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 주의사항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독자로 하기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의 인용 쪽수는 『2007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사, 2007, 16쇄)를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만을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와 함께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문단의 인용은 들여쓰기 후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자신 안의 생명을 찾아나가는 여정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전경린의 소설 『천사는 여기 머문다』에서는 극명한 대립이 나타난다. 모경과 하인리히가 그러하고, 서울의 철거예정인 집과 독일의 S마을이 그러하다. 모경과 서울은 욕망과 열정의 세계라고 부를 수 있고, 하인리히와 독일은 절제와 이성의 세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평온한 삶을 살던 여자가 욕망과 열정의 세계를 만나고, 그 곳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뒤, 절제와 이성의 세계로 가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여정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이야기.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몇 가지 의문을 남긴다. 첫째는 주인공 이인희가 전남편 모경과의 결혼반지를 빼지 못하는 이유이다. 인희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모경에게 창문을 부수고 칼을 던지면서 까지 쫓아내면서도, 그와의 결혼반지는 끝내 빼지 못한다. 모경과의 추억은 벗어나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때때로는 인희가 일부러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인희의 모경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이것이 첫 번째 물음이다. 둘째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인희가 모경에 의해 찢어진 흰색 블라우스를 입지 못하게 완전히 꿰매어 버리고, 바늘에 찔려 피가 나고, 반지에서 빛방울이 나와 천사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환상적이라는 것을 감안하여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것이 두 번째 물음이다.



   두 가지 의문에 대하여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있던 것은 작가의 수상 소감 덕분이었다. 아래의 인용문은 2007년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게 된 작가의 수상 소감의 일부이다.

 

겨울 해안 길을 걸을 때면 생명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생명은 착함이다. 하지만 생명력은 교조적인 윤리나 굳은 관습, 안전한 제도, 방어적인 도덕성에 정주하는 데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개체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 정화하며 침범하는 무감각에 대항해 거듭 자신을 새롭게 낳는 힘이다. 타성에 젖어 산 채로 죽음에 잠식되어 가는 존재들이 도처에 만연하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생의 최고의 사치인지도 모른다. 수상 작품의 제목은 그래서 붙여졌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 그것은 선악의 의미를 넘어 우리 생애 내부에서 비상하는 생명을 은유한다. 살아 있음의 절정에서 당신의 얼굴에 천사가 떠오른다. 천사는 생명이다.(308)

 

   생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시 살펴본다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욕망과 이성의 대립은 양가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모경과 서울이 나타내는 욕망의 세계는 파괴와 상처라는 부정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인희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긍정적인 의미를 더하게 된다. 하인리히와 독일이 나타내는 이성의 세계는 욕망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생명이 결여되어 있는 삶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모경을 만나기 전의 인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인희의 삶은 평화롭지만 공허한 삶이었다. 생생하게 살아있지 못한 삶이었고, 시간도 공간도 텅 비어있는 궁과 같았고, 산소가 없어 사람이 살 수 없지만 미동 하나 없는 진공과 같았다. 생명이 결여되어있던 인희의 삶은 모경을 만난 후에 해일이 이는 바다를 지니는 배처럼 가파르게 튀어올았다.

 

   그러나 욕망의 형태를 띠고 있던 생명의 모습은 결혼 후에 집착의 형태로 탈바꿈한다. 이는 의처증이라는 정신적 집착으로도 나타나고, 섹스의 탐닉이라는 육체적 집착으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집착들은 인희에게 폭력이라는 육체적 상처로, 욕망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정신적 상처로 남게 된다. 결국 인희와 모경은 헤어지게 된다. 인희는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 아니라, 지나친 사랑 혹은 사랑의 잘못된 모습으로 인하여 헤어진 것이다.

 

이혼 사유는 피로였다. 산더미만 한 피로, 무덤 같은 피로, 증오 같고, 원한 같고, 뼈저린 후회 같고 타버린 재 같은 피로…….(32-33)

 

   그렇기에 연희는 모경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죽음과 같이 평온했던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준 경험임과 동시에 집착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이 응축된 소재가 바로 반지이다. 이는 반지에 대한 인희의 생각에서도 나타난다. ‘그 의미가 무엇이든,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반지를 뽑아버리면, 공허하기만 했던 내 생애에서 선명하게 응축된 유일한 결정(結晶)도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었다.’(27)

 

   인희의 양가적인 감정을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지막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빨간색과 흰색의 대립이 두드러지는데, 빨간색은 생명을 나타내는 색이고 흰색은 생명이 결여된 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희는 섹스 없는 결혼인 백색결혼을 원하는 하인리히와 그의 전부인의 묘지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죽음이 누워있는 묘지를 가기 위하여 인희는 흰색 블라우스를 입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 흰 블라우스는 모경에 의해 지퍼 부분이 찢어져 있다. 모경으로 인한 상처를 꿰매기 위하여 바느질함을 열어보니 흰실이 없어, 인희는 빨간실로 흰 블라우스를 꿰매기 시작한다. 그러나 빨간실로 꿰매는 블라우스는 찢어진 부분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결국 그녀는 찢어진 부분이 아닌 블라우스 전체를 빨간실로 꿰매어 버린다. 더 이상 흰색 블라우스를 입을 수 없다는 의미이고, 흰색 블라우스를 덮음으로서 과거를 덮어버릴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경과 침대에서 사랑을 나눌 때의 느낌을 느끼며, 이내 바늘로 엄지손가락을 찌르는 장면은 이 소설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엄지손가락에서 뿜어나오는 빨간 피는 그녀가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고, 이 장면은 그녀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 안에서 스스로 생명을 찾아내는 장면인 것이다. 흰색 블라우스는 빨간 피로 얼룩지게 된다. 그 순간 반지에서 빛방울들이 양 쪽으로 펼친 그녀의 양팔을 감싼다. 그녀는 천사의 형상을 띠게 된다. 여기서 천사는 치유의 모습을 지닌 것이 아니다. 천사는 그녀의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이 쯤에서 위에서 한 번 보았던 작가의 수상 소감을 다시 꺼내어볼 만하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 그것은 선악의 의미를 넘어 우리 생애 내부에서 비상하는 생명을 은유한다. 살아 있음의 절정에서 당신의 얼굴에 천사가 떠오른다. 천사는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