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 주의사항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독자로 하기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의 인용 쪽수는 박완서 단편소설집너무도 쓸쓸한 당신(창작과비평사, 1998, 7쇄)를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만을문장 전체 인용은 작은따옴표 표시와 함께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문단의 인용은 들여쓰기 후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했습니다.






한 사람을 노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박완서의 「마른 꽃」





  무엇이 한 사람을 노인으로 만들까? 이 물음에 어떤 사람은 ‘시간’이라고 짧고 간결하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가장 현명한 대답이지만, 현명한 대답이 대부분 그렇듯 부족한 것 투성이다. 다른 누군가는 ‘나이’라고 자신있게 말할지 모른다. 현행 노인복지법 상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65세가 넘으면 노인이 된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이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 이러한 물음을 품게 된 것은 순전히 박완서 작가 때문이다. 책장에 꽂혀있던 『너무도 쓸쓸한 당신』과 『친절한 복희씨』 속의 이야기들은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노년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고, 노년에 대한 여러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노년에 관한 이야기 중 「마른 꽃」을 처음 읽은 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노인도 사랑을 하는구나. 이 얼마나 몰지각한 감상평인가.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한 인물을 나와의 관계에서 떨어뜨려 한 개인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꽤나 생소한 작업이었다. (어머니를 한 여성으로, 노인을 누구의 할아버지가 아닌 사랑의 주체로 생각하는 것들 말이다.) 그렇기에 내 기억 속에 「마른 꽃」은 노인의 로맨스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읽어보니 「마른 꽃」은 단순히 노인의 로맨스물이 아니었다. 이 소설에는 노인 사이의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사람을 노인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내년에 환갑이 다가오는 여성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그녀는 대구에서 치러지는 친정조카의 결혼식에 가게 된다. “폐백 받을 때 체면을 차리려고 한복까지 뻗쳐 입고” 갔지만, 예식 순서에서 폐백은 생략되어 있었다. 분홍색 한복은 요란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쫓기듯이 서울로 올라온다. 실은 대구에 살고있는 장조카 녀석네 집에서 하룻밤 묵을 생각이었지만, 조카며느리는 하룻밤 묵고 가겠냐는 인사치레는 커녕 토요일이라 차가 없을 것이라고 서둘러 올라가라 재촉할 뿐이었다.


   주인공이 입은 한복의 처지는 노년의 주인공 처지를 나타낸다. 서울로 올라가는 내내 거추장스러운 한복은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노년의 주인공의 처지와 같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한복은, 또 노년의 주인공은 왜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것인가? 그 요인은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한다. 한복은 결혼식에 있어야 할 폐백이 취소된 탓에 거추장스러워졌고, 노년의 주인공은 그녀를 공경하고 대접해야 할 젊은 조카며느리들이 귀찮아하는 탓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 노년의 주인공 처지는 외부에서 규정지어진 것이다.


   상경길에 우연히 노년의 한 남성과 동석하게 된다. 그는 아콰마린 반지를 끼고 런던포그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옷차림이나 장신구에 관심을 갖고 야릇한 설렘을 느낀다. 대전쯤을 지나 이야기를 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잘 통했다. 장시간의 버스길에 모든 사람들은 지쳐 잠들었지만, “두 사람은 계속 깨어서, 계속 젊은 애들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에 도착은 두 사람은 서로 같은 동네에 산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같이 택시를 탄다. 그는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주고 자신의 명함을 그녀에게 건넨다.


   주인공은 ‘그’를 만나면서 조카며느리가 만들어놓았던 노인의 그늘에서 탈피하게 된다. 외부에서 규정지어준 '쓸모없는 노인'이라는 존재는, 다시 외부인을 통해 극복하며 '사랑이 가능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는 ‘그’가 트렌치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씌어주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나는 마다하지 않고 순순히 그 안에서 몸을 작게 웅숭그렸다. 나이 같은 건 잊은 지 오랬다.'(29)


   그 후로 두 사람 사이에 연락이 몇 번 오가고, 만남도 갖게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사이에 그녀의 딸과 그의 며느리가 끼게 된다. 그녀의 딸은 엄마의 사랑을 응원하며 재혼을 권유하고, 그의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혼을 권유한다. 그녀의 딸과 그의 며느리가 알게 된 이후로 둘의 사랑은 환상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리고 현실이 된 이상, 그녀는 사랑에 대한 어떤 결정이라도 내려야만 한다. 그녀는 생각 끝에 현실이 된 사랑에 작별을 고하기로 결심한다. 노년의 사랑은 정욕이 비어있음을, 정욕이 없는 사랑으로는 늙음을 견딜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조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늚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중략)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재고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불가능을 꿈꿀 나이는 더군다나 아니었다. (43-44)


   그녀는 그의 반지 낀 손 위에다 자신의 손을 정성스럽게 포개면서, 한번 과부 된 것도 억울한데 두 번씩 과부 될지도 모르는 일은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잠깐이나마 늙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사랑과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그녀는 진정 노인이 되어버린다.




   이 소설은 분명 한 여성이 노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한 사람이 노인이 되는 것은 외부의 규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노인복지법에서 정한 대로 65세가 넘으면 노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조카며느리가 거추장스러운 늙은이로 대우한다고 노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외부의 규정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가 있다. 거추장스러운 노인의 분홍색 한복을 사랑하는 이의 카키색 트렌치코트로 덮어버리 듯 말이다.  한 사람이 노인이 되는 것은 그 내부에서 오는 것이다. 자신의 사랑이 젊었을 적의 사랑과 다름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의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그 때 사람은 노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