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통신]


글로벌 이상주의자들의 현실적 만남: UNAOC-EF 썸머스쿨


* 김근근은 8월 24일부터 일주일간 UNAOC-EF Summer School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에 있습니다. 이번주 골방통신은 국제뉴스를 다루는 대신 청년들이 열어가는 국제협력의 현장에서 그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 드립니다.




전세계에서 100명을 모아 난장토론을 시킨다면 어떨까. 그것도 아주 열정적이고 혈기왕성한 청년들만 모아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시리아인과 레바논인,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파키스탄인과 인도인, 미국인과 아프간인, 중국인과 대만인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국제 문제'에 대해 논하게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유엔문명간연대(UNAOC)와 EF(Education First)가 뉴욕에서 일주일간 여는 UNAOC-EF 썸머스쿨은 그런 대책 없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아무렇지 않게 추진해버린 결과다.


93개국에서 모인 100명의 청년들의 국적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Mauritania, Sierra Leone ...)부터 국제면을 급박하게 오르내리던 곳(Syria, Egypt ...)까지를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 입국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아프간인은 미국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데 6시간이 걸렸고, 캄보디아인은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몇몇은 비행기가 연착되었으며, 몇몇은 아예 미국 비자발급이 거절돼 다른 참가자로 급하게 교체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의 면모도 화려하다. 나이지리아에서 아동구호 NGO를 운영하는 청년부터 키르키즈스탄의 비디오 액티비스트, 미얀마의 페미니스트, 뭄바이에서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브라질 청년,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해 온 호주의 코미디언, 독립 블로거와 전문적 저널리스트도 있다. 글로벌하게 모인 이들 이상주의자들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할 지도 모르겠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 자신의 꿈을 열심히 설명했다.


파티처럼 화기애애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각국의 대표들이 가져온 시각은 국적의 다양함 이상으로 폭넓게 펴쳐져 있었고, 때로는 극심한 시각차를 확인하기도 했다. 소통은 공식적 세션이 끝난 뒤에도 끊이지 않았다. 룸메가 된 예멘과 터키의 청년은 세속화된 무슬림에 대한 날카로운 논쟁을 밤늦도록 펼쳤고, 이스라엘과 아프간의 청년은 다리아픈 것도 잊은 채 숙소 복도에 서서 갈등의 해결방안을 찾고 있었다. 모두가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었고, 모두가 다른 인사이트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대화가 통할 수 있다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만 보자면 아무래도 서구-중동의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시리아, 이집트에서의 급박한 정세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여러 국가간의 갈등의 주요한 의제이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문제이지만, 국제정치의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중동이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더불어 서구의 이민자 문제와 우익 극단주의자와의 갈등,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빈곤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 소비에트 이후 동유럽과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의 민주주의적 이행의 문제 등도 중요한 대화 주제가 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아무래도 남북한 갈등과 중국-대만 문제가 핵심적인 듯 하지만, 아쉽게도 북한 청년은 참가하지 못했다. 게다가 문명간 갈등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상대적으로 부차화되는 느낌이다. (사실 동북아의 주요갈등은 그저 냉전갈등의 해결이 지연된 탓이기도 한 만큼 서구의 시각에서는 약간 철지난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


이들 100명의 청년들이 모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안은 뭘까? 일단 참여자의 면면과 앞으로 진행될 세미나 주제를 보면 주최측의 마음에는 두 가지 대안이 있는 것 같다. 1) 젊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뉴미디어 등을 활용해 소통을 증진하는 것 2) 청년들이 국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을 이끄는 것. 참여자들은 대체로 NGO 활동가, 사회적 기업가, 혹은 저널리스트의 세 가지 중 한 부류에 속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션에서 어떤 논의가 진행될지 주목해볼 만하다.


시리아에서 온 청년은 미국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데 4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시리아의 상황은 어떠냐고 묻자 슬픈 표정으로 'It's getting worse'라고 답했다. 이대로 갈등이 계속된다면 한국처럼 두 개의 국가로 갈라져버릴지 누가 아냐면서. 이집트에서 온 의대생에게 정치적 혼란에 대해 물으면서 조심스럽게 어느 쪽을 지지하냐고 묻자, 그는 두 정치세력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못하겠다고, 일단은 공부를 끝내려고 한다고 체념하듯 말했다. 스웨덴 NGO활동가는 얼마전 스웨덴에서 최초로 무슬림에 대한 혐오범죄가 일어났다고 전해왔다. "Even in Sweden!" 


시리아의 총성도, 이집트의 정치적 혼란도, 스웨덴에서의 극우주의 활동도 일주일의 "교류"로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각자의 공동체에 무언가 임팩트를 줄 수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UNAOC-EF 썸머스쿨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