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오피셜스토리> : 기억과 기록, 역사와 현재에 대한 물음



오피셜 스토리 (1989)

The Official Story 
9.3
감독
루이스 푸엔조
출연
노르마 알레안드로, 엑토르 알테리오, 첼라 루이즈, 휴고 아라나, 페트리샤 콘트라스
정보
시대극, 드라마 | 아르헨티나 | 112 분 | 198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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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푸엔조Luis Puenzo 감독의 영화 <오피셜스토리La Historia Oficial>(1985)는 아르헨티나의 숨기고 싶은 역사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다룬다. <오피셜 스토리>는 가려졌던 아르헨티나 역사의 공백, 은폐하고 싶은 아르헨티나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폭로함으로써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라틴아메리카 작품으로는 최초로 1986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고, 11LA 비평가 협회상 [1985, 외국어영화상], 50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1985, 여우주연상], 38회 칸영화제 [1985,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이 영화가 폭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더러운 전쟁Dirty War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의 민주세력 탄압을 일컫는 말. 아르헨티나는 1976년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호르헤 비델라의 공포정치로 77년부터 이후 약 3년간 치욕적인 '더러운 전쟁'을 겪었다. 이 전쟁은 좌익게릴라 척결을 명분으로 반대세력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이 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수는 아르헨티나 당국의 추정만으로도 약 81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유가족측은 이와 달리 그 수가 253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 (시사상식사전, 2013)


아르헨티나는1955년부터 1983년까지 약 30년 동안 모두 여덟 차례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할 정도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지만, 그 중에서도 호르헤 비델라를 필두로 한 1976324일의 쿠데타 세력의 통치는 매우 잔혹하고 억압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군사정권은 만성적인 정치적 위기와 아르헨티나 병이라고까지 불리던 반복적인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국가 재건 과정'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자신들의 정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납치고문살해하거나 실종자로 만들었다. 군사정권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노동계급과 청년층을 탄압하기 위해 그들은 군대경찰, 정보기관 등 공식적인 국가기구를 총동원했으며, 아르헨티나 반공 동맹으로 대표되는 극우 무장 세력까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였다. 탄압 대상과 형태도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어, 활동가 본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납치고문구타암살폭탄 테러재산 강탈 등의 범죄행위들이 끊임없이 자행되었으며, 심지어는 영유아 탈취라는 희대의 범죄 행위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 시기 실종된 숫자는 아르헨티나 당국 추산 1만 명, 유가족 추산 3만 명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다. ‘국가 재건 과정더러운 전쟁이라는 용어 차이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선택되는 기억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오피셜스토리>더러운 전쟁의 양상을 역사책처럼 읽어주는 방식이 아닌, 주인공 앨리샤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로서 제시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제목에서부터 암시하듯. 공식적 기록과 비공식적 기억, 승자의 기록과 패자의 기억으로 나뉠 수 있는 즉, 생각보다 중립적이지 않은 역사의 성격에 대해 묻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기억기록이라는 단어를 노출시켜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기억과 기록 그리고 역사의 의미와 성질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기억과 기록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기억 없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사람의 기억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인 주인공 앨리샤는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앨리샤의 역사에 대한 관점인 것이다. 역사 선생님으로서 역사를 긍정하고 삶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그녀는 영화 초반에서 원칙과 근거를 강조하며, 구전되는 비공식적 역사-주로 저항과 진보의 역사-보다는 기록된 공식적 역사를 강하게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저항과 진보의 역사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발언은 불편할 따름이다. 보수적이냐고 묻는 어떤 이의 물음도, 진보적 사관을 가진 문학 선생님의 말들도, 역사 시간에 자꾸만 저항세력의 영웅적 이야기를 늘어놓는 학생들의 반항심도. 오랜만에 만난 가장 친한 동창생 안나의 이야기 역시 가슴 아프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은 어떤 것이다.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로 납치되어 엄청난 고문을 견뎌냈다는 안나의 고백에 앨리샤는 눈물을 흘리다가도 이내 냉정한 얼굴로 돌아서며 말한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28)

 

사실 앨리샤가 더러운 전쟁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에는 조금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녀의 사랑스런 딸 가비가 입양아이기 때문이다. 임신한 채 수용소에 끌려온 여자들의 아이들은 질문하지 않는 자들에게 얼마간의 가격으로 팔려나갔다는, 너무도 비극적인 이야기는 앨리샤로 하여금 가비 역시 그러한 비극의 주인공이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안나의 이야기를 듣고 불현 듯 자신이 가비의 출생과 생모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앨리샤의 불편한 진실을 향한 여정은 시작된다. 이 여정을 시작하게 한 안나의 이야기 역시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안나로부터 앨리샤에게 구전된 기억 즉 비공식적 기억이다. 이는 기억과 기록, 역사에 대한 앨리샤의 태도 변화를 암시한다.

 

가비 : (노래)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서 세 걸음 만에 나는 길을 잃었네. ”

의사 : “제가 말했던 거 기억하세요?”(59)

앨리샤 : “기억해?”(62)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비의 출생에 관한 흔적-가비의 베넷저고리-을 다시 들춰보면서 앨리샤는 가비의 친모가 가비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정정하고 자신이 누군가의 아이를 빼앗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병원과 행정기록관 등 어느 곳에 가도 가비의 출생에 관한 기록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며 의구심을 쌓아가던 중 신부님과의 고해성사에서 기억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 하나를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앨리샤의 어린 시절, 그녀의 조부모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짜 편지까지 써가며 조부모의 죽음으로부터 격리시켰고, 앨리샤는 성인이 되어 조부모의 무덤을 보고서야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처럼 많은 순간 기억은 구성되고 너무도 쉽게 조작된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다분히 의식적인 영역인 것이다.



기억의 허점에 대해 깨닫게 된 앨리샤는 기록을 모으고, 자신도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비의 출생카드와 주병원의 기록, 담당의사의 진술을 토대로 증거들을 모아 자신의 수첩에 꼼꼼히 기록하고, 이와 일치하는 더러운 전쟁의 실종자 기록을 대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매주 시내 광장에서 시위를 열며 더러운 전쟁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5월 광장 어머니회를 찾아가게 되고, 결국에는 가비의 친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가비와 똑 닮은 얼굴을 한 딸을 잃은 중년의 여성을.

 

이로써, 참혹한 과거의 제 3자이자 동시에 방관자였던 앨리샤는 이제 더러운 전쟁의 한복판에 위치하게 된다.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외면했던 아르헨티나의 불결한 과거에서 자신이 자유롭지 않음을, 자신이 그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절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영화는 불완전한 기억과 기록의 사이에서 진실에 다가서는 힘은,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알고자하는 직접적인 행동과 용기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혹한 과거의 고통이 현재도 지속되고 있음을 앨리샤의 관점을 통해 보여준다.

 

 

 

역사와 현재

 

더러운 전쟁의 고통이 현재도 지속되고 있고, 아르헨티나의 모든 국민과 관련되어있다는 영화의 강변은 앨리샤의 갈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상징된다. 이 모든 갈등의 시작점이 되는 딸 가비의 존재와 가비의 입양은, 앨리샤의 남편 로베르토가 가비의 생일 선물로 아기 인형을 사오면서 갈등으로 촉발된다. 귀여운 아기 인형을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이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변하는 앨리샤의 얼굴에서 인형이 상징하는 아이 입양, 다른 말로 영유아 탈취의 메타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진짜 같은아기 인형은 가비의 방에서 가비의 돌봄을 받고 함께 잠들면서 평온한 삶을 보낸다. 그러던 중 가비의 친구들이 장난감 총을 들고 군인 놀이를 한다며 가비의 방으로 쳐들어와 방을 뒤지고 총을 난사하는 순간 가비의 방은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던 이들의 공간과 명백히 오버랩 된다. 개인의 사적 공간에 침입하는 무장된 공권력. 공포에 질린 비명과 쉽게 진정되지 않는 울음을 터뜨리는 가비를 달래며 그 순간에서야 앨리샤는 안나의 고통을 떠올렸을까. 영문도 모른 채 집에 침입한 이들에게 사지를 붙들려 끌려간 안나의 공포에 대하여.

 

지속되는 참혹한 역사의 상징은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엔딩 시퀀스에서 극대화된다. 가비의 친할머니를 집으로 데려온 앨리샤에게 강하게 반발하며 외면하려던 로베르토는 가비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폭주하며 가비를 어떻게 한 거냐며 앨리샤에게 무참한 폭력을 행사한다. 현재의 중심세력-전통 세력과 구별되며 군부 쿠데타에 영합하여 높은 지위를 누리는 세력-을 대변하는 로베르토의 이러한 폭력행위는 신군부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소위 불순분자들에게 가해졌던 더러운 전쟁의 참혹함의 전복된 이미지를 가진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갖게 될 광란의 상태,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광기어린 불안감을 역사의 가해자인 로베르토를 통해 역설적으로 분출시킴으로써, 영유아 탈취라는, ‘더러운 전쟁이 자행한 패륜적 행위의 비도덕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앨리샤가 로베르토에게 남기는 한 마디는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듯 로베르토와 관객의 가슴에 쐐기처럼 박힌다.

 


끔찍하죠? 자기 딸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106)

 

앨리샤의 이 한마디는 관객이 가질 수 있는 작은 의문점까지 해소시킨다. 앨리샤는 왜 굳이 가비의 출생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걸까? 저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돌려주는 게 모두에게 행복한 일인 걸까? 영화를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가족과, 어쩌면 당사자인 가비의 행복까지 위험에 빠뜨리면서 너무 이상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현실적인 의문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베르토의 폭주와 앨리샤의 감정이입을 목격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러운 전쟁의 참혹함과 반인륜적 성격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앨리샤의 고통스런 선택은 일종의 과거 청산이 되는 셈이다. 수화기 너머로 가비의 목소리를 들으며 앨리샤와 이별하는 로베르토의 눈물에서 그 역시 앨리샤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한 것이 아닐까,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더러운 전쟁의 고통은 실종자와 그 가족뿐 아니라 부모로부터 떨어져 어디에선가 살아가고 있을 어린 자녀들과 아이들의 새로운 부모, 역사의 가해자와 침묵의 동조자들, 이웃들 모두에게 상흔으로 남아 현재의 아르헨티나를 구성하고 있다. 관객은 기록된 공식의 역사를 넘어선 진실한 치욕으로서의 역사가 정립되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오피셜 스토리>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The sacred cry. Freedom, Freedom, Freedom. Hear the sounds of broken chainssee noble equality enthroned. Their dignified throne was unveiled. By the United Province of the South. And the world’s free men answer: Here’s to the great Argentine people.”


<오피셜 스토리>의 도입부는 아르헨티나의 국가로 시작된다. 아르헨티나 국가는 1810년의 독립혁명의 신성한 가치인 자유를 국가의 정신으로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부르짖는데, 과연 오늘의 아르헨티나에서 자유는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국가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과 우중충한 하늘, 그리고 이에 겹쳐지는 무미건조한 얼굴들은 더러운 전쟁이라는 치욕스런 과거로 더럽혀진 자유의 신성성을 상기시킨다.

이 영화의 제목인 ‘La historia oficial’이 함축적으로 말하듯 공식적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비공식적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종이 한 장의 차이일 수 있다. 엘리샤에게 있어 비공식이었던 기억이 공식 기록보다 더욱 진실성을 가지는 것처럼, 역사는 변화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해석의 대상이며, 정형화된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재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엔 은폐되고 삭제된 아픈 진실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역사는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 밀란 쿤데라

 

역사의 무조건적인 낙관을 배제할 때,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은 언제까지나 수면 아래 묻힌 채로 혹은 어느 순간 완전히 삭제되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형되고 은폐된 공식적역사에 맞서 진실을 폭로하고 비공식적 역사를 공식적 역사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분투하는 오월광장어머니회와 루이스 푸엔조 감독을 비롯한 용기 있는 자들의 노력이 있기에 더러운 전쟁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리 잡고 아르헨티나의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역사는 기억이다.”라는 앨리샤의 첫 마디가 인상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