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6. 현빈, 탕웨이의 <만추>

- 사랑은 충돌의 몽타주

 

 

  '영화같다'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영화같다'고 말한다. 과연 영화같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는 것과 쇼트와 쇼트가 만나는 것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순간 묘한 황홀함을 느끼게 되는 걸까. 오늘 룽의 Ex-MovieFriend는 사랑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사랑이 되며, 황홀한 입맞춤을 하는 영화. 여미는 옷깃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안개같은 영화. 김태용 감독, 현빈 탕웨이 주연의 <만추>이다.  

 

  <만추>의 줄거리는 [감옥에 있던 여자가 며칠간 나온다. 나와서 한 남자를 만난다. 헤어지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로 정리할 수 있다. 운명적이고 강렬한 남녀의 사랑이 보여질 것 같지만, 영화는 덤덤하다. 특히 여자주인공 애나의 표정은 영화 내내 텅 빈 무표정이다. <만추>가 보여주는 영화적 순간은 그녀의 무표정이 다른 느낌과 다른 표정으로 다가올 때 황홀하게 체험된다.

 

 

1. 무표정이 표정이 되는 순간

 

 

  애나는 영화 내내 거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환하게 웃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비슷비슷한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관객은 마치 쿨레쇼프의 실험처럼 애나의 무표정에서 각기 다른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버스에서 처음 보는 훈이 애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애나는 웃지도 않고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는다. 그저 무표정하다. 하지만 관객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거의 본능적으로 투사하여 애나의 감정을 읽어낸다. 이때의 무표정은 황당함 혹은 경계심 정도로 읽힐 수 있다. 또한 애나의 첫사랑인 왕징과 애나가 만나는 시퀀스에서 보인 그녀의 무표정은 원망과 체념, 후회와 미련을 담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훈과 헤어지려 할 때 버스에 탄 애나는 무표정하게 창 밖의 훈을 애써 무시한다. 이때의 애나의 무표정은 안타까움, 헤어지기 싫음, 체념 혹은 사랑스러움 등의 감정으로 느껴진다. 모아놓고 보면 각 장면의 애나의 표정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각기 다른 쇼트가 붙어 작용함으로써 애나의 표정은 회의문자처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또한 관객에 의해 다시 의미화 되어 이제 무표정한 애나는 천의 얼굴의 애나가 된다.

 

  훈과 애나는 무표정과 표정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대화를 나눈다. 애나가 훈에게 왜 자신에게 돈을 빌렸냐고 묻자 훈은 애나가 웃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에 애나는 자신은 웃지 않았다고 답하고 훈은 분명히 웃었다고 응하며 실랑이를 벌인다. 이 장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몽타주에 대한 은유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 애나는 웃지 않았다. 비유적인 이야기지만, 훈이 가지고 있던 마음의 쇼트가 애나의 무표정과 몽타주를 이룬 결과의 해석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사랑은 영화같다. 무표정이 표정이 되는 순간. <만추>의 영화적 순간이다.

 

2. 마음으로 와 닿는 충돌의 순간

 

 

  <만추>에서 가장 이질적인 장면을 꼽아보라 하면 관객들은 대부분 곱슬머리 남자와 금발의 여자가 춤추는 장면을 꼽을 것이다. 이 장면은 영화가 가지고 있던 서사적 맥락과 사실적인 화면과는 전혀 다르게 환상적이며 이질적이다. ➀애나와 훈이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과 ➁애나와 훈이 남녀의 모습을 보고 더빙하듯 이야기하는 장면 뒤에 ➂갑작스럽게 뒤 돌아선 여자를 남자가 좇아가는 장면, 그리고 ➃두 남녀가 춤을 추는 장면이 이어진다. ➄그 다음은 뛰어가는 애나와 애나를 좇아가는 훈의 쇼트가 이어진다. 이 장면들의 연결은 매우 부자연스러우며 삽입된 남녀의 춤 쇼트는 상당히 길다. 삽입 장면은 다분한 감독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에이젠슈테인은 견인요소란 서커스의 볼거리, 뮤직홀의 노래들, 롤러코스터 등과 같이 플롯에 복속되지 않은 개별적으로 정점을 갖는 흥미진진한 순간들이라고 했다. 삽입된 남녀의 춤 쇼트는 에이젠슈테인이 말했던 견인요소와 꼭 맞아 떨어진다. 삽입된 장면은 서사와는 개별적이며 흥미진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가 말한 견인요소로서의 몽타주(montage of attraction)이다. 또한, 일련의 장면들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결이 아닌 충돌(collision)이다. 쇼트와 쇼트가 충돌하면서 관객은 충격을 체험하고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의미가 생성된다.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파업>(1925)에서 제철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짜르의 진압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의 이미지와 병치한 것에서도 쇼트의 충돌과 새로운 의미생성이 드러난다.

 

  ③과 ⑤번 장면에서 보이는 '같은 대사와 같은 상황'은 쇼트의 연결을 더욱 긴밀하게 만든다. 앞뒤 장면과의 병치로 인해 삽입된 남녀의 춤 장면은 훈과 애나의 앞으로의 관계에 대한 암시적 의미와 애나의 욕망 혹은 속마음이라는 의미를 생성하게 된다. 애나는 이 충돌적 장면 이후 훈에게 자신은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면 교도소로 돌아가야 한다고 고백한다. 또, 중국어로 말하긴 하지만 훈에게 자신의 모든 사정과 속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➀에서 ➄로 연결되는 장면들은 인물의 심리와 행동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형상화된다. 

 

  재미있는 장면은 훈과 애나가 멀리 보이는 남녀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행동에 맞추어 더빙하듯 목소리를 연기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이뤄지는 남녀의 대화와 그들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훈과 애나에 의해 남녀의 행동이 조작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영화의 이미지에 자신의 생각을 반영시키는 '감독 혹은 관객'에 대한 은유로 보이기도 한다. 몽타주가 본질적으로 감독의 생각이 투영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➃번 장면에서 보이듯, 남녀가 춤추는 장면을 극장에서 영화 보듯이 애나와 훈이 보고 있는데 이는 '영화와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 대한 메타적 은유로 보인다. 훈과 애나는 한 편의 영화를 함께 본 뒤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확장하여 본다면, 우리가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고 나오는 행위는 [일상 - 영화 - 일상 ]이라는 나의 삶과는 전혀 이질적인 어떤 순간이 삽입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충돌적 몽타주가 된다. 이렇게 삶과 영화도 몽타주 된다.

 

 

3. 핸드폰과 시계의 상징

 

  

  <만추>에 등장하는 상징적 소재는 애나의 핸드폰과 훈의 시계가 있다. 이 역시 몽타주에 의해 의미가 더욱 상징화된다. 먼저 애나의 핸드폰을 살펴보자. 교도소에서 외출을 허락받은 애나는 수시로 위치를 확인받기 위해 핸드폰을 지급받는다. 애나가 시애틀에 도착해서 새 옷과 귀걸이를 사서 갈아입고 달라진 모습으로 거리에 나오는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애나는 허겁지겁 핸드폰을 찾기 위해 가방과 옷을 뒤지고 교도소로부터 온 전화는 애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복귀 시간을 재차 강조한다. 옷과 귀걸이를 사는 것은 7년 만에 밖에 나온 애나의 첫 번째로 발현된 욕망이었다. 그러나 이는 지급받은 핸드폰으로 인해 손쉽게 저지된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애나는 산 옷과 귀걸이를 버리고 원래 옷으로 갈아입는다. 여기서 핸드폰은 확장된 감시와 감옥, 유한한 시간,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 등 애나의 욕망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상징성을 갖게 된다.

 

  훈은 애나에게 차비를 빌리고 대가로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준다. 훈과 시간을 보내고 난 뒤 기다리라는 훈의 말에도 애나는 시계만 침대 위에 놓고는 사라진다. 교도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함께 있던 훈이 사라지고 난 뒤 애나는 자신의 손목에 시계가 채워져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시계는 [훈 - 애나 - 훈 - 애나]의 순서로 주고받아 진다. 최종적으로 시계를 받은 애나는 2년 뒤 마지막 장면에서 훈과 헤어진 휴게소에서 훈을 기다린다. 시계는 시간을 상징한다. 애나와 훈은 서로 시간을 주고받는다. 여기서의 시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 소통하는 시간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엔딩신에서 애나의 옅은 미소를 생각해보면 훈은 죽어있던 애나의 시간에 새로운 시간을 선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핸드폰과 시계는 영화의 서사적 흐름에 의해 의미화 되며 클로즈업 쇼트와 몽타주에 의해 더욱 상징화된다.

 

 

 

  전혀 몰랐던 애나와 훈이 충돌하며 사랑이 되었듯, 사랑이란 그렇게 모르는 두 사람이 충돌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충돌의 몽타주'인 것이 아닐까. 사랑은 충돌의 몽타주이다. 사랑은 영화다.

 

 

 

P. S. 우디 앨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원래 이번 Ex-MovieFreind의 주인공이었는데 사정상 쓰지 못했습니다. 정기 업데이트 날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개봉공지는 예정대로 우디 앨런의 작품을 하겠습니다.

 

※ 우디 앨런의 <로마 위드 러브> 2013년 4월 1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