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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28 [팝콘먹는좀비] 06. 사랑이 두려운 이유, <우리도 사랑일까> 12
- 2013.11.26 [담요] '한'을 위한 변명 1
- 2013.11.25 샤오롱바오의 휴재 공지
- 2013.11.24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1. 이보다 나을 순 없다 - 'Reckoner' 8
- 2013.11.22 [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살
글
[팝콘 먹는 좀비]
06. 사랑이 두려운 이유, <우리도 사랑일까>
"배달이요-."
벨이 울렸다. 드디어 오늘에야말로.
"네, 여기 쿠폰 20장이요. 맞죠?"
"감사합니다. 근데 이렇게 드셔도 되겠어요? 저희야 감사한데 한 달에 20번을 드시는 건…."
"아아, 괜찮아요. 하하. 워낙 좋아해서요."
"네에, 그럼 맛있게 드세요."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 문을 닫으려는데 문틈 사이로 눈에 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엣?"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문 밖 복도로 메아리가 울렸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히히-. 들어가도 되죠?"
"아니, 혜선 씨 여기 어떻게…."
혜선은 들어오라는 내 답을 듣기도 전에 벌써 들어와서 신발을 벗고 있었다. 카멜색 코트를 입은 혜선의 신발은 베이지색의 단화였다. 밖이 꽤 추운지 볼과 코끝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헤어스타일이 바뀌어 있었다. 윤기 있는 검은 포니테일에서 밝은 갈색의 단발머리로. 머리가 짧아져서인지 혜선의 얼굴은 전보다 더 앳돼 보였다.
"근데, 흐아- 이게 다 뭐예요? 집이 완전…."
큰일이었다. 싱크대는 그릇들로 바벨탑을 쌓고 있었고, 쓰레기통은 배달음식 쓰레기들로 터질 지경이었다. 거실은 널브러진 만화책이며 DVD, 옷가지들로 엉망이었다. 실은 그간 집안일은 승훈이 도맡아서 다 해왔었다. 요리며 청소며 빨래며 뭐하나 나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모든 게 완벽하게 돼있고는 했다. 승훈이 놈이 집을 나간 지 한 달. 집은 이 꼴이 되어 있었다.
"이게… 그러니까… 제가 요즘 좀 정신이 없었어서요."
나는 얼른 보이는 곳이라도 치우고 혜선을 앉혔다. 혜선은 여전히 어떨떨해서 방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룽 씨. 전 괜찮으니까 일단 짜장면부터 드세요. 다 불겠어요!"
"혜선 씨. 점심은 드셨어요? 탕수육도 있는데 같이 먹어요."
"그래요. 그럼 한 달 동안의 집념으로 먹게 된 탕수육이 얼마나 맛있나 맛 좀 볼까요-?"
혜선이 재밌다는 듯 탕수육과 나를 번갈아 보았더니 눈을 찡긋하며 빙긋이 웃었다. 나는 슬쩍 눈치를 보고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뭔가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더러운 것도 더러운 거였지만 친구 집에서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했다. 나는 화제를 돌리려 말을 꺼냈다.
"혜선 씨. 머리 잘랐네요?"
"네? 아, 네. 꽤 됐는데. 우리가 진짜 오랜만인가 보네요."
"잘 어울리네요. 더 어려진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말을 붙여놓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승훈이 놈이 혜선과 헤어졌다며 집을 나간 지 한 달. 승훈은 연락도 받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 승훈과 화해를 한 걸까? 혜선과는 연락이 됐던 걸까? 아니, 다시 만나는 게 아니라면 여길 올 이유가 없지 않나? 그렇다고 해도 섣불리 승훈의 얘길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했던 나는 무심코 탕수육 소스를 탕수육에 부었다.
"으악! 룽 씨. '부먹파'세요? 이럴 수가."
"부먹파요?"
"탕수육 소스 부어 드시냐구요."
혜선의 눈치를 살폈다. 눈꼬리는 축 처지고 입술은 삐죽 나와 있었다.
"글-쎄-요. 좀 귀찮기도 하고… 원래 부어먹는 거 아닌가요?"
"에이, 원래 찍어먹는 거죠. 괜찮아요. 제가 뺏어먹는 거니까."
혜선이 아까처럼 또 빙긋 웃으며 탕수육을 집어 먹었다. 우물우물 탕수육을 씹으며 혜선이 말했다.
"룽 씨. 오늘보니까 생각보다 의외인 부분이 많네요? 근데 계속 이렇게 지내셨어요? 짜장면에 치킨, 피자, 족발…."
"네… 뭐 요리는 전혀 못하는 데다 제가 또 음식을 잘 질려하지 않아서요."
"하이고. 이따 저녁은 저랑 제대로 먹어요. 그럼. 내 우상이 이런 소굴에서 그 모든 소설을 썼던 거구나아-"
"아니, 제가 항상 이런 게 아니라요…."
"우리 청소나 할까요? 제가 설거지랑 부엌 맡을게요. 룽 씨가 쓰레기 좀 버려주시고 거실 정리! 좋죠?"
혜선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지금 친구 집에서 친구의 여자친구(혹은 전 여자친구)랑 뭘 하고 있는 거지? 대체 혜선은 여기 왜 온 걸까?
"게으름 부리지 말고요. 여기 청소기요. 어서 움직이세요."
일단 시키는 대로 혜선과 집을 청소했다. 혜선은 빠르고 깔끔하게 설거지와 청소를 끝내고 있었다.
"룽 씨. 바닥 걸레질 좀 해주실래요? 저는 저녁거리 장 좀 봐올게요."
"저녁요? 아니 안 그래도 되는데…."
혜선은 또 대꾸도 않고 집을 나섰다. 나는 걸레를 집었다. 점점 더 의문이 커져갔다. 오늘 승훈이 들어오는 건가? 아니면… 아니면 뭐지?
"저 왔어요-. 밖에 눈 와요! 첫눈!"
혜선은 코트와 머리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말했다. 양 손엔 각종 찬거리가 봉투 가득 있었다. 나는 봉투를 받아 부엌에 놓고는 거실 커튼을 쳤다. 밖엔 눈이 펑펑 흩날리고 있었다. 승훈의 집에 아직 조금은 더울 때 들어왔던 것 같은데 벌써 겨울이었다.
혜선은 금방 뚝딱뚝딱 요리를 해 근사한 저녁상을 차렸다. 된장국, 계란말이, 배추겉절이, 소시지볶음 그리고 맥주까지. 대학생이라고 어리게 봤는데 혜선은 굉장히 싹싹하게 일을 잘했다.
"아야-"
혜선이 앉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식탁의자에 놓여있던 DVD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미안해요. 내가 저걸 거기다 놓아가지고."
"<우리도 사랑일까>? 이거 보셨어요?"
"네, 미쉘 윌리엄스 팬이거든요. 뭐랄까. 쓸쓸하고 무서운 영화더군요. 좋았어요."
"아, 마고 역으로 나온 그 여자요? 저도 그 여자 좋아하는데."
<우리도 사랑일까>는 마고라는 여자가 우연히 만난 옆 집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그와 살게 된다는 간단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했던 것은 너무나 디테일하고 납득할만한 마고의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낸 점이었다. <화양연화>가 새롭지만 불안한 불륜에 대한 인상화라면, <우리도 사랑일까>는 흔들리는 털끝마저도 그려내는 극사실주의에 가까웠다. 마고의 감정에 뽀얗게 먼지가 이는 순간을 볕이 잘 들어오게 창을 열어 관찰하는 느낌이랄까. 그보다 더 특별하고 서늘했던 것은 마고가 옆 집 남자를 선택하고 나서부터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마저도 포기할 만큼 끓었던 감정은 어느새 같은 과정을 거쳐 깎이고 마모되어 갔다. 진짜 사랑을 찾은 듯 했던 마고는 어느새 전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쓸쓸하고 무서웠다.
"혹시, 룽 씨는요. 애인이 있는 상황에서 만약 '진짜 사랑'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애인과 헤어질 건가요?"
"글쎄요. 저는 애초에 진짜 사랑이란 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런 게 있나요? 저는요, 마고의 남편 같은 사랑을 했어요. 익숙함에서 사랑을 느꼈거든요. 짜장면을 한 달에 20번이나 먹을 수 있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마고 남편도 매일 닭요리만 연구하잖아요? 저는 아마 헤어지지 못할 것 같은데요?"
"…그래요? 오늘 보니까 룽 씨는 저랑 정말 다르네요. 탕수육 소스도 부어먹고, 정리정돈도 안 하고. 저는요. '진짜 사랑'이라면 그 사람에게 갈 거예요. 결국 그것도 닳고 닳아서 그게 진짜였는지 사랑이었는지 알 수 없어진대도 말이에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어떻게 될지는. 혹시 그런 사람은… 싫은가요?"
혜선을 바라보았다. 혜선의 눈빛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아주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사랑은 솔직히 무섭네요. 저도 예전에 그랬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호감이 애정이 되는 게 무섭고,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워요. 혹시 내가 질려버리는 게 아닐까. 그 반대도 무섭기도 하고요. 지금이야 저렇게 짜장면을 계속 맛있게 먹었지만 혹시 언제 갑자기 싫어질지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내가 정말 사랑하던 사람을 내가 더는 전처럼 사랑하지 않는구나 싶을 때 참 슬프거든요. 그런 거 알려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노총각이 되고 있나 봐요."
"그럼 제가 이러는 게 이해가 안 되시겠네요? 제가 승훈 오빠랑 왜 헤어졌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시겠네요."
"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무언가 무서운 말이 혜선의 입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눈송이가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승훈 오빠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오빠가 능글거리면서도 이상하게 눈치는 빠른 사람이라서 말이죠. 제가 누구 때문에…."
"아, 글쎄 제가 봤다니까요! 걸음걸이가 뭔가 이상한 할아버지였어요. 젊은 여자 손을 낚아채더니 갑자기 그 여자 몸 여기저기를 물어뜯었다고요. 어제 밤에 제가 신고해서 경찰까지 다 출동했었는데. 근데 대체 나는 왜 여기 잡아두는 거예요! 기자양반! 이거 봐요!"
분명 승훈의 목소리였다. 승훈의 목소리가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TV 앞으로 뛰어 나왔다. 왜 저 놈이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지? 어느새 혜선도 내 옆에서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었다.
TV뉴스는 알 수 없는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서울 북부 통행 제한 조치. 정체불명의 전염병 확산 중. 질병관리본부 현재 사태 긴급조사 중. 안전 유의 바람.]
BY 룽
영화와 음악, 책을 사랑하고픈 기자지망생.
행복과 항복 사이에서 글을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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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전 주의사항 ※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독자로 하기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의 인용 쪽수는 손보미 단편모음집『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13)을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만을, 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와 함께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문단의 인용은 들여쓰기 후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한'을 위한 변명
손보미의 「담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 손보미의 단편모음집을 구입했다. 간단히 말하면 번역체 어투라고 하고, 조금 더 친절히 이야기하면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색을 나타내는 작가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작가에 관하여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였는데, 그 이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고 받은 인상은 작가가 받는 관심만큼 강하지는 못하였다. 갑자기 감정선을 끊거나 중요한 부분을 생략한 채 진행되는 서술에 익숙하지 못한 점도 그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다룰 「담요」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작가에 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누군가 「담요」에 관하여 올린 글을 읽었다. 그 사람은 작품의 특징을 이야기한 뒤 본격적으로 단점을 들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매개자들의 위치였다. 말하고자 하는 인물에 다가가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소모되는 인물이 많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담요」에 관해서도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였다. 결국 이야기가 다루고 싶은 인물은 ‘장’인데, ‘나’가 ‘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한’이라는 인물이 소모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지적이 마냥 틀리다고 고개를 젓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담요」에 관해서만큼은 이러한 비판이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의 ‘한’은 단지 ‘나’와 ‘장’을 연결해주기 위하여 만들어 낸 인물만은 아니다. ‘한’은 ‘나’가 ‘장’에게 가닿을 수 있는 매개자임과 동시에 ‘나’가 ‘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한’을 위한 변명을 해보기로 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두 가지 상실이 나타난다. 하나는 이야기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장’이 겪는 아들에 대한 상실이고, 다른 하나는 ‘나’가 겪는 친구 ‘한’에 대한 상실이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두 가지 상실이 나타나면서, 우리는 ‘상실’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상실의 보편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장이 홀로 키우는 아들은 록밴드 파셀을 좋아했다. 장은 아들이 열다섯 살이 되던 날 파셀의 콘서트 티켓을 구입한다. 장은 기준 가격의 세 배를 지불하면서 가장 앞자리의 티켓을 얻어냈다. 하지만 밴드가 첫 곡을 부르고 있을 때, 총을 든 괴한이 나타나 총격을 가하여 밴드 보컬과 몇몇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불행히도 몇몇 사람들 중 한 명은 장의 아들이었다. 장은 아들을 상실하게 된다.
이번엔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친구 ‘한’으로부터 한의 직장상사인 ‘장’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된다. ‘나’는 한이 들려준 장의 이야기를 토대로 『난 리즈도 떠날 거야』라는 소설을 쓰게 되고, 그 소설로 그는 소설가로서의 명예와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한은 ‘나’가 장의 삶을 멋대로 비웃고 평가했다며 비난하였다. 한과의 연락이 끊긴 ‘나’는 그로부터 2년 뒤 한의 부고를 듣게 된다. ‘나’는 한을 영원히 상실하게 된다.
‘만약’이라는 고문관이 이 두 상실자를 따라다니게 된다. 상실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얼마나 쉽고 빠르게 ‘만약’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지 알 것이다.
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만약 그렇게 무리해서 앞자리의 표를 구하지 않았다면 내 아들은 죽지 않았을 거라고요.” (14)
놀이터에서 나를 만난 이후, 한은 경찰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만약 한이 죽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을까? (19)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두 사람이 되돌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장은 위의 인용에서 보이듯이 아들의 죽음을 되돌리고 싶어하지만, ‘나’는 한의 죽음을 되돌리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정일 뿐이고, ‘나’가 진정 되돌리고 싶어하는 것은 다시 한을 만나 오해를 푸는 것이다.
그들은 상실을 겪었다. 하지만 아직 상실을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이를 보여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장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덮어주었던 담요를 항상 지니고 다니며, ‘나’는 한의 장례식을 갔다 온 이후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또한 두 사람은 이미 일어나버린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신의 무기력함을 탓하고만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애가 죽은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소. 하지만, 그렇다면 그게 누구의 잘못일까요? 그날 죽은 사람은, 내 아들과 록밴드의 보컬을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소. 그건 물론 많은 숫자지. 하지만 공연장에는 이천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소. 그렇다면 그들 중 유독 그 여섯 명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오? (14)
어느 누구도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뭔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19-20)
이제 ‘나’는 화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된다. 이제 이 이야기 속 두 주인공은 숙명적으로 상실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 그 시도가 성공하든 혹은 실패하든 말이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이 각기 상실을 겪고 그 상실을 마주하고 진정 겪어내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나’는 장의 전화를 받는다. 장은 ‘나’에게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고 한다. 둘은 만나 허름한 술집으로 들어가고, 장은 ‘나’에게 담요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날 순찰을 돌던 장은 추위에 떨고있는 어린 부부를 만나게 된다. 부부를 집에 들여보내기 위해 말을 건 장은 엉겁결에 아들의 이야기를 하고, 아들과 같이 갔던 콘서트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아들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한 마디 하지 않고 장례식까지 끝내 거부한 장에게 이것은 흡사 고해성사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어린 부인은 장에게 아들과 함께 사람이 죽지 않는 행복한 콘서트에 가라고 말을 했고, 장은 차에서 담요를 가져와 그들에게 주어버렸다. 그렇게 담요는, 아들을 잃은 상실감은 죽음을 맞이했다. 장은 아들이 완전히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장의 이야기를 듣고 울고 싶어졌다. ‘나’는 드디어 ‘한’의 말을 이해했다. 장의 삶을 멋대로 비웃고 평가했다는 말을. ‘장’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이었다. 도대체 왜, 자신이 그런 아픔을 겪어야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결국 마주하고 겪어내는 용감한 인간이었다. ‘나’는 한 이야기의 작가로서 한 인간의 삶을 신의 위치에서 마음대로 주무른 것이다. 그것이 과연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신과 같은 위치에서 인물의 삶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과연 작가의 일일까? ‘나’는 장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평론가는 그의 소설을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평하였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발전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 부분을 겪으면서 이야기 속 ‘나’는 확신하는 인간에서 고민하는 인간으로 변한다. 문학 역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서 아무 것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하고 만다. 이는 손보미라는 작가의 문학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땅히 소설이라면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 다루어지지 않고 간다든지, 등장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든지,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든지, 이 모든 것들은 문학이 삶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작가는 신과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일 것이다.
이렇게 보고 나니, 이 이야기의 중심이야기를 장의 이야기로만 한정시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만나 - 그것이 책을 통해서이건 술자리를 통해서이건 야간순찰을 통해서이건 –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많이 돌아왔다. 처음의 의문 제기로 돌아가보자. 누군가는 ‘한’을 그저 소모적인 인물로 다루었다며 비판했지만 ‘한’은 이야기에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한을 통해 ‘나’가 장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 뿐만이 아니라, ‘한’을 통해 ‘나’는 상실을 겪게 되었고, 그 상실로 인해 비로소 ‘나’는 장의 상실을 제대로 알아보게 된 것이다. 장 또한 ‘나’의 상실을 감지하였기에 자신도 왜인지 모른 채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두 상실이 만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먹먹함 역시 어떤 상실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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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샤오롱바오입니다.
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후루룩 시리즈는 샤오롱바오의 개인적 사정으로 당분간 휴재합니다.
쉬는 동안 영화 감상에 대한 부담을 좀 내려놓고 샤오롱바오 글의 목표도 다시 다잡아보고 싶네요.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며, 더 괜찮은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연말에는 볼 만한 영화가 더 많아지길 바라며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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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들어봐 좀, 제발.
<<지속 가능한 음악>> by 아램디
70억 독자가 기다려온 '그' 첫 포스팅입니다.
첫번째 선정인만큼 쉽게 고르지 않고, 심사숙고하지도 않았습니다.
가타부타 설명하고 싶지도 않네요. 설명하는 자체도 '훼손' 같아서.
-
'이보다 나을 순 없다. 아직까진.'
'Reckoner'
자- 성급하게
들어보시죠.
http://www.youtube.com/watch?v=kPWvpDm076o&list=SP2C111A9E998E7743
-
Radiohead의 <IN RAINBOWS> (2007)에 수록된 노래.
이 노래를 선정한 이유는 앞에서도 밝혔듯, '이보다 좋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진)
'Because we separate'라는 가사이후로 진행되는 결말은 감동스럽기까지 합니다.
필자는 대중음악을 장르론(progressive니, alternative니, house니, dub이니) 으로 접근하지 않고,
'음악' 자체로 접근하고 싶습니다.
음악은 '음'으로 아름다운 겁니다. '음'으로 '악(樂)'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좋은음악과 안좋은음악, 그리고 많이 좋은 음악 혹은 덜 좋은 음악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건.
이건말이죠-
좋습니다. 끝내줍니다. bloodyhell 죽여주죠.
-
Radiohead라서 좋은 건 아니지만서도,
Radiohead이기에만 가능한 음악을 구현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 대중음악을 만드는 음악가 중에서 가장 프론티어(fronteir)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점에 있는 앨범이 바로 Reckoner를 수록한 7번째 정규앨범 <IN RAINBOWS>라고 말하고 싶네요.
음악을 앨범단위(정규앨범 기준)로 듣는 저로서는,
앨범전체적인 흐름과 통일성 및 완결성에서부터, 개별 곡들의 완성도까지
뭐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칭찬'만해대고 싶은 앨범입니다.
앨범내에는
1. Radiohead 특유의 감성변태적인 우울돋는 트랙
2. 특유의 '난잡하면서도 하나의 음악으로 수렴해가는' 비트감과 조니그린우드(Radiohead의 기타리스트)의 공격적인 플레잉이
가미된 빠른 트랙
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다른 앨범과 역시나 비슷하게).
물론, 그 아름다운 별들 사이에서도 7. 'Reckoner'는 홀로 더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기타를 찢어대는 조니그린우드
-
음악적으로 'Reckoner'는
평범한 기승전결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구성,
아주 특별할 것은 없는 중심 멜로디,
'낯설게'하면서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드럼비트,
프론트맨 톰요크의 팔세톤지 팔세토스러운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보컬이
'조화'를 이룹니다.
조화롭게. 아주아주-
조화롭게.
말이에요.
사실 모든 것이 뻔하죠.
라디오헤드스러운 도전적인 비트가 다이내믹을 만들어가고 그 위로-
정교한 연주, 각종 음향효과, 톰요크의 변태같은 목소리가
얹어지는 것.
하나하나 뻔하기만한데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조화롭습니다.
밴드음악은, 협연은, 혹은 합주는, 앙상블이란 언제나
식상하게도 ; '조화로움'입니다.
톰요크가 오징어춤을 추거나(톰요크는 무대에서 괴상한 춤을 추기로 유명합니다......최악으로 오징어죠.),
조니그린우드가 기타를 부술듯이 찢어대지 않아도(손목보호대를 따로 착용할 정도로 공격적인 기타연주를 하곤 하죠.)
심지어는 지긋지긋한 복음성가 'Creep'을 부르지 않아도.
'조화로움'이 이 노래를
'이보다 나을 순 없게' 만듭니다.
( - 물론 각 세션 개별의 연주라인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
-
<IN RAINBOWS>를 정점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많은 반문이 있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세 번째 앨범인 <OK COMPUTER>가 가장 큰 강적으로 생각됩니다. - 이 앨범 역시 더없이 훌륭하지만요.
라디오헤드의 창작 행보는 '과학 패러다임의 변천'에 비유하고 싶어요.
계단의 상승처럼 획기적인 발전(3집, 7집)이 있고, 이전과 이후는 과도기(각종 실험과 시도가 존재)가 있는 것처럼요.
물론 그 전후에 있는 앨범들의 독립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3집, 7집'이라는 걸작의 수준에 비춰보았을 때는, 그 마스터피스로 가는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진다는 거겠죠.
(이런 행보는 Daft Punk의 2집<Discovery>과 4집<Random Access Memories>이 진행되는 과정과도 비슷한 것 같네요.)
정점에 대한 설정은 언제까지나 결과론적일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말하자면,
'라디오헤드'이기 때문이죠.
라디오헤드의 음악이니까요.
라디오헤드는 언제나 가장 최신작이 가장 최고일 것처럼 음악을 만드니까요.
예상한 것보다 더 실험하고, 규정된 한계치보다 더 변화하고, 그것보다 더더 좋은 음악을 또 할 것만 같으니까요.
Radiohead니까요.
-
최고의 앨범에 담긴 그중에서도 최고의 노래 아니, 음악.
좋은 음악.
Radiohead의 'Reckoner'입니다.
가사에 관련된 언급을 따로 하지않는 점은 필자의 의도라고 말해둘게요.
아무래도 가사 같은 건,
그저,
아름다움의 일부로 전락할 뿐이니까.
관심이 있다면, 앨범전체를 들어보시길.
좀 더 관심이 있다면, 동영상 'Live from the basement'를 다 보시길.
*
이 앨범은 CD로 발매되기 전인 2007년 10월 10일 온라인에 먼저 공개되었고,
밴드는 '소비자 마음대'로 앨범의 다운로드 가격을 책정·지불하도록 했답니다.
충격적이죠. 엄청난 자신감이니까.(공짜든, 만달러든-)
그리고 그렇게 지불된 mp3 다운로드 수익은 7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2008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했고, 그해 기준으로 미국에서 50만 장의 판매고를 넘어섰습니다.
객관적인 지표따위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나 역시나 싶은거죠.
사실 위의 통계같은 건 휴지통에 집어치우고 싶을만큼,
최고의 앨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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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프로메테우스.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는 인간의 형상을 빚고 인간에게 처음으로 불을 가져다준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사회를 만들고 문화를 일구며 오늘날 고도로 발전된 문명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그는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파먹히는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자신이 빚은 인류의 수퍼맨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자신을 구원할 때까지.
연극 [살]은 이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으로 옮겨왔다. 러닝타임 두 시간동안 연극은 몇 개의 질문들을 불씨처럼 관객에게 던져준다. 프로메테우스가 가져온 불이 이 순간 어떤 모양으로 타오르고 있으며 이를 우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의 불은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지 아니면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는지.
이 극이 관객에게 얼마나 뜨거운 불길로 다가왔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좀 더 손봤더라면 훨씬 크게 타오르는 멋진 횃불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촛불 하나 정도는 켤 수 있을 정도의 그 불씨로,그 온기로 또 이렇게 끄적끄적 글을 써본다. 이해성 연출, 극단 고래의 연극 [살]이다.
2013.11.06. - 2013.12.01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살
[살], 좀더 잘 빠진 이야기로
재공연이 결정되면서 극본 [살]은 상당히 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이해성 작가 본인이 직접 연출을 맡으면서 불분명한 인물들은 분리해내고 장황한 대사들도 과감히 쳐냈다. 그 결과 초연보다 확실히 날씬해졌다는 호평이 있었다. 하지만 극이 끝났을 때 빙구가 했던 첫 생각은 아직도 여기저기 군살이 많다는 것이었다. 중심인물 신우의 내적 갈등이 큰 변화 없이 제자리를 맴도는데 비해 별 의미 없는 주변인물들은 지나치게 많아 초점을 흩뜨려놓았다. 공간의 변화도 잦아 텅 빈 커다란 무대가 계속 분할되고 전환되었던 것도 상당히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그래도 초중반까지는 음향과 영상, 코러스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타이트하게 진행되었으나, 중반을 넘어가도록 중심인물 신우의 태도는 여전히 미적지근했고 갈등은 지지부진한 채 좀처럼 진척되지 않아 지루했다. 그런 가운데 몇몇 대사들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내 다소 부담스러웠다.
아쉬운 점들은 꽤 있었지만, 그럼에도 프로메테우스라는 신화적 모티브를 잘 녹여내고 재생산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촛불이나 살, 간이식 등의 이미지들은 쉽고도 적확했다. 다소 산만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극이 던지고 있는 화두가 비교적 명확하게 다가온 것은 이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 욕망일까 사랑일까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무대 위에서 두 가지 다른 얼굴로 타오른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의 근저를 이루는 욕망의 불꽃,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온기로 잇는 촛불.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사랑을 의미한다고 외쳤던 청년 최신우는 이제 자본주의의 꼭대기에서 수십억을 주무르는 고도비만 중년 남성이 되었다. 한때 ‘먼저 생각하는 자’라고 스스로를 칭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도 더 먼저 더 많이 욕망한다. 그는 차고 넘치는 자신의 살에 파묻혀, 간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외면하고 사랑했던 옛 애인 유선의 마음에 상처를 남겨 떠나보낸다.
이후 많은 것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살을 빼려는 노력에도 그는 점점 비대해지면서 삶은 엉뚱한 방향으로 뒤뚱뒤뚱 달려가기 시작한다. 한번 도태되자 세상은 무섭도록 그의 삶을 파먹어오고, 그는 자신이 이미 많은 것들을 놓쳤음을 깨닫는다. 극의 막바지에서 욕망으로 일군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 그에게는 군더더기없는 몸뚱아리만 남는다. [살]은 스스로 살덩이를 한겹한겹 벗겨내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이는 그간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불필요한 욕망의 축적물이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뒤쳐진 그가 뒤늦게 본 것은 자신이 모두가 수퍼맨인 레이스 위를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가 영웅 헤라클레스라고 믿으면서,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의미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외치면서. 그 욕망으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살을 만들어내고 프로메테우스는 바위산에 묶여 매일매일 새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낳은 헤라클레스들은 그를 구하러 오는 대신 애먼 바위산의 정상에서 혈투를 벌이는 중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간암으로 죽어가던 신우의 어머니는. 죽은 제자를 위하여 다시 촛불을 든 유선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여전히 희망이며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들은, 욕망을 불태우며 달려가는 신우의 이야기 뒷켠에 여전히 자리하며 촛불처럼 조용히 타오른다.
무대의 불빛이 건네는 불씨
연극의 기능에 대하여 가끔 고민한다. 보여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지. 관객은 그저 앉고, 극을 보고, 일어나서 가버리는 사람들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연극은 프로메테우스의 불빛을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하나는 욕망의 불꽃으로 하나는 희망의 촛불로. 그 불에 비치는 자기 몸을 돌아보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만, 관객은 막이 내리면 무대를 떠난다. 때문에 아무리 가치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연극이라도 기껏 두 시간쯤 빛나는 조명불빛이 누군가의 마음에서 활활 타오르는 큰 불이 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그 불을 가볍게 외면하거나 꺼 버린다고 해도 조명이 꺼진 무대는 침묵한다.
그 잠깐의 불씨를 내어주겠다고 두 달 치의 피땀을 쏟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맥 빠지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객인 빙구의 입장에서는,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땀흘리는 당신들이 있다는 게 적어도 촛불 하나만큼의 온기로 다가온다. 그래서 빙구는 당신들이 건네는 불씨가 소중하고 고맙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꺼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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