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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4. 조 라이트와 키이라 나이틀리의 <어톤먼트>
- 저마다의 속죄의 길
※ 주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미안한 일이 많이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안한 일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더 많다. 사랑해서 미안해지는 건지, 미안해서 사랑하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때로 동의어이기도 하다. 9/11 테러 당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통화를 했다. 비행기가 납치당하는 순간, 빌딩이 불에 타고 무너져 내리는 순간,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이다.
며칠 전이 친구의 생일이었다. 고등학교 3년을 붙어 다니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안타깝게도 친구는 세상에 없다. 2년 전 급성혈액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군복무 중이었던 나는 뒤늦게야 투병소식을 들었고 문자로나마 안부를 물었었다. 그 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친구는 죽었다. 복무 중이어서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났고 미안했다. 같이 있지 못했던 시간들과, 갚지 못한 것들이, 시시껄렁한 언쟁들이 단번에 몰려왔다.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과를 받아줄 친구는 없었다.
'속죄'라는 말이 있다. 속죄는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행동으로 비겨 없애는 것'을 뜻한다. 사과와 속죄는 다르다. 사과는 용서를 비는 대상의 앞에서 행해진다. 속죄는 용서를 비는 대상이 없을 때에도 행해진다. 사과는 '나를 용서해줘.'라고 말하는 것이고, 속죄는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과는 남이 나를 용서할 때 끝이 나고, 속죄는 내가 비로소 나를 용서할 때 끝이 난다. 예술은 때때로 속죄의 역할을 해왔다. 오늘 룽의 Ex-MovieFriend는 삶에게 용서를 비는 영화, 속죄의 결과물로서의 영화, 조 라이트 감독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어톤먼트>다.
<어톤먼트>는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번역하면 <속죄>라는 뜻이다. 조 라이트 감독은 <오만과 편견>으로 젊은 나이에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소설을 영화화하는 감각이 탁월한데, 이는 <어톤먼트>를 통해서 다시 증명된다. <어톤먼트>의 연출은 우아하고 섬세하다. 음악과 미장센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대신한다. 씬과 씬, 컷과 컷의 연결과 배치가 묘한 분위기와 무수한 암시를 읽어내도록 한다(특히 전쟁터를 스케치하는 5분여에 걸친 롱테이크는 감탄을 자아낸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조 라이트 감독과 <오만과 편견>에서 만난 뒤 <어톤먼트>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고전적 이야기에 굉장히 잘 녹아난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다. 그녀의 수줍은 미소, 살짝 나온 턱, 텅 빈 눈동자와 더는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호흡들이 영화를 본 뒤 내내 눈에 남는다. 그녀의 연기는 영화를 더 아프고 아련하게 만든다(제임스 맥어보이와의 더듬거리며 긴장하다 순간 터져 나오는 호흡이 정말 좋다). 조 라이트 감독이 그녀를 믿는 이유가 있다.
1935년 영국, 부유한 집안의 아름다운 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집사의 아들이자 명문대 의대생 로비(제임스 맥어보이)는 어릴 때부터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쉽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던 이들은 우연히 잘못 보내진 로비의 편지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세실리아의 어린동생 브라이오니의 오해로 로비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그리고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다. 이후 세실리아는 로비가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간호사로 일하게 되고, 로비 또한 세실리아를 다시 만난다는 단 하나의 일념으로 참혹한 전쟁을 버틴다.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오해와 잘못을 깨닫고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사과하려 한다. 그러나 사과는 실패하고 그녀는 속죄의 길을 걷는다.
<어톤먼트>는 제목처럼 '속죄'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다. 세실리아와 로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실은 브라이오니의 평생에 걸친 속죄를 말하기 위해 끼여 있는 이야기다.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오해(혹은 질투로 인한 고의) 때문에 세실리아와 로비의 삶이 망가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이를 사과하고 돌려놓으려 한다. 그러나 참혹한 전쟁이 셋을 갈라놓는다. 끝내 사과는 이뤄지지 못한다. 세실리아와 로비가 전쟁 중에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엔 브라이오니가 두 사람을 만나 사과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이야기 진행상 약간 어색한 장면이다. 끝에서야 밝혀지지만 브라이오니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어톤먼트>를 내놓는다(그녀는 글쓰기를 놓치않는 소녀로 내내 등장한다). 그제야 앞선 이야기가 그녀의 소설 속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배경음악과 함께 쓰이는 타자기 소리가 이를 암시한다). 브라이오니가 두 사람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은 실제로 있을 수 없었던 허구로 써낸 장면이다. 그녀는 세실리아와 로비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행복을 그녀의 소설 속에서나마 돌려준다.
그녀에게 소설은 속죄의 도구다. 세실리아와 로비가 만나 바닷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더욱 처연하다. 존재했어야 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도 그녀의 속죄는 끝나지 않는 듯 이상한 여운이 남는다. 애초에 속죄란 끝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속죄는 이 정도면 됐다며 멈추는 순간 의미를 잃는 것이리라.
때때로 나도 가버린 친구를 생각하며 글을 끄적거렸다. 친구의 멈춰버린 시간을 이어 붙여 만들어 주기도 했다. 예전처럼 바보 같은 농담을 하는 상상을, 늘어지게 뒹굴며 만화책을 읽던 상상을,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사는 얘기를 하는 상상을, 내가 다 잘못했다고 돌아오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친구를 생각하면 나는 속죄하는 마음이 된다. 뭐하나 잘난 것 없는 내가 더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미안하다.
속죄라는 건 참 무력한 일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속죄의 행위는 무엇이든 숭고한 예술이 된다.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일이든, 더 잘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이든, 봉사를 하는 일이든, 매일 무덤을 찾아가는 일이든 말이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엔 속죄하게 된다. 특히 남겨진 사람들이 그렇다. 수화기 너머로 미안하다는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있었을 그들. 허무하게 남겨진 그들은 더 미안하고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마다의 속죄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 조 라이트, 키이나 나이틀리의 <안나 카레니나> 2013년 3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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