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관계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여기서 먼가요?





안녕, 당신. 빙구에요.



 어떤 거리를 수반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당신이라던가, 현재, 관계라는 말들.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제아무리 미분해도, 과거와 맞닿은 지금 이 순간과 끊임없이 다가오는 미래 사이에서 어떤 가시적인 규정이 없이는 현재를 볼 수 없죠. 관계라는 이름 아래 당신과 나와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표시하지 않으면 당신과 나라는 이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러한 규정이나 법칙성, 당신과 나 사이에 상정된 어떤 거리가 무너졌을 때, 그것은 마치 블랙홀처럼, 휘어지고 폐쇄적인 구조로 변질되어 우리를 황폐하게 합니다.



 오늘 빙구가 가져온 이야기는 그 거리감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남자와 여자가 그들의 부모와 가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아버지와 어머니에서 젊은 남자와 여자로, 다시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로 세 점을 거쳐 대물림되고 반복됩니다. 서로에 대한 거리감을 상실하고 그 트라이앵글의 어느 선상으로 그들의 인생이 틀 지워지는 동안 그들의 시공간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화학적 변화를 거친 채 화석처럼 굳어버렸습니다. 그곳에선 시간도 공간도 무한의 무게로 수렴할 뿐이지요.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가 그리는 짧고도 강렬한 광경을 통해 묻습니다. 각 점 사이의 상실된 거리와 빛을 잃은 시공간의 물리적 감각, 그 어딘가로의 틈새로 사라진 것들에 대해. 당신과 저와 또다른 무수한 당신들을 연결짓는 트라이앵글, 이쪽 점에서 저쪽 점까지의 그 광막한 거리에 대해. [여기서 먼가요]입니다.





관계의 기묘한 풍경





막이 오르면 어둠. 
쿵쿵, 위층에서 소리가 들린다. 
왼편 창에 불꽃이 일렁거린다. 자라나듯, 아래쪽에서부터 위로 
침대에서 남자, 이불을 찬다. 일어나 웃옷을 벗는다. 
헤드라이트 불빛 방안을 훑는다. 
남자의 시선 창 쪽을 향한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들린다. 
남자, 일어나서 창으로 간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 들린다. 
남자, 일어나 문을 향해 간다. 
뒤돌아본다. 
문 밖으로 나간다. 

불이 켜진다.



(......)



천장에서 구슬들이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남자, 턱을 위로 빼 올려다본다.

여자, 걸레를 들고 나와 바닥에 놓고 그릇을 포갠다.

구슬,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

여자 : (걸레질치며) 또 시작이네.

남자 : (천장을 올려다보며)쥐새끼들.

여자 : 참자.

남자 : 안 참으면?

남자, 보이지 않는 구슬을 찾듯 천장을 보며 움직인다.

여자 (접시를 챙겨 일어서며)음악 틀까?

남자 : 관둬.

여자 : (부엌 쪽으로 가면서)그치겠지. 쫌 있으면.




 무대 위로 젊은 남자와 여자가 등장합니다. 비좁은 원룸에 제삿상을 차리느라 분주한 그들의 대화는 마치 십 년은 같이 산 부부처럼 큰 감정의 변화 없이 조용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십대 중반의 부부가 으레 나눌 법한 애정어린 일상의 대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단조롭고 권태로운 중년부부 분위기에 더 가까워 보이네요. 오랜 세월 반복된 것인 양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대화 사이로, 윗층 아이들이 내는 발소리와 공소리, 구슬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끼어듭니다. 위층 아이들의 계속되는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남자와, 새벽에 나갔느냐고 눈치를 보며 묻는 여자. 제삿상을 다 차리고 나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릅니다.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여자와 남자 일어난다. 문이 열린다. 
어머니가 먼저 들어온다. 한손에는 선물 꾸러미 다른 손에는 밧줄을 쥐고 있다. 어머니 뒤로 목에 밧줄을 멘 아버지 나타난다. 둘 다 선글라스를 썼다. 

(......)


어머니와 아버지. 상 가운데 영정 사진처럼 앉았다. 
부엌으로 갔던 여자, 밥을 퍼서 왔다. 

어머니 : 기도하자. 

다들, 자리에 앉는다. 둘러앉아 기도한다. 아버지만 눈을 뜨고 있다. 

어머니 : 오늘 저희 가족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날 있었던 모든 일들은 잊고, 용서하며, 감싸주고 

아버지가 밥을 손으로 먹는다. 여자는 눈을 뜨고 아버지 손에 수저를 쥐어준다. 

어머니 : (격해지며) 우리가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게 하시며 
아버지는 수저질이 서투르다. 밥덩이가 떨어진다. 
수저로 밥공기 주변을 두드린다. 

어머니 : 지옥의 불꽃 속에서도 일곱 겹의 화염 속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사 

어머니, 눈을 뜨고 아버지의 수저를 뺏는다. 뺨을 때린다. 아버지 누구에게 맞는지 모른다. 두리번거린다. 어머니 머리통을 때리자 아버지 웅크리고 머리를 감싼다. 

어머니 : (눈을 감고 수저를 쥔 채) 아멘하자. 아멘.





 곧이어 또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남자의 부모이자, 여자의 시부모입니다. 둘 다 선글라스를 쓰고, 아버지는 목에 줄까지 걸고 있고. 이들의 존재감은 등장부터 압도적이죠. 눈이 멀고 치매에 걸린 듯한 아버지의 괴기스런 행동들과 그런 아버지를 개 다루듯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우습다기보다도 이상하고 이질적입니다.



 거기에, 그 뒤로 이어지는 광경은 더 묘합니다. 어렵게 상도 차리고, 모처럼 부모님도 모신 모양이니 밥을 먹으러 둘러앉기는 했는데, 누구도 이게 제삿상이라는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구색이 좀 초라하긴 해도 분명히 이 상은 평범한 밥상이 아니라 제삿상인데, 촛불이나 향도 없고, 절을 하기는 커녕 영정사진 한 장 없고. 상 앞에 앉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만이 제사음식들 위에서 영정사진처럼 떠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 어머니는 제삿상 앞에 앉아 지옥의 불꽃 속에서도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독교식 기도문을 올리다가, 밥을 흘리고 수저를 두드려대는 아버지의 뺨을 호되게 때리기까지 합니다. 남자는 부모와 마주한 식사 자체에 염증을 느끼는 듯 침묵만 유지하고, 여자는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무마해 보려다가 어머니로부터 쌀쌀맞은 면박만 받습니다.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지고, 터질 듯 위태로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는 계속됩니다.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붕괴된 시공간, 0으로 수렴하는 거리





 블랙홀이 어떻게 생기는지 들어본 적 있나요? 블랙홀은 주로 거대한 별의 죽음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별이 수명을 다해갈 무렵 별의 내부에서 생겨나는 엄청난 중력이 그 별의 중심으로 쏠리는 어마어마한 질량을 야기한다고 해요. 너무 많은 질량이 한 점으로 쏠리면서 공간 자체가 그 점을 향해 휘게 되고, 그 점은 주변의 시공간을 잡아먹으며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검은 구멍을 형성합니다. 마치 천 위에 무거운 볼링공을 올려놓았을 때 천이 음푹하게 파이는 것처럼, 너무 많은 무게가 한 점으로 쏟아지는 순간 시공간의 물리법칙 자체가 그 방향을 향해 휘어지는 것이죠.



 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신과 저를 연결하는 선상에 무거운 질량의 무엇이 자리하면, 관계는 중심을 잃고 그 방향으로 쏠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 무엇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면,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와 거기에 있는 어떤 무게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적용되는 각도와 눈높이, 상의 크기를 규정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부터 당신과 저의 거리는 상실되어버리고, 우리는 무게중심을 잃고 서로를 향해 뭉개질 겁니다. 마치 블랙홀에 빠진 물질처럼,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떤 검은 심연을 향해서요.



 남자와 여자의 상태는,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블랙홀과도 같은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순간이 돌이킬 수 없는 무게로 그들 사이에 자리잡았고, 시공간은 그에 따라 균형을 잃고 무너지면서 그들의 관계 안으로 쏟아져내렸습니다. 극은 이를 반복되고 변용되는 이미지와 소리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줍니다.





아버지, 비틀비틀 일어선다. 
천장의 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여자, 아버지를 앉히려고 한다. 
아버지는 꼼짝도 안 한다. 

어머니 : …앉아 여보. 

아버지, 뒤 돌아본다. 소리 나는 곳을 찾는다. 

어머니 : 귀 먹었어! 앉아. 

남자 : 앉아. 아버지. 

여자, 아버지를 앉힌다. 

여자 : 조금 있으면 멈춰요. 

천장에서 통통, 소리 들린다. 


여자 : 오빠가 공을 던지면 (공 던지는 시늉) 여자아인 주우러 가요. (천장에서 발자국 소리 들린다)방이 좁아서 공은 금세 벽에 부딪쳐요. 주워 와선 다시 던져달라고 해요. (공 소리 난다)오빤 공을 화장실로 던지고. 여자 아인 쫓아가고(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잠잠해져요. 

소리, 그친다. 다들, 아무 말 없이 정지화면처럼 앉아 있다.




 살벌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라도 하듯, 천장에서는 쿵쿵거리는 공소리, 구슬이 떨어지는 소리, 어수선한 발소리는 부모님의 등장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극의 초반부에 제시되었던 그 소리들은 극 내내 계속해서 들려오며 그들의 대화를 방해합니다. 오히려 더욱 더 빨라지고 커지면서 극의 분위기를 천천히 고조시키고, 그에 따라 그들의 대화는 점차 일상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하지요. 어머니와 남자, 여자의 대화는 점점 표면 아래 감추어진 그들의 관계를 드러내기에 이릅니다. 일상의 틀 안에 감추었던 변색된 시공간과 돌고 도는 관계의 순환구조가, 여러번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통해 수면 위로 모습을 나타냅니다. 극의 초반에 제시되었던 여러가지 질문들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이들이 형성하는 삼각형의 순환구조가 가시화됩니다. 왜 제사상을 차려 놓고 누구도 절 한번 하지 않았는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정사진인 양 상 가운데에 앉았는지, 왜 아버지는 눈이 멀고 아이처럼 어려졌는지, 그들의 지난날들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복되는 이미지들로 드러나는 트라이앵글





어머니 : 몇 년이 흘렀지. 넌 우리에게 전화를 했어. (수저를 놓는다) 난 사실 놀랐다. 네가 우리에게 연락을 할 줄 몰랐어. 설마 먼저. 
여자 : 제가 부탁했어요, 오빠한테. 오빤 검정고시도 치른댔어요. 
어머니 : 죽은 사람한테 아니, 죽은 셈 쳤던 쟤한테 전화가 온 거야. 
밥을 먹자고. 
여자 : (고개를 숙이며) 예, 밥이요. 밥이나 한 끼 
어머니 : 난 겁이 났다.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려왔어. 
저 애는 자기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했어. 

(전화 벨 소리, 남자 목소리 들린다) 어머니, 저는 정말 새사람이 되었어요. 곧 아이 아빠가 돼요. 전, 새로 다시 살아볼 거예요. 

아버지는 도리질을 친다. 

어머니 : 네 아버진 싫다고 하셨다. 난 밥 한 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했다. 무섭단 사람 끌고 먼 길 왔다. 

여자, 고개를 조아린다. 

어머니 : 됐다.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으니까. 

여자 : 저흰 앞으로 

어머니 : 셰리는 죽었고, 네 아버지와 난 언제나 불구덩이에서 뒹굴고 있어. 석쇠에 나란히 누운 생선처럼 꼼짝 못한다. 나는 눈을 감았다. 널 볼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서 고개를 돌리며)아버진 눈을 떴지. 

아버지는 주섬주섬 일어난다. 사방을 더듬거린다. 

어머니 : 네 아버진 널 봤다. 똑똑히. 
남자 : ……
어머니 : 눈이 멀었지. 널 보고는. 애빌 죽이려는 널 보고는, 구운 생선눈깔처럼 하얗게, 
여자 : 실수였어요. 
어머니 : 쟬 낳은 게 실수지. 뭘 낳게 될지 누가 알겠냐만.


여자, 배를 감싸 안는다. 
아버지, 현관으로 기어간다. 불이 난 집안에서 달아나려는 듯 절박해 보인다.





 진상은 대략 이러합니다. 이전부터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자는 집을 나가 몇년만에 나타났고, 여자와의 결혼을 허락받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남자를 가두었다는 것, 부모와의 사이가 파국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남자는 여자를 부추겨 함께 불을 질렀고, 아버지는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을 보고는 눈이 멀고 말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저승에도 이승에도 머물지 못한 채 해마다, 날마다 그들을 찾아온다는 것. 반복되는 소리들과 더불어 높아지는 그들의 목소리, 아버지의 발작적인 울부짖음, 변용되며 쌓이는 여러 이미지들은, 애증으로 곪은 그들의 관계를 벗겨내고 그들의 관계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여러 층의 층위들이 넘나들며 긴긴 나날동안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흘러가지 못한 채 거기에 그대로 그들이 갇혀 있으며, 그들의 인생 자체가 지난날의 틀로 변형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관계로 끝이 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암시합니다.




여자 : (걸레질치며) 오빠도 잠을 못자고 새벽녘까지 뒤척여요. 자다가 땀을 흘리고 헛소리도 해요. 울면서, 울면서 잘못을 빌어요. 자다가 집을 뛰쳐나가요. 신발도 안 신고. 
어머니 :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게다. 언젠간.
여자 : 아니에요. 오빠는 새사람이 되었어요. 우린, 행복하게 언제까지나 
어머니 : 언제까지? 
여자 : (걸레질 멈춘다)실수였어요. 어머니, 그땐 우린 너무 어렸어요. 저는 그냥 (걸레를 비튼다.)
어머니 : 석유통을 들고 골목길로 넌 달음질쳤지. 
남자 : 내가 시켰어. 싫다는 걸 억지로. (여자의 손을 잡으며) 덜덜 떨길래 잡아줬어. 

어머니 : 떨긴. 우린 영영 불속에서 헤맨다. 
남자 : 실수였다고. 
어머니 : 서로를 볼 때마다 너흰 불을 보게 될 거다. 너희가 싸지른 불은 씨앗이 되어 너희마 저 살라먹겠지. 불이 불씨를 낳고, 불씨가 자라 불을 낳고 

여자와 남자 마주본다. 

여자 : 아니야.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눈을 감았으니까. 
남자 : 아니야. 난 아무 것도 못 봤어. 눈을 감았으니까. 
여자와 남자 : 우린 아무 것도 몰랐어. 실수였으니까. 

여자와 남자 서로에게서 물러선다. 

어머니 : (가슴을 뜯으며) 얼음을 다오. 

아버지 : (벽에 몸을 부딪친다.) 여기서 나가자. 문 좀 열어줘! 

아래층에서 고함 소리 들린다. 

아래층 남자 목소리 : 미쳤어! 너희들 왜 밤마다 못을 박아대.





 극이 점차 전개되어감에 따라 관객은 점차 깨닫게 됩니다. 윗집에서 나는 소음들은 사실 그들이 내는 소리들이며, 그렇게 아랫집으로 그 아랫집으로 끊임없이 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요. 그들을 숨막히게 하는 소리들은 사실 그들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것들이고, 이것들은 또다시 반복되며 순환구조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관계의 구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복되고 변용되는 소리들과 이미지들을 통해 극은 그들의 관계가 같은 삼각형의 틀 안에 갇혀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남자를 가두었듯, 윗집 아이들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듯, 그리고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화장실에 가두듯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과거와 똑같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며, 그들의 아이와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도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한치의 거리도 허용하지 않는 점과 점 사이에는 죽은 시공간만이 남아 계속해서 같은 광경을 재생합니다.극의 끝부분에서는 처음과 같은 광경이 연출되고, 뫼비우스의 띠를 걷듯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그들로,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로.





어머니 : (나가다 돌아선다) 깜빡할 뻔 했다. (가져온 선물꾸러미를 건네며) 우리 가거든 풀어봐라. 

여자, 선물꾸러미를 받아든다. 

어머니 : 아인, 봄에 나온댔지. 그래, 봄. 내년엔 네 아이들을 보겠구나. 너희와 똑 닮은. 

여자 : 이걸로 끝이에요. 

어머니 : 끝이긴. 그 아이들은 너흴 잘 모르겠지. 아이들은 너흴, 너흰 아이들을 아직 못 봤지. 우리가 알려줘야겠지. 너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버지, 짖어댄다. 어머니, 아버지의 줄을 잡아당긴다. 
어머니와 아버지, 밖으로 나간다. 
개 짖는 소리 들린다. 
남자, 창문을 닫는다. 
여자, 선물 꾸러미를 푼다. 
공이 떨어진다. 
여자, 남자에게 공을 던진다. 
남자, 받아 안는다. 
오토바이 소리, 헤드라이트 불빛 천장에 길을 낸다. 
남자, 여자에게 공을 던진다. 
여자와 남자 사이의 거리 점점 벌어진다. 맞장구치듯 천장의 공 소리도 점점 커진다. 
조명이 무대를 붉게 물들인다. 
암전 
어둠 속에서 전화벨 소리 울린다.





거리의 존재 자체를 응시하는 것





 우리는 늘 일상이 겹치며 빚어내는 궤도를 돌고 돌면서 평면상의 좌표를 헤맵니다. 무수한 점을 찍어 누군가에게 닿으려 하고, 점과 선에 면적을 부여하고. 그리고 거기에 다시 다른 점을 이어 또다른 면을 만들고, 그 평면에 또다른 평면을 연결하고. 인생은 어쩌면 그런 면들이 모여 만드는 입체의 연속체인 것 같아요. 점과 점, 선과 선, 면과 면. 각각의 이름을 바꾸면서 각 점은 계속해서 그 위치를 바꾸지만, 세 점이 이루는 삼각형의 틀에서 단지 더 작아지거나 더 커질 뿐 그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타인과 저, 당신과 타인, 그리고 저와 당신. 그 세 점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거리에서.



 그러나 그 거리를 견뎌야만 관계는 평면 위에서 중심을 잡고, 시공간은 유한성을 가지고 우리를 스쳐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는 다시 우리가 그 삼각형의 면적을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무게로 만들어줍니다. 때로는 허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순간이나마 찬란한. 끊임없이 사그라들지만 또 동시에 영원히 반복되는. 당신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순간순간으로 영원한 트라이앵글의 관계들로 가득합니다. 이것이 당신과 제가 이 우주 안에 홀로 떨어져 있어도 외롭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설령 영영 닿을 수 없는 거리라고 해도, 그 거리 너머 당신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제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당신이 문득 그리운 새벽이네요. 이 우주의 어디쯤에 있을지, 어쩌다 한번은 서로의 곁을 스쳐갈지. 무수히 저를 스쳐가는 당신과, 당신과, 당신에게, 이 작은 내가 점 하나의 무게쯤으로는 존재하기를. 밤하늘의 좌표 중에서 아주 작은 별빛 하나 정도의 면적이면 충분하답니다. 저도 당신에게 그러한가요. 트라이앵글의 이쪽 한 점에서 보냅니다. 안녕,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