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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오늘 이야기할 연극은 예술의 전당에서 올린 '2014 유망 예술가 초청공연'으로 뽑힌, Theatre201의 <닫힌 문>이다. 닫힌 문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닫힌 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닫힌 문의 너머를 들여다본다.
<닫힌 문>에서 ‘문’은 다다를 수 없는 또다른 삶에의 통로이자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절벽으로 내몰아가는 벽이 된다. 영산과 은호가 돈을 훔치기 위해 커다란 대문을 따는 첫 장면을 시작으로, 멀리뛰기를 연습하는 은호의 모습 위로 조명처리를 함으로써 문에서 또 다른 문을 향해 뛰어들고 있는 것처럼 연출됐던 장면, 꿈속에서 닫힌 문들이 끝없이 재배열되어 결국 은호를 다시 어두운 방 안으로 가두어버리는 장면 등등, 극은 ‘닫힌 문’이라는 은유를 효과적으로, 세련되게 시각화해냈다.
무대와 조명 사용이 인상 깊었다. 텅 빈 무대는 잘 쓰지 않으면 공허하고 광활할 뿐이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이명일 연출은 거의 비어있는 무대에 조명과 몇 개의 문만으로 여러 공간을 성공적으로 창조해냈다(조명밖에 안 보였다는 평이 있었을 정도!). 거기에 골목길, 비좁은 방 안, 공터 등등 계속 달라지는 공간을 배우들이 인식하고 연기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텅 빈 무대에 풍성하고 입체적인 공간감을 불어넣었다.
암전 사이사이를 우화적인 영상으로 채운 것도 흥미로운 시도였다. 갈수록 어두워지고 쳐지는 극의 무거운 분위기를 한결 덜었다. 하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토끼의 의미가 아직도 불분명하게 여겨질뿐더러, 영상 자체의 내러티브가 다소 불연속적인 부분들이 있어 종종 본 극의 몰입을 방해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극은 사채업자들로부터 벗어난 선희를, 고시에 합격한 은호를, 고시텔을 벗어나는 양씨를 보여주는 대신 오랜 세월 전 고3이 된 은호와 영산의 꿈에 부풀어있던 과거를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 문, 그 문이 만드는 절망감. 열어도 열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이 문들을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할까? 어줍잖은 희망을 가졌다가 더 아프게 무너질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마냥 절망에 빠져있을 것인가? 극은 이 질문에 대한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고 있는 듯하다. 그 아래 깔린 작가의 시선이 궁금했다. 비록 과거장면이라도 은호와 영산의 젊고 싱싱한 희망을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정말 이명일 씨는 절망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야기는 너무 쉽게 진부해졌다. 소외와 절망 속에서 인물들은 나름대로 각자 방황하거나 반항하거나 희망을 가지지만 그러한 캐릭터 설정과 이들이 빚는 관계의 구도마저 너무나 전형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생동감있던 인물들은 너무 힘없이 절망 앞에 무릎꿇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사회의 그늘로 밀려나게 되었는지, 왜 이들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는지까지는 잘 보여주었을지 몰라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않는다. 누구도 쉽게 답을 내줄 수 없는 주제인 것을 잘 알지만, 극은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우회하는 길을 택했고, 그러자 닫힌 문 너머에 있었을 희망과 사람다운 삶, 그들이 꿈꾸었을 것들은 닫힌 문의 그림자에 쉬이 잠식당했다. 이야기가 진부했던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 점이 못내 아쉬웠다. 주제가 아무리 절망이라고 한들 결국은 연극이라는 것이 다 사람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인데.
'닫힌 문'이 아니라 그냥 '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닫힌 문'이라는 말 자체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더라면. 열리지 않는 닫힌 문의 이야기와, 그 문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을텐데. 그 작은 차이가 많은 것들을 달리 했을지도 모르는데. 하나의 문이 닫혔을 때 또다른 문이 열렸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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