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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본은 Scribner 출판사의 2003년판을 참고했다. 아마도 The Old Man and the Sea의 가장 표준적인 판본인 듯.
"Yes," the boy said. "Can I offer you a beer on the Terrace and then we'll take the stuff home."
"Why not?" the old man said. "Between fisherman" (p.11)
노인은 며칠째 고기를 잡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제 늙어서 힘이 빠졌다는 둥 불운이 꼈다는 둥 측은한 시선을 보내지만,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년에 힘에서 밀려본 적이 없던 터다. 고기 잡는 기술도 웬만한 젊은이보다 낫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 바다를 향하지만, 가끔은 자신감이 없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노인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소년 마놀린이다. 마놀린이 더 어릴 때에는 함께 낚시에 나서곤 했다. 이제 12-13살이나 됐을까. 그의 부모는 이제 마놀린을 더 젊은 어부에 딸려 보낸다. 노인이 고기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놀린은 매일같이 노인을 찾아온다. 식사를 가져와서는, 노인이 신문에서 읽은 야구 경기에 대해 묻는다. 텅 빈 배를 저어 해안가로 돌아오는 노인을 매일같이 반겨준다. 어른 티 내기를 좋아하는 마놀린이 맥주 한 잔 대접하겠다고 하자 노인은 좋다며 이렇게 답한다. "Between fisherman"
『노인과 바다』는 아마도 노인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노인이 바다에 나가 거대한 청새치와 싸우면서 보여주는 위대한 인간성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적어도 대부분의 어린이용 문고판은 그렇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노인과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진정한 남자가 되고 싶은 소년과, 진정한 남자였던 자신을 그리워하는 노인, 이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수미상관 구조로 되어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마을에서 소년과 노인이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중반부는 노인이 홀로 바다에서 겪는 사투를 그린다. 소설의 3/4가량이 이 사투에 할애되어 있는 만큼 소년과의 시간은 배경에 불과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청새치와의 사투 사이사이의 짧은 휴식마다 노인은 소년을 생각한다.
Then he said aloud, "I wish I had the boy. To help me and to see this."(p.48)
노인은 왜 힘든 순간마다 소년을 생각하는 것일까. “to see this"에 주목해보자. 노인은 소년이 자신의 위대한 싸움을 함께 목격해줬으면 한다. 일생일대의 사투를 혼자서만 보는 것이 아쉽다. 소년에게 청새치의 크기를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왜일까. 소년의 존경은 노인 자신의 위대한 남성성에 대한 (유일하게 남은) 증거이기 때문이다.
But I will show him what a man can do and what a man endures. “I told the boy I was a strange old man." he said. "Now is when I must prove it."(p.66)
노인은 자신의 능력과 인내를 소년에게 증명하고 싶다. 노인은 언제나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를 자랑처럼 이야기해 왔다. 소년은 노인의 이야기에 신나서 맞장구치면서 존경의 눈빛을 보내곤 했다. 괴물 같은 흑인 어부와의 끈질긴 팔씨름 끝에 승리했던 이야기. 먼 바다에 나가 거대한 고기를 수도 없이 낚았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과거의 허영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하고 싶다. 노인은 자신이 그저 허황된 옛 이야기나 떠들어대는 이빨 빠진 노인이 아니라고 믿는다. 강렬한 힘과 열정, 끈기와 인내를 가진 진정한 ‘남자’라고 믿는다. 그런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힘겨운 투쟁으로부터 물러설 수 없었다.
왜냐하면 노인은 마초(!)이기 때문이다. 번역된 노인과 바다에서는 잘 전달되지 않는 뉘앙스가 원작에 숨어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
"It is not bad," he said. "And pain does not matter to a man."(p.84)
노인이 청새치와의 사투 중에 손에 난 상처를 보면서 하는 독백이다. 두 번째 문장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인간에게 고통은 문제가 되지 않지”일까, “사나이에게 고통은 문제가 되지 않지”일까. 거의 모든 번역본은 전자로 번역하고 있지만, 소설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후자임이 명백하다. a man을 사나이나 남자 대신 인간으로 번역해야 했던 이유는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감하게 죽음과 대결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강조하고픈 욕구도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훈을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로 남겨두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일설에 따르면 <노인과 바다>를 번역한 장경렬 교수는 ‘사나이’로 번역해 초고를 넘겼으나 출판사 측 편집자가 독자층을 고려해 고치는 게 어떻겠냐고 요청해 와서 ‘인간’으로 최종 출간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구절은 후반부에도 반복된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p.103)
노인은 쿠바의 시골 어촌에 사는 백인 최하층민이다. 오랫동안 식민지였던 쿠바로 흘러들어온 백인은 두 부류가 있었는데, 유럽에서 식민지 관리로 찾아온 부유층과 단순 일자리를 찾아 온 유럽의 빈민이다. 쿠바의 어촌에서 흑인, 인디오, 백인 할 것 없이 섞여 배 한 척 갖고 살아가는 노인은 가끔 읽는 신문 이외에 교양이라곤 접해본 적 없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이루어지는 독백에는 노인의 출신성분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들이 종종 등장한다. 거친 뱃일을 해 온 최하층 계급의 노인이 인간의 위대함을 되뇌이는 것은 어색하다. 아마도 위의 구절은 “사나이라면 죽을 때 죽더라도 질 수는 없지”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사실 소설 전반에 걸쳐 노인이 느끼는 감정이 드러나는 미묘한 서술들이 계속해 등장한다. 노인은 자신이 늙었음을 안다. 그러나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남자로서의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 노화와의 싸움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자연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곧 생명력 넘치는 청년이 되어버릴 소년에게 노인은 여전히 old man보다는 man이고 싶다. (이런 서글픈 뉘앙스를 놓친 채 거대한 자연과 맞선 위대한 인간의 싸움으로 단순히 이해한다면 소설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청새치의 싸움은 그가 old man이 되어버렸음을 받아들이게 한다.
“You're tired, old man." he said. "You're tired inside." (p.112)
젊음, 생명력, 남성성에 대한 노인의 갈망은 그가 반복적으로 꾸는 사자 꿈에서도 드러난다. 노인은 배에서 꾸벅 잠이 들 때마다 한 무리의 사자가 해변을 뛰어노는 꿈을 꾼다. 멋쟁이 사자처럼 노인도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다. 강한 근력과 건장한 신체를 뽐내던 청년 시절이 그립다. 이어서 노인은 교미기의 돌고래를 꿈꾼다. 그러나 꿈일 뿐, 노인은 홀로 망망대해에서 청새치와의 싸움을 계속하는 처지다.
이어지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다. 노인은 마침내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피 냄새를 맡고 온 상어 떼에게 고기를 모두 뜯기고 만다. 죽음을 무릅쓴 사투 끝에 결국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노인은 청새치의 앙상한 뼈를 보며 서글픈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단순히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다. 일생일대의 대결을 함께한 청새치의 죽음이 허무하게 무화된 것에 대한 쓸쓸함이다. 노인은 청새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I wish it were a dream and that I had never hooked him. I'm sorry about it, fish. It makes everything wrong." (...) "I shouldn't have gone out so far, fish." he said. "Neither for you nor for me, I'm sorry fish."(p.110)
앙상한 뼈만 싣고 마을로 돌아온 노인은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인 채 잠든다.
The boy saw that the old man was breathing and then he saw the old man's hand and he started to cry. He went out very quietly to go to bring some coffee and all the way down the road he was crying.(p.122)
그러니까, <노인과 바다>는 노인과 바다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노인과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진정한 남자가 되고 싶은 소년과, 진정한 남자였던 자신을 그리워하는 노인, 이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Between fisherman.”(p.11)
같은 어부들끼리 맥주 한 잔 하자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어부의 강인함에 대한 자부심이 녹아있다. 그리고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노인이 소년을 남자 대 남자로 대해주겠다는 의리가 담겨있다.
<노인과 바다>를 남자의 이야기로 읽는 것은 아마도 가장 평범한 독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독법 중 하나이다. 청소년용 세계명작전집으로만 <노인과 바다>를 읽었던 당신, 성인이 되어 다시 한 번 읽어보려 한다면 남성성에 집중해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헤밍웨이는 쿠바의 한 시골에서 84일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의 이야기를 접한 뒷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아, 쿠바에 가고 싶소...
※김근근의 근근한 가이드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치고 새로운 시리즈로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시선 블로그에서 다루지 않았던 시!사!를 다룬다고 하는데요... 많은 기대 가져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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