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 주의사항 ※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에 맞춰 쓰여졌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모음집렉싱턴의 유령(문학사상, 2006) 속의 단편소설토니 다키타니」를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를, 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를 하였고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④ 본래 책에서는 '토니 다키타니'를 썼지만, 글쓴이가 소설을 짓게 된 동기에 티셔츠에 적혀있는 'TONY TAKITANI'에서 모티프를 얻었기에 '토니 타키타니'로 바꾸어 사용하고 인용하였습니다.






고독: ‘孤(외로울 고)’와 ‘獨(홀로 독)’의 만남

 




   한 단어를 보고 그것을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소설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해 보이는 소설은 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토니 다키타니」이다. 작가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유심히 바라본 뒤, 그 두 글자를 쉴새 없이 늘려 이 소설을 만든 듯하다. 고독은 ‘獨(홀로 독)’ 자가 ‘孤(외로울 고)’ 자와 만난 것이다. 조금 뒤틀어본다면 ‘孤(외로울 고)’ 자를 만나기 전까지 ‘獨(홀로 독)’은 고독이 될 수 없다.






‘獨(홀로 독)’의 남자




   ‘토니 타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토니 타키타니가 틀림없다. 그는 그런 이름(호적에는 물론 타키타니 토니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지만)과 얼마간 윤곽이 뚜렷한 얼굴 모습과, 고수머리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자주 혼혈아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직후였기 때문에, 미군의 피가 섞인 혼혈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부모는 어엿한 일본인이었다.’ (123)



   책은 토니 타키타니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일본인 부부에게서 태어난 미국식 이름의 아이. 한 존재와 그것을 부르는 호칭 사이의 괴리는 한 존재와 그것을 부르는 사람 간의 괴리로 이어졌다. ‘그가 이름을 남에게 알릴 때면 상대방은 묘한 표정을 짓거나, 더러는 약간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언짢은 농담처럼 받아들였고, 더러는 화를 내는 사람마저 있었다.’(132)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은 후 3일 뒤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버지는 늘 악단을 이끌고 연주여행을 떠났다. 학교에서도 이름 때문에 혼혈아라고 놀림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 있는 것이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건, 그에게 있어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굳이 말하자면, 인생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전제 조건이라고 까지 생각하기도 했다.’(132-133)






‘孤(외로울 고)’를 만나다




   어느 날 갑자기, 토니 타키타니는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녀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사무실에 와야만 될 구실을 억지로" 만들어내고, 그녀와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둘은 열다섯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통했고, 점심식사 이후에도 몇 번의 데이트를 했다. 그가 살아왔던 혼자만의 세계에 장막이 걷히고, 그녀가 그의 세계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를 뒤따라 외로움도 그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을 이때의 그는 알지 못했다.



   고독이 만들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녀에게 푹 빠졌던 토니 타키타니는 다섯 번째 데이트에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고, 열다섯 살의 나이차이도 무시하지 못할 조건이었다. 그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가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시간동안 토니 타키타니는 고독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녀를 만나기 전의 그의 삶은 고독했던 것이 된다.



   ‘그녀가 결정을 미루고 있는 동안 토니 타키타니는 매일 혼자서 술을 마셨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독이 돌연 알 수 없는 무거운 압력으로 그를 짓누르며 고뇌에 빠지게 했다. 고독이란 감옥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야말로 지금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뿐이야.’ (141)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였고, 토니 타키타니는 ‘고독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의 고독의 시기는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으로 고독의 시기는 시작되었다. ‘외롭지 않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조금은 이상한 상황이었다. 고독하지 않게 됨으로써, 다시 또 고독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를 마음속에서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142) 고독이 전부인 세상에 고독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독은 고독하지 않음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孤獨(고독)’을 안고가다.




   토니 타키타니는 아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서로는 서로를 사랑했고, 물질적인 부족함도 없었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옷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녀는 매일 새 옷을 구입했다. ‘아내 옷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것으로도 끝나지 않을 정도로 계속 불어나게 되자, 아내에게 무한히 너그럽던 그도 차츰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146) 그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고민을 이야기했고, 그녀는 옷 사는 것을 멈추겠다고 약속했다.



   옷을 반품하고 오는 길에 그녀는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갑작스레 사랑을 가지고 나타난 것처럼, 그녀는 갑작스레 그의 곁을 떠났다. 그녀가 떠난 뒤에 남은 것은 깊은 고독과 7 사이즈의 옷들뿐이었다. ‘그 옷들은 그에게 마치 아내가 남기고 간 그림자처럼 보였다. 7 사이즈의 아내 그림자들이 켜켜이 몇 줄로 열을 지어 옷걸이에 매달려 있었다.’(155)



   그에게 아내의 옷은 살아있던 아내와 그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였다. 아내의 몸에 딱 들어맞는 7 사이즈의 옷은 아내의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옷이 영원한 아내의 상징이 될 수는 없다. ‘토니 타키타니’라는 호칭이 호칭의 존재와는 다른 것이듯, 그녀의 상징물인 옷 역시 그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토니 타키타니는 그 사실을 얼마가지 않아 깨닫는다.



   ‘그 그림자들은, 예전에는 아내의 몸에 찰싹 붙어서 그녀의 따뜻한 숨결을 받으며 아내와 함께 움직이던 그림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생명의 뿌리를 상실한 채 시시각각으로 말라비틀어져 가는, 볼품없는 그림자 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그저 낡고 바랜 옷일 뿐이었다.’(155)



   결국 그는 옷을 모두 처분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내에 대한 기억은 점점 옅어져가고 희미해져갔다. 기억이 옅어져가는 것은 그가 아내를 잊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떠나보냈다는 것이다. ‘기억은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거기에, 꼭 걸맞은 무게를 지닌 채로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161) 고독과 맞닥뜨린 후로는 고독을 뿌리칠 수 없다. 다만 가슴 깊은 곳에 고독을 안고 가는 것이다.



   아내가 죽은 뒤 2년 후 아버지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유품으로 레코드 더미를 남겼다. 토니 타키타니는 아내를 떠나보냈던 방식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레코드 더미를 1년 동안 방에 보관하고 있다가, 레코드 더미가 아버지에 대한 상징을 잃고 짐스럽게 느껴지자 모두 팔아버린다. 방은 텅텅 빈다. 그리고 소설은 마지막 문장을 적는다. ‘레코드 더미를 완전히 정리해 버리고 나자, 토니 타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161)





2004년에 영화화 되었습니다. 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