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12. 봉준호, 송강호의 <살인의 추억>

- 한국식 밥과 법 

 

  

  "밥은 먹고 다니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다. “, 그럼. 요새 밥 굶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는 언제나처럼 퉁명스럽게 답한다. 내가 부모님에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이 끝없이 이어지는 밥타령이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부터 밥 좀 더 먹어라’, ‘밥은 제때 챙겨먹어라.’,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다.’ 등등. 밥에 대한 레퍼토리는 무한증식, 무한반복된다. 나한테 물어볼게 그것밖에 없나 싶다. 그러니 이라는 단어만 나와서 반사적으로 신경질이 나곤 한다. 

 

  부모님의 이런 밥에 대한 집념(내가 보기엔 집착에 가까운)은 당신들이 겪은 시대의 유산이다. 단지 못 먹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다. 그보다 정확히 말하면 보다 이 먼저인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룽의 Ex-MovieFriend는 법보다 밥인 시절을 담은 영화, 그 애증어린 추억에 관한 영화, 밥걱정 많이 해주는 영화, 봉준호와 송강호의 <살인의 추억>이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엔 이런 말이 나온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밥이란 그런 것이다. 밥은 사라지지 않는, 평생 동안 해결해야할 욕망이다. 법은 그 반대다. 과도한 욕망을 제어하는 수단이고, 그 판단의 기준이다. 밥은 본능적으로 찾아야 했던 것인 반면 법은 이성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밥과 법의 충돌이 봉준호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살인의 추억>이 충돌을 가장 잘, 가장 한국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1986년 경기도 작은 농촌마을에서 젊은 여인이 무참히 강간, 살해당한다. 2개월 후, 비슷한 수법의 강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조용하던 시골마을은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한 범죄의 공포에 휩싸인다. 지역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 그리고 서울 시경에서 자원해 온 서태윤(김상경)이 수사를 담당하게 된다. 육감으로 수사한다는 박두만은 동네 바보나 양아치들을 족치며 자백을 강요하고 증거를 조작한다. 오직 자료만을 믿는다는 서태윤은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며 사건 조사한다. 서로 다른 스타일로 두 사람은 부딪히며 신경전을 벌인다. 범인을 만들어내서라도 사건을 종료하려하는 두만은 밥의 수사를 한다. 닥쳐올 나의 한 끼니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에 태윤은 법의 수사를 한다. 범인이 아닌 사람을 가지고 조작하려는 두만을 번번이 방해한다.

 

 

 

  이런 충돌에 법보다 밥이 먼저인 그 시절의 공기가 붙는다. 밥은 욕망이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폭력과 야만을 부른다. 폭력과 야만의 시절에 수사는 진범을 잡기보다는 사건을 무마하는 데 급급하고, 언론은 제멋대로 사건을 뻥튀기해대고, 전경은 살인범 찾기가 아니라 시위진압에 나가있다. 그 사이로 살인범은 숨어들어간다. <살인의 추억>에서 농촌의 논과 거대한 공사현장이 음산하고 야만스럽게 다가오는 건 그 시절의 공기 때문이다. 두만과 태윤은 수사를 함께 해나가면서 변해간다. 두만은 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논리적인 영역의 문제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태윤은 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시대의 불합리와 잔혹한 살인마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둘은 사건의 실체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제 다 왔다고 확신한 순간, 미국서 날아온 유전자 검사결과는 무참히 확신을 무너뜨린다. 결국 그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확신하지도, 잡지도 못하게 된다. 이 지점이 다른 형사영화와 <살인의 추억>이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이 어둡고 텅 빈 터널 같은 결말은 범인을 확신하고 좇아왔다가 배신당한 그들의 황망함과 분노를 관객에게도 전달한다. ‘답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곳에도 답은 없었다.’ <살인의 추억>은 그 시절을 그렇게 추억하고 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두만이 범인이라 확신했던 용의자(박해일)에게 묻는다. 아주 묘한 뉘앙스의 대사다.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던 것처럼, 미안함과 염려의 느낌이기도 하고, ‘이런 짓을 하고도 밥이 넘어가냐?’는 분노의 느낌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디선가 영화를 보고 있을지도 모를, 아마도 밥 잘 먹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을 범인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고 했다. 나는 이 물음이 그 시절에게 던져지는 듯한 느낌이다. 닿으려고 해도 끝내 닿을 수 없고 추억할 수만 있는 그 시절에게 그렇게 밥 먹으니 좋디?’라고 묻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질문이 왜 지금의 나에게도 쿡 박히는 걸까. 지금 우리의 시절은 뭐가 달라졌는가 묻고 싶다. “밥은 먹고 다니냐?”

 

 

봉준호, 송강호의 <설국열차> 20138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