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폭력의 역사에 대한 우화

THE BEE




 안녕하세요, 당신! 빙구에요. 


 우리는 종종 전도되는 것들을 목격하곤 해요. 관계가 바로 그런 것들 중에 하나겠지요. 사랑과 사람에 대한 욕망이 관계를 낳았을지라도 그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오히려 소통을 막곤 합니다. 서로 몰이해에 빠지고, 그러한 몰이해가 다시 새로운 관계의 시도를 유도하고, 또 실패하고.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형성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죠. 그러면서 또 다시 어떤 관계로, 어쩌면 끊임없이.......


 폭력은 아마 이러한 악순환이 가져오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일 겁니다. 가로막힌 소통과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몰이해는 폭력을 데려오고,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만들어냅니다. 폭력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느새 보이지 않고 거대하게 자리잡은 하나의 폭력성만 덩그러니 자리합니다.


 오늘 가져온 이야기는 폭력의 역사성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그 거대한 부피감에 대하여 가볍고 낯설고 아릅답고 잔혹하게 그린 연극, 6월 7-8일, 이틀간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라갔었던 노다 히데키 연출의 [THE BEE]입니다. 

 







가볍고 낯설게 그리다




 극의 줄거리를 따라가기에 앞서 탁월했던 연출적 요소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극의 초반부터 연출적으로 이뤄진 다양한 시도들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무대 위에 바닥과 벽을 이룬, 흡사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종이가 무대의 중앙에 놓여 있었는데요. 반으로 접힌 거대한 이 종이는 프로젝터와 색색의 조명 외에도 접거나 펼치는, 찢고 구기는 시도를 통해 다채로운 공간변화를 꾀합니다. 이도의 집 앞의 풍경이 되었다가, 맨 앞의 종이를 조금 들어올림으로써 순식간에 공간을 구분짓기도 하고, 어느새 차 안의 풍경이 되더니, 종이를 찢고 들어가면 다시 탈옥범 오고로의 집으로 변합니다. 공간이 실내로 고정된 이후에도 무대의 변화는 계속됩니다. 프로젝터 영상으로 창문이 표시된 부분을 네모 모양으로 찢어 도도야마 형사와의 소통구를 만드는가 하면, 텔레비전 부분에 뚫린 구멍엔 기자가 등장해 사건을 보도하고 바깥세상의 일들을 알립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극 전체에 일본색이 다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노다 히데키를 제외하곤) 모두 영국인들이며, 대사 또한 영어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종종 배경음악으로 일어로 번역된 팝송이 흘러나오고, 영어로 구현되는 일본 가정의 풍경은 이질적이고 낯설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관객이 감정적으로 극에 몰입하게 하기보다는 우화적이고 동화적인 모습으로, 하다못해 비극적인 순간들마저 우스꽝스럽고 예쁜 풍경으로 다가오게 했습니다.



 거기에 한가지 더, 남자주인공 이도를 맡은 배우의 얼굴이 보이시나요? 혹시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해리가 이모부 집에서 자라는 동안 줄곧 지켜봐 주었던 옆집 마녀 할머니를 기억하세요? 바로 그 여배우, 캐서린 헌터입니다. 여배우가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것도 놀라운데, 오고로의 아내로 등장하는 배우는 일본인 남자, 이 극의 연출이자 배우인 노다 히데키입니다. 이렇게 성별이 바뀐 캐스팅은 배우와 캐릭터가 얼마나 합일되었는지보다 배우가 드러내고 있는 캐릭터 자체의 표현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했고, 후반부에 이를수록 변화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가시화했습니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질문세례를 받는 이도, 여배우 캐서린 헌터가 열연했습니다.)




 극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이도는 아들의 생일선물을 사들고 평소와 같이 퇴근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집은 온통 경찰과 기자들로 북적거리고, 영문을 모르는 차에 인터뷰 세례를 받은 후에야 탈옥범 오고로가 자신의 집에 침입해 아내와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야기는 리드미컬하고 빠르게, 우스꽝스럽고 소란하게 흘러갑니다. 애가 타는 이도에 비하면 도도야마를 비롯한 형사와 경찰들은 무능력하고 의욕이 없을 따름이고, 매스미디어는 특종거리를 잡았다는 데에만 신이 나 있습니다. 경찰의 느린 대처와 미지근한 태도를 참다 못해 이도는 직접 오고로의 집에 들어가 사건을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도움이 안 되는 형사를 때려죽이고 오고로의 아내와 아들을 인질로 잡지요. 오고로가 저지른 짓과 똑같은 행동을 취한 채 이도는 도도야마를 통해 오고로에 협상을 요청합니다.  협상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다음날 아침까지 이도의 아내와 아이를 풀어주고 집에서 나온다면 이도 역시 똑같이 하겠다는 것, 그러나 만일 어긴다면 아이의 손가락을 자르고 아내를 강간하겠다는 것. 




아름답고 잔혹한 우화



 

 배우 글린 프릿차드가 세 개의 배역, 도도야마의 동료형사와 탈옥범 오고로, 그리고 오고로의 어린 아들까지 훌륭하게 소화하며 특히 극의 중반부부터 깨알같은 웃음포인트를 선사했습니다. 오고로와 이도가 통화로 협상을 하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 때 무대는 하나의 공간인 동시에 각자의 집 안 풍경인 것처럼 이분됩니다. 배우 글린 프릿차드가 오고로와 오고로의 아들을 동시에 맡은 덕분에, 장면은 순식간의 이도의 집이 되었다가 오고로의 집으로, 다시 이도의 집으로 휙휙 전환되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이도가 아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며 오고로의 아들을 바꿔주면 글린 프릿차드는 순진무구한 소년이 되어 수화기에 대고 꺄아꺄아 소리를 지르고, 직후 다시 오고로가 되어 "무..... 무..... 무슨 짓이야!" 하고 쩔쩔매는 식입니다. 거기에 오고로 아내의 도마질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오고로의 집과 이도의 집 사이의 빠른 전환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관객은 웃으면서도 무대 위의 공간이 오고로의 집인지, 이도의 집인지 점차 헷갈려 하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흥미롭게도, 오고로는 순진하고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쉽게 흥분하는 어눌한 사내로 그려지는 반면, 오히려 이도는 차분하고 침착했던 세일즈맨으로서의 면모를 백퍼센트 발휘해 잔혹한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상황을 리드하기 시작하지요. 언론에서는 이러한 이도의 대담한 행동에 대해 크게 떠들어대고, 도도야마 형사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그를 제지하려 하지만 이미 이도는 침착하게 상황을 제어합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그를 두렵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극의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꿀벌의 모습입니다. 프로젝터로 아주 거대하게 비춰지는 벌은 유독 이도를 두렵게 하는 대상으로 등장하며 이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합니다. 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생각해봅시다. 벌은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에게 침을 쏘지만, 그로 인해 내장이 파열되어 죽게 되지요. 방어로서의 의미로 휘두른 폭력이 벌을 결국 자멸시키고 맙니다.  이러한 벌의 이미지는 이 극의 제목이자, 전반적인 주제의식을 꿰뚫는 것으로서 지속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보여집니다. 그리고 칼자루가 이도의 손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아이러니한 폭력의 역사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스스로가 쓰는 폭력의 역사




 

(자발적으로 손을 내미는 아이, 당연하다는듯 바라보는 오고로의 아내, 일상적인 움직임으로 손가락을 자르는 이도.)




 결국 서로가 원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다가 통화는 끝나고, 서로가 서로의 집에서 나오지 않음으로써 협상은 결렬됩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이도는 부인을 강간하고 아이의 손가락을 잘라 오고로에게 보냅니다. 아이는 고통에 떨고, 아내는 이도의 강요에 따라 봉투를 찢어 오면서 눈물을 흘리죠.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오고로로부터 이도 아이의 손가락이 담긴 봉투가 전달돼요. 거기에 두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이도,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이를 견디는 아이와 아내, 다음날 또다시 전달되는 아이의 손가락...... 오페라 나비부인의 허밍 코러스가 흐르는 가운데 일상적인 폭력의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손가락을 자르고 나서 봉투에 손가락을 넣고 봉해 부치고, 밤에는 부인을 강간하고, 이른 아침 아내가 차린 아침상에 모두가 둘러앉아 식사를 하려 할 때 또다시 오고로로부터 손가락이 담긴 봉투가 도착하고, 다시 손가락을 자르고. 알록달록한 조명과 느린 마임으로 보여지는 배우들의 움직임, 배경에 깔리는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음악. 이 모든 것들이, 일상적인 풍경으로 고정되어가는 폭력의 모습을 아름답고 잔혹하게 보여줍니다. 



 이도는 고백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삶을 잘 통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들의 지루한 악순환에 미디어는 점차 이들에게 관심이 시들해지고, 이제 외로운 형사 도도야마만이 손가락 봉투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매개인이 되었을 뿐, 더이상 오고로와 이도의 폭력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집니다. 어느 아침인가엔 봉투가 전달되자 아이가 먼저 손가락을 내밀고, 오고로의 아내는 이도와의 잠자리를  즐기기 시작하죠. 아름다운 색으로 물든 무대와 평화롭고 고요한 음악 속에서, 인물들은 자행되는 폭력의 안쪽에 자리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행복은 얼마 가지 않습니다. 손가락이 다 잘린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고 아내의 손가락을 자르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결국 이도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기에 이르면서 관객은 무거운 침묵으로 침잠합니다. 



 


(이도가 손가락을 자른 저 아이는 과연 오고로의 아이일까요, 아니면 이도의 아이일까요?

저 아이를 껴안은 저 사내는 이도인가요, 오고로인가요?)



 아내와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고 이도에게 남은 것은 엉망이 된 삶과 오고로와의 지독한 악순환. 이제는 누가 흉악범인지, 누가 오고로이며 누가 이도의 아이이고 아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망연하고 황망하게 무대에 남은 이도의 모습 위로 꿀벌의 그림자가 하나 둘 몰려들더니, 무대에는 숨이 막힐 듯이 침묵을 에우는 벌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벌떼의 풍경이 보여집니다. 거대한 종이로 된 무대가 여기저기 이그러지고 뭉개지더니 하나의 거대한 종이 뭉치로 무대 위의 인물들을 삼켜 버리고, 종국에는 흡사 하나의 설치미술품을 연상시키는 이그러지고 찌그러진 거대한 부피의 종이 덩어리만 덩그러니 무대 위에 남습니다. 




폭력의 기원에 관하여




 우리 중 그 누가 이도를 탓할 수 있을까요. 이도는 주어진 폭력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또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스스로 죽음에 이른 한 마리의 꿀벌과도 같습니다. 폭력은 기억을 낳고, 폭력의 기억이 또 폭력을 낳지요. 이는 분명 우리 주변의 어딘가에서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행해질 폭력의 풍경 중 하나입니다.  결국 무대에 남은 것은 벌떼 가득한 어떤 부피감 그 자체였듯이,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는 당신과 저를 매장하고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하나의 불분명한 커다란 형체로 남았습니다. 아무도 비극을 바라지 않았는데, 비극을 피하기 위해 취했던 선택들이 거대한 무게로 자리해 결국 우리들을 파멸로 내몰았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이 폭력의 결과물에 대하여 이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걸요. 그러면 이는 처음부터 인질극을 벌인 오고로의 잘못일까요? 여섯살 난 자기 아이에게 카시오 계산기처럼 싸구려를 줬다고 이도에게 더듬더듬 화를 내는, 순진하고 가련한 청년이 이 모든 폭력의 결과에 책임이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무리이지 않을까요. 무능력한 경찰도, 특종을 알리기에 바쁜 미디어의 책임도 아닙니다. 그들이 폭력을 휘두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 이전의 폭력으로, 그리고 그 폭력을 야기했던 그 이전 이전의 폭력으로. 계속해서 폭력의 역사는 그 기원을 향해 꼬리를 물고 거슬러 올라가죠. 그래도 우리는 그 기원을 알 수 없습니다. 기원을 설사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책임을 묻기엔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연출 노다 히데키는, 이 극에서 특별한 주제의식을 찾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거창한 반전의 메시지도, 정치적 경고도 그의 극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적어도 이 극을 보고 나서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기분이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 우화를 통해, 전도된 것들이 우리를 변질시키고 슬프게 하지는 않는지 한번쯤 더 생각해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당신과 나는, 세상과 우리는, 서로를 연결하는 관계 사이에서 서로를 향해 등을 구부리고 기울어 있습니다. 우리가 폭력의 기원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적어도 우리 스스로가 그 일부가 되어 또다른 폭력을 낳는 벌들이 되지 않기를 바라요. 우리가 이 아름답고 슬픈 극에서 목격했듯이, 그러한 폭력은 결국 저 자신을 죽이는 일이고, 저와 연결된 관계 너머 제가 사랑하는 당신을 죽이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