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구의당신의 이야기



 늦어진 포스팅에 대해서 고백하자면, 원래 쓰려고 했던 극은 이게 아니었다. 사실 예정에 없었던 관극이었다. 지하철을 거꾸로 타는 바람에 예매했던 연극을 어처구니없이 놓쳤고(빙구가 하는 일이 다 뭐 그렇지....허허) 공교롭게도 그게 막공이었다. 결국 다른 연극을 찾아야 했는데 생각보다 마땅치 않아 난감했던 차에 '시극'이라는 매력적이고도 의심스러운 단어에 눈길이 갔다. '한국의 역사와 정신 및 문화적 정체성을 담은 총체극', '서울의 불면을 달래는 연극'...으레 듣기 좋은 말들이 있는 몇 개의 리뷰들을 뒤적이다가, '채우기보다는 비워내는 극'이라는 평에 호기심이 동해 표를 예매했다. 김경주라는 젊은 시인의 '시극'이라는 새로운 형식도 보고 싶었다.
 막상 보고 나서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뭘 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읽고 갔었던 공연평들이 대부분 굉장히(어쩜 이렇게까지!) 관대했다는 것만 빼고. 무언가 여기저기 많이 아쉬웠는데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고 흐릿한 느낌만 들어 글을 쓰면서도 오래 고민했다. 이번에는 극이 담은 내용에 대한 것보다는 '시극'과 '총체극'이라는 극의 특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김경주 작 김혜련 연출, 서울시극단의 [나비잠]이다.


[나비잠]
2013. 09. 19 - 09. 29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시극? 총체극?

 시극이라는 형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시극은 말 그대로 시문학을 연극에 적용한 것으로, 이 극의 모든 대사들은 [나비잠]이라는 한편의 긴 서사시를 구성하고 있다. 함축성과 다의성을 전제하는 시어들을 어떻게 무대에서 극화하여 내러티브를 구현해낼 것인가ㅡ그 내러티브가 강하든 약하든ㅡ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이야기 자체에 너무 힘이 없었던 탓이다. 스토리라인이 극의 중후반에 이르도록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아서 시놉시스를 두어번 읽고 봤는데도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사실적이고 세밀한 서사구조를 짰어야 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비잠]은 드라마틱한 전개를 피하고 이야기를 부러 성기게 풀어 놓았다. 영상, 인형극, 라이브 음악, 마임, 탈춤 등 다양한 연극적 요소들을 동원한  '총체극'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옳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문제는 극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주요한 흐름이 흐트러졌다는 데에 있다. 장면들을 끌고 가는 힘이 풀려 버리니 암전이 지날 때마다 극은 늘어지기 일쑤였으며, 그 사이마다 동원된 다양한 요소들은 하나로 버무러지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나누어졌다.




나열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비잠]은 크게 질곡이 없는 드라마를 택했다. 인물들 간의 갈등도 좀 두드러질 법하면 지나가고, 가장 클라이막스였을 기우제 장면마저 이렇다할 임팩트 없이 끝이 난다. 이런 식으로 극의 모든 막이 전반에 걸쳐 느린 속도와 느슨한 긴장도를 유지하는 데 비해, 다소 복잡하게 얽힌 서로의 관계는 극의 중후반이 되도록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가장 큰 원인은 시로 이루어진 대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어들은 분명 정제되고 걸러져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언어들을 사용해야 하는 배우들에게 그 시어들은 너무나도 벅차 보였다. 캐릭터와 스토리 및 장면이 주어진 상황에서 배우의 몫이란, 납작한 활자들에 뼈를 세우고 살을 찌워 무대 위에 구현하는 것이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드러나지 않은 관계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배우들의 고민이 더해져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입체화된다.
 배우들이 이 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배우들이 그 대사를 얼마나 체화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애초에 연출적으로 시도된 부분들이 많았던 만큼 배우들이 대사를 씹어보고 스스로 채워넣을 여지가 얼마나 주어졌을지도 의문이 든다. 아름다운 시어들만 나열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번 듣고서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 함축적인 언어들이 배우들로부터 무의미하게 발음되어서는, 후랑크소시지마냥 줄줄이 한쪽 귀로 들어와서 반대쪽 귀로 다시 나가는 식이었다. 그래서 러닝타임 두시간동안 앉아있는 것이, 약이나 중강이 없이 강강강강으로만 이어지는 노래를 듣는 것처럼 못내 괴로웠다. 
 그런 속에서 시도된 '총체극적' 무대는 거의 총체적 난국에 가까웠다. 아름답고 고고한 시어들은 뭉툭한 채로 뚝뚝 떨어져 있고, 그것들로 채워진 장면들은 얼기설기 벌어질 수밖에. 그 틈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연극적 요소들은 관객을 당황스럽게 했다.




그 외에도 아쉬운 부분은 많다. 울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서를 담고자 했다고는 하나 스토리부터 무대, 캐릭터, 의상까지 서울의 그 어떤 역사적 배경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 극이 진행되는 내내 서울이라는 지역적 특성은 거의 강조되지 않는데 유독 극의 맨 처음 영상과 극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현대의 서울 모습이 삽입되어 다소 억지스러운 연결처럼 보였던 점, 잦은 장면전환 때문에 자주 길게 이어지던 암전이 관객 마인드를 자주 방해했던 점과, 그마저도 음악 연주 때문에 무대 아래쪽에서 조명이 들어와 완전암전이 불가능했던 점 등등.


'비워내는 극'이라던 공연평에 보러갔던 것이었는데, 되려 내가 본 것은 너무 많이 차 있었다. 오히려 이것저것 집어넣은 것들의 부피가 너무 컸다. 그리고 정작 그것들을 끼고 가야 할 시어들은 너무 멀고 헐렁해서, 애초에 그것 자체가 너무 비어 있었다. 비워내는 극이라기보단 너무 많이 비어있는 극.


 놓친 연극의 푯값에다 다시 예매한 것까지 두 배의 돈을 지불하고 이런 솔직한 평을 쓰고 있는 게 씁쓸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런 평도 있어야지. 다음엔 더 좋은 연극을 보고 오겠다. 마음에 드는 극으로 천천히 골라서, 기왕이면 당신도 보면 좋겠다 싶은 연극으로. 지하철 노선은 꼭 확인하고.  


이미지 출처 :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