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한여름의 고비는 지났나보다. 여전히 낮이면 폭염이고 열대야도 계속되고 있지만, 저녁이면 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도 가끔 있는 걸 보면 이러다가 곧 가을이 오겠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여름의 폭염이든 겨울의 혹한이든 그 계절의 가운데에서는 그 계절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계절의 끝이 보이는 순간 문득 계절은 항상 부지런히 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번 여름도 마찬가지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짧은 가을을 거쳐 언제 더웠냐는 듯 칼바람이 불겠지.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있는 이 시기에 어울리는 곡 하나와 그 작곡가를 살짝 소개해본다.

소개하려는 곡은 바로 <사계>이다. <사계>라고 하면 친숙한 비발디의 사계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강렬하고 열정적인, 피아졸라의 <사계>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비발디의 <사계>가 작곡되고 나서 약 200년 후에 피아졸라가 태어났다. 그리고 1992년에 피아졸라의 <사계>가 작곡되었으니 작곡된 지 20년 남짓 된 현대곡이다. 피아졸라 <사계>의 원제는 <4 계절의 포르테냐(Cuatro Estaciones Portenas)>, 부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포르테냐는 민속음악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피아졸라의 <사계> 역시 비발디의 <사계>와 마찬가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피아졸라의 <사계>는 그가 직접 의도하고 작곡한 하나의 곡이 아니라 후대에 편곡되면서 완성된 곡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는 비발디의 <사계>의 새로운 버젼을 구상하던 중 피아졸라의 탱고 오페라 작품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 속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겨울>을 발견한다. 다른 작품 속에서 나머지 계절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작곡가 친구인 레오니트 데샤트니코프에게 편곡을 부탁한다. 탱고 곡을 협주곡과 같은 느낌으로 편곡하는 과정을 거치고 네 악장으로 가다듬는 중간 과정을 거쳐 마침내 피아졸라의 <사계>가 완성된 것이다.

<사계>의 작곡가 피아졸라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연주가이다. 생소한 악기 반도네온부터 소개하자면 아코디언과 비슷하게 주름상자를 통해 소리를 내며 단추로 음을 연주하는 악기다. 실제로 독일의 H.반도가 아코디언에서 고안하여 만들었다. 반도네온이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에 수입되었는데 이때부터 아르헨티나의 탱고 연주에 널리 쓰이면서 아르헨티나 탱고의 핵심적인 악기가 되었다. (위 사진에서 피아졸라가 들고있는 악기가 반도네온이다.) 

 반도네온 연주가였던 피아졸라는 탱고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가 활동한던 1950년 당시 세계적으로 탱고는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원래 탱고는 춤을 추기 위한 곡, 즉 춤곡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피아졸라는 연주를 위한 곡으로서의 탱고를 추구하며 작곡 활동을 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탱고곡은 춤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음악으로 연주되기도 했다. 피아졸라가 새롭게 개척한 탱고는 ‘새로운, 최신의’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누에보’를 붙여서 ‘누에보 탱고(Nuevo Tango)’라고 불린다.

피아졸라는 누에보 탱고를 독립적인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 아르헨티나 전통 탱고에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접목시켰다. 특히 클래식에서는 피아졸라가 평소 좋아하던 스트라빈스키와 바르토크의 음악을, 재즈에서는 미국의 재즈를 접목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피아졸라가 새롭게 개척한 누에보 탱고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어 탱고곡을 연주하는 큰 오케스트라가 생기거나 탱고 연주만을 위한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는 등, 탱고의 침체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음악 활동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도 탱고에서 있어서 세계적인 천재 작곡가로 평가된다.

 

 

“나는 푸가를 써도 탱고처럼 쓸 것이다.”

_아스토르 피아졸라

 

실제로 피아졸라의 <사계>는 실내악으로 편곡되어 자주 연주된다. 실내악에서 연주되는 피아졸라의 <사계>는 다채롭다. 클래식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서는 우아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탱고의 정열적인 느낌이 강하게 난다. 그러면서도 정해진 박자에 미묘하게 어긋나면서 서로 밀고 당기기하는 리듬에서는 재즈의 흥을 느낄 수 있다. 클래식이면서, 탱고이면서 재즈인 피아졸라의 <사계>는 20분이 넘어가는 꽤 긴 연주시간이지만 세 가지 묘미를 모두 듣기에는 오히려 부족할 정도다. 특히 겨울 악장의 경우에는 꽤 친숙한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듣는 사람은 반가움의 감정도 느낄 수 있다.

계절을 소재로 한 곡들은 흥미롭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느낌에 어울리게 멜로디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같은 계절도 곡마다 다른 느낌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 참신하다. 계절은 소리없이 움직인다. 인식하지 못한 채로 살다보면 어느새 곁에 와있는 것이 다음 계절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꾸준히 움직인다. 계절에 맞추어 바뀌는 세상도 참 꾸준하다. 계속 변화하려는, 그 변화에 맞추어가려는 모든 노력들은 어쩌면 열정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열정과 탱고, 그리고 계절. 피아졸라가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부분은 어쩌면 이런 연관이 아닐까.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며 열정적인 계절, 탱고의 사계를 한 번쯤 가볍게 감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