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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az Syria during the Syrian Civil War. Wikimedia Commons
오바마의 시리아 개입: Machiavellian or Humanitarian?
시리아 내전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소규모 평화시위로 시작된 ‘아랍의 봄’이 튀니지, 이집트를 거쳐 결국 시리아 내전으로 번진 것이 2011년 3월이었으니 말이다. 시위대와 정부군의 충돌은 정부군의 과잉대응으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종파적 분쟁의 양상이 얽히게 되면서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발생시킨 지금의 파국으로 이어졌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민간인 사망자와 난민 발생이 크게 늘고, 정부군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혐의가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개입에 대한 요구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이른바 ‘레드 라인’을 언급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오바마는 정부군의 생화학무기 사용을 ‘넘어서는 안됐을 레드 라인’으로 규정하고, 생화학무기 사용이 확인되는 순간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결국 생화학무기 사용은 사실로 드러났고, 오바마는 시민군에게 무기를 직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소형 화기와 탄창은 물론 대전차포 등 중화기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반군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대공화기는 지원하지 않기로 했지만, 대신 시리아 전역을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으로 설정해 정부군의 공습 등을 방지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미국의 지원으로 내전의 오랜 균형추가 시민군에게로 기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 대담한 인도주의적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요구도 이어졌다. 이란과 헤즈볼라가 시리아 정부군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무기 지원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극적 개입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만 못하며, 인도주의적 정의감으로 준비 없이 전쟁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전쟁에 ‘약간만’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전격적 개입으로 조기에 전쟁을 끝내지 않는 이상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전쟁의 수렁에 미국을 끌어들일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어느 쪽도 오바마의 인도주의적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6월 22일자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에 게재된 앨런 베거(Alan Berger)의 칼럼은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의 칼럼 The 'let-it-burn' strategy in Syria에 따르면 재래식 무기 지원을 골자로 하는 오바마의 정책은 시리아 내전을 약간의 개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서 나온 정책이 아니다. 무기 지원을 통해 시리아 시민군을 구하겠다는 인도주의적 정의감에서 온 정책도 아니다. 오히려 시리아 내전의 균형추를 적절히 맞춰 피해를 극대화함으로써 중동 반미 세력(이란, 헤즈볼라)의 힘을 빼놓겠다는 ‘불타게 두기 전략(let-it-burn strategy)’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미국의 무기 지원은 시리아 시민을 구하려는 인도주의적 결정이기는커녕 오히려 시민군을 총알받이 삼아 시아파 급진세력을 소진시키려는 ‘마키아벨리적’ 결정이 된다.
앨런 베거의 칼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 let-it-burn strategy
베거는 먼저 오바마를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을 제시한다.
시리아 시민군(resistance)에 대한 오바마의 소형화기 제공 결정이 불충분하다(does not go far enough)는 비판자들과, 그의 결정이 미국을 무슬림 땅에서의 또 다른 재앙적 전쟁(one more disastrous war in a Muslim land)으로 빠뜨릴 것이라는 비판자들은 동일한 가정을 공유한다. 오바마의 시리아 정책이 국익에 기반한 의도적 전략 추구(deliberate pursuit of a strategy in the national interest)가 아니라 어려운 결정을 주저한 결과(a refusal to make hard choices)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군을 제압하기 위한 대담한 결정을 내리지도, 시민 학살을 외면하고 철저히 미국적 입장에서 움직이는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 채 주저한 결과가 이번 소형화기 지원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의 주류 논자들의 시각과도 일치한다. 예컨대 CNN GPS의 Fareed Zakaria는 ‘오바마의 위험한 결정(Obama's risky Syria move)’이란 칼럼에서 전쟁에 약간만 개입하는 것은 “약간만 임신하려는 것과 같다(trying to get a little bit pregnant)”고 비판하면서, (미국이 개입에도 불구하고 시민군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국제적으로 미국의 신뢰도만 깍아먹고 원하는 ‘인도주의적 결과’조차 얻지 못할 위험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6월 16일자 Foreign Policy는 시리아 반군 무기 지원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내린 최악의 외교 정책 결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거는 오바마를 순진하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순진하다고 비판한다. 베거에 따르면 오바마의 이번 결정은 그가 일상적인 이상주의적 수사로 드러내지 않는 마키아벨리적인 전략(a Machiavellian strategy that cannot be described in the usual idealistic vocabulary)이라고 해석한다. 이 전략은 소방관들이 ‘불타게 두기 전략(let-it-burn strategy)’이라고 부를 법한 것인데, 거센 산불을 그냥 타게 둠으로써 불길이 주위로 번지지 않고 스스로 소진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계산이 바탕이 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오바마의 결정은 사실 시리아보다는 이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시리아의 생화학무기 논란은 무기 지원을 국제적으로 승인받기 위한 수사적 겉치레인 셈이다.
이란과 시리아의 정부군(아사드 정권),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시아파 동맹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특히 이번 시리아 내전에서도 이란은 정부군에 경제적 지원을 쏟아 부으며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란은 오랫동안 시리아-레바논(헤즈볼라)-이란을 잇는 시아파동맹을 완성해 이스라엘을 포위하려는 국제 전략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이란은 정부군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는 혐의를 계속해서 받고 있으며, 헤즈볼라가 시리아 정부군 편에 직접 가담해 싸우고 있음은 속속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오바마의 인도주의적 시리아 정책의 이면에는 정부군을 지원하는 시아파 세력을 견제하려는 현실주의적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오바마의 목표는 시리아 내전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군의 피해는 처참하게 많이 오랫동안 보도될수록 좋다. 왜냐하면 이란과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전에 깊이 개입할수록, 그리고 시민군의 피해가 커질수록,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 급진세력의 인기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시리아의 정부군과 시민군은 어느 정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 대립의 양상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은 이란과 헤즈볼라가 ‘미 제국주의와 이스라엘 시온주의자에 대항하는 지역적 리더(the regional leader of resistance to the American imperialists and Israeli Zionists)’로 받아들여지지만, 시리아 수니파에 대한 학살이 늘어갈수록 이란을 미심쩍어하는 아랍의 수니파들에게는 지역 패권의 야욕이 부각될 것이다. 따라서 시민군에 소형화기를 지원하기로 한 오바마의 정책은 ‘나약한 결정’이 아니라 ‘잔인한 결정’이며, 궁극적으로 이란을 약화시키기 위한 현실주의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오바마의 진의를 우리가 알 길은 없다. 시리아 전략이 의도적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오바마는 대외적으로 인도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수사를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 국제정치에서의 현실주의
그런데 아무리 정치인의 겉과 속이 같을 수 없다지만, 인권이 보편적인 원칙으로 받아들여지는 오늘, 세계에서 가장 민주화된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의 대통령이 단지 국익을 위해 태연히 수만 명이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나아가 학살을 조장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타국민의 죽음도 외면하는 비정한 선택을 해도 좋은 것일까?
오늘날 대부분의 국제정치학자는 그렇다고 답한다. 현재 국제정치학 이론의 주류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현실주의, 혹은 간단히 ‘현실주의(realism)’가 제시하는 처방이다.
현실주의에 따르면 국제정치는 각 국의 국내정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구조를 갖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각 행위자를 규제할 상위의 권위가 없는 무정부상태(anarchy)의 조건이다. 국가의 존재가 정치 공동체를 일종의 도덕 공동체로 규율할 수 있도록 한다면, 국제정치에서는 도덕을 강제할 어떠한 권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덕은 전혀 무의미하다. 나아가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본질적 구분은 국가별 특성(왕정, 군부독재,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은 그 국가의 외교정책 행위를 결정짓는 데 갖는 중요성을 최소화하도록 만든다. 각 국은 국내적으로 얼마나 민주적인가와 관계없이, 또 국내적으로 어떠한 도덕관념이 통용되고 있느냐와 관계없이, 국제적으로는 철저히 현실주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는 국제정치 하에서 오직 권력과 자조만을 추구한다(해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오바마의 정책(에 대한 베거의 해석)은 탁월한 것이다. 인권이나 생명존중, 인도주의적 개입 등은 오직 그렇게 하는 것이 자국에 이익이 될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국제 협력은 각국이 스스로의 안전 보장을 위해 협력을 필요로 할 때에만 이루어진다. 도덕이나 정의 등을 위해 안보상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비정한 국제정치의 무정부주의적 조건에서는 어리석은 일이다.
* 현실주의에 대한 도전?
그러나 오바마가 시리아 정책 앞에는 매우 중요한 난관이 버티고 서 있다. 바로 점증하는 국내정치적 압력이다. 이는 주류 국제정치학에서 통용되는 현실주의적 처방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기도 하다.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서 더 이상 외교가 일부 외교관과 정책결정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탓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엄격한 구분이라는 현실주의의 전제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각 국 국민들은 자국의 대외정책에 점차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투명해진 언론 환경은 정부가 비밀리에 펼치는 대외 공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국민의 동의 없이 타국에 취해던 적대행위가 드러나면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어느 정치인도 유권자들에게 타국에서 수십만 명을 죽게 만들 비정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오바마처럼 이상주의적 수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리아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지지부진’ 전략이 유효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국민들은 미국이 패배하는(혹은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꼴을 보지 못한다. 미국이 시민군의 편에 서기를 선택한 이상 시민군의 계속되는 피해는 더 깊은 개입에 대한 요구를 일으킬 것이다. 지금도 맥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의 신뢰도가 기로에 있다(America’s credibility is on the line)”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의 의도가 무엇이건 시리아 내전이 오래 지속되면 국민들의 피로감도 높아질 것이고, 변화를 바라는 압력이 커질 것이다. 더욱 깊이 개입하는 것은 미국이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의 수렁에 빠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그렇다고 발을 빼는 것은 미국의 패권이 쇠약해진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어느 쪽도 미국으로서는 이익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내정치의 압력은 오바마에게 ‘시리아 딜레마’를 강요할 것이다.
따라서 시리아 정책의 성패는 오바마가 국내정치적 압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컨트롤하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이 설득이든 해명이든 혹은 일관된 무시이든 말이다. 어쩌면 오바마에게 진짜 전장은 시리아가 아니라 미국 본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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