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정치적 세계는 근대국가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정치적 행위가 근대국가를 기본 단위로 한다는 말이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지리적 자연은 각국의 '영토'라는 개념에 따라 구분되어 있으며, 그 경계를 촘촘한 '국경선'이 가로지르고 있다. 사람이 설 수 있는 지상의 모든 땅은 어느 국가의 영토에 속해 있거나, 예외적인 국제법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모든 땅은 결국 어느 국가엔가 소속되어 있다. 어느 땅이 여러 국가에 동시에 속할 수 없고, 어느 국가에게도 속하지 않는 땅은 없다. (오늘밤 갑자기 태평양에 땅이 솟더라도 무주지 선점론에 따라 재빨리 주인이 정해지고 만다.)


땅이 어느 국가엔가 속해 있고, 해당 국가가 영토에 대한 모든 권한을 독점한다는 독특한 아이디어는 1648년 베스트팔렌에서 탄생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신성로마제국의 느슨하고 중첩적이던 지배는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나뉜 여러 주권공동체의 지배로 대체되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제후들에게 완전한 영토적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고 정치를 종교로부터 독립시켜 세속화하였다. 이는 정신적으로는 교황이 주도하고 세속적으로는 황제가 주도하는 가톨릭 제국으로서의 신성로마제국이 실질적으로 붕괴된 것을 의미했다. 한 때 어느 농부의 땅이면서도 어느 영주의 땅이며, 황제의 땅이면서도 교회의 땅이었던 공간이 이제 어느 국가의 영토로 단일화된 것이다. 개인이 땅을 사유하는 것도 이제 국가의 권위에 의지하게 되었다. 수도로부터 아무리 가깝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땅이라도 '덜 영토'이거나 '더 영토'일 것 없이 개념적으로 동일한 영토였다.


근대국가가 정치의 기본단위를 이룬다는 베스트팔렌의 정신은 그대로 사람에게도 이어졌다. 모든 사람은 어느 국가엔가 속해 있다. 그리고 국가만이 그 국민에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주체였다. 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다"고 천명했지만, 선언 자체가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권을 지니고 어느 국가엔가 소속되어 있어야만 이동도, 생존도, 소유도, 스스로의 '신분증명'도 가능해졌다. 내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고, 어떤 말을 사용하며, 누구의 가족이고, 무엇을 갖고 살아왔는지는 국가가 이를 인정하고 보증하지 않는 이상 무의미한 것이다. 베스트팔렌조약으로 형성된 근대국가체계 400년은 결국 지구상의 모든 땅과 인구를 명확히 여러 국가로 나눈다는 논리적 기반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영토구분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지도를 놓고 선을 긋는 것만으로도 명목상의 구분이 가능했다. 그러나 사람은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유목민들, 한 지역에 정주하지 않고 떠도는 집시들, 몇 세대에 걸쳐 조용히 이주한 사람들까지, 고정된 사물이 아닌 인간을 베스트팔렌 조약의 틀로 가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얀마 국경을 떠도는 로힝야족의 비극도 베스트팔렌의 논리구조 속에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다.



# 국가에게 버림받은 사람들, 로힝야족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의 아라칸 주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 민족이다. 이들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으며, 중국-티베트 계열의 언어를 사용하는 주류 미얀마족과 달리 인도-아리아어계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미얀마족과의 종교적, 민족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여느 소수민족이라도 겪을 법한 흔한 비극이다.


문제는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의 시민권을 부정해버렸다는 점이다. 미얀마 정부의 공식적 입장에 따르면 로힝야족은 미얀마의 국민이 아니다.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온 불법 이민자일 뿐이다. 반면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들이 처음부터 미얀마 영토 내에 거주해온 민족이기 때문에 방글라데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로힝야족이 언제부터 아라칸 지역에 살았는지는 불분명하다. 확실한 것은 현재 수만 명의 로힝야족이 미얀마 국경지대에 살고 있다는 것 뿐이다.


로힝야족의 정확한 인구는 가늠하기 어렵다. 어디에서도 자국민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2012년 UN조사에 따르면 약 80만명의 로힝야족이 미얀마에서 살고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로힝야족의 사연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도 2012년인데, 당시 로힝야족을 혐오하는 지역 불교도들이 일으킨 아라칸 폭동으로 한 로힝야족의 마을이 "전소"했으며, 600여 명이 죽고 1200명이 실종됐으며 8만 명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추산 주체에 따라 숫자가 널뛰기한다. 누구도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국가가 없다는 것은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없다는 것은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 당신에게 주민등록증과 여권이 없다고,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었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일용직 외에 어떠한 일자리도 구할 수 없다. 편의점에서 살법한 물건들 외에 어떠한 중요하고 값비싼 물건도 살 수 없다. 땅도, 집도, 점포도 합법적으로 살 수 없다. 국경을 합법적으로 건널 방법도 없고, 유산을 넘겨주거나 소송을 걸거나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하더라도 처벌을 요청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아무런 권리가 없다.


로힝야족에게는 오히려 국가가 가장 두려운 존재다. 1978년, 미얀마 군대는 "모든 거주민들을 면밀히 조사하여 시민들과 외국인들을 법에 따라 지정하고,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을 명목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이 군사작전은 민간인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았고, 대규모 살상과 강간, 모스크의 파괴, 종교적 박해 등을 자행했다. 로힝야인들은 미얀마 군부에 의해 매우 혹독한 환경 하에서의 무보수 강제노동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누구도 군부를 제지하지 못했다.


수십만 명의 로힝야인들은 박해를 피해 방글라데시, 태국 등 주변국으로 도망치고 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외국인으로서의 신분을 증명할 길도, 이를 보증해 줄 정부도 없기에 밑바닥 인생을 살거나 난민캠프에 틀어박혀 희망 없는 삶을 살 뿐이다. 그러다가 운이 없으면 이국에서도 쫓겨나기 일쑤다. 2009년 태국으로 피난 가던 로힝야 보트피플 일행은 태국 군대에 제지당한 뒤 바다에 버려졌으며, 방글라데시는 2012년 국제구호단체의 로힝야족 원조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 난민법...?


올해 7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난민법을 시행하게 됐다. 기존 출입국관리법 하위조항에 있던 난민 관련 조항, 즉 인종이나 종교,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들을 돕는 조항을 독립된 법률로 제정한 것이다. 아시아 최초 난민법 제정이라고 홍보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조용하다. 난민에 대한 생계지원을 재량으로 둔 것, 예산 및 관련인력의 태부족 등 여러 문제점도 지적된다. 국제문제 개입에 인색한 한국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될까.


세계에는 다양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재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 독재정권 하에서 강제동원에 시달리는 사람들... 국적이 없는 로힝야족은 어쩌면 이 모든 것을 합친 듯 한 고통을 겪는지도 모른다. 그럴싸한 집에서 배불리 먹으며 오늘도 게임만 한 나이지만, 로힝야인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해진다.


누군가 말했더랬다. 한 사회에서 사는 이상 우리는 함께 고통 받는 거라고. 내가 오늘 배불리 먹었더라도 옆집 아이가 굶주리면 내 삶은 가난한 거라고. 내가 오늘 따뜻한 방에서 편히 자더라도 뒷집 아저씨가 허름한 곳에서 떨고 있다면 내 삶은 누추한 거라고.


지구촌을 산다는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