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악기

어릴 적 친구의 어느 평범한 가정집을 방문했을 때, 어느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 건반이나 두드려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피아노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양 손의 두 번째 손가락을 쭉 편 후, 왼손가락은 파, 오른손가락은 솔에 올려놓았으리라. 준비가 끝나면 일정한 박자로 여섯 번씩 두드리고 점점 간격을 벌리며 ‘젓가락 행진곡’을 신나게 연주했을 것이다. 혼자 하는 것이 질렸다면 어느 새 좁은 의자에 비집고 앉은 친구와 둘이서 반주를 맞춰가며 연탄곡을 쳤을 수도 있다.

이렇게 어느 가정이나 악기 하나쯤은 있다고 할 때 당장 떠오르는 악기가 있다면 단연 피아노다. 요즘엔 전자키보드나 고급의 신디사이저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한 가정에서 피아노를 한 대씩 갖고 있는 것은 보편적이다. 피아노는 악기가 아니라 장롱, 서랍장과 같이 하나의 가구로서 위상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대중화되어있어서인지 현악기나 관악기 등의 다른 악기는 매우 고급스럽고 멀리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 비해, 피아노는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느낌이다. 따라서 피아노는 소위 ‘중산층의 악기’라고 불린다.

지금의 피아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하프시코드가 건반악기의 대표를 대신했다. 피아노가 건반을 누르면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방식의 악기라면,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방식의 악기이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의 등장으로 점차 자리를 잃어갔다. 반면 피아노는 귀족 계급이나 귀족 계급의 문화적 취향을 계승하려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여기서 말하는 피아노는 지금의 ‘그랜드 피아노’를 뜻하는 것으로, 넓은 거실과 큰 소음을 소화할 수 있을 만한 넉넉한 주변 공간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계급이 바로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이었던 것이다. 피아노의 인기는 점차 중산층 가정들로 퍼져나갔고, 좁고 밀집된 아파트 생활을 하는 중산층 가정에서도 피아노를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싶어했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 지금의 가정집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네모반듯한 모양의 ‘업라이트 피아노’이다. 한 쪽 벽면에 붙일 수 있고 현의 구조를 바꿔서 최대한 공간을 절약하여 좁은 공간에도 적합하게,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가정집에서도 소유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여성의 악기

피아노가 중산층의 가정에 들어오면서 음악이 가정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되었다. 집 안에서 연주가 가능해지자 주로 바깥 출입을 통제당했던 여성들이 피아노와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 때문에 당시의 유명한 연주자는 리스트, 베토벤과 같은 남성이었지만 대중적으로 소비 대상이나 주체가 되었던 것은 여성이었다. 따라서 피아노는 여성을 위한 하나의 가구와 같이 취급되었다. 실제로 18세기 말에 나온 업라이트 피아노는 재봉틀이나 탁자, 책상 겸용으로 나오기도 했다. 특히 남북 전쟁 이후의 미국에서는 재봉틀과 건반악기가 같은 부류로 취급하였다. 피아노와 재봉틀이 함께 생산되고 판매되기도 한 것이다. 당시 재봉틀이 여성의 전유물이 되는 가구로 인식되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피아노 역시 여성에게 필수적인 ‘가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 안에서 취미 생활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성들은 주로 가정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그들은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배울 목적이 아니었고 그저 집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한 아마추어의 실력에 따라 간단한 피아노 소품곡이 유행했다. 가장 유행했던 피아노 소품곡이 앞서 언급한 ‘젓가락 행진곡’이나 ‘즐거운 나의 집’, ‘소녀의 기도’ 등이 있다. 이러한 곡들은 피아노 입문가나 아마추어 연주가들에 의해서 여전히 많이 연주되고 있다.

 

 

소녀의 기도

소품곡 중에서도 특히 ‘소녀의 기도’는 간단한 선율이 14개의 레퍼토리로 조금씩 변하는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있는 곡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폴란드의 여류 피아니스트였던 바다체프스카에 의해 작곡된 이 곡은 1만 부 이상의 악보가 팔렸다. 연탄곡이나 성악곡, 다른 악기를 위한 연주곡 등으로 다양하게 편곡되면서 연주되기도 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소녀의 기도’ 표지에 있는 소녀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 왔다. 소녀의 기도가 작곡된 1860년 당시에는 청순한 뺨이 부각된 소녀가 신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경건한 눈길을 위로 향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1910년대에 이르러서 이 소녀의 눈길은 여전히 위를 향하고 있지만 기도하는 듯한 모습보다는 오히려 백일몽을 꾸는 듯한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소녀의 손에는 시집이 들려있다. 한편 1936년에 출판된 악보 표지의 소녀는 착 달라붙는 옷을 입은 채 요염한 자태를 보인다. 신을 경배하는 모습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거쳐 요염한 모습에 이르기 까지, 각각의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사회가 바라는 ‘소녀’의 인상으로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소녀의 기도에서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에 유행했던 낭만주의 피아노 소품곡에서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는 사회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담고 있다. 대부분은 현모양처 형의 여성으로 나타나 있으며 한적한 시골의 집에서 아이를 잘 돌보거나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튀김 노래” “바느질 노래” 등의 제목을 붙인 피아노 소품곡들도 있는데, 이를 통해 피아노가 당시의 여성들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당시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행동이 튀김이나 바느질과 같은 집안일을 잘 하던 여성상이라는 것도 읽을 수 있다.

 

 

그들을 상상하며

그렇게 크지 않은 방에 한 자리 차지하고서, 몇 달을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채 먼지만 뽀얗게 쓰고 있는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큰 공간이 없었기에 작게 만들어서라도 소유하고자 했던 선망의 대상이 바로 이 악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익숙하던 피아노가 새삼스럽다. 그리고 잘 칠 줄 모르는 피아노를 아는 곡 몇 곡 겨우 연주하며 상상해본다. 집에서 오후 햇살을 따스하게 받으며 시간을 보내며 연주하던 여성들의 모습을 말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교양과 세련미를 뽐낼 수 있던 피아노인데 심지어 연주까지 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소품곡을 연주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분명히 지금 생각없이 두 손을 두드리는 ‘젓가락 행진곡’을 칠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고 있는 중산층 여성으로서의 어떤 자부심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