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1.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

- 다이하드, But 다이하드, So 다이하드

 

 

  매번 전혀 다른 스타일의 사람과 연애를 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 있다(얜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긴 한 건가 싶은). 그런가하면, 외모고 성격이고 거의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사람과만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다(어디서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만 데려오는지). 마찬가지로 배우도 배역과의 관계에서, 매번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배우가 있는가하면, 대체로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배역을 맡는 배우도 있다. 무엇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고, 그저 성향이 다르다고 봐야할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후자에 가까운 배우로 보인다. 총을 들지 않은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은 잘 상상되지도 않고,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그런 모습은 많지 않다. 그 수많은 총을 든 모습들 중에서도 사람들은 25년이 넘도록 그를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형사로 보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 자신도 25년이 넘어 머리는 벗겨지고, 여러 여자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에도 여전히 존 맥클레인과는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물론, 브루스 윌리스는 이후 존 맥클레인에게서 벗어나려 다양한 배역을 맡았지만). 오늘의 Ex-MovieFriend는 브루스 윌리스의 지울 수 없는 첫사랑이자 현재진행형 사랑인 <다이하드>이다.

 

  <다이하드>는 1988년 존 맥티어넌 감독이 만든 액션영화로, 당시만 해도 TV시리즈 <블루문 특급>에서 탐정을 연기하며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브루스 윌리스를 액션히어로로 만들어 놓은 대흥행작이다. 브루스 윌리스의 첫사랑인 이 영화는 실은 많은 남자들에게 실연을 당하며 그에게까지 왔는데, 당시 육체파 최고의 남자였던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먼저 섭외가 갔었다고 한다(재밌게도 이후에 그들은 <익스펜더블>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만의 유머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존 맥클레인의 툴툴대고 반항적인 유머는 거의 브루스 윌리스의 애드리브였다고 하니 이거야 말로 천생연분이라 해야 하나.

 

  소설가 김연수 씨는 밥 말리의 명곡 <No Woman No Cry>를 오랫동안 <여자가 없으면 울 일이 없다>로 알고 있었다고 어느 글에 쓴 적이 있다(아마도 한문식 해석? 아니면 'no pain, no gain'식 해석?). 하지만 그 본래 뜻은 <그만, 그대여. 울지 말아요>로 여자를 위로해주는 말이었으니. 완전히 정반대의 해석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 역시도 <다이하드>라는 제목을 보고 한참을 난감해했다. <다이하드>라는 제목을 보면 어떤 영화일지 대략 감은 잡힌다(어찌되었던 '다이'고 '하드'니까 액션이겠지). 하지만 해석을 하려고 하면 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름대로 <다이하드>라는 제목이 어떻게 번역될까 열심히 궁리를 하다가 결국 두 개의 후보로 압축할 수 있었다. 1) 열심히 죽다! 2) 죽기도 힘들어! 그러니까 한 남자가 아주 열심히 성실하게 죽는 이야기거나 한 남자가 '이거 참 죽기도 힘드네.'하며 한탄하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결과 약 10초 만에 <다이하드>의 본래 뜻을 알았으니, 바로 <죽도록 고생한다>였다.(이 오묘한 번역의 세계란) 영화는 그야말로 죽도록 고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직장 문제로 떨어져 사는 아내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오게 된 뉴욕경찰 존 맥클레인은 아내의 회사에서 테러범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어쩌다 초고층빌딩의 인질테러사건에 휘말린 맥클레인은 권총 한 자루에 런닝셔츠와 맨발로 무모하고 아슬아슬하게 테러범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그는 영화 속 영웅들처럼 탄탄한 근육질도 아니고, 고도로 훈련된 몸놀림을 보여주지도 않는다.(마치 비교하듯이 영화 속에서 람보와 슈워제네거가 대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어딘지 허둥대면서도 아슬아슬하고,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어쩌자고 이런 일에 끼어들었냐며 엄살을 부리고 툴툴거린다. 그러니 세상을 구하겠다는 영웅심은 당연히 찾아볼 수 없다. 이게 바로 안티히어로 맥클레인의 웃기는 매력이다.

 

  이런 그에게 영웅적 면모가 있다면 (어찌 보면 보통 사내인 이 남자가) 바로 죽으려고 환장했다는 거다. 그야말로 이순신 장군님의 신념을 본받아 '열심히 죽으려는' 사나이인 것. 그런데 이게 웬걸.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죽음을 무릅쓰니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하나씩 적을 소탕하며 그는 기똥차게 살아남는다. 이거 참 이 남자. '죽기도 힘든'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곡절 끝에 런닝셔츠는 피범벅 맨몸이 되고, 맨발은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적들을 모두 소탕한 우리의 영웅 맥클레인은 건물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그는 성취감이나 승리를 만끽한다든가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는커녕 아내와 함께 어서 집에 가서 남은 크리스마스라도 편하게 쉬겠다는 듯 차를 재빨리 타고 떠나버린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참 죽도록 고생만 했네' 하며 끝나는 것이다. 오글거리는 영웅식 감동은 1초도 없고, 오히려 노동자의 감성을 꽉꽉 채워놓은 그런 영화인 것.

  영화를 보고나니 제목에 대한 내 번역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던 것이, <다이하드>는 '열심히 죽으려고' 하지만 '죽기도 힘든' 남자 존 맥클레인이 결국 '죽도록 고생만 한' 이야기였다. 내 식으로 다시 번역하면 '다이하드(열심히 죽으려), But 다이하드(죽기도 힘든), So 다이하드(죽도록 고생만한)'인 이야기.

 

  이 사즉필생의 남자가 몸으로 주는 노동스릴도 굉장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맥클레인의 진정한 매력 혹은 영웅적 면모는 다름 아닌 '말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생활의 영웅은 어쩌면 대신 욕해주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는데(대놓고 욕하긴 망설여지는 상황에서 누가 대신 해주면 그가 멋져보였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 욕이 유머러스하기까지 한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열광한다. <개그콘서트>의 개그맨이 따끔하게 일침을 놓을 때의 희열, <봉산탈춤>의 말뚝이가 양반들을 놀려줄 때의 통쾌함 같은 것. 답답하고 권위적인 경찰국장에게 시원하게 욕을 해버리고, 폭력으로 사람을 누르고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테러단을 놀려주며 바보로 만드는 이 통쾌한 말빨이 맥클레인의 가장 강력한 매력이자 서민적 영웅의 면모다. 서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권위적이면서 무능한 국가'와 '거대한 힘을 폭력적으로 사용하는 이익집단' 사이에서 고생하고 있다. <다이하드> 시리즈가 쏟아지는 액션히어로물 사이에서 아직도 사랑을 받으며 이어지는 데는 그만의 노동자적 액션과 서민영웅의 말빨이 관객들에게 물리적 액션의 쾌감 이상의 감정적 액션의 쾌감을 맛보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존 맥클레인은 선망의 영웅이 아닌 공감의 영웅으로 가슴에 남았다.

 

  25년이 지나 새로운 <다이하드>로 머리는 벗겨졌고 주름은 늘었지만 브루스 윌리스가, 존 맥클레인이 돌아왔다(심지어 아들과 함께). 서민들은 언제나 그야말로 '다이하드'하며 살고 있다. 맥클레인이 몸은 늙었지만 말빨은 더욱 살아서 다시 한 번 통쾌하게 욕을 날려준다면, 죽을 둥 살 둥해도 결국에 살아남아 집으로 퇴근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유쾌하게 세대를 막론하고 힐링이 되는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한 번의 '다이하드 정신'을 기대하며 다시 극장으로 가보아야겠다. 렛츠 다이하드!

 

 

※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 2013년 2월 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