 전쟁을 벌이면서도 한 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 칼 마르크스


“(링컨은) 미국 전체보다 더 크고, 미국의 모든 대통령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 레프 톨스토이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입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근면함과 성실함만으로 자수성가해 대통령이 되었으며,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미국을 재통합하고, 무엇보다도 헌법 13조 수정안으로 노예제를 폐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평가를 조사해보면 항상 1위를 차지하곤 합니다. 미국 정치인 중에 기이할 정도로 신성시되고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전쟁 영웅이며 국가 재건의 상징이고, 사생활은 도덕적이었고 인도주의적 업적까지 이뤘으니 정치 지도자에 바랄 수 있는 것은 모두 갖춘 셈이니까요.


  그런 링컨의 이야기를 스필버그가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재선 성공과 수정헌법 13조 통과 직후까지의 짧은 시기에 집중해서요. 이러한 시점 선택은 미국 현실정치의 맥락에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한 것은 2012년 11월로,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시기와 겹칩니다. 영화의 원작인 도리스 컨스 굿윈의 <Teams of Rivals:the Political Genius of Abraham Lincoln>을 버락 오바마가 진지하게 탐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요. 잘 알려진 헐리웃 리버럴 중 한 명인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통해 오바마의 개혁성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동시에 그를 위한 한 준거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영화는 오바마에게 개혁을 위한 전략을 제공하려는 숨은 의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인 링컨에 대한 일반적인 전기라기 보다는 스필버그에 의한 독특한 한 해석이라는 겁니다.


  스필버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간단히 말해 ‘타협’입니다.  타협, 혹은 적과의 동침이라는 테마는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작가주의적 욕망이 분출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지요. 그러나 <쉰들러리스트>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심지어 <뮌헨>에서도 타협은 비극적 인도주의와 관계되는 반면 링컨에서는 보다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타협이 강조됩니다. 큰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협은 불가피하며, 심지어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목표에 대한 타협이면서 동시에 양심에 대한 타협이기도 하지요. 예컨대 공화당 급진파이자 평생동안  흑인의 자유를 위해 싸워 온 새디어스 스티븐스가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신념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게 되는 장면을 스필버그는 영웅적으로 묘사합니다.


  그 결과 영화 <링컨>을 지배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적 정치관입니다. 링컨은 헌법 13조 수정안을 원하는 시점 내에 통과시키기 위해 (거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야당 의원들을 관직으로 매수하고, 여당 의원들에게조차 비밀로 한 채 남부와 교섭하며, 적당한 둘러대기와 거짓말도 일삼습니다. 스필버그는 이 모든 ‘명백히 비도덕적이지만 불법이라고 말하기는 논쟁적인’ 과정을 도덕적 모호함 속에 묻어둡니다. 대신 이 과정을 통해 획득한 거대한 업적인 ‘노예제 폐지’를 부각시키지요. 그 결과 관객들은 비도덕성을 인식하기는커녕 링컨의 전략에 일종의 쾌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요령 좋은 영웅이 무수히 깔릴 장애물을 넘어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의 쾌감이지요. 게다가 막바지에 이르면 예기치 못한 행운도 찾아옵니다. “운명(fortuna)은 스스로 무엇인가 위대한 힘을 발휘하여 좋은 기회를 찾아다니는 정신력 강하고 재능(virtu)이 풍부한 인물을 선택한다”(군주론)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그대로 플롯으로 재현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성취하게 될 ‘노예제 폐지’라는 업적에 대한 링컨의 이상주의적 의지는 그의 마키아벨리적 이중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링컨은 선을 행하기 위해 불선을 서슴치 않으며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대립관계를 해소해 갑니다. “자기를 주장하고자 하는 군주는 선하지 않은 것을 배우고 또 그 상황의 필요에 따라 그 지혜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일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군주론) 그러나 링컨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치행위에서만 비르투를 발휘하며, 특히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도덕적 선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필버그의) 링컨이 ‘잘못 이해된’ 마키아벨리적 협잡배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정치배들과 구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마키아벨리적으로 재해석된 링컨의 위대함은 또다시 그의 이상주의로 돌아가게 됩니다. 위대한 이상이 없이는 협잡배와 위인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에 대한 해롤드 라스웰의 유명한 정의인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Who gets what, when, and how)’에 이제 ‘왜(why)’를 덧붙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 행위는 언제나 단순한 배분과정을 뛰어넘는 가치와 정당성의 문제가 있지요. 링컨이 위대한 이유는 굿윈의 말처럼 그의 정치적 천재성(Political Genius)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치적 천재성을 인류의 보편성이라는 위대한 이상을 위해 사용한 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것으로 족한 것일까요? 헌법 13조 수정안의 통과가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후대의 입장에서는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간에 정치적 결단을 밀어붙이면 정당성은 역사가 판단해 주리라는 신념이 정치를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대의를 위해 사소한 악을 감수할 수 있다는 정치적 신념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유아적 도덕성의 다른 모습일 뿐임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그러나 그 대의가 만인의 평등이나 인간 해방과 같은 압도적인 것을 때에도 우리는 도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링컨>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미국의 어떤 역사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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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근히 살아서 김근근인 역사/정치학도.

작품을 감상할 때면 주제보다도 시대와 맥락에 과도한 흥미를 느끼는 변태.

치킨과 두부를 좋아한다.



 피렌체에서 출발하여 로마까지. 함께 오페라를 따라 여행한지 2주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잘 쉬었나요?! 그런데 갑자기 웬 높임말이냐구요? 저번 글에서 ‘여행’을 컨셉으로 으로 오페라 여행을 떠났는데 써놓고 나니 아쉬움이 남더군요. 처음에는 여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쓰고 나니 수학여행을 인솔하는 ‘선생님’ 느낌이 들었거든요. 진짜 여행을 이끄는 가이드처럼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서 삐아오도 이번 글에서만큼은 살짝 친근한 느낌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오페라 여행, 그 세 번째 도시로 낭만이 있는 ‘물의 도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떠나볼게요.



피렌체에서 소수 귀족의 여흥으로 시작된 오페라는 피렌체나 로마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었다는 걸 기억하시나요? 그랬던 오페라가 베네치아에 당도해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오페라’의 전형적인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하면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1637년에 베네치아에 설립된 최초의 오페라 극장, ‘산 카시아노 극장(Teatro San Cassiano)'가 당시 오페라의 인기를 잘 보여줍니다. 오페라 극장이 설립되면서 베네치아에는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공공음악회’ 형식이 처음으로 실행됩니다. 돈을 내고 표를 구입한 사람이면 누구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던 것이죠. 지금은 자연스러운 콘서트 문화로 자리잡은 관행이지만 예전에는 종교나 성, 신분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자격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요소였습니다. 대중들도 돈만 있으면 오페라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오페라 극장의 설립은 오페라의 대중화에 기여하면서 더 많은 인기를 모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오페라의 대중화는 오페라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옵니다. 오페라가 표를 팔고 이익을 얻는 상업화가 되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17, 18세기 당시 귀족이 아닌 평민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기 어려웠음을 생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복잡한 스토리나 어려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연보다는 즉각적으로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 더 많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이러한 대중들의 취향에 편승하여 오페라도 점점 스토리나 메시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볼거리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의상이나 무대가 화려해짐은 물론이고, 서커스단처럼 묘기를 부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실제 코끼리를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볼거리 위주의 오페라는 오페라로서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스토리를 담고 있는 대본이 타락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대중들의 선호와 작품으로서의 완성도 사이의 갈등은 현대의 예술에서도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자 우리의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지, 나폴리로 떠나봅시다. 바로 이곳에서 오늘날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이 확립됩니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다른 나라의 오페라와 구분하는 특징은 오페라가 아리아 중심으로 공연된다는 점입니다. 아리아(Aria)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해 서정적인 선율로 이루어진 노래입니다. 주로 오페라의 주인공이 부르는 아리아는 극의 흐름을 잠시 끊고 주인공의 심리를 전달하는 데 주목합니다. 극이 전개되는 과정을 전달하는 레시타티브(Recitative)와 대비되는 단어입니다. 레시타티브는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극을 진행시켜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사 전달이 중요해집니다. 따라서 첫 번째 여행에서 살펴보았던 단선율의 모노디 양식을 사용했죠. 하지만 아리아는 극의 흐름과 떨어져있기 때문에 가사 전달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주인공의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성악 기교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아리아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숙련자들만 할 수 있는 ‘벨칸토 창법’에 대해서는 로마에서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노래할 때 성악가가 자신의 호흡을 원하는대로 조절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었죠. 성악가의 기교가 중심이 되는 아리아에서는 벨칸토 창법이 널리 보급됩니다. 대표적인 기교로 고음과 장식음, 긴 음을 주로 사용했는데 특히 긴 음의 사용은 ‘a’나 ‘o’와 같은 가사의 모음을 길게 연장하는 방식으로 불렸는데 이 때 많은 장식음이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이 때 작곡가가 따로 악보에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악가가 자신의 기교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불렀습니다. 이 전통은 오늘날의 오페라에까지 이어져서 성악가가 노래하는 약간의 즉흥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교가 중심이 되다 보니 당대 남성이지만 여성의 음역을 부르는 기교가 가능하던 거세한 남성가수 카스토라토가 성행했습니다. 나폴리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카스토라토는 ‘울게 하소서’ 등으로 유명한 파리넬리(Farinelli)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무리하며 그 흐름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피렌체에서는 고대 그리스 연극을 이상으로 삼던 카메라타의 영향으로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음악보다 가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로마에서는 교황을 보러오는 신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벨칸토 창법이 개발되었고 점점 음악으로 중심이 옮겨갑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오히려 내용은 부수적인 요소가 되고 볼거리 위주가 됩니다. 마지막 나폴리에 이르러서는 초기 피렌체에서 처음 탄생했던 오페라의 목표와는 반대로 가사의 비중은 거의 없어지고 성악가의 노래, 특히 기교가 중심이 되어가는 변화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서 그 모습이 점차 변하다가 애초의 목적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으로 완성된 이탈리아의 초기 오페라.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이 흥미롭지 않나요?

여행이 이대로 끝나기는 아쉬운 분들을 위해서 국경을 살짝 넘어 프랑스도 잠시 여행할게요. 프랑스의 오페라가 이탈리아 오페라와 벌이는 미묘한 신경전이 또 흥미롭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내용적으로 이탈리아의 대본은 고대의 신화만 다루는 허술함이 있다고 지적하고, 형식적으로는 남성이 여성의 음역을 노래하는 카스토라토에 대해서도 눈과 귀의 불일치를 근거로 비판합니다. 그 외에도 볼거리 위주의 공연 때문에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이탈리아 오페라 전반에 대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이러한 거부감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고유의 오페라를 탄생시킵니다. 아, 이 말을 프랑스에서 들으면 기분나빠할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고유의 장르이기 때문에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따라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오페라’가 아니라 ‘뜨라게디 리리끄(Tragedie Lyrique)'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뜨라게디 리리쓰는 ‘서정적 비극’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프랑스의 작곡가 ‘장바스티스 륄리(Jean-Baptiste Lully)'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즉 륄리가 프랑스 오페라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륄리는 문화적 우수성이 왕실의 권위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던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에서 프랑스 고유의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루이 14세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자세히 알고싶다면 '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 6 <왕의 춤>'을 참고할 것!)

하지만 프랑스의 노력에도 ‘뜨라게디 리리끄’는 오늘날 오페라의 한 갈래로서 프랑스 오페라로 생각됩니다. 사실 이탈리아 오페라와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다른 장르로 볼 수 있을 만큼의 큰 구분은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오페라와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적인 차이는 주제입니다. 앞서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정형화된 대본을 지적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건국영웅의 이야기나 왕실 인물의 무용담을 주제로 하는 오페라를 정형화했습니다. 또 오페라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곡이 반드시 부점으로 시작되는 ‘프랑스 서곡’도 탄생합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프랑스는 5막으로 늘리기도 했지요. 그 외에 발레가 삽입되거나 관현악 반주가 비교적 화려한 점 등의 사소한 차이도 보이지만 프랑스의 주장만큼 아예 다른 장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페라’라는 장르 안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자존심 대결은 보이지 않는 (문화) 전쟁으로도 보입니다.

자, 제가 준비한 오페라 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쉽진 않지만 당시의 배경과 오페라가 벌어지던 모습을 상상하면서 함께 여행했다면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부디 유익했던 여행이었길 바라며...혹시 다른 주제로 음악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또 가이드 삐아오가 등장하겠죠? 그때까지 안녕~


* 그림 1. 베네치아의 야경.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 2. 나폴리의 야경.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 3. 영화 <파리넬리> 포스터. 2011년 6월 30일 개봉작.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그림 4. 프랑스 작곡가 륄리 초상화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팝콘 먹는 좀비]

04. 인생은 디테일, <부산국제영화제> (2)

 

 

"이모- 수고하세용-."

포차 옆자리 네 명의 여자가 일어선다. 슬쩍 우리 쪽으로 던지는 눈빛에 뭔가 있는 것 같다. '따로 한 잔 더 하고 싶으면 얼른 따라 나와'라는 듯. 나는 그 끈적한 메시지를 받고 승훈을 바라봤다. 승훈은 여자들이 나가는 걸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얘길 한다.

"야, 룽. 봤냐, 쟤네? 네 명이 다 똑같이 생겼어. 앞트임, 뒤트임, 코에, 애교살…. 으아- 성형한 건 그렇다 치고 왜 저렇게 넷이 같이 다니는 걸까?"

승훈의 혀가 이미 꼬부랑하다. 벌써 소주는 세 병째다. 어제도 오전에 예매한 영화는 못 봤다. 내일도 그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체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있는지 부산국제주류박람회에 와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나 역시 새우를 까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우는 또 왜 이렇게 맛있어서 술이 술술 넘어가는 건지.

"글쎄. 밖에서 보면 다 똑같아 보여도 안에서 보면 다 다를 걸. 우리 눈에 클론 같아 보여도 자기들끼리는 전혀 다른 사람일거라고."

"오- 군대 같은 거냐?"

"음, 그렇지. 남들이 보면 다 같은 군인인데, 군인끼리 보면 다 다르잖아. 팔소매를 어떻게 걷어 올리는지, 군복 주름은 어떻게 잡는지, 군화 광은 어떻게 내는지, 심지어 모자무늬도 다 똑같아 보이는데 뭐가 멋있네- 뭐가 별로네-."

"크크크크 그랬지. 검은색 무늬 많고 패턴이 조화로워야 예쁜 거라던가."

"그래, 크게 보면 사람 다 비슷해. 신기할 정도로. 다들 먹고, 자고, 싸고, 아프고, 죽고. 근데 자세히 보면 사람 다 달라. 미묘하게 운동화 끈 묶는 법도 다르고, 샤워하는 순서도 다르고. 그건 작지만 실은 전혀 다른 삶인 거야. 그러니까 인생은 디테일이라니까."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소라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내려놓는다. 해운대 주변 초고층 빌딩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삶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른 걸까. 승훈이 소주를 따려다 말고 갑자기 소리친다.

"에이- 이모! 오리지널 말고 후레시 달라니깐. 후. 레. 시."

 

 

포차 입구로 누군가 들어온다. 엊그제 만났던 승훈의 첫 단편영화 주인공이었다는 그 여자다. 검은 재킷에 검은 원피스, 검은 스타킹에 검은 하이힐까지 올 블랙으로 빼입고 나타난 저 여자가 엊그제 만난 해사한 노란 스웨터의 귀여운 여자가 맞나 싶었다. 게다가 이 밤에 화장까지 완벽하게 하고 나오다니.

"혀-언- 왔어? 봐봐, 현이는 아까 걔들이랑은 전혀 다르잖아. 눈이며 코며 입술이며 디테일이 살아있네."

"뭐야. 오빠- 벌서 취했어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아, 저희가 좀 미리 마시고 있었어요. 현이 씨도 한 잔 받으세요."

술잔을 드는 현의 팔목엔 묵주팔찌가 있다. 뜬금없는 디테일이기도 하고, 저렇게 빼입고도 묵주팔찌를 하는구나 싶었다.

"어떻게 부산 잘 즐기고 계세요? 영화는 좀 보셨어요?"

현이 승훈 쪽으로 몸을 슬며시 당기며 다가간다. 혜선 생각이 난다. 이거 이대로 나둬도 될까.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혜선이 보낸 문자가 떠올라 고갤 휙휙 저었다.

"응, 뭐. 오늘은 카자흐스탄 영화 봤어 <나기마>라는 작품인데 좋더라. 여배우도 묘하게 매력있는 눈빛과 표정이 있더라고. 어디에 붙여놔도 몽타주되는 그런 표정을 가진 배우들 있잖아. 그런 느낌이었어."

"승훈 오빠, 예전에 나한테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오오케이- 컷! 현이 표정은 역시 어디 붙여놔도 몽타주가 된다니까-'라면서. 기억 안 나죠?"

"그, 그랬나? 흐흐 역시 난 그때도 안목이 있었군? 현이와 나기마를 위해 짠-"

 

 

<나기마>는 술 먹고 늦장을 부리다보니 어쩌다 보게 된 영화였는데 상당히 좋았다. 나에게는 이런 게 영화제의 맛이구나 싶었고, 승훈에게는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기마의 선택은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나는 술에 취해서인지 구구절절 영화얘기를 내뱉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런 내용이에요. 못 생기고 글도 모르는 나기마가 유일한 친구이자 고아원 동기인 안야와 함께 사는데. 안야는 임신을 한 상태에요. 그렇게 나기마는 친구를 돌보며 살아가는데 어느 날 안야가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는 거예요. 보호자가 없는 갓난아이는 고아원에 보내지게 되죠…. 근데! 나기마가 그 애를 고아원에서 훔쳐 나와서 키우기로 해요."

"그렇게 아이를 통해 버림받은 상처를 극복하나보죠?"

"아뇨. 그게 그러니까…."

"죽여. 애를. 이-렇-게 들어서 절벽에서 휙- 쿵-."

승훈은 나기마가 아이를 안고 절벽에서 아이를 던져버리는 장면을 재연한다. 승훈은 짓궂게 다시 소라껍데기를 들었다가 떨어뜨린다. 쿵, 부딪히는 소리가 가슴으로 콱 박힌다.

"아니, 왜요? 친구 아이를 굳이 훔쳐서 키우려 한 것도 아니고 죽여요?"

현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슬쩍 젖히며 묵주팔찌를 만지작거린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기마는 고아가 된 갓난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것 같아요. 누구도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거고, 상처만 받아가면서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고. 자기 삶이 그랬으니까요. 그러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게- 나기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몰라. 절대 나처럼은 되지 마라! 그런데 살아서는 무조건 자기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나기마는 참 이기적인 여자네요? 그럴 거면 자기가 죽어야하지 않나요?"

"글쎄요. 이기적이라기 보단 바보 같았던 것 같아요. 인생의 디테일을 보지 못 했달까. 실은 그녀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 작은 디테일로 표현되어서 어쩌면 나기마가 못 봤을 수도, 성에 차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요. 나기마는… 안타깝게도 삶의 디테일을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 같아요."

"그렇구나, 저는 굉장히 디테일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어느새 술잔은 몇 번씩 더 주고받고, 소주병이 쌓여가고 있었다. 현이 나와 승훈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문득 얘길 시작한다.

 

 

"그런 적이 있어요. 저 어릴 때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이면 항상 문 너머로 또각또각하는 하이힐 소리가 들렸어요. 또각또각. 현아 엄마왔다- 하는 그 소리. 그래서 어릴 땐 꿈이 엄마처럼 하이힐을 신는 여자가 되는 거였거든요. 근데 그걸 오래도록 까먹고 있었어요. 서울 올라와서 연기도 맘대로 안 되고, 인생 참 맘대로 안 되는 구나. 신세한탄하면서 집으로 가고 있는데. 문득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또각또각. 제가 신은 하이힐에서 나는 소리였어요. 웃기게도 그때 그런 생각이 들어라구요. '와,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적 꿈을 이뤘구나. 이현 성공했네.'라는. 우습죠? 근데 그게 너무나 위안이 되는 거 있죠? 그 뒤로는 항상 하이힐을 신고 다녔어요. 내가 사랑하는 인생의 디테일이랄까. 그래요."

승훈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하이힐을 내려다 보았다. 엄마의 구두소리를 들었을 꼬마 아이를 상상했다. 승훈에게 추근거리는 그저 그런 여자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묘한 디테일들이 그녀를 전혀 다르게 보이도록 했다. 해사했던 첫인상은 그런 모습을 본 것이었을까.

"오오케이-. 말 나온 김에 작가양반이 사랑하는 인생의 디테일을 들어볼까?"

"글쎄, 그런 것보다 너의 디테일이 너에 대해 얼마나 많은 걸 알려주는지 말해줄게. 먼저 몇 주 전부터 밑창이 떨어져 덜렁거리는 네 신발. 그걸 넌 지금도 그대로 신고 있잖아. 네가 그런 놈이라는 거야. 덜렁덜렁, 디테일은 전혀 신경 안 쓰는."

"뭐? 야, 룽. 이런 말은 안 하려 그랬는데 그래서 네 소설이 재미없는 거야. 디테일, 디테일, 그 놈의 디테일. 서사가 쭉쭉 치고 나가는 맛이 있어야지. 그녀의 떨어진 코드 단추가 어쩌고 저쩌고."

"에이- 승훈 오빠. 이런 말은 안 하려 그랬는데요. 오빠 영화는 너무 디테일이 없었어요.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막 휙휙 넘어가고. 연기하기 얼마나 힘들었다구요."

나는 현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현도 슬슬 취해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그래, 밖에서 보면 다 비슷비슷한 포차에 들어가 비슷한 술을 먹고 비슷한 얘길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뭐든 들어와 봐야, 자세히 봐야 아는 법이다. 바닷바람이 불고 분위기가 즐겁다. 내일이면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데 역시 제 시간에 가긴 힘들 것 같다.

 

시끄럽게 벨이 울려서 눈을 떴다.

"아으으, 여보세요?"

"아, 룽 씨! 저 혜선이에요. 지금 어디세요?"

"네? 아, 예. 혜선 씨. 여기가 그러니까 부산인데요."

"그러니까 부산 어디세요. 저도 지금 부산이에요."

 

혜선에게 듣기로 승훈이 어제 새벽에 혜선에게 만취해 전화를 했다고 했다. 큰일 났으니 어서 부산으로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고. 놀란 혜선은 얼른 부산으로 차를 끌고 내려왔다는 거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젯밤 기억이 없다. 왜 나만 숙소에서 자고 있는 걸까. 나는 얼른 체크아웃을 하고 해운대 포차로 나갔다. 이미 혜선은 승훈을 차에 실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러게요. 어떻게 된 일인지. 일단 타세요."

승훈은 해운대 포차에서 쓰러져 바닥에서 내내 자고 있었다고 했다. 나중에야 포차 아주머니께서 혜선 씨 번호로 전화를 주셔서 찾아올 수 있었다고 혜선은 뾰루퉁해서는 말했다. 혜선은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는데 어쩐지 더 창백해보였다. 화가 난 걸까.

나는 뒷좌석에 쓰러진 승훈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나는 승훈을 버리고 혼자 숙소로 왔나보다.

 

"승훈 오빠가 어제 전화해서는 장난 아니었어요. 하하하. 데리러 오라고 막 응석을 부리는데. 저 다 녹음해놨다니까요. 너무 웃겨서. 룽 씨는 좀 괜찮으세요?"

다행이었다. 혜선이 화가 났을까 걱정했는데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긴장이 풀리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손목에서 뭔가 짤그락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엣, 이게 왜 여기 있지?'

순간 뒷골을 타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현의 묵주팔찌였다. 설마…. 나는 머리를 감쌌다.

 

"룽 씨 괜찮으세요? 우리 휴게소라도 들릴까요?"

"아, 아뇨 괜찮아요. 머리가 아파서요. 조금만 자도 될까요?"

"그러세요. 그럼.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꿈같은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어제 그러니까 술 깨려고 잠깐 바다에 바람을 쐬러 나왔는데, 현이 따라 나왔고. 그땐 이미 승훈은 포차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해변 스탠드에 앉아서… 기억나지 않는 대화를 나누다가… 현이 내 어깨에 기대고… 승훈 얘길 했었나? 현이 울기 시작했고… 안쓰러워서 토닥거려 주다가… 분위기에 취해서… 현에게 키…스를….

아, 제발. 아닐 거야.

왜 그랬지. 묵주팔찌와 하이힐의 디테일 때문이었을까. 현도 기억할까.

 

"우에에에에엑- 으에엑-"

"꺄악, 오빠! 안돼."

 

놀라서 눈을 번뜩 떴다. 뒷좌석의 승훈이 토를 하기 시작했다. 혜선은 안절부절 못했다. 왜 여행의 끝이 이 모양인건지. 라디오에선 태풍이 북상중이라는 예보가 흘러나왔다. 부산을 떠나고 있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BY  룽  

영화와 음악, 책을 사랑하고픈 기자지망생. 

행복과 항복 사이에서 글을 쓰는 중. 


 

※ 공지 : [오까마의 책장을 덮고나서]의 작가 집중 탐구는 준비 기간이 걸려 그 동안은 독서에세이로 대신합니다.

 

 

 

 

감기약, 그리고 타임스키퍼

 김언수의 캐비닛』

 

 

 

 

 

   몸이 으스스 떨리는 것이, 아무래도 감기가 올 모양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가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닐 말씀이었다. 한층 추워진 날씨에 대비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꽁꽁 싸매고 다녔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진짜 원인은 면역력이 약해진 몸이라 생각했다. 요근래 잠도 몇 시간 자지 못했고, 깨어있을 때면 피로로 온몸이 짓눌리곤 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감기가 들고야 말리라. 평소에 틈틈이 체력이나 키워둘 걸, 또 혼잣말로 지난 내 행동을 자책한다. 어차피 시간을 돌린다하더라도 내가 운동을 틈틈이할리 없겠지만, 궁시렁대는 건 이제 고칠 수 없는 나의 버릇이다.


   두 개의 선택지가 존재했다. 해야 할 것들을 잠시 뒤로 미루고 두툼한 이불 속에서 빈둥거리거나, 해야 할 것들을 하나둘씩 열심히 해치우고 훈장처럼 감기를 받아들이는 것. 기로에서 고민하던 중 감기약이 눈에 들어왔다. 감기도 걸리지 않고 과제도 끝낼 수 있는 만능열쇠. 감기약을 먹으면 아픈 것이 낫기보다는 아프다는 느낌만 손쉽게 지워버리는 것 같아 꺼려졌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컵에 냉수 반 온수 반을 담고 있던 그 순간 타임스키퍼가 생각났다. "타임스키퍼"는 말 그대로 시간을 이동하는 사람들인데,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시간 이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시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김언수의 소설 캐비닛』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니까. 그러나 허구라고 쉽게 생각할 거리는 아니었다. 가끔씩 어떤 허구는 진실보다 더 진실할 때가 있으니까. 책에는 타임스키퍼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와있다. "타임스키퍼들이 모두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매우 규칙적이고 정확한 삶을 선호하는 사람들이고 시간에 대해 강박적일 만큼 철저한 사람들이다."


   타임스키퍼들은 자신의 삶에서 시간을 도둑맞은 사람들이다.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삶에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존재의 부재를 느껴 자살을 했고, 어떤 이는 도시 속 일벌레에서 남태평양 산호섬의 주민이 되었고, 어떤 이는 자신이 없어도 사회가 잘 굴러가는 것을 보고는 일을 때려쳤고, 어떤 이는 워커홀릭에서 조금은 헐렁해진 사람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뜬금없는 허구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단락을 꼭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춘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라니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182)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이 이렇게 말했단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김언수는 "타임스키퍼"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당신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각기 다른 수많은 일들이 쌓여있겠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똑같은 하루하루일지도 모른다. 기계로 찍어낸 것 같은 날들을 제거해버린다면, 당신의 삶에는 과연 며칠이 남아있을 것인가. 물론 김언수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실제로 그런 날들을 통째로 없애버리는 상상력으로 자신의 뜻을 어필한다.

 

 

 


 

   나는 결국 감기약을 먹지 않았다. 컵에 담긴 미지근한 물만 시원하게 원샷했다. 어쩌면 갑자기 타이밍 좋게 "타임스키퍼"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핑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쉬고 싶을 때조차도 그럴싸한 핑계가 없으면 쉬지 못하는 겁쟁이라 핑계를 지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보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또 내 몸조차 마음대로 하기 힘든 이 세상이 얼마나 척박한지 생각하곤 한다.


   두꺼운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전, 책 한 권을 챙겨들어갔다. 이러한 맥락이라면 김언수의 캐비닛』 혹은 김언수의 또 다른 책 설계자들』을 들고 들어갔으리라 예상하겠지만, 아니될 말씀이다. 나는 수업 교재를 들고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역시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교재를 펼칠 때의 패기는 얼마 가지 못하고 결국 스마트폰을 부여잡다 잠들어버렸다. 오래간만에 푹 잤다. 자고나니 감기 기운도 자취를 감추었다. 글 말미에 고맙다는 인사는 꼭 적어야겠다. 나에게 그럴싸한 핑계를 만들어준 김언수 작가에게 모든 감사를 전한다!


 

 


 

by 오까마  

높디높은 열정과 낮디낮은 능력 사이에서 방황 중  

문학에 관심이 많지만 책 읽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