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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3. 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갱스 오브 뉴욕>
- 뉴욕은 낡지 않는다, 사람만 낡아갈 뿐이다
얼마 전에 정말 오랜만에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했는데 약속장소가 그 아이의 동네여서 더욱 떨렸다. 처음 함께 영화를 보았던 곳(아마 <태극기 휘날리며>였지?), 처음 손을 잡았던 곳(땀이 어찌나 나던지), 그 아이의 집 앞 놀이터(내가 비 맞으면서 기다리던 거 기억하니?), 헤어지기 싫었던 버스정류장(버스로 30분 걸리는 중거리연애였지) 같은 곳이 불쑥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건물과 골목들이 그때 그대로였다. 그 아이도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큰 눈, 하얀 얼굴, 청량한 웃음도 그때 그대로였다(몇 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만 빼고는 말이다…). 그것들을 마주하니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던 추억들이 뽀얗게 먼지처럼 일었다. 그렇게 기억이란 다른 이의 얼굴에도, 어떤 장소에도 묻어있는 것이다(여기까지였으면 아름다웠을 걸, 첫사랑 앞에서 술 취해 진상을…하아).
반대로, 어떤 장소와 함께 삶의 흔적이 사라지기도 한다.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가 전에 없던 거대한 건물을 보았다. 나는 멍청히 서서 전에는 뭐가 있었는지 떠올리느라 한참을 고생했다. 그러니까 거긴 학창시절 공을 차거나 자전거를 타던 넓은 공터였다. 그곳에 이마트와 영화관이라니. 그 매끈한 외관을 보는데 나는 어쩐지 우울하고 먹먹해졌다. 공터와 함께 나의 추억이, 내 생의 한 시절이 완전히 사라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시란 사람들의 거대한 기억저장소인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다는 태생적인 특징 때문에 시간을 그대로 담아내는 기억저장소의 역할을 해왔다. 또 배우와 감독에게도 한 편의 영화는 그들의 한 시절이 담겨있는 소중한 것이다. 오늘 룽의 Ex-MovieFriend는 뉴욕의 19세기를, 또한 감독과 배우의 한 시절을 그대로 저장하고 있는 영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이라는 경이로운 타이틀을 가진 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미소년에서 선 있는 배우로 성장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야심만만한 작품인 바로 <갱스 오브 뉴욕>이다.
일반적으로 뉴욕하면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패션피플, 노란 택시, 높은 마천루 등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풀썩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어린 나에게 뉴스에서 끝없이 리플레이 되던 9·11 테러의 광경은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뉴욕은 나에게 그렇게 각인되었다. 그 다음으로 나에게 강력한 뉴욕의 이미지는 <갱스 오브 뉴욕>에서 왔다.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나는 뉴욕의 쭉 뻗은 골목과 건물을 보면서 어느새 19세기 뉴욕의 질척이는 골목과 개미굴 같은 지하세계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만큼 <갱스 오브 뉴욕>은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영화이다.
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자손으로 뉴욕에서 자랐다. 그는 언젠가 친구의 집에서 본 19C 뉴욕의 갱들에 대한 소설을 읽고 완전히 반해버렸고 이를 영화로 만들고자 결심한다. <갱스 오브 뉴욕>은 그가 30년간 묵혀둔 이야기로, 말하자면 필생의 작품이다(혹은 첫사랑). 그러나 공공연하게 뉴욕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던 마틴 스콜세지가 보여주는 뉴욕은 매끈하고 화려한 미국 자존주의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피와 야만으로 질척이는 아수라장이며 비열한 거리이다. 표면적인 뉴욕의 모습만이 아니라 질곡의 역사까지도 외면하지 않고 껴안는 그의 영화를 보면 뉴욕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느껴진다. 이러한 그의 야심과 애정 때문에 영화는 19C 뉴욕의 건물, 거리, 의상, 관습, 작은 소품들까지 그대로 고증한다. 그 자체로 19C 뉴욕의 기억저장소인 셈이다.
도살자 빌 역할을 맡은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1997년 <더 복서>를 끝으로 이탈리아에서 구두를 만드는데 열중했다. 이후 5년만의 복귀작이 <갱스 오브 뉴욕>이었고,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매순간 탄성을 부른다.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만난 그에게도 <갱스 오브 뉴욕>은 남다른 한 시절이 담긴 영화였을 것이다. 그의 존재감은 뉴욕이라는 배경과 함께 영화의 가장 큰 부분이 된다.
암스테르담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도 <갱스 오브 뉴욕>은 특별했다. 16살에 이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갱스 오브 뉴욕>을 기획중이라는 얘길 들었던 그는 작품에 참여하고자 에이전트를 바꾸기까지 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주연을 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감독뿐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영화와 만나기까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지 영화는 그야말로 세 남자의 야망과 열정이 부딪히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는 때때로 미끄러지고 엇나간 느낌을 주기도 한다(마치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 앞에서 추억과 의욕에 젖어 진상을 피워버린 나처럼).
1846년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에서 뉴욕 토박이들과 아일랜드계 이주민들이 전투를 벌인다.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버지 프리스트 발론(리암 니슨)은 아일랜드 이주민의 수장으로 전투에 참가한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의 아버지는 아들의 눈앞에서 뉴욕토박이의 우두머리인 도살자 빌 더 부처(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살해당한다. 이후 암스테르담은 16년간 소년원에 감금되었다 돌아온다. 그동안 파이브 포인츠의 아일랜드 이주민들은 세력을 잃고, 타협과 복종과 배신으로 각자 나름의 살 방도를 찾아 있었다. 암스테르담은 복수(도살자 빌을 암살하는 것)를 위해 도살자 빌의 수하로 들어가고 신임을 받게 된다. 하지만 동료의 배신으로 모든 것이 들통 나게 되고, 결국 뉴욕토박이 세력과 아일랜드계 이주민 세력 간의 목숨을 건 전투가 다시 한 번 일어나게 된다.
한 편의 대서사시 같은 영화의 큰 스토리는 고전적인 복수극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스토리는 조금 촌스럽고 단편적이다. 또 암스테르담이 복수를 단행하려는 순간은 동료의 배신으로 너무도 허무하게 무력화되고, 마지막 클라이막스 전투장면은 정부군의 저지로 안개 속에서 엉망진창이 되며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방해한다. 때문에 개인의 복수서사에서 쾌감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찜찜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분명 감독의 연출력 미흡이 아닌 미학적 선택이다. 그렇기에 이런 의문이 들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갱들'인가 '뉴욕'인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19세기 뉴욕의 전경이 나올 때만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앵글이 고정되고 시간이 흐르며 뉴욕의 실루엣에 하나 둘 높은 건물들이 더해지고 다리가 놓아지고, 다시 더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는 모습을 보면 확신할 수 있게 된다. <갱스 오브 뉴욕>의 주인공은 '갱들'이 아니라 '뉴욕'이었다는 것을(혹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무덤들에게 받치는 영화임을). 그러니 개인의 서사는 무력화되고 도시는 이를 삼켜버린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암스테르담은 어떻게 복수를 했는가가 아니라 뉴욕은 어떻게 지금의 뉴욕이 되었는가인 것이다.
소설가 김중혁의 단편소설 <크랴샤>는 도시에서 결국엔 스러져가는 사람들과 반면에 무너지고 사라져도 또 다시 세워지는 건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도시는 절대 낡지 않는다. 나만 낡아갈 뿐이다.' 나는 공터 위에 세워진 이마트를 보며 이 문장을 되뇌었고 문득 처연해졌다. 누가 그 시절을 기억이나 할까 싶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암스테르담은 말한다. '인간은 뼈와 피와 시련을 안고 태어난다 하셨던 아버지의 말처럼 당시의 뉴욕은 그렇게 탄생됐다. 그러나 분노의 시대를 관통하며 쓰러져간 우리들에게 그것은 도도한 물살에 씻겨간 소중한 그 무엇과도 같았다. 후세들이 뉴욕을 재건하기 위하여 뭘 했건 우리가 그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어쩌면 도시는 우리의 피와 뼈와 기억을 먹고사는 괴물인지도 모른다. <갱스 오브 뉴욕>은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뉴욕은 낡지 않는다. 사람만 낡아갈 뿐이다.'
(물론, 영화도 낡지 않는다. 사람만 낡아갈 뿐이다.)
P.S. 깜빡했는데, 이 영화는 분명 카메론 디아즈가 가장 예쁘게 나온 영화 중 하나이다.
※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링컨> 3월 14일 개봉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 3월 21일 개봉(심지어 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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