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 주의사항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독자로 하기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의 인용 쪽수는 폴 오스터의 『선셋파크(열린책들, 2013)을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만을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와 함께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문단의 인용은 들여쓰기 후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삶과 소설, 선셋파크의 결말에 대하여

폴 오스터의 『선셋파크』 

 

 

 


  소설은 삶을 담는다. 그렇기에 소설은 삶과 닮아있다. 하지만 닮아있다는 말은 언제까지나 비슷한 점이 많다는 뜻이고, 같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소설은 삶과 분명 다르다. 소설이 삶과 다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소설은 맨 뒷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사람은 살아있는 독자이다. 그 사람의 삶을 하나의 소설로 비유한다면, 시작은 했지만 아직 끝이 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맨 앞장은 있으나 맨 뒷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 사람의 삶에 가장 마지막 장은 무덤가에 묵묵히 서있는 묘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 흔히 이야기되는 소설의 구성 단계이다. 소설 속에서 갈등은 책 속의 글자들을 삼키며 조금씩 자신의 몸집을 부풀려 나간다. 그러고는 끝에 가서 희망적으로든 비극적으로든 어떻게든 자신의 전부를 보여준다. 그렇게 소설은 결말을 맺고 책은 덮어진다. 하지만 삶은 소설과는 다르다. 하나의 갈등이 마무리되었다고 삶까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이 해결되었더라도 삶은 어김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고, 그 삶은 언젠가 다시 갈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다면 소설은 조금 달라질 필요도 있을 것이다. 소설이 조금 더 삶의 모습에 다가간다면, 소설에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갈등의 해결과정과 그로인한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과 갈등을 마주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폴 오스터의 선셋파크는 삶과 굉장히 닮아있는 모습의 결말을 맺고 있다.


   이 소설은 마음속에 상처를 지닌 네 사람이 버려진 목조 건물에 모여들었다가 다시 흩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깨끗이 청소하고 새로 페인트칠을 하였지만, 무단 점유한 그들의 보금자리는 그들의 현 상황처럼 일시적인 장소이고 언제 내쫓길지 모르는 불안한 곳이다. 서로 다른 음이 하나로 모여 화음을 만들어내듯, 각기 다른 상처들은 하나로 어울리며 살아갈 희망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서로 말하지 않고 서로를 보듬었고 점점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소설은 희망이라는 결말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간다. 하지만 그 끝에 다다르기 몇 페이지 전에 희망은 순식간의 절망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들을 ‘합법적으로’ 내쫓으려는 경찰들이 들이닥치면서 그들의 집은 아수라장이 되버린다. 경찰의 폭력에 앨리스는 계단에서 떨어지고, 그 광경을 목격한 마일스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경찰을 폭행하였고 도주한다.


   가까스로 불행에서 빠져나오던 마일스 헬러는 다시 불행과 마주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행과 마주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처럼 그의 부모를, 그의 미래를, 그의 현재의 삶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는다.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에 짓눌려있거나 미래의 희망만 쫓지도 않는다. 그는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마일스의 독백은 그러한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차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 그는 이스트 강 건너편의 거대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사라진 건물들, 무너지고 불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 사라져 가는 건물들과 사라지는 손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328)


   마일스 헬러는 달라졌다. 그가 여전히 큰 곤경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역경을 이전과는 다르게 멋지게 맞닥뜨릴 것이다. 독자는 책을 덮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마일스의 변한 모습이 그의 뇌리 속에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마일스에게서 시선을 돌려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더라도 우리 앞에 삶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