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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사태는 민주화일지도 ...일단은!
“이집트에서 새로운 민중혁명이!”
...라고 생각한 이들도 많았다. 적어도 지난 3일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세우기 전까지는. 지금은 대부분의 논자들이 복잡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국제면에서 언뜻 스치듯 본 사람이라면 이집트 사태가 중동지역에 부는 민주화 바람의 한 기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대규모 민주화시위 끝에 독재정권을 축출해 낸 민중승리의 서사 말이다. 사실 튀니지, 시리아 등 계속해서 전해지던 아랍의 봄 소식과 지금의 이집트 사태는 딱 한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쫓겨난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것. 2011년 2월 11일, 오랜 민주화운동 끝에 독재자 호스니 무라바크를 쫓아낸 이집트 민중은 2012년 6월 선거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을 뽑았는데, 그가 바로 무르시이다. 무르시는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이어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자유정의당도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작년에는 개헌을 추진하면서 약 60%의 찬성을 얻어 개헌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지난 1년 새 3차례에 걸친 투표에서 일관되게 국민적 지지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개헌 과정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강화하고 야당의 활동을 불법화하는 등 독재적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한 야당과 그 지지자들이 시위에 나서게 된다. 이후 전 국민의 20%가 시위에 참여할 정도로 민주화의 요구는 거셌고, 무르시가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결국 군부가 나서서 무르시를 축출해 연금시키고 과도정부를 세운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이집트의 사태가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이유다.
군부 쿠데타 VS 혁명의 수호자
잠시 쿠데타의 고전적 정의를 떠올려보자. 헌법 등에 정해진 적절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무력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행위가 바로 고전적인 의미의 쿠데타이다. 국어사전도 쿠데타를 ‘지배층의 일부가 기성 법 질서를 무시하고 무력 등 비합법적 수단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보다 정치적인 함의를 담아보자.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군부 등 무장세력이 비적법한 절차에 따라 권력을 탈취하는 행위로 정의한다면 우리가 오늘날 떠올리는 의미에 근접해진다.
그렇게 보면 지금 이집트의 사태는 고전적 쿠데타의 한 사례에 다름 아니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한 조건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정권의 상호이양이라고 한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군부에 의한 쿠데타는 이집트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나쁜 선례로 남게 된다. 서구의 논자들이 선뜻 이집트에서의 상황을 지지하고 나서지 못하는 것도 정당성 없는 군부세력에 의해 권력이 무력으로 탈취된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쿠데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CFR(Council on Foreign Affairs) president Richard Haass는 Financial Times에 기고한 글인데, 그는 쿠데타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현재는 두 가지 모두 존재하지 않아 쿠데타가 (아직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첫째는 권력 탈취를 군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군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을 주도한 것은 군부가 아니라 시위대였고, 군부는 상황적 요구에 조응한 것뿐이며, 군부가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이양을 공언한 만큼 상황을 두고 보자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집트 현지의 시위대들은 심지어 군부를 ‘혁명의 수호자’로까지 여기고 있다고 한다. 군부의 공식적 입장은 이집트군이 국민의 군대이지 정권의 군대가 아닌 만큼 국민의 뜻에 따라 정권을 축출한 것은 군의 정치적 중립과 상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무르시 측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군 통수권자의 지시 없이 군이 움직인 것 자체가 군의 본분을 넘어선 것’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Democratic Election VS Democratic Governance
이집트 사태가 제기하는 또 하나의 쟁점은 ‘민주적 정당성’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앞서 말했듯이 무르시는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세 번이나) 국민의 지지를 확인했다. 그런데도 반대자들은 무르시의 통치가 비민주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전자가 민주주의의 요체를 민주적 절차로 규정하고 있다면, 후자는 민주주의를 민주적 거버넌스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절차주의적) 정의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복수의 정당의 경쟁적 선거를 통해 권력을 이양하는 체제이다.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과 자유정의당은 (나름대로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경쟁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권인 만큼 민주적 정당성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아 야당으로의 권력 이행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나, 적어도 무르시 정권은 민주주의가 만든 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군부의 무르시 축출은 합의를 통해 만들어 낸 민주적 절차를 훼손했으므로 (의도가 선했건 나빴건 간에) 반민주적 행위가 된다.
반면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주의적 정의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그 절차보다도 인민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내용’이 중요하다. 무르시 정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었으나 경제성장 등 국민의 요구를 등한시하고 무슬림형제단을 등에 업고 권력 강화에만 열중하는 등 유권자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군부가 국민의 의사를 등에 업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주었으니 오히려 민주적 정당성은 군부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무르시 정권이 먼저 ‘게임의 룰’을 위반해 민주적 절차 자체를 훼손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무르시의 개헌 중 중요한 요소는 야당 중 상당수를 불법화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자체가 ‘경쟁적 선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르시는 민주적으로 당선되었으면서도, 민주적 당선의 길을 봉쇄하고 스스로의 권력을 강화하는 전형적인 독재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Illiberal Democracy?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인권을 침해하고 종교를 탄압하며 정치적 자유를 제한한다면, 이를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을까? 단순히 권력자가 국민의 의사에 반해서 전횡을 일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국민의 뜻이라면, 이는 수용할 수 있는 결론일까? 요컨대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적 자유를 혐오하며 인권을 서구의 음모라고 여기고 소수 종교를 배척하고 있다면, 이에 따라 정부가 투표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비자유화 조치를 단행한다면, 이는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을까?
이른바 ‘비자유적 민주주의’의 아이러니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점차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현재 이집트의 상황도 전형적인 ‘비자유적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군부가 평화적으로 선거를 이행하더라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알누르당이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할 것으로 생각되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독재로 야권 세력이 고사한 이집트에서 마을마다 있는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조직을 비종교 정당이 당해낼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흔히 간단하게 민주주의라고 표현하지만, Democratization과 더불어 Liberalization이 이루어져야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상에 근접할 수 있다.
군부는 Democratization은 평화적 선거 이양으로 유지하면서 야당 제한 등 헌법 규정을 원래대로 되돌려 Liberalization도 이루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군부가 공언한 대로만 수행한다면 이집트의 민주화를 위해 나쁘지 않은 경로를 밟을 수도 있다. 다만 군부는 역사적으로 약속을 잘 수행하지 않는 편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민주적 통제에 구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집트의 사태는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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