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 -1 <하녀> ; 원작에 대한 새로운 해석_반복을 중심으로(http://seesunblog.tistory.com/31)’, 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 -2 <하녀> : 원작에 대한 새로운 해석_차이를 중심으로(http://seesunblog.tistory.com/36)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글의 편의상 김기영 감독의 <하녀> <하녀>(1960)/원작으로, 임상수 감독의 <하녀> <하녀>(2010)/후작으로 표기했습니다.


하녀 (2010)

The Housemaid 
8.9
감독
김기영
출연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안성기
정보
스릴러 | 한국 | 111 분 | 2010-06-03



하녀 (2010)

The Housemaid 
4.9
감독
임상수
출연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 서우, 박지영
정보
스릴러 | 한국 | 106 분 | 2010-05-13



장장 3편까지 이어지는 이 글의 출발점은 영화 <하녀>(2010) 성격 규정의 논란성이다. 모두가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김기영 감독의 <하녀>의 리메이크라고 명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지만,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원작 <하녀>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선을 해결하기 위해 두 <하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보았고, 이제 그 둘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에 원작original text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개념으로서 린다 허천[각주:1]패러디 이론의 적용을 검토해볼까 한다.

영화 <하녀>(2010)<하녀>(1960)의 패러디 작이라는 주장과 이의 근거가 되는 패러디 이론에 따르면, 두 영화가 제목만 같을 뿐 전혀 다름에도 그 관계를 규정함에 있어 패러디가 아닌 리메이크라는 용어가 선호된 이유는 우리가 패러디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통념; 패러디와 풍자의 혼동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패러디는 풍자 그리고 은유, 모방, 표절 등과 명확한 개념적 차별성을 갖지 못함으로 인해 정의에서부터 지난한 혼동의 역사를 지닌 혼란스러운 개념이다. 따라서 패러디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를 <하녀>(2010)에 적용할 때 두 텍스트 간의 관계는 명백해질 것이며, 이는 <하녀>(2010)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새로운 비평의 틀이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패러디의 개념


조이스의 <율리시즈>20세기의 패러디라고 내가 명명해야 할 범주와 계획에 있어서 차이점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예에 속한다. 등장인물이나 플롯의 차원에서는 호머의 모델과 확장된 의미에서의 유사성이 있지만 이는 아이러닉한 차이점을 가진 유사성이다. <오디세이>는 분명히 형식적인 후경이 되었고 패러디된 작품인 반면 결코 조롱되거나 희화되지는 않는다.[각주:2]


이 부분을 통해 우리가 추출해낼 수 있는, 또한 린다 허천의 서술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패러디의 정의 및 특징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1)차이 및 비평적 거리를 내포한 반복 : 반복은 패러디의 기본 전제가 되는 요소로서, 인지할 수 있는 원작과의 유사성이 없다면 그것은 패러디라 불리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패러디 정의에서 유사성이 아닌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패러디를 모방이나 표절처럼 차이보다 유사성이 강조되는 개념들과 구별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작용한다. 2)패러디는 패러디의 후경後景이 되는 원작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하는 식으로 희생 또는 훼손시키지 않는다. 패러디가 조롱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가 제시한 여러 패러디의 예시를 통해 입증되며, 패러디의 어원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뒷받침된다.

패러디의 어원학적 뿌리인 ‘paradia’는 대응노래를 뜻하는 희랍어로 접두사 ‘para-’는 대부분의 패러디 이론에서 대응하는(counter), 반하는(against)’의 뜻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되어 패러디란 원작에 반하는 어떤 것이라는 통념을 형성하는 것에 기여했다. 그러나 린다 허천은 ‘para-’‘~와 나란히(alongside of)’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패러디에 의 의미를 적용하면 기존의 것에 반()하는 대조가 아닌 일치와 친밀성에 기반한 차이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패러디의 정의는 의 의미를 토대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패러디가 풍자와 조롱, 원작을 희생 혹은 훼손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더불어 ‘parodia’에는 조롱이나 풍자의 개념을 포함할 필연성이 전혀 없다. 


 



혼란의 이유 : 패러디와 풍자의 관계


하지만 패러디를 정의하고 특징짓는 데에 가장 큰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바로 풍자이다. 전통적으로 패러디 정의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던, 그리고 린다 허천이 패러디 이론을 구성할 때 중점적으로 전복시키고자 했던 것이 풍자와 조롱적 의미의 내포였던 것을 기억할 때, 이 둘의 구별은 패러디 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린다 허천은 풍자와 패러디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이 두 개념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서 권내적(intramural) 목표과 권외적(extramural) 목표라는 뚜렷이 구분되는 기준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목표로 번역되는 단어는 ‘target’이다. 그렇다면 패러디의 목표target는 권내적이며 이는 패러디가 자신의 원작을 타겟으로 하고 그것의 변형을 통해 목적을 완수함을 뜻한다. 풍자의 목표target는 권외적이며 이는 풍자의 타겟이 어떤 (원작)텍스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밖의 어떤 것에 있음을 뜻한다. 쉽게 말해, 패러디는 그것의 전신이 되는 텍스트(원작) 없이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며 이와 달리 (패러디를 사용하지 않은nonparodic)풍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든 겨냥할 수 있다.

그런데 패러디와 풍자가 혼동되는 이유는 이 두 개의 장르가 자주 함께 사용된다는 데 있다. 린다 허천이 패러디적 형식과 풍자적 의도 간의 밀접한 상호작용”(80p)이라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 의도의 측면에서 풍자를 추구하고 형식의 측면에서 패러디를 사용하는 경우는 예술, 특히 현대 예술에 만연해 있다.[각주:3] 한편 패러디적 풍자는 풍자라는 장르의 한 형태로서 그 목적은 텍스트 밖의 어떤 것에 있으며(권외적 목표) 풍자적, 수정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매개로서 패러디를 사용한 것을 말한다.[각주:4] 이 두 갈래의 예시에서 주목할 차이는 풍자적 패러디는 원작 자체를 공격하지는 않은 반면, 패러디적 풍자라 불리는 것은 풍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원작이 되는 작품 그 자체에 대한 공격,(브레히트 <마하고니시의 흥망>에서는 그의 원작이 되는 성경에 대한 공격)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즉 두 개의 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목표target에 대한 태도로서, 패러디는 목표-원작에 이중적 태도(경멸과 경외)를 가진다면 풍자는 목표target에 오직 조롱과 희화의 태도를 가진다. 바로 여기에서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역설-패러디의 이중적 속성이 도출된다.

패러디는 원작에 대한 경멸ridicule과 경외homage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패러디는 그 본질 속에 권위와 위반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규정된다. 패러디는 원작과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원작에 대한 경멸의 뜻을 표출하면서도 반복이라는 필수 조건에 의해 원작에 대한 경외를 표한다. 공인된 기준의 위반이라는 모든 패러디 담론의 내면적 원칙을 언급할 때, 위반은 그 자체로서 위반을 가능하게 하는 제한된 존재의 인정을 수반한다. 패러디는 기존의 것의 연장선에서 그것과 단절을 시도하는, 보수적 힘과 혁명적 힘의 충돌이다. 패러디는 원작과 명백히 포괄적으로 연루하면서도 그것과의 배제적 거리를 설정한다. 패러디의 이중적 속성은 앞서 살펴본 패러디의 어원 ‘para-‘의 두 가지 의미-’~에 반하는’~와 나란히‘-에도 암시되어 있다.

이러한 패러디의 이중적 속성은 패러디와 풍자를 구별하고 패러디를 패러디로 만드는 조건이 된다. 정리하자면, 패러디는 경멸의 성격 때문에 종종 풍자와 혼동되지만, 동시에 경외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풍자와 달리 목표(target:여기서는 원작) 그 자체를 온전히 훼손하고 깎아내리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풍자는 목표(target:풍자는 본래 작품 바깥 어딘 가에 존재하는 권외적 목표를 가진다는 것을 기억하자.)가 되는 것 자체를 조롱하고 훼손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달성한다. 그리고 패러디적 풍자는 풍자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패러디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원작에 대한 공격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하녀>(2010)<하녀>(1960)의 패러디라면


그렇다면 <하녀>(2010)가 패러디라는 형식을 활용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차이를 통한 주제의식의 전환이다. <하녀>(2010)<하녀>(1960)의 플롯 및 갈등 전개 양상을 반복하되 그 위에 새로운 변형들을 추가함으로써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 즉 주제의식의 적극적 전환을 가져왔다. 원작 <하녀>(1960)가 불륜과 치정관계를 중심 화두로 두고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영화의 배경으로서 자연스레 반영되고 있다면 후작 <하녀>(2010)는 영화의 전체 구조 자체가 한국 사회의 계급 구도를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기능한다. 원작의 초점이 하녀와 주인 부부의 갈등과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하녀의 욕망과 광기에 맞추어져 있다면 후작의 초점은 극명한 계급 구도와 그 안에서 소외되는 인간성에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의 전환은 같은 제목의 두 영화가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된다. (패러디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권외적(사회적도덕적) 맥락과 결부된 새로운 주제의식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하녀>(2010)는 풍자적 패러디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풍자적 패러디로서 <하녀>(2010)가 얻는 것은 둘째, 사회적 영향력의 강화이다. <하녀>(2010)는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김기영 원작의 작품을 재제작한다는 것만으로 큰 화제-특히 필연적인 비판과 우려-였다. 부정적 반응의 선도가 아류작에 대한 비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한다 해도 이는 그 자체로 동시에 관심과 주목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녀>(2010)<하녀>(1960)의 명성에 편승하여 자신의 존재에 주목하게 만든 것이고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풍자적 패러디의 목적-권외적 맥락의 효과 극대화를 유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린다 허천 역시 작가들이 일차적 충격을 증강하고 아이러닉한 대조를 강화시키기 위해 그 매개로 가장 친숙한 텍스트들의 패러디를 선택 사용한다고 말한바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패러디스트가 기존에 존재하는 작품을 변형-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특히 그 목적이 권외적 맥락에 있을 때, 그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요구되는 능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작과는 다른 주제의식을 가진 <하녀>(2010)가 취한 전략은 영민한 것이었다.

 

 



영화 <하녀>와 패러디, 새로운 평가


패러디는 옹호자를 필요로 한다.”[각주:5]

 

오랫동안 패러디는 기생적이고 파생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왔으며 이러한 통념은 패러디가 현대 예술의 중요한 양식으로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패러디와 풍자의 여전한 혼용은 패러디를 원작의 부산물로 치부하고 풍자 이외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문화적 인식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표절과 달리 동일한 기반을 부정하지 않고, 모방과 달리 차이, 즉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패러디의 가치는 옹호될 수 있다. 주어진 텍스트의 제한성을 뛰어넘어 분명히 새로운 또 하나의 텍스트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창조적이다. 패러디의 가치와 창조성을 인정할 때, 패러디스트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새롭게 전환시킬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기존의 소스들을 발굴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이다영화 <하녀>(2010) 역시 감독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매개로서 원작 <하녀>(1960)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대중이 예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패러디함으로써 전환된 주제의식을 강조할 수 있었다

이번 글을 통해 <하녀>(2010)<하녀>(1960)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패러디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사실 패러디라 생각하지 않아도 영화를 관람하는 데 지장은 없다. 다만 패러디임을 인지하고 유사성과 차이에 주목하여 원작과의 상호작용을 포착한다면 더욱 풍요로운 작품 해석의 지평이 열릴 것이라 기대한다. 이렇게 패러디의 예술적 가치는 인정되며 그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 


  1. Linda Hutcheon, O.C. (born August 24, 1947) is a Canadian academic working in the fields of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opera, and Canadian Studies. Hutcheon describes her herself as "intellectually promiscuous", as she brings a cross-disciplinary approach to her work[1] She is University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English and of the Centre for Comparative Literature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where she has taught since 1988. In 2000 she was elected the 117th President of the Modern Language Association, the third Canadian to hold this position, and the first Canadian woman. She is particularly known for her influential theories of postmodernism. [본문으로]
  2. 린다 허천, 『패로디 이론』, 김상구 윤여복 옮김, 문예출판사, 1992. pp.13-14 [본문으로]
  3. 풍자적 패러디의 예시를 보자. 호쿠자이의 <후지산의 36경>을 패러디한 마사미 테라오카의 <후지산의 새로운 광경들 : 쾌락보트의 침몰>의 인물들은 에도시대 의상을 그대로 입고 있지만, 각 인물들에 카메라와 삼각대와 골프클럽을 새로이 추가함으로써 이 시대의 ‘골프광’이라는 새로운 풍자적 의미를 확실하게 부여한다. [본문으로]
  4. 패러디적 풍자의 예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마하고니 시의 흥망>을 보자. 브레히트는 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인들의 탈주와 지도자 모세, 구세주 예수의 스토리를 풍자적 의도를 가지고 패러디하며 새로운 세계의 계율은 패러디된 성서의 규범적 기호들이다. 이 모든 패러디는 기독교적 맥락을 거부하고 풍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본문으로]
  5. 린다 허천, 『패로디 이론』, 김상구 윤여복 옮김, 문예출판사, 1992. p.1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