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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⑩ <멜랑콜리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melancholia>(2011)를 처음 보던 때를 기억한다. 세상의 온갖 우울을 혼자 떠안은 것처럼 지내던 때였는데, 그 때 나의 이상한 취미는 ‘혼자서 슬픈or우울한 영화 골라보기’였다. 제목부터 구미에 맞거니와, 주변인들의 추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 눈을 끌어당긴 것은 <멜랑콜리아>의 포스터. 물에 잠긴 웨딩드레스와 커스틴 던스트(저스틴 역)의 묘한 표정이 담긴 초록빛 사진은 내가 혼자, 심지어 지하철을 타고 몇 안 되는 상영관 중 한 곳으로 덤덤히 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오직 느낌만으로 선택한 영화였기에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한 채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이 영화가 사실 행성 충돌이라는 지구 종말의 소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 적잖게 당황했던 것 같다. 이건 SF영화에나 쓰일 법한 소재인데… 미심쩍어하면서. 어쨌든 꽤나 만족스럽게 끝마친 <멜랑콜리아> 첫 관람. 그로부터 계절의 한 순환이 다 지난 지금, 다시 만난 <멜랑콜리아>는 여전히 아름답고, 내가 알아차렸던 것보다 더 섬세한 영화였다.
불안, 우울, 외로움
1부의 주인공인 저스틴. 조금 엉뚱해 보이긴 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오늘의 신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 자꾸만 예식장을 이탈해서 잠을 자고 샤워를 하고 필드로 나가서 별이나 보고. 점점 미소를 잃어가는 저스틴, 알고 보니 그녀는 고질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던 것. 결혼식을 준비한 언니 클레어(샤를로뜨 갱스부르 분)는 그새 도져버린 저스틴의 우울증을 지연시키고자 갖은 노력을 해보지만, 결국 신랑인 마이클(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분)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결혼식은 실패로 끝난다.
저스틴 “나..간신히 버티고 있어. 잿빛의 엉킨 실타래가... 내 다리를 휘감고 있어. 너무 무거워서 걸음을 뗄 수가 없어.”
무엇 때문인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는 저스틴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어 엄마, 아빠, 마이클, 언니에게 차례차례 구조의 손길을 요청하려 한다. 그러나 모두들 그녀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두렵다는 저스틴에게 엄마는 어서 나가라며 냉정하게 말하고, 아빠는 메모 한 장을 남긴 채 떠나버린다. 마이클은 그저 빨리 첫날밤을 치르고 싶을 뿐이고, 언니는 결혼식을 망친 저스틴에게 “가끔은 네가 정말 죽도록 미워.”라 말하고 돌아서버린다. 기댈 곳이 없는 저스틴의 우울증은 점점 심각해진다.
사실은 모두가 불안하다.
그런데 몇 번을 생각해도 이 사람들 반응은 좀 이상하다. 아무리 이혼으로 결혼에 회의적인 사람이라 해도 딸이 이렇게 힘들다는데 어서 나가라니?
엄마: 뭐 하러 여기서 결혼하니?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네 언니는 예식 준비에 목을 매더라.
저스틴: 엄마… 저 조금 두려워요.
엄마: 조금? 내가 너였다면 기절했을걸.
저스틴: 결혼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두려워요, 엄마.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어요.
엄마: 마음이 혼란스럽겠지. 그런 꼴 보기 싫으니 나가. 망상은 그만 하고.
저스틴: 저 무서워요.
엄마: 다들 그래. 그냥 참아. 어서 나가.
이 대화에서 엄마는 저스틴의 추상적인 불안을 애써 결혼에 대한 복잡한 감정으로 한정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저스틴은 무언가 다른 얘기를 하려는데 미리 그 말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엄마의 모습과 “다들 그래.”라는 대사가 암시하는 것- 어쩌면 1부의 모두가 행성 멜랑콜리아 충돌설을 알고 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멜랑콜리아>의 1부와 2부가 강한 독립성을 가지고 각각 저스틴과 클레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부의 인물들의 기묘한 언행들로부터, 2부뿐 아니라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행성 멜랑콜리아의 존재에 대해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엄마의 이해안가는 행동도, 엄청난 돈을 들여 호화로운 예식 준비에 목을 매는 클레어도, 결혼식도 내팽개치고 굳이 회사 사장에게 욕을 퍼붓고 회사를 그만두는 저스틴도, 결국 떠나버리는 마이클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불안하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야기, 멜랑콜리아. 쉽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걱정이 없다는 듯 축제에 도취되는 것, 그 행위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1부와 2부를 연결하는 고리는 전갈자리의 붉은 별 안타레스가 없다는 저스틴의 한 마디가 아니라 행성 멜랑콜리아와 지구의 죽음의 춤,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의 불안 전체로 확장된다.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2부 내내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인물들의 불안, 특히 클레어의 엄청난 불안이다. 자꾸만 인터넷으로 멜랑콜리아 충돌에 대해서 찾아보고, 충돌 전에 먹어버릴 수면제를 준비하는 등, 떨리는 손으로 종말과 그 불안에 대비한다. 마침내 멜랑콜리아와의 충돌이 기정사실화되고, 아들과 함께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클레어는 벗어날 수 없는 재앙임을 인정하고 마지막 순간을 좋게 보낼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저스틴이 던지는 싸늘한 한 마디, “쓸모없는 짓이야.”
지금 저스틴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워하던 저스틴이 어느새 멀쩡해진 것이다. 재앙을 감지하고 날 뛰던 말들이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오자 조용해지듯이, 저스틴 역시 불안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나자 비로소 평온해지는 혹은 무감각해지는듯하다. 특출하게 기이하고, 특출하게 더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불안을 감지하는 속도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처절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그건 아마도 이 상황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혼자임을 인식하는 것. 행성이 돌아오자 먼저 수면제를 먹고 자살해버리는 클레어의 남편 존(키퍼 서덜랜드 분)의 이기적인 행동에서, 저스틴의 구조 요청을 뿌리치던 이들의 무신경함을 본다. 가장 힘든 순간, 결국은 혼자일 뿐이라는 진리를 깨달은 저스틴은 그래서 좀 더 일찍 평온해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마지막까지 상황을 쉬이 인정하지 못한 클레어는 가장 두렵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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