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냉철한 공간이다. 무대는 하나밖에 없고 관객석은 넓다. 결국 무대를 잘 볼 수 있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잘 못 보는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티켓의 개념이 생기고 난 이후부터는 돈에 따라서 그 사람이 결정된다.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은 무대를 가까이에서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돈을 적게 내는 사람은 좀 더 먼 곳에서 작게 봐야 한다. 이렇게 자리가 서열화 되어있는 공간에서 가장 비싼 공간으로 인정받는 곳은 단연 박스석(box seat)이다. 이번에는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은 박스석에 관련된 간단한 질문 하나를 제기하고, 다음 글에서 질문에 대한 답해 보려고 한다.



 사진은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에 있는 오페라 극장의 모습이다. 무대가 한 가운데 있고 그 앞으로 작은 객석이 이어져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양 옆의 벽에 볼록볼록하게 튀어나와있는 넓은 공간, 즉 박스석이다. 무대 바로 앞쪽에 위치하는 객석 하나와 박스석 하나의 공간의 넓이를 비교해보면 박스석이 얼마나 넓은지 충분히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예술의 전당을 조망하고 있자니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돈을 많이 낼 수록 공연을 더욱 깊게 즐길 수 있는 공간에 배정받을 수 있다면 박스석은 공연을 관람하기에 최적의 위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사진을 보면 박스석은 무대에서 측면으로 있고, 가장 앞쪽 박스가 아니라면 일반 객석보다 먼 곳에 위치해있다. 측면 쪽 위치와 무대와의 거리. 공연을 관람하기에는 오히려 불편해 보인다. 오히려 일반 객석의 앞쪽이 공연을 즐기기에 더 적합하고, 그렇다면 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전에 오페라 박스석을 다룬 회화 작품 몇 편을 보고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림이 답을 찾는 실마리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먼저 앞의 그림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La Loge>, ‘박스석에서’라는 작품이다. 그림에는 박스석에 있는 한 쌍의 남녀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여성은 가슴이 깊이 파인 검정 드레스와 몇 겹의 목걸이, 커다란 브롯지로 장식해서 화려한 느낌을 준다. 손에는 흰 장갑을 끼고 있으며 머리도 올려서 멋을 내고, 커다란 꽃으로 장식했다. 한껏 멋을 낸 여성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듯이 정갈한 자태로 앉아있다. 여인의 뒤에 있는 남성 역시 흰 장갑을 끼고 턱시도를 입어 외모에 신경을 쓴 듯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의 시선이다. 남녀는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여성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남성은 위로 올려다 보고있다. 맨 눈으로 보기도 부족했는지 쌍안경을 통해 보고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의 위치에 대해 떠올려보자. 박스석을 기준으로 무대는 측면에, 그리고 아래에 있다. 그렇다면 정면을 보고 있는 여성이나 위 쪽을 보고있는 남성은 모두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또 다른 회화작품은 메리 카삿(Mary Cassatt)의 그림으로, 르누아르의 작품과 같은 제목인 <In the Loge>이다. 역시 박스석에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검정색의 화려한 드래스를 입고 모자로 멋을 냈으며 왼속에는 부채를 들고 있다. 그리고 쌍안경으로 어딘가를 바라 보고 있다. 다시 한 번 시선에 주목해서 예민하게 쌍안경의 방향을 살펴보면 전혀 아래쪽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뒤로 보이는 배경을 통해서 박스석이 1층이 아니라 적어도 2층 이상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무대를 보기 위해서는 더욱 아래쪽을 보고 있어야 무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여성은 오히려 맞은편을 바라보고 있으며, 맞은편의 박스석을 보고있다는 것을 그림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재밌는 점은 뒤에 작게 보이는 남성의 모습이다. 조금 확대시켜서 살펴보자. 거친 붓터치로 표현되어 있지만 남성의 시선이 전체 그림의 중심 대상이 되는 여성에 향해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몸을 앞으로 쭉 빼고, 무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서 쌍안경으로 여성을 보고 있는 것이다.


르누와르의 그림과 카삿의 그림에 등장하는 박스석에 있는 인물들의 시선은 모두 무대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무대가 잘 보이는 위치일수록 자리의 가격이 비싸진다는 일반적인 상식은 관객들이 무대를 잘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클 때 통할 수 있다. 관객이 무대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 이미 무대의 상태는 목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박스석은 처음부터 무대를 잘 보기 위한 '시야 확보'나 '음향의 최적화'라는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이 유행하던 19세기의 박스석은 어떤 다른 목적이나 의미를 가졌으며, 어떻게 운용되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


 

* 그림 1.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그림 2. Pierre-Auguste Renoir, <La Loge>, 1874.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 3. Mary Cassatt, <In the Loge>, 1878.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 4. Mary Cassatt, <In the Loge> 확대본. (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