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2012, 이윤택 연출의 [궁리]를 보았다.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이야기에 압도된 가운데 극 전체를 꿰뚫는 연출의 시선이 상당히 선명하게 느껴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장영실을 역사에서 사라진 희생자로 조명함으로써 권력의 흐름에 따라 기록되는 역사, 승자에 의해 재단되는 그 속성을 드러냈다.

반면 [혜경궁 홍씨]에서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기보다 <한중록>에 의거하여 혜경궁 홍씨라는 인물을 생생히 되살리는 데 힘썼다. 역사의 주변자에 불과했던 혜경궁 홍씨의 얼굴 위로 자신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배우 김소희를 덧씌워 다층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무대의 중심에 세웠다. [혜경궁 홍씨]를 들여다보자.





혜경궁 홍씨는 누구인가?

세자비에서 정조의 어머니로, 그리고 순조의 할머니로. 비록 중전과 대비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그녀가 앉은 곳은 그 못지않은 막강한 권력이 있는 자리였다. 적어도 표면적인 역사에서는 그랬다. 그녀의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 승자의 역사에서는.

홍씨가 써내려간 <한중록>은 역사라기보다 기구한 인생을 살아간 한 여인의 회고록에 가깝다. 8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그녀가 감내해야 했던 수모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남편은 시아버지의 미움을 사 뒤주 속에서 질식사했고, 살아남아 왕권을 잡은 아들 정조는 홍씨의 친정을 철저히 몰살했다. 정순왕후가 정조의 사후에 수렴청정을 하면서 남은 홍씨 일족을 더욱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이 모든 궁중의 피바람은 겨우 열 살에 어린 세자의 비로 궁에 들어온 한 여성이 홀로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손자 순조가 왕좌에 오른 후에야 그녀는 <한중록>을 통해 자신과 친정의 결백을 밝히며 지나온 삶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인물로 풀어가는 역사극

<한중록>에서 뻗어나와 배우 김소희에 의해 재현되는 홍씨의 얼굴은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옷을 훌렁훌렁 벗고 피부병으로 가려운 몸을 긁으려 소똥도 바르고 바닥에도 누워 보고 기둥에도 몸을 비비는 여인. 그러다 마침내 외로움과 서러움에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이 늙은 여인네를 두고 누가 임금의 위엄 있는 어머니라고 생각할까. 이 약한 여성을 휘감는 극의 중심사건 사도세자의 죽음 은 그래서 더욱 비정하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철저히 사건의 중심에서 배제된 그녀의 목소리를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계속 이어가는 것으로 지나온 삶의 정당성을 짙게 호소한다. [혜경궁 홍씨]는 그 질긴 싸움의 기록이다.

이미 예상되어 있는 파국과, 그 파국의 변두리에 있는 인물에 무게중심을 두는 강수를 살리기 위해 이윤택은 스토리텔링을 들어내는 대신 인물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러다보니 역사의 순차적 시간성 자체를 많이 떠냈다. 홍씨가 바라본 사건은 하룻밤의 꿈으로 압축되어 보여지고, 홍씨는 열 살배기 소녀와 환갑의 노인 사이를 넘나들며 사건을 전한다. 얽히고 설킨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인물과 인물간의 깊은 감정과 관계의 골이 뚜렷하게 떠오르고 홍씨는 무대의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이를 모두 목격한다. 그 속에서 고뇌하고 절망하는 홍씨의 모습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고 안타깝게 그려진다.




 

패자의 역습

이윤택은 <한중록>을 두고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패자의 역습이라고 잘라 말한다. 극중에서 이미지화되는 사건은 그녀를 중심으로 돌면서도 마치 같은 자성을 띤 극인 양 그녀를 튕겨내고 철저하게 그녀를 관찰자로 만든다. 영조와 친정에서 각자 그녀에게 전해주는 책자는 이를 명백하게 드러내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그녀의 위치를 못박고 주변자를 자처하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에는 끝내 살아남아 붓을 쥐고 글을 써내려가는 홍씨의 모습은 이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윤택은 혜경궁 홍씨가 평생에 걸쳐 긍정하려 했던 자신의 당위성에 주목하고 이를 한 여성이 선언하는 주체성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역사적 판단을 개입시키는 대신 그녀의 삶 자체를 통해 극 전체에 묵묵한 물음을 실었다. 역사라는 껍데기가 승자의 전리품이라고 해서, 그에 대항하지 않을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혜경궁 홍씨는 박제된 역사 속 인물에서 빠져나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윤택은 [혜경궁 홍씨]의 작의를 밝히며 지금껏 다루어왔던 사회적 정의를 모두 빼고 인간의 심리라는 개인적 담론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거대한 사회적 담론이 드러났다고. 그는 한중록에 의거한 혜경궁 홍씨를 충실하게 복원했고, 극중 드러나는 비극에 있어서 어떠한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이윤택은 역사극이라는 선입견을 갖지 말고 극을 볼 것을 요청한다. 범시대적인 어떤 개인의 드라마, 역사의 한켠을 재현하는 드라마라기보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에 대한 드라마로 보아달라고. 그 기저에 깔리는 그의 질문은 지금까지 그가 작품에서 제시해왔던 방향성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또는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라면 그저 함구할 것인가?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신의 삶을 짓뭉개는 것들을 보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