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 <베를린> : 촌스럽지 않는 액션 영화에 관한 고찰



베를린 (2013)

The Berlin File 
8
감독
류승완
출연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이경영
정보
액션, 드라마 | 한국 | 120 분 | 201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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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액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소고


나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액션 영화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장르이다. 액션 영화만 보는 사람, 액션 영화라면 스토리와 크게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액션 영화에 굳이 돈과 시간을 들일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 우리 아빠는 전자에 속하지만 나는 분명히 후자에 속한다.

액션 영화가 눈요기하기에 좋다는 것은 인정한다. 화려한 스케일은 기본이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놀라운 액션과 긴박한 사운드, 땀과 상처로 범벅된 남주인공의 근육질 몸(*-. -*???)그러나 액션 장르는 어떤 소재든 새로울 것이 없을 만큼 진부해진나머지 이제 그저 멋진 남주인공이 멋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듯한 영화도 심심찮게 보인다. 영화에서 서사와 감정을 중요시하는 편인 나에게는, 정말 최악인 영화.

 

영화 <베를린>은 액션 영화다.

류승완 감독의 새 영화 <베를린>은 의심의 여지없이 액션 영화이다. 화려한 액션과 스펙타클을 자랑하는 이 영화에서 남주인공 표종성(하정우 분)는 어김없이 역경에 처하며 심지어 그의 아내 련정희(전지현 분)은 인질이 되어 하정우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위험한 상황들을 극복해 간다. 전형적인 액션 영화의 요건을 모두 갖춘 이 영화!

그런데 나는, 액션 영화를 싫어하는 나는, 영화 <베를린>이 마음에 든다. 내가 하정우와 류승범을 좋아하기 때문인가, 액션 영화가 재밌는 걸보니 내 일상이 그렇게 팍팍한 걸까 생각하다가 내가 <베를린>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렇지, 액션이라고 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소결 : 액션 영화에 액션이 전부는 아니다.

잠시 언급했듯, 모든 액션 영화는 액션 영화가 갖춰야할 기본 구성을 동일하게 가진다. 그렇다면 액션 영화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것은? 쉽게 떠오르는 답은 참신한 액션과 방대한 스케일일 것이다. 말 그대로 액션영화, 액션 빼면 시체.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주인공은 멋있고 액션은 훌륭하지만 졸작인 숱한 영화들을! 이쯤 되어 깨닫는 당연한 얘기 - 액션 영화의 품질을 결정하는 건 액션의 원인이 되는 상황 설정과 그 사건의 해결과정이다. 사건의 퍼즐 조각과 액션이 맞물려 돌아갈 것. 내가 보기에 <베를린>은 그런 영화다.

 

 




2 ‘액션영화 <베를린>의 매력 포인트


감독 류승완 : 꼼꼼한, 액션, 재치.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자신의 세계를 선보이면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류승완 감독. 항상 흥행하거나 평점 높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나(^^;) 대표적으로 <부당거래>, <다찌마와 리>, <아라한 장풍대작전>등의 작품이 유의미한 족적을 남기며 액션을 향한 애정을 확실히 증명해왔다. 그의 영화는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며, 꽤나 고퀄리티의 액션을 녹여내고, 깨알 같은 유머(류승완 표 유머의 총체는 단연 <다찌마와 리>!!! ,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유머를 구사하니 주의할 것.)를 심어놓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그를 표현하는 꼼꼼, 액션, 재치의 세 키워드는 영화 <베를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오프닝 : 영화는 시작 후 5분이 전체를 좌우한다.

일단, 모든 영화는 시작 후 5분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스릴러/액션 영화는 관객을 압도(기선제압!)하고 집중을 끌어내는 것이 관건. 영화 <베를린>의 경우 오프닝에서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는 북한의 영웅 표종성 작전 수행을 위해 멘트와 암호로 장소 및 시간을 알아내는 상황을 관찰함으로써 일명 고스트요원 하정우의 생활 방식과 베를린의 분위기 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약간의 노이즈를 곁들인 모노톤, 하정우 바로 뒤에 바짝 붙어 함께 가는 앵글 위치,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사운드, 암호로 처리된 비밀 작전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돕는 적절한 그래픽은 분명히 영화적이고 그래서 낯선 분위기를 풍기며 결과적으로 관객은 긴장한 채로 화면에 몰입하고 이내 급박하게 들이닥친 영화 타이틀을 맞닥뜨리게 된다.




다중시선 :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모두가 연루되어있다.

영화 전체에서 꾸준히 유지되는 다중 시선은 매우 흥미로운 설정이다. 다양한 집단이 등장하고 서로 연루되어있는 만큼 각기 최고의 기술을 사용하여 모두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 다르게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시점. 이는 영화 초반부 무기거래를 지켜보는 여러 그룹의 시선이 긴박하게 교차될 때와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 리학수(이경영 분)를 모든 세력이 추격할 때 극대화된다. 특히 리학수 추격씬에서 지하철 선로로 도피한 리학수와 그를 쫓는 표종성이 열차가 다가오자 벽에 붙어 버티는 동안, 뒤이어 쫓아온 정진수(한석규 분)가 권총을 장전한 채 지하선로 출입문을 열고 이 때 통과하고 있는 열차의 속도로 인해 강한 바람이 불어 닥치는 연출은 세 인물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다른 시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흩어져있던 단서들의 조각이 교차하면서 하나로 맞춰지는 클라이막스에서도 이러한 다중시점의 매력은 톡톡히 효과를 본다. (하정우랑 한석규가 모은 단서, 관객은 먼저 다 맞출 수 있지롱!)

 


액션1 : 원칙과 일관성

액션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액션의 원칙과 일관성이다. <베를린>의 액션은 무조건적으로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각 인물에게 할당된 위치와 성격, 상황에 따라 일관성 있게 배열된다. 액션의 일관성이 가장 효과적으로 포착되는 지점은 표종성과 동명수(류승범 분)의 기술이 일치되는 것에 있다. 오프닝에서 정진수가 표종성의 관자놀이를 권총으로 겨누는 장면은 예고편에도 소개될 만큼 임팩트 강한 장면이다. 머리에 총을 겨누다니, 이건 게임 끝! 한석규의 승리니까. 그러나 표종성의 한 마디 남조선에서는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라고 가르치나? 고개만 돌리면 총알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어.”  이후 표종성은 보란 듯이 총알을 피하고 정진수의 총을 해체한 뒤 그의 목에 총구를 겨눈다. 이 놀라운 기술은 후반부 사건의 전말을 알아챈 아랍세력이 동명수의 관자놀이에 겨눈 총을 동명수가 고개를 돌려 피할 때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그리고 동명수의 냉정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그의 첫 등장 - 기차 안에서 볼펜으로 소매치기의 목의 혈관을 찍어 사살하는 방식은 영화 말미 표종성이 동명호를 죽일 때 똑같이 반복된다. , 표종성과 동명수가동일한 훈련을 받은 북한의 전사라는 설정이 액션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더불어 완벽한 조준을 보여주던 류승범이 점차 폭주하면서 끝에 가서는 무차별 총격과 무차별 주먹질을 시전하는 것도 상황의 변화와 감정의 고조, 인물의 성격을 고려한 배치로 보인다. 북한, 남한, 아랍, 이스라엘 그룹별로 각각 미묘하게 다른 스타일의 기술과 조직적 대응을 구사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

 



액션2 : 장소와 소품 활용도

영화 <베를린>에는 호텔 객실, 옥상, 계단 통로 등 실내 액션신의 비중이 높다. 그 중 하정우의 계단 점프(*_*)도 인상적이지만, 표종성의 집 안에서 벌이는 사투와 탈출신의 긴박함은 최고조이다. 표종성과 동명수의 부하3은 맨손과 총으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온갖 집기를 이용해 혈투를 벌인다. 찬장과 냉장고는 기본이요, 그 안의 통조림과 유선 전화기 등을 활용하는, 이게 바로 가정집 액션! (엄청 급박하고 위기의 순간인데 통조림으로 때리는 거 보고 웃음...ㅋㅋ)

이후 창밖으로 탈출해 유리가 다 깨지면서 건물 1층의 카페로 떨어지고 전선에 휘감겨 도미노처럼 여기저기 부딪히는 장면은 과하다 싶을 만큼 계산된 연출인데, 장소를 완벽하게 활용하는 액션이라, 확실히 화려하긴 하다.

 


그리고, 액션 영화 <베를린>을 촌스럽지 않게 만드는 것들

비현실적인 영웅화의 지양

<베를린>은 흔한 영웅물이 그렇듯, 주인공 개인이 1100으로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표종성은 자신의 사전 조사와 정진수의 도움으로 획득한 단서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이를 상황을 반전시킬 무기로서 활용한다. 결국 표종성을 겨누던 북한 그룹과 아랍 그룹의 총구가 하정우가 아닌 서로(북한-아랍)를 겨누도록 판을 뒤집는 것이다. 혼자 모든 적을 무찌르는 비현실성을 과감히 버리고, 집단과 상황을 이용하는, 좀 더 현실적이고 오히려 더 쾌감적인 상황 설정. 세련된 방식의 전개다.

 

갈대밭, 련정희의 죽음

물론 주인공의 여인이 죽는 것도 진부하지만, 주인공이 적을 다 물리치고 여자를 안전하게 구출해내는 해피엔딩은 좀 더 진부하다. 하지만 핵심은 련정희가 죽었냐 살았냐가 아니라 그 장면 전체에 있다. 표종성이 숨이 끊어진 련정희 업고 뛸 때, 아무리 기를 써 봐도 다리의 총상 때문에 계속 넘어지는 모습은 어떻게든 의지로 돌파하는 영웅들과는 다르게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갈대밭 한 가운데 주저앉은 표종성, 련정희와 목적지였던 건물이 비로소 한 눈에 다 들어올 때, 그 거리는 허무할 정도로 너무 멀어서 무력감을 한껏 느끼게 한다. 사건을 해결하고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영웅의 절규는 더욱 애절하다. 어떤 결말도 진부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한없이 진부할 조각을 최대한 진부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드는 비법이 여기에 있다. (하정우가 복수를 위해 돌아가는 엔딩은 여전히 영웅물스럽긴 하지만.)

 

균형의 시각 : 집단 간 선악구도의 폐기, 시스템과 개인의 분리

앞서 언급했듯 <베를린>은 북한, 남한(국정원/청와대), 아랍, 이스라엘 모사드, CIA 등 다양한 집단 고유의 스타일을 충실히 구현했다. 그리고 각 집단에 대한 선험적 선악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남한감독이 만들어 남한에서 개봉한 영화지만, 남한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옹호 받지도, 북한이나 아랍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비난받지도 않는 것이다.

표종성은 충성스런 빨갱이이지만 권력에 의해 부패된 북한 세력과의 비교우위를 차지할 뿐, 그 이념 자체는 문제시되지 않는다.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을 끝까지 신뢰하고, 뭔가 잘못되었다며 자신의 원칙과 신념에 근거하여 문제 상황을 차근차근 확인하는 인물로써 끝내 남한으로 전향결정도 하지 않는다. 우리와 가장 친숙한 인물인 남한 국정원의 정진수도 오히려 색깔론에 치우친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춰지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의 이념적 지향보다 인물 개인의 행동 방식과 인간적인 모습에 주목하게 된다. 강한 형제애로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아랍 세력들마저 그러려니 하고 보도록 묘사된 균형 잡힌 시각. 집단이라는 시스템과 분리된 개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진부함에서 한 걸음 벗어났다. 만약 하정우가 극적으로 정치적 신념을 바꾸고 남한으로 전향해서 남한 요원으로 활동하는 판에 박힌 가벼운 결말이었다면 매우 촌스러웠을 것이라 확신한다. (<솔트>.......2012 최악의 한국 영화 <간첩>처럼......)

 

 



3 맺음말, 사족

지금까지 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 첫 손님, <베를린>을 꼭꼭 씹어 음미해 보았다. 음미해 볼 재료가 더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액션은 하도 열심히 씹어서 단물이 쪽 빠진 것 같다. 너무 칭찬일색이었나? 등장인물과 세력, 단서가 되는 정보량과 출처가 많은 탓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도 있지만 집중하면 따라갈 수 있는 정도이고, 그 많은 정보를 빈틈없이 짜임새 있게 맞춰낸 능력을 높이 산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열연에 박수를 보내며- 등장인물 모두 부자연스러운 것 하나 없이 배역과 배우가 하나가 되었다. 보는 동안은 하정우가 너무 멋있고 (+전지현이 진짜 예쁘고)  하정우 편이 되지만, 돌아보면 류승범의 연기가 정말 최고였다는 생각이 남는다. 웃음기 싹 뺀 냉혈한과 기회주의자 연기를 상황 변화에 맞춰 완벽히 해냈다. 너무 멋진 거 아입네까? 최고. 류승완 영화엔 류승범이 항상 나와서 좋습네다. 냠냠~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베를린OST 'BAD' 뮤직비디오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