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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선 중도파 로우하니 당선이 변화를 가져올까?
이란의 국기. 한국인들에게 이란이란??? 이런...
지난 16일 이란 새 대통령이 뽑혔습니다. 중도파 후보로 분류되는 성직자 출신의 하산 로우하니가 50.71%로 간신히 과반 득표에 성공해 결선투표 없이 이란의 새 정치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현임 대통령인 아마디네자드가 보수파로 분류되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만큼 신임 중도파 후보 당선은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란은 북한과 함께 연일 국제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요주의 국가인 만큼 중도파 로우하니의 당선은 큰 주목을 받을 만도 합니다...
...만, 사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의외로 조용합니다. 의례적인 당선 축하 성명만 몇 개 국가가 내놓는 정도입니다. 왜일까요? 보수파에서 중도파로의 변화이니 일종의 정권교체인 셈인데, 과연 어떤 변화로 이어질까요? 골방통신에서 궁금증을 풀어봅니다.
먼저, 뉴스 헤드라인입니다.
[연합뉴스] 이란 새 대통령에 중도파 성직자 로우하니
2013-06-16
중도파 후보로 대선 후보 가운데 유일한 성직자 출신인 하산 로우하니(64) 후보가 제11대 이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중략]
로우하니 당선인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자신의 승리를 "극단주의에 대한 온건파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중략]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통한 서방 제재 해제, 언론 자유와 여권 신장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최고지도자 중심의 신정 체제와 평화적 핵개발권은 옹호한다.
이에 따라 로우하니 당선인은 이란의 대통령이 가진 직무상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립 타개를 위한 협조 지향 외교를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밑줄은 김근근. 원문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6/16/0200000000AKR20130616000753070.HTML?from=search)
이란 대선과 관련한 기사를 검색하니 다음과 같은 제목들도 보입니다.
[국민일보] 이란 새 대통령에 '중도파 로우하니'…북한 고립되나?
[경향신문] 로하니 이란 새 대통령 “극단주의에 대한 온건파의 승리” 일성
[조선일보] 이란大選 개혁파 돌풍, 하메네이(최고 종교지도자) 권위에 도전장
대체적으로 중도파(개혁파)의 돌풍에 주목하면서 이란 내부로부터의 변화의 움직임을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이란이 서방과의 협조로 돌아서면 북한이 고립될 것이라는 기사가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외신의 분위기는 좀 다릅니다. 최고의 국제정치학자 중 한 명인 Fareed Zakaria가 진행하는 지난 9일자 CNN GPS에 따르면 복수의 후보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란 대선은 unfree, unfair하며, 오직 한 사람의 한 투표(one man's one vote)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사람은 아야톨라 하메네이(Ayatollah Khamenei)라고 합니다. 선거에 나섰던 여덟 명의 후보는 모두 하메네이가 승인한 후보들이며(all of whom he is okay with), 미국 대선으로 치면 티파티의 멤버만이 출마할 수 있는(only members of tea party can participate) 선거라는 겁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친박 정치인만 출마한 선거?) 비록 후보 간의 경쟁과 약간의 다양성이 있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들은 선거 과정에서 전혀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에(none of the fundamental issues in Iran has been raised)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선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로우하니의 승리는 “극단주의에 대한 온건파의 승리”가 맞는 걸까요? ‘최고지도자 중심의 신정 체제’란 무엇이며, ‘이란 대통령이 가진 직무상 한계’는 무슨 뜻일까요? 왜 Zakaria는 이번 선거가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말하는 걸까요?
이란 새 대통령 하산 로우하니
하메네이 신정 체제와 헌법수호위원회
최고지도자 중심의 신정 체제는 이란 정치 체제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란은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종교적 최고 지도자 아래에 존재하는 신정 국가입니다. 종교 지도자들로 이루어진 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 의해 선출된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1989년 이래로 종신 최고 지도자로써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메네이는 국가 최고 통치권자로서 군최고통수권, 군사령관 임명권, 대통령 인준 및 국정조정회의의장, 사법수장, 헌법수호위원회위원 임명권 등 절대권력을 행사합니다.
대통령 선거도 하메네이 신정 체제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습니다.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적격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헌법수호위원회는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임명하는 6인의 성직자와 사법수장이 추천해 국회가 선출하는 민간법률가 6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법수장도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임명하니 결국 모두 하메네이가 임명하는 셈입니다. 선거에 나서는 것 자체부터 하메네이의 승인이 필요한 겁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입후보를 신청은 686명(!)이 했으나 헌법수호위원회의 적격심사를 통과한 8인만이 선거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신정 국가인 이란에서는 정당이 불법이기 때문에 모든 후보는 개인 자격으로 출마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유력한 중도파 후보인 라프산자니, 종교의 정치개입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의사를 내비친 마샤이 등 당선이 유력했던 주요 후보들이 대선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결국 애초에 후보군 자체가 하메네이의 최측근과, 하메네이에 협조적인 후보들만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극단주의에 대한 온건파의 승리”는 결국 사실적으로 보자면 “초 극렬 보수파에 대한 극 보수파의 승리”인 셈입니다. 그나마 요식적으로나마 선거가 열리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요. 하메네이는 지난해 “아예 대통령제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더라도 ‘직무상의 한계’는 명백합니다. 이란의 외교, 국방, 핵개발 등 국가적인 정책 기조는 모두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결정합니다. 대통령은 주로 경제, 개발 등 내정을 담당하게 되죠. 그러나 현재 이란이 겪는 경제난은 서방에 의한 경제재제와 막대한 해외 시아파 지원(시리아, 레바논 헤즈볼라 등)이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에 대내적인 해법을 찾기는 어려워보입니다. 결국 중도파 로우하니 대통령은 탁월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하메네이의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변화의 전망은 제한적
현재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이란의 대외정책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핵 개발 2) 시리아 내전 간섭 3) 시아파 라인 구축. 신임 로우하니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이 모두에 대해 최고 지도자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입니다. 서방 세계가 의례적인 축하 성명정도만 내고 특별한 기대를 갖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로우하니는 ‘평화적 핵개발’을 위한 핵농축 프로그램은 이란 고유의 권리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대선 후보로 승인됐던 8명 모두 핵농축 프로그램을 옹호합니다. 따라서 이란의 핵 개발을 핵무기 개발이라고 의심하는 국제사회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다음으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정책 변경을 시사하면서 다시 국제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시리아 내전 문제입니다. 얼마 전 미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수로만 약 9만명이 내전으로 사망했다고 보도됐을 만큼 시리아 내전은 3년째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데요. 쟈스민 혁명을 타고 일어난 시리아 내전에 대해 이란은 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을 지원해 시민군(야당)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민주화운동이 시아파 중심의 정부군과 수니파 중심의 시민군 간의 종파간 분쟁의 성격을 갖게 되면서 이란이 시아파 ‘형제들’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우하니는 중도파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성직자 출신이기 때문에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트(정부군)의 몰락을 지켜만 볼 가능성은 낮습니다.
마지막은 이란이 시아파 맹주로써 취하고 있는 ‘시아파 전선’의 문제입니다. 이는 이란이 시리아 정부군 지원에 공을 들이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란은 레바논(헤즈볼라) - 시리아 - 이라크 - 이란을 잇는 시아파 전선을 완성함으로써 적국 이스라엘을 포위하는 외교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국제문제 중 상당수가 이란의 시아파 전선 구상과 관계되어 있지요. 역시 시아파 성직자인 로우하니가 이러한 구상에 반기를 들 가능성은 낮습니다. 오히려 직접적인 국익을 고려하기보다 시아파의 수장으로 행동하려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의미한 선거?
그렇다고 이란의 대통령 선거가 전적으로 무의미하지만은 않습니다. 두 가지 지점에서 ‘아주 작은 기대’를 품어볼 만도 합니다. 첫째는 매우 높았던 투표율입니다. 비록 하메네이의 허수아비들로 이루어진 선거였지만 투표율은 70%를 훌쩍 상회하며 높은 국민적 관심을 얻었습니다. 무사비가 2009년 ‘녹색 물결’을 일으켰던 것처럼 로우하니도 ‘보라색 물결’을 일으켜 상당한 선거 열풍을 일으켰지요. 아무리 제한적인 선거라 할지라도, 선거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선거를 통한 변화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둘째로, 로우하니는 어쩌면 약간의 ‘사회적 개혁’을 이룰지도 모릅니다. 특히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 이후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여성권에 대한 개혁을 기대해볼 만 합니다. 하메네이의 종교적 권위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개혁이겠지만, 작은 개혁은 언제나 더 큰 개혁에 대한 요구를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보다 유화적인 정책도 가능할 것입니다. 역시 더 큰 개혁에 대한 요구를 동반할 가능성이 크지요.
그렇게 본다면 중도파 로우하니의 당선은 이란의 개혁을 위한 개혁을 위한 개혁 정도로는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당장 이란의 대외 강경기조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변화를 예비하기 위한 내부로부터의 작은 개혁은 시작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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