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10. 브래드 피트의 <머니볼>

- Just Enjoy The Show

 

 

  몇 해 전, 르느와르 작품전에 다녀왔다.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 르느와르. 그는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세상에 이미 어둡고 불쾌한데 또 다른 어둠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신념대로 그의 그림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입김을 후 하고 불면 그림에서 환한 빛이 먼지처럼 일어날 것만 같았다. 어둑한 미술관에 창문이 나 있는 듯 했다. 전시회를 보는 내내 예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을까.

 

  나는 인상파 화가들을 좋아한다. 그 중 르느와르에게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그의 그림들이 너무 엽서그림처럼 예쁘고 행복한 풍경을 담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직접 그림을 보니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나무들은 잎바닥 뒤집으며 온몸을 흔들었고, 100여 년 전의 빛은 여전히 살아서 그림 위를 기어 다녔다. 분명,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빛과 미소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건 르느와르가 그린 '그림자'였다. 그의 그림에는 빛만큼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제야 보니, 그는 '그림자를 기가 막히게 그려내는' 화가였다.

 

  낡고 낡은 얘기지만, 삶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나는 '행복총량의 법칙'을 믿는다. 그래서 빛이 강하면 반드시 그림자도 짙어지리라 생각하곤 한다. 영화는 삶을 이야기하는 움직이는 그림이기에 역시 빛과 그림자가 있다. 주로 그림자에서 빛으로 나가는 영화가 가장 많고, 빛에서 그림자로 들어오는 영화가 조금 있고, 그림자 속에 파묻힌 영화가 그보다 아주 적게 있다. 오늘 룽의 Ex-MovieFriend는 그보다 더 적은 영화다. 르느와르의 그림처럼 빛만큼의 그림자를 황홀하게 그려주는 영화. 행복총량의 법칙의 영화. 브래드 피트의 <머니볼>이다.

 

 

  현재 할리우드 최고의 각본가라고 하면 누굴 꼽을까. 많은 걸출한 사람이 있겠지만 나에겐 아무래도 '아론 소킨'이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어 <머니볼>을 보면서 확신이 생겼다. 그는 두 영화에서 모두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사람의 성공담을 보여준다. 보통의 영화라면 컴컴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며 감동적으로 끝날 이야기들. 하지만 아론 소킨의 성공담은 다르다. 그의 성공담 속 주인공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며 나아가고(I don't know where to go-Lenka <Show>), 그러면서 너무나 두려워하지만(I'm so scared-Lenka <Show>), 그것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But I don't show it-Lenka <Show>). 아론 소킨은 할리우드에서 성공담을 가장 잘 쓰는 사람으로 불려 지지만, 그는 실은 '그림자'를 기가 막히게 그려내는 사람이다. 르느와르처럼.

 

  르느와르. 'Renoir'라고 쓴다. 프랑스어로 느와르(noir)는 검다는 뜻이다. 유치한 말장난을 해보자면 Renoir는 '다시 검다'가 되는 것이다. 나만의 상상 속 르느와르의 그림은 이렇게 탄생한다. 하얀 캔버스 위에 검은색을 칠하고, 그 위에 다시 검은색을 칠하고, 그 위에 다시 검은색을, 다시 또 다시. 그렇게 계속하다보니 어느 순간! 환한, 눈이 시릴 만큼의 빛이 검은 캔버스 위에서 쏟아져 나온다. 마치 검은 우주에서 일순 빛줄기가 폭발하며 생겼던 것처럼. 아론 소킨이 이야기를 쓰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성공의 꼭대기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그림자를 덧대어가며 쌓아 올라가는 것. 그의 영화를 그러니까 '느와르 영화'가 아니라 '르느와르 영화'라고 불러도 될까.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에 그나마 실력 있는 선수들은 다른 구단에 뺏기기 일쑤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돈 없고 실력 없는 오합지졸 구단이란 오명을 벗어 던지고 싶은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요나 힐)’를 영입, 기존의 선수 선발 방식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머니볼’ 이론을 따라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머니볼 이론이란 경기 데이터에만 의존해 선수를 쓰는 것. 사생활 문란, 잦은 부상, 고령 등의 이유로 다른 구단에서 외면 받던 선수들을 팀에 합류시킨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며 그를 비난하지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결국 전설적인 20연승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줄거리만 본다면 그렇고 그런 뻔한 스포츠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만, <머니볼>은 그런 식의 감동에는 관심이 없다. <머니볼>은 아론 소킨의 '르느와르 기법'이 잘 드러난다. 단장 빌리 빈은 어린 시절 야구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으나 부진을 거듭하며 사라진 선수다. 그의 실패는 영화 곳곳에 삽입된다. 그러나 빌리 빈의 어둠은 단지 나중에 있을 성공을 더 빛나게 하려는 도구가 아니다. 그건 빌리 빈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이자 성공의 순간 이후에도 그에게 남을 어둠의 기억으로 그려진다.

 

 

  영화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를 보여주는 대신, 경기를 보지 못하고(자신이 경기를 보면 진다는 생각에) 혼자서 앓는 빌리를 비춘다. 스포츠 영화라면 으레 보일 장면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 20연승을 달성하는 순간에도 영화는 짧고 간결하게 그 순간을 묘사할 뿐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예상과 다르게 하이라이트는 20연승 이후다. 보통이라면 20연승은 주인공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었어야 하지만, 빌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고민한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어쩌면 더 무서워하고,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는다. 성취의 감동이 아니라 고독과 방황과 두려움에 대한 공감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박진감 넘치고 관객으로 찬 야구장이 아니라, 텅 빈 객석과 고민하는 빌리의 야구장이 깊이 마음에 남는다. 거기서 위로의 빛이 쏟아진다. 참 이상한 경험이다.

 

  <머니볼>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스캇 해티버그가 20연승을 확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칠 때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따로 있다. 20연승 후 '레드 삭스'로부터 단장을 제안 받고 빌리는 고민한다. 그에게 피터는 한 마이너리그 선수의 영상을 보여준다. 잘 뛰지 못할 정도로 뚱뚱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선다. 투수의 공을 쳐낸다. 이후 그는 전력을 다해 1루로 뛰어간다. 뒤뚱뒤뚱 뛰다가 멈추지 못하고 1루를 지나 넘어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와 1루 베이스를 밟는다. 하지만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 그는 홈런을 쳤던 것이다. 그는 그제야 멋쩍게 일어나 베이스를 돈다. 모든 선수와 관객의 격려를 받으며.

 

 

  아마 피터는 빌리에게 '당신은 큰일을 했어요. 당신이 이뤄낸 일을 봐요'라고 영상을 통해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에 빌리는 "이러니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지"라는 말을 하곤 나간다. 그런데 빌리는 결국 오클랜드에 남기로 결정한다. 빌리는 그 영상을 보고 무엇을 느낀 걸까. 아마 그 선수의 마음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어찌됐든 필사의 힘을 다해 1루를 밟겠다는 단순하고 간절한 마음. 홈런을 쳐냈건 안타를 쳐냈건 아웃을 당했건 그건 나중 문제다. 결국 야구란 홈런을 쳐내는 것이 아니다. 간절히 필사적으로 진루해 나가는 것이라는 걸. 삶 역시 그렇다는 걸 빌리는 보았을 것이다.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인생은 미로 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같죠.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머니볼>의 주제가 격인 Lenka의 <Show> 가사다. 르느와르가 그림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세상이 너무 어둡다는 걸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인생은 참 미로 같다. 빛만 있지도 그림자만 있지도 않다. <머니볼>은 그런 인생을 보여준다.

 

 

  당신의 타석에 공이 날아오고 있다. 홈런일까? 2루타? 플라이? 헛스윙? 글쎄, 알 수 없다. 하지만 홈런 이후에도 우린 다시 타석에 들어가야 하며, 아웃 이후에도 우린 다시 타석에 설 수 있다. 잘 모르겠고 무섭지만 필사적으로 쳐내고 진루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인생이란 Show이다. 이러니 야구를, 영화를, 인생을 사랑할 수밖에. Just Enjoy The Show!

 

※ 브래드 피트의 <월드워Z> 2013년 6월 20일 개봉(심지어 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