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2 <멜랑콜리아>: 숨은 그림 찾기

 


멜랑콜리아 (2012)

Melancholia 
7.7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커스틴 던스트, 샬롯 갱스부르, 키퍼 서덜랜드, 샬롯 램플링, 존 허트
정보
미스터리, 판타지 |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 135 분 | 2012-05-17
다운로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1‘JUSTIN’ 후반부에서 주인공 저스틴(커스틴 던스트 분)의 우울감과 불안정함은 극도로 치닫는다. 이 때 저스틴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형부 존(키퍼 서덜랜드 분)의 서재 선반에 진열되어있던 그림들을 모조리 갈아치우는 행동을 취한다.

 

 

보는 사람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저스틴의 행동, 정신없이 흔들리는 카메라의 움직임, 그리고 순식간에 눈에 들어왔다 금세 사라지는 여러 작품들. 잠깐의 장면이지만 이 그림들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준비해보았다. <멜랑콜리아>에 숨은 그림 찾기.

 

 

 

기존의 질서: 말레비치와 절대주의 추상

우선, 선반에 놓여있던 작품들을 보자. 저스틴의 공격을 받기 전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림들 말이다. 쭉 훑어보면, 원래 선반에 펼쳐져있던 작품들은 주로 추상화들로, 특히 절대주의 추상으로 잘 알려진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들이 대거 눈에 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이차원의 자화상>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원>, 1920년대

말레비치, 카지미르 세베리니 비치Malevich Kazimir Severinivich(1878-1935)는 러시아의 화가이자 시각예술가, 극 디자이너, 미술이론가로서 칸딘스키, 몬드리안과 함께 추상미술을 이끈 화가로 거론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추상 회화로의 이행기에 러시아는 칸딘스키와 말레비치를 앞세워 새로운 표현양식을 창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칸딘스키가 캔버스 위에 색과 리듬으로 표현주의 추상을 실험하면서 비대상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면, 말레비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대주의Suprematism 추상이라는 경향을 선도한다.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추상 그 자체-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세계의 느낌을 전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다. 말레비치는 절대주의 추상이 가장 순수한 감정과 지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열렬히 믿었다.

그럼 이쯤에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연작들을 살펴보자. 절대주의 연작들은 감상자들로 하여금 예술의 초개인적인 본질로서 절대를 달성하게 한다는 생각에 의해 고무되던 말레비치의 대표적인 시기를 잘 드러낸다. 채색된 기하학적 형태-평면, 사각형, 십자-들의 역동적인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이 구성들은 우주의 무한성을 축도한 배경공간에서 떠다닌다.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현실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는 없다. 말레비치는 순수한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여 보편적 미술언어를 창조한다는 자신의 꿈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명료한 형태로 시선을 잡아끄는 <검은 원>(1920년대)은 원이라는 기초적 기하학적 형태로 보편적인 미술 체계, 즉 현실의 자연과는 전적으로 무관한 시공간적 관계에 근거한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겠다는 작가의 자기주장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형태의 절대적인 순수성과 이것들의 구성인 공식들을 강조하며 신성시했던 말레비치는 원과 정방형은 인간의 독창력과 관련된 가장 간결한 형태이며 검정과 빨강은 색과 형태의 순수한 강도에 있어서 최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스틴에게 선택된작품들

그렇다면 저스틴에게 선택된 작품들은 어떨까?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추상을 엎고 자리를 꿰찬 새로운 그림들.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 <눈 속의 사냥꾼>, 1565.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 <게으름뱅이의 천국>, 1567

 

16세기 플랑드르 최고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피테르 브뢰헬은 평범한 사람들-주로 농민들-의 일상과 네덜란드의 자연과 풍습, 속담 등을 따뜻하고 재치 있게,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예리한 터치로 그려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각광받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상어>에서도 그의 작품 <이카루스의 추락>(1555-8)<바벨탑>(1563)이 주제의식을 암시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영화 <멜랑콜리아>에 등장하는 브뢰헬의 작품은 <눈 속의 사냥꾼><게으름뱅이의 천국>. 먼저 계절 연작의 하나인 <눈 속의 사냥꾼>1월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며, 겨울적인 색채로 깊은 겨울의 추위를 나타낸다. 플랑드르 전원의 평범한 경관의 세세한 묘사와 함께 알프스 산맥의 웅장함을 결합시킨 이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역시 사람들이다. 그는 사람들의 노동의 변화가 아닌 색채의 변화로서 계절의 순환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계절 연작을 구성했다. 날씨는 매우 춥지만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혹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게으름뱅이의 천국>은 어떨까. 이 그림 안에서 거위, 돼지 같은 동물들은 모두 구워진 채로 돌아다니고, 지붕 위에서는 팬케이크와 타르트가 자라며, 울타리는 통통한 소시지로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배가 부른 몸과 얼굴로 나태함을 한껏 드러낸다. 돈도 노력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쾌락의 세계는 먹을 것, 마실 것이 풍성한 땅으로 기술된 나태한 자의 천국이라는 같은 제목의 네덜란드 시와 관련돼 보인다. 일상에 지친 우리가 꿈꾸는 파라다이스!

 

 

밀레이 존 에버릿Millais John Everett <나무꾼의 딸>, 1851

밀레이 존 에버릿Millais John Everett <오필리아>, 1851-2

19세기 라파엘전파의 일원인 밀레이 존 에버릿의 작품 두 점이다. <멜랑콜리아>의 포스터의 모티브였던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그리려는 밀레이의 노력이 나타난 작품으로, 연인과 신에게 버림받아 평정을 잃어 물에 빠진 소녀를 주제로 한 첫 번째 그림이 되었다. <나무꾼의 딸>은 신분이 다른 소년과 소녀가 있고 신분이 높은 소년이 소녀에게 산딸기를 건네주는 순간, 그리고 소녀가 그것을 받기 위해 손을 내미는 순간- 그러니까 예정된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두 그림 모두 너무도 아름다운 배경의 자연과 대비되는 인물의 불길한 표정이 주는 불안감과 우울함을 특징으로 한다. <오필리아>에 등장하는 꽃들의 의미-제비꽃의 신의, 팬지의 허무한 사랑, 수선화의 깨진 희망, 양귀비의 죽음, 물망초의 잊지 말라는 메시지-또한 저스틴의 우울과 불안과 엮여 강조된다.

 

한스 홀바인(hans hollbein), <게오르그 기체의 초상>, 1532

홀바인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능숙한 솜씨를 보인다. 이 그림 역시 유리와 융단, 양피지 등의 질감이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다. 홀바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물건들은 인물의 직업과 성향을 알려줌과 동시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재현된 것이다. 꽃다발은 사랑과 정절, 순수, 겸손 등을 상징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와 시들어가는 꽃, 흘러가는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 들은 삶을 경솔히 받아들이지 말 것을 경고한다.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1609-10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알수록 궁금한 이 그림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머리가 잘려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골리앗의 얼굴이 (이마의 상처로 미루어보아) 바로 카라바조 자신이라는 점이다. 왼쪽 눈은 아직 마지막 생명의 기운이 남아있지만 오른쪽 눈은 흐릿하고 시선이 부재함으로써 죽음을 예고한다. 그의 말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그가 육감적으로 느꼈을 절망을 증언한 것이자, 참수로써 지난 삶에 대한 자멸과 자책, 죄의식, 자학의 심리와 결부된 것으로 평가된다. 다윗의 얼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다윗이 어린 카라바조이든 그의 연인이든, 악당 골리앗의 머리를 움켜진 다윗의 눈에 서린 연민의 빛에서 더욱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의 교차를 목격할 수 있다.

 

카르 힐(Carl Fredrik Hill), <무제/crying dear>, 1900년경

스웨덴의 화가 카를 힐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표현주의에 가까운 예리한 스타일의 풍경화와 어둡고 절망적인 환상품의 스케치를 남겨놓았다. 그는 말년에 정신병을 앓다가 사망했는데, 그의 정신적 불안과 혼란스러운 자아는 그림에도 고스란히 표현된다. 나무를 연구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기를 즐겼던 카르 힐은 정신병을 앓으면서 더욱 과장되고 격렬한 형태의 나뭇가지들을 그려내기에 이르는데, 이 그림이 바로 그러한 사례다. 울부짖는 사슴을 쉽게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카르 힐의 과거 작품들을 떠올릴 때 어쩌면 나무 기둥과 나뭇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무가 사슴이 되고 내가 나무가 되는 혼란스러운 상상을 상상해본다.

 

 

 

대체의 의미: 추상에서 실제로

이러한 대체의 의미는 무엇일까?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추상에서 브뤼헬, 밀레이, 홀바인, 카라바조, 카를 힐에 이르는 구상 회화로의 이동의 의미. 나는, “현실에의 주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새롭고 추상적인 세계를 찾으려는 현대인의 고상한 취향에 대한 직설적인 반발.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의 실상과 우울한 자아, 예견된 종말을 준비하는 자세와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 그리고 현실과의 괴리. 나의 우울과 혼란스러운 자아, 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애써 배제하는 것이 아니니까. 불안과 우울을 인정할 때 비로소 편해질 수 있으니까. 나는 우울하다. 우리는 불안하다. 현실을 인정하라. 어쩌면 처음부터 우리의 행성이 멜랑콜리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