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1. 봉준호 <설국열차>

- 봉준호의 엔진은 무엇이었나

 

 

  시사회로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미리 보고왔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였다. 영화의 서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라기보단 '봉준호의 영화가 무엇이었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봉준호의 전작을 상당히 흥미롭고 재밌게 보아왔던 나는 그가 '설국열차'라는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영화 진행상황도 꾸준히 살폈으며, 원작 만화도 아껴가며 읽었다. 봉준호가 이 이야기와 장소를 어떻게 요리할까가 너무나 궁금했다.

 

 

  보고 난 뒤의 느낌은 상당한 실망감이었다. 그와 함께 '내가 봉준호 영화에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나'를 고민하게 되었다. 봉준호 영화를 달리게 하는 엔진은 무엇이었나. 그의 영화의 힘과 재미는 특유의 감성과 장르 비틀기 그리고 공간조직력에서 추진력을 얻었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형사물, 영화 초반부터 대낮에 광장을 휘젓는 괴수처럼 장르의 특성을 비트는 것. 소소하고 디테일하면서도 우스운 인물, 상황, 대사들이 주는 특유의 B급 감성. 잘 조직되고 이미지화된 장소들과 상징적이고 꿈틀거리는 배경들. 그런 것들이 내가 느끼는 봉준호 영화의 엔진이었다. <설국열차>에 실망했던 건 이런 엔진들이 생기를 잃고 폭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혁명과 저항의 서사를 가진 영화는 효과적으로 혁명을 설득해내지 못한다. 스크린에 보여지는 꼬리칸 사람들의 억압과 분노는 생각보다 미미하게 다가온다. 영화 후반부까지 아껴놓은 '꼬리칸에서의 사건'이 그들의 사연을 더 곡진하게 만들어주는 중심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 커디스의 한탄같은 대사에서만 그려질 뿐이다. 서사를 밀고 끝까지 나아가야할 그들의 이야기부터가 추진력을 잃으니, 전체가 힘이 없어진다. 꼬리칸의 동료 누군가가 죽어나가도 관객에게 슬픔과 분노가 강렬하게 와닿지 못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을 비롯하여 꼬리칸의 캐릭터들이 전체적으로 개성이 없고 공감도 없다. 뒤에 나오는 보안설계자 남궁민수라든가 엔진의 주인 윌포드, 꼬리칸의 정신적 리더 길리엄 등의 캐릭터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뭔가 더 많은 사연을 말할 듯 말할 듯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아쉬울 수 밖에. 혁명서사는 그래서 비틀어지지도 않고, 털털거리는 경운기처럼 나아간다.

 

 

  디테일과 인물, 상황, 대사들이 주는 유머와 B급 감성 역시 확 죽어있다. 이는 아마도 영화 전체의 톤 때문이겠지만, 언어의 문제가 큰 것 같다. 봉준호 영화의 미요한 감성은 사실 배우에게 기대는 부분이 많다. 자연스러우면서 우스운 대사와 표정이나, 어긋나고 맥락없는 상황과 슬랩스틱 등을 쫀득쫀득하게 붙여주는 변희봉이나 송강호 같은 배우들이 이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설국열차>는 외국배우들이 외국어로 주요 서사를 이끌어 가기에 봉준호 특유의 유머가 끼어들 틈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끔 송강호와 고아성을 통해 나오는 유머와 감성들도 번번이 미끄러진다. 그나마 틸다 스윈튼의 연기가 장르적 속성 안에서도 우스꽝스럽게 잘 표현되었다. 나머지 배우들은 아쉬웠다. 차라리 한국배우들이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윌포드에 백윤식이, 길리엄에 변희봉이, 커티스에 박해일이 그런 식으로 등장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장소다. 봉준호의 특기는 배경도 연기를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논이 꿈틀거리며 광기와 불안을 보여주고, 한강과 하수도가 부조리와 답답함을, 골목골목들이 묘한 긴장감을 연기한다. 특히, 광장의 이미지와 좁은 공간의 이미지가 적절히 섞이고 배합되면서 훌륭한 비쥬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설국열차>는 장소가 폐쇄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봉준호의 장기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것 같다. 열차는 그저 열차일뿐 무엇도 연기하기 못한다. 그 자체의 상징성도 강력하게 다가오지 못한다. 열차 칸들의 배치와 대비가 그나마 공간을 환기시킬 수 있는 부분인데, 이마저도 피상적인 스케치에 그친 느낌이다. 어쩌면 열차의 모습과 시스템이 영화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을 수 있는데, 이번 영화에선 박제된 듯 정말 배경에 그친 모습이다.

 

  그렇지만 <설국열차>는 어디까지나 봉준호라는 이름에 맞는 엔진을 장착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일 뿐이다. 그저 여름에 즐길만한 영화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물론 썩 좋지도 않지만. <설국열차> 역시도 봉준호의 하나의 정착역이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의 엔진의 힘을 믿는다. 다음번엔 힘빼고 드라이브하는 마음으로 달려보는 건 어떨까.