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살아지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

변신




 안녕 당신! 빙구에요.


 잘 지내고 있나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벌써 이렇게 왔는데, 누군가와 함께 꽃구경이라도 한번 다녀왔는지, 마음도 그와 함께 따뜻한지요. 궁금하네요. 당신의 발걸음은 오늘도 꽃잎처럼 가벼운지, 혹은 지는 꽃의 그림자에 지난 봄의 풍경들이 겹쳐 날려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는지.


 빙구는 며칠 전 길을 지나다가 관리인 아저씨가 연못 수면에 온통 떨어진 꽃잎들을 채로 건져 떠올리는 장면을 보았어요.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부시도록 만발했던 벚꽃이, 제가 채 봄을 느끼기도 전에 다 지고 없다는 걸요. 그러고보니 작년에도 이 연못가에서 누군가 떨어진 꽃잎을 건져 올리던 풍경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났어요. 작년 이맘때 벚꽃이 피어나고 떨어지고, 다시 네번의 계절을 기다려 벚꽃이 피는 동안의 제가 있던 시간을 그려보려고 했는데, 그 순간 아무것도 분명하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어떤 말을 건져올려야 할지 몰라, 시야에서 사라지는 벚꽃들을 바라보면서 그자리에 잠시 서 있었습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이런 노래 가사가 흘러나오던 걸 기억합니다. 이렇게 살아지는 게 또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긴 해.


 살아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은 사실 같은 말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갑자기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들이 한때 우리 곁에서 함께 머무르던 사람이라는 걸 믿을 수 있을 것 같나요? 하물며 아무런 노력 없이 주어지는 시간과 나날들, 손쓸 새도 없이 잃어버리는 하루하루의 이 생도 늘 새삼스럽게 새롭고, 지나가면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걸요. 살아지는 것들에 대한, 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오늘의 이야기는, <변신>입니다.




사람들이 사라진다




조사원 : 깨어났는데 새벽이었단 말씀이시네요.
변신남 : 그렇다니까요.
조사원 : 쓰레기 집하장에서 말이죠.
변신남 : 정확히는 쓰레기더미 사이였어요. 사방이 쓰레기봉투였고 머리 위로도 몇 덩이 쌓여있었습니다.
조사원 : 얼마 동안이나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시구요?
변신남 :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 온 거 아닙니까.
조사원 : 그걸 알려 드리려면 저희 쪽에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변신남 : 하고 있잖아요.




 한 중년의 남성이 길을 잃고 찾아온 이곳은 변신대책관리본부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최근 서울의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무작위적인 변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부랴부랴 설립한 기관이죠. 머그컵, 스티커, 자전거, 밥통 등등의 사물들로 원인을 알 수 없이 변신한 중년 남성들과, 신고를 받고 그들을 인수받으러 찾아오는 가족들이 매일같이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리고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이 남자는, 스스로 두달간 어떤 사물로 변신해있다가 돌아왔다고 주장하며 변신대책관리본부에 찾아와 사건의 경위와 그 사이에 이사를 가버린 가족의 행방을 밝혀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요.




변신남 : 변신이 틀림없어요. 내 기억에서 지워진 두 달 사이에 뭔 일이 생긴 겁니다. 집이 사라지고 가족들도 연락이 안 되고. 뭔가 사고가 있는 게 틀림없다구요.
조사원 : 집에서 변신했다면 왜 사모님이 신고를 안 하셨겠어요.
변신남 :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겁니다.
조사원 : 혹시 몽유병 같은 거 앓으신 적은 없으시죠?
변신남 : 지금 장난합니까?

(......)

조사원 : 조만간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서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생님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리다보니까 신고를 하지 못한 걸수도 있으니까 더 기다려보는 수밖에요. (......)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제일 빠릅니다.

변신남 : (......) 늘 가던 공원에 갔습니다. 점심은 항상 여기 와서 먹거든요. 점심값도 아낄 겸 해서요. 그런데 그 날은 어떤 양복 입은 남자와 밥을 같이 먹게 됐습니다.



 무작정 가족을 찾아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그의 화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행방은 확인도 되지 않고, 변신기간과 기억이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다는 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없는 실직자라는 점, 집 안에서 일어난 변신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 등등 그의 변신사건은 여타 사례와는 달리 유별나 조사하기에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협조해 달라는 조사원의 회유에 못이겨 그는, '긴 악몽을 꾸고 깨어난 듯' 무거운 마음으로 두달 전 어떤 상태였는지 애써 떠올려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하고, 옷을 갖춰입고 나와 하염없이 서성이던 매일의 나날들과 뒤섞여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요. 그는 하루의 이런저런 일들을 쥐어짜내다가, 공원에서 만난 양복 입은 남자를 떠올리기에 이릅니다.




살아진다는 것, 그 무감각의 감각




양복남자 : (먹으며)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안 변하잖아요.
변신남 : 우리 같은 사람들이요?
양복남자 : 이치가 그렇잖아요.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 성실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변신을 한다 이겁니다.
변신남 : 그만큼 피로가 쌓인 사람들이니까, 몸의 변화도 다르겠지요.
양복남자 : 우리는요? 나야말로 피로가 켜켜이 쌓인 사람인데.
변신남 : 그럴 수도 있겠네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요.

(......)

양복남자 :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만 변신한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그사람들 일자리, 우리에게 줘야하는 거 아닙니까?
변신남 : 그럼 우리도 변하겠죠.
양복남자 : 그래도 좋으니까 그 자리를 꿰차고 싶은 심정입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이렇게는 더 못살겠어요.



 그와 같이 밥을 먹게 된 양복 입은 남자는 그와 같은 처지입니다. 실직한 사실을 숨기고 회사를 갈 때처럼 집을 나오지만 서류 가방 속에는 만화책들이 가득하고, 점심시간에는 '사랑의 밥' 무료 배식을 받으러 공원 벤치를 서성이는. 조용히 밥을 먹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양복을 입은 남자는 자꾸 변신 이야기를 하며 이것저것 말을 붙여댑니다. 처음부터 질병본부가 아니라 재난본부에서 나섰어야 했다는 둥, 보건당국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둥, 노숙자는 걱정이 덜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둥.

 수다스러운 양복남자의 말들에 마지못해 대답을 해도 이것저것 떠보며 자꾸 말을 붙이는 양복 남자. 말로는 짐짓 걱정스러운 듯한 말들을 하면서도 표정은 어딘가 신나 보이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런 양복 남자가 짜증스러운 한편 낙천적인 태도가 부러워 씁쓸하게 도시락 뚜껑을 덮고 있는데,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던 양복 남자가 뜻밖의 말을 해 옵니다. 처지도 비슷하고 나쁜 사람도 아닌 것 같으니 자기가 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요.



변신남 : 방법이요?
양복남자 :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입니다. 쓸모있는 걸로 변신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비법이 있어요. 나 같은 경우는 금으로 된 롤렉스 시계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마누라한테 전당포에 맡기라고 하는 거죠. 밤이 되면 몰래 변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되고요.
변신남 : 그게... 가능합니까?

(.....)

변신남 : 그런 얘기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요.
양복남자 : 계속,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나, 나는 왜 이렇게 사나, 나는 우리 가족에게 아무 쓸모가 없구나, 차라리 금덩어리로 변해라... 그런 생각을 아주 간절히 혼신을 다해서 하는 거죠. 그러면서 나에게 주어진 많은 짐들을 머리 가득 넣고 가슴으로 우는 거에요.
변신남 : 가슴으로 울어요? (모르겠다는 표정)
양복남자 :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회적 의무 같은 것들을 가슴에 채우고... 아 이거 말로 설명하려니까 어렵네. (주위를 살피더니) 내가 딱 한번만 보여줄 테니까 잘 봐요. 어차피 최소 한 시간은 변신해 있어야 하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만화책 보면서 기다리슈.
변신남 : (못미덥게 쳐다본다)
양복남 : 참나. 내 기술을 무시하시네. 변신한 거 보고 놀라지나 마시라니까.

양복남자, 벤치에 앉아 양손을 맞잡고 기를 모으는 자세를 취한다. 한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만의 언어로 중얼거리더니 얼굴이 일그러지고, 미세하게 경련하기 시작한다.
공기중에 보이지 않는 불똥이 튀는 것을 느끼는 변신남.
그 순간, 눈앞에서 양복남자가 사라진다. 순식간이다.
벤치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황금 롤렉스시계.




 이게 무슨 일일까요. 마음만 먹으면 변신을 할 수 있다니.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남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거기에는 비어있는 벤치와, 황금으로 된 시계만이 놓여 있습니다. 조사원은 여기까지의 그의 진술을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믿을 수 없어 하지요. 하지만 이것은, 그 스스로 믿을 수 없게도,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직후 그의 행동 역시, 자신이 했다고는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시계를 챙겨 공원을 빠져나갑니다. 양복 남자가 경솔하게 내뱉었던 것처럼, 나사 하나하나까지 황금으로 만들어진 시계를 전당포에 팔기 위해서.


 그러나 상황은 그의 맘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전당포 주인 : 신데렐라 얘기 아쇼?
변신남 : 뭔데렐라요?
전당포주인 : 12시만 넘기면 호박으로 변하는 신데렐라 말이요.
변신남 : 왜요, 금시계 보니까 금마차라도 생각나십니까?
전당포주인 : 호박이면 죽이라도 쑤어 먹지만 사람으로 변해버리면 난처해지죠. 요즘 전당포에 변신 사기가 판을 칩니다.
변신남 : ....
전당포 : 어떻게 장담하시겠소? 변신품이 아니라는 거 말이요.
변신남 : 속고만 사셨나. 사람이 이렇게 좋은 시계로 변하는 거 보셨습니까?
전당포주인 : 팔찌, 목걸이, 순금 트로피. 더한 걸로도 변할 수 있지요.
변신남 : 이건 우리 형님이 사업차 외국에 갔다 오시면서....
전당포주인 : (말 자르듯 망치를 내 놓는다) 이걸로 한번 내리쳐 보시든가.
변신남 :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겁니까?
전당포주인 : 증명을 해보시라구요. (......) 망가져도 제 값은 쳐 드리지.
만약 사람이 변신한 거라면, 그 사람이 다시는 못 돌아오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명심하쇼.
이 세상과는 영영 빠이빠이란 말이요. 저번엔 진짜로 내려친 사람이 있었는데... 어찌나 끔찍했던지. 돌아오긴 했는데 반병신이 되었습디다. 평생을 병원에 누워 사는 수밖에.
변신남 : 그럴 일 없습니다. 이건 진짜 시계니까.
전당포주인 : 그럼 쳐 보시오. (빨리 쳐보라는 시늉)
변신남 : (망설인다)
전당포주인 : (떠보듯) 형님이 주신 거라면서... 아까우면 그냥 갖고 가시든가.
변신남 : (결정한 듯 내리치려 하지만 망치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전당포주인 : 뭐해요 안 내리치고.
변신남 : 진짜 이거 망가져도 제값 쳐주는 거죠?
전당포주인 : 증명만 해 보인다면야.
변신남 : (심호흡.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얏!



 열두 시에 옷차림이 바뀌는 신데렐라라도 된 양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전당포주인은 정확하게 꿰뚫어봅니다. 그제서야 그는 그가 너무 순진했다는 것을 깨닫죠. 누가 알았을는지요. 가정과 사회에 치여 도피하듯 다른 사물로 변하게 되는 변신 현상이, 다시 돈벌이를 위한 어떤 조건으로 둔갑하여 이름만 바뀐 채 똑같아지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현상을 지속시키는 하나의 부품처럼, 그는 귀신이라도 씌인 듯이 망치를 들어올립니다. 그가 내려치려는 고급 시계가 불과 한시간 전까지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던, 같은 처지를 가진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미 잊어버리고 맙니다. 알 수 없는 감각이 그를 휘어감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삶이라는 틀에서 그 자신을 배제한, 이미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에 무감해진 그 어떤 감각이 그로부터 하여금 시계를 내려치라고 강한 자극으로 부추깁니다.



전당포주인 : (순간적으로 변신남의 팔목을 잡아채는) 잠깐!
변신남 : (멈칫)
전당포주인 : 됐소. 맡겠소. (시계를 종이 상자에 넣으며) 길에서 변신한 사람들 주워다 돈벌이하는 사람들 숱하게 봤지. 나도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 도리는 지키고 살아야 될 거 아뇨. 사람이 있어야 사람한테 사기도 치고 돈도 뜯고 그럴 거 아니요. (돈을 지불한다) 양심은 한번 망가지면 다시는 복귀가 안 되는 거 알죠? 당신을 믿어보리다. 형심이 주신 거라면서? 소중한 것일 테니까 꼭 찾으러 오쇼.
변신남 : ... (돈을 받아든다)
전당포주인 :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만 변신하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죠?

변신남, 대답 없이 돈을 들고 나간다.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자신이 저질렀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일련의 상황들을 뒤로 한 채,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두둑한 돈봉투를 주머니에 담고, 아무도 자신을 반기지 않는 곳으로 향하는 그의 표정은 참담합니다.




살아진다는 것, 또 사라진다는 것




변신남 : 나 왔어.
딸 : (쳐다보지도 않고 밥을 먹는다)
변신남 : 학원은 어떠냐?
딸 : (대답 없다)
변신남 : 요즘 대학생들은 배낭여행 많이 가던데. 넌 안가도 되니?
딸 : (아빠 말은 못들은 척하며) 엄마, 국 좀 더 줘.

아내, 나온다. (......) 변신남이 못이기는 척 식탁에 앉자 딸이 식탁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변신남 : (돈을 꺼내 놓으며) 저번에 맡았던 공사 말야. 그 쪽 업체에서 대금이 들어왔나봐. 월급도 제때 못줘서 미안하다고.... 보너스다 생각하라면서 주더라구.
아내 : (남편을 돌아본다)
변신남 : 아파트 융자금 밀린 거 꽤 되잖아. 부족하겠지만 좀 보태라고.

아내는 남편을 돌아보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돈을 들고 들어간다.
혼자 남아 밥을 먹 는 변신남.
공원에서 도시락을 타먹을 때마다 더 퍽퍽한 느낌이다.

(......)

식탁 위의 조명이 꺼질락말락 불안하게 깜박인다.

변신남 : 어, 이게 왜 이러지?

변신남이 일어나서 전구를 이리저리 만지며 돌려본다.
피아노소리 점점 커지다가 뚝 멈추면, 짧은 암전과 함께 변신남이 변신한다.
그가 앉아 있던 식탁의자 위엔 장난감 피아노 하나가 놓여 있다.



 그리고 진술의 끝에 이르러, 그는 집에서 변신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 변신과정은 앞에서 양복남자가 했던 그것과는 달리 매우 잔잔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변신은 사실 그리 놀랍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는 마치 없는 사람인 양, 투명인간인 것처럼 취급받고, 아무도 그를 따뜻하게 반기지 않습니다. 혼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구름처럼 천천히 흩어지는 시간을 느끼면서, 그는 그렇게 장난감 피아노로 변신합니다. 비극적이게도, 변신 전이나 후나 집안의 풍경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습니다. TV는 여전히 혼자 변신 속보를 연신 떠들어대고, 집안은 차갑고 건조한 공기로 가득하지요.



딸 : (장난감피아노를 발견하고) 이게 뭐야?
아내 : 그게 뭐니? (살펴보는) 하여튼 이런걸 왜.
딸 : (피아노를 눌러보며) 소리도 안 나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해. 아빠가 주워온 것들로 집안이 온통 쓰레기장이야.
아내 : 고장난 걸 왜 들고 왔대니. 점점 이상한 버릇만 생기고.
딸 : 어떻게 좀 해봐. 언제까지 아빠 저러는 거 모른척할 건데.
아내 : 우리가 이런데 아빠는 오죽하겠니.
딸 : 아빠도 힘들지만 우리도 힘들잖아. 나... 아빠가 매일 노숙자들이랑 밥먹는 거 싫어.
아내 : ...
딸 : 우리 이 집 팔고 이사 가면 안 돼? 더 작은 집으로.
아내 : 이게 어떤 집인데. 아빠가 젊을 때부터 벌어서 처음으로 장만한 우리집이야. 여길 어떻게 나가.
딸 : 갚을 돈이 더 많잖아.
아내 : 생각 좀 해 보자.
딸 : 아빠도 참. 그냥 확 터놓고 얘기를 하든가. 거짓말도 하루이틀이지. 6개월을 뭐하는 거냐구.
아내 :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아빠야. 그거라도 없으면 니네 아빤, 죽어.
딸 : 그런 모습 더는 못 보겠어. (흉내를 내며) 삼계탕 먹었더니, 아휴 배부르다.
아내 : (장난감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거 어따 치워라.
딸 : 몰라. 고장 난 거, 갖다 버려.
아내 : 니가 버리든가. (방으로 들어간다)
딸 : (따라 들어가며) 저런 것 좀 주워오지 말라고 해 제발.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은 장난감 피아노.
옆에 서서 아내와 딸을 바라보는 변신남의 모습처럼 쓸쓸하다.
딸이 눌러보던 버튼이 뒤늦게 작동하는지 장난감 피아노에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텅 빈 공간에 홀로 선 변신남만이 그 멜로디를 듣고 있다.
변신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회상이 여기까지 진행된 후 조사원은 가족을 찾았다는 소식을 알려 오고 조사가 진전된 것에 대해서 기뻐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지요.


어쩌면 이미 그는,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양복 남자는, 변신대책본부를 스쳐간 사람들은, 또 아직 스쳐가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물이 되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변신 현상의 공통점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거든요. 자신이 더이상 자신으로 살아가지 않을 때, 주어지 공간과 시간이 그를 투명인간처럼 꿰뚫고 그냥 지나가버릴 때, 어떤 관계도 무용해지고 아무런 사회적 의미를 가지지 않을 때 그는 사물과 다름없는 것으로 전락합니다. 때문에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졌던' 그 순간부터 이미 그는 '사라졌던' 것이지요. 그는 오래 전부터 사라진 사람이었습니다. 살아지는 게 어떤 의미도 갖지 않던 그 어느 때부터. 회상에서 돌아오는 그의 귓가에 남은 것은 짐노페디의 피아노 선율 뿐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변신 전과 무엇이 또 얼마나 달라질까요. 차라리 그가 없던 두달이 가족에게는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가족들을 안내하는 조사원의 목소리에 조사실의 불빛이 어느 순간 깜박이기 시작하고, 그는 눈을 들어 깜박이는 불빛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또 한번 그는 조용하게 또한번의 변신을 거칩니다.



조사실의 불빛이 깜박인다.
변신남, 고개를 들어 깜박이는 불빛을 쳐다본다.
불이 꺼진다.
짧은 암전 후, 조사원 들어온다.

조사원 : 어? 왜 불이 꺼져있지?

조사원, 불을 켠다. 변신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변신남이 앉았던 자리 옆에 똑같은 의자가 하나 더 놓여있다.

조사원 : 원래 여기 의자가 두 개였었나? (주위를 둘러보며) 허영범 씨, 허영범 씨.
어디 계세요 허영범 씨. 허영범 씨.

변신남을 찾는 조사원의 목소리만 허공의 가 부딪친다.




살아가는, 혹은 살아지는, 혹은 사라져가는 당신에게




 당신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살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살아지고 있나요? 심연에 여기저기 엉킨 채 떨어진 기억들 중 건져올릴 만한 기억을, 관계를, 꿈을 갖고 있나요? 계절은 낙엽처럼 해마다 떨어지고 사람들은 피고 지며 우리 곁을 지나가는데, 어느 순간 그런 자신이 투명인간처럼 느껴진다면, 어쩌면 당신은 이미 어떤 것으로 변신해 사라져버린 걸지도 몰라요.

 또는 이런 생각을 해 봐요.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누군가를 아무 느낌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요. 당신은 벚꽃잎처럼 떨어진 당신 주변의 누군가를 돌아보고 건져올려줄 수 있는 사람인가요? 그가 아름다울 한때에만 그와 함께 했던, 사그라드는 그의 모습에 그를 스쳐지나갔던 무수한 또다른 계절은 아니었던가요? 당신이 지금 밟고 있던 이 흙이 한때 누군가의 꽃이었으며 누군가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을 수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나요? 이 모든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까요.

 다시 한번 당신, 잘 지내나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벌써 이렇게 왔는데, 누군가와 함께 꽃구경이라도 한번 다녀왔는지, 마음도 그와 함께 따뜻한지요. 당신의 발걸음은 오늘도 꽃잎처럼 가벼운지, 혹은 지는 꽃의 그림자에 지난 봄의 풍경들이 겹쳐 날려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