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 주의사항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독자로 하기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의 인용 쪽수는2008년도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사, 2008) 속의 권여선의 단편소설 사랑을 믿다」를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만을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와 함께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문단의 인용은 들여쓰기 후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단절의 순간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은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한 채 소리친다. “나 다시 돌아갈래!”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외침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절규와도 같다. 다시 돌아가려 하기에는 어떤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단절시키는 선. 영화는 시간을 과거로 돌려 그 선이 그어진 순간들을 보여주고, 시간을 더 돌려 그 전의 영호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면 더 이상 자신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 아니면 더 이상 자신이 착한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단절시키는 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깨닫는다. 그 사실을 당신이 깨달은 후에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절의 순간이 어떤 순간이었는지를 생각해내고 후회하는 것.

 


    위대한 작가는 예리한 통찰로 단절의 순간들을 포획하고, 섬세한 묘사로 그 순간들을 나타낸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그랬고, 레이먼드 카버가 그러했다. 미세한 균열을 통해 단절이 시작되던 순간을 나타내기도 했고, 뒤늦게야 단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해하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소설을 마주하고 나면, 우리도 작가가 되어 우리 삶 속에서 어떠한 단절선이 있었는가를 찾아보게 된다.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역시 단절의 순간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소설은 '나'와 한 여자가 사랑을 믿는 사람에서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변하는 그 단절의 순간을 나타내고 있다. 단절의 순간은 각 인물의 이별의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 이번 글에서는 소설 속에서 이별의 과정을 살펴보며, 그 속에 나타나 있는 단절의 순간을 찾고자 한다.

 


    우선은 한 여자의 이별이야기이다.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를 만나 여자는 자신의 이별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자는 실연의 아픔을 들이키고 있던 중, 어머니의 끊임없는 부탁으로 큰고모님 댁에 선물을 전해주러 가게 된다. 물론 이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계속해서 조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혹시 그 사람이 금전적인 문제로 자신을 떠났을지 모른다는 망상이 그날 아침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면 그녀가 무거운 선물 보따리를 들고 큰고모님 댁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4)

 


    그 당시 여자는 자기 소유물의 가치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남자가 금전적인 문제로 떠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여자는 자신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남자가 누릴지도 몰랐을 자신의 소유물들을 세며 무의미한 복수를 행하고 있었다. 자식이 없는 큰고모님 댁의 건물을 찾아간 것도, 큰고모님 부부가 모두 돌아가시면 받게 될 미래의 자기 재산을 확인하려는 옹졸한 속셈이 깔려있던 것이었다.

 


    현관문을 연 여자는 큰고모 댁에 앉아있는 세 여인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인들은 희귀병을 앓는 친지의 완쾌를, 유괴된 손자의 생사를, 바람난 남편의 귀가를 위해 큰고모님댁 위층에 있는 철학관을 찾아 온 사람들이었다.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 안 여인들은 위층으로 올라가고, 큰고모님 부부에게 선물을 전한 여자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여자는 큰고모님 댁에 앉아있던 여인들과 자식을 먼저 보내고 늙어가는 큰고모님 부부의 평안을 빌었다. 여자는 자신이 이렇게 간절히 다른 사람을 위해 빌어본 적이 있는지를 생각했다. 계단을 다 내려오자 여자는 자신이 큰고모댁을 방문하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느꼈다.

 


    이것이 여자의 단절의 순간이자 이별을 마무리한 순간이다.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슬픔을 이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잃은 것이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순간, 여자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하나의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별 역시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여자는 사랑을 믿는 사람에서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모두가 알다시피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자의 이별 이야기를 모두 들은 는  여자에게 실연을 안긴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자신에게 실연의 아픔을 준 사람과 사귀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에게 실연의 아픔을 준 것이다. 그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은 후에 그 역시 여자와의 실연을 앓게 된다.

 


그때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놓쳐버린 스물아홉의 그녀로 인해 뒤늦은 실연을 앓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늦어 격렬하지는 않겠지만, 격렬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서 입술을 피나게 씹어대진 않겠지만, 희미해진 사진 속 윤곽을 더듬듯 손끝이 닳도록 무언가의 테두리를 하염없이 더듬어나갈 만짐의 세월이 시작되리라는 예감이었다. 그 예감은 지난 2월 내가 이 술집을 찾아든 순간 적중했다. (39)

 


    ‘는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한 때 사랑이었던 여자가 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동시에 는 여자가 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고, 자신 역시 이제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한 남자의 단절의 순간이자 이별을 겪는 모습이다. 이제 는 그저 술집에 앉아 과거를 회상하고, 만약 그 당시에 내가 이랬더라면 하고 상상하며 술잔을 들이킬 뿐이다.


    단절의 순간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삶 속에 있는 것을 종이 속 글자로 옮겨온 것이다. 책장을 덮은 혹자는 또는 이 글을 읽고 난 혹자는 훌륭한 탐험가가 되어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서 단절의 순간이 있었는지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단골 술집을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